231화
‘벨 크라운’이라는 한 남자는 신이 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시간으로 따지면 무려 십만 년이 넘는, 장대한 계획을. 그리고 그 계획은 곧 달성을 목전(目前)에 두고 있었다. 아틸라에게 들은 대로라면, 발라르는 그의 대리인일 확률이 높았으니 말이다. 그제야 나는 어째서 컴퍼니에서 그의 악행을 가만히 내버려뒀던 것인가, 하는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다.
‘애초에 같은 편이었다는 건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컴퍼니의, 그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셈이었다. 한편으로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토록 강대한 존재가, 어째서 신이 되기를 바랐는지 말이다.
“그는··· 어째서 신이 되려 하는 겁니까?”
아틸라는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그의 종족은 먼 미래를 꿰뚫어 볼 수 있다. 그 능력으로 자신의 우주에 닥칠 미래를 봤는지도 모르지.”
“우주가 멸망하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길게 뻗은 연두색 장발이 찰랑거렸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나라고 해서 그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그러면··· 상관없는 거 아닙니까?”
“뭐가 말이냐?”
“그가 그런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거라면- 아, 물론 추측이라고 하긴 했지만- 차라리 신이 되도록 두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가, 그가 생각하는 신이 될 수 있다면 말이지.”
“······”
“큭큭, 이진서, 네가 생각하는 신은 어떻지?”
그는 묘하게 속을 긁는 듯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물어왔다.
“그야···”
‘신’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이는 군신, 아레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신에 가까운 이미지를 가진 그다. 그러나 지금 그가 말하는 신은 그런 신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주를 창조하고, 멸망시킬 수도 있는 말 그대로의 ‘전지전능한’ 존재. 생각을 정리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 전지전능한 존재 아닙니까?”
“그래, 그러한 생각은 벨 크라운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지 않나? 네가 말하는 신이라는 존재가 그토록 전지전능한 존재라면, 어째서 죽었단 말이냐.”
“그건···”
그의 말대로, ‘전지전능’과 ‘죽음’이라는 단어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 존재가 생전, 어떠한 존재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건 너는 물론, 벨이라는 남자도 그렇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사체를 보고, 어림짐작하는 것일 뿐이다. 애초에 신은···”
그는 히죽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닌, 원래부터 불완전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만약 그가 신이 된다면···”
“우주는 멸망할 거다. 전지전능하던, 전지전능하지 않던 그 힘은 진짜일 테니 말이야.”
하지만 나는 내가 스스로 놀랄 정도로, 담담하게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두려움이나, 분노 같은 감정조차 일체 들지 않았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오퍼레이터, 미야에게 슈엔자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최초의 계약자인 그가 지구를 이렇게 만든 흑막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딱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틸라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곧 죽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연하군.”
“거스를 수 없는 자연재해를 맞닥뜨렸을 때, 우리 인간은 자연재해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우주 멸망 같은 건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이기도 하고.”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아니, 비단 사람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생명체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 죽음의 원인이 ‘우주 멸망’ 같은 것이라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었다. 아틸라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소리는 마치 이 거대한 공동 전체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잠시 후, 웃음을 멈춘 그가 내게 말했다.
“막을 수 있다면?”
나는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지키고 싶은 이들이 있습니다.”
내게는 우주를 번영시키겠다는 거창한 목적 같은 건 없다. 그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이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키고 싶다는, 소박하다면 소박한 바람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소박한 바람을 위해, 충분히 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있었다.
“그런데 제가 막을 수 있습니까?”
‘애초에 살아있긴 하나?’
살아있는지조차 미지수다. 정신을 잃기 전 상황을 떠올려보면 통찰안을 사용한 대가인지, 내 육체는 실시간으로 붕괴되고 있었다. 물론 시에니가 무언가 조치를 했겠지만, 조치를 한다고 나아질 수 있을 만한 상태가 아니라는 건 내가 잘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나는 이미 죽었거나, 곧 죽을 몸이라는 뜻. 이런 몸 상태로 ‘신’을 막을 수 있을까?
그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로지 너만이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신의 육체는 하나뿐입니다.”
“네 영혼은 신의 영혼, 그 자체다.”
“제 영혼이 말입니까?”
“혹시 살아가면서 이상한 점을 느낀 적이 없었나? 비록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심지어 나조차도 그 실체를 드러낼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게 감춰져 있긴 했지만 신의 영혼은 그 자체로 주변에 영향을 끼쳤을 거다. 영혼은 하나 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상한 점이라···”
나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짚이는 점이 있나 보군.”
“그냥 방금 아틸라님의 말씀으로 의문이 해소됐습니다.”
지구가 어째서 기프트가 풍부한 행성이었는가, 그리고 레비아탄의 몸에서 어떻게 기프트가 계속 나올 수 있었는가- 아나스타샤가 끝까지 밝혀내지 못한 비밀이었다- 하는 그런 사소한 의문들은 지금 해소됐다.
“그리고 네 영혼은 내가 봤던 때보다 더 거대해졌다.”
“영혼 말입니까?”
“그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이내, 나는 생각이 닿았다. 시에니에게 전달받았던 대량의 기프트. 그 개수가 얼마였더라. 9경. 하이낸스가 보유하던 입이 떡 벌어질 개수의 기프트를 전달받았다. 기프트의 총량으로 따져도, 결코 적지 않은 양일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대량의 기프트들은 지금 내 영혼에 흡수된 것이다.
“네게 필요한 건 그 엄청난 영혼을 담을 육체일 테지. 뭐, 그 육체도 준비가 된 것 같군.”
“준비라니···”
“곧 다시 보게 되겠지만, 일단은 작별 인사를 해두도록 하지.”
“작별 인사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그때, 나는 나를 간절히 부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일어나!
- 일어나세요, 이진서!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소리는 이 세계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니라, 세계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라는 것을 말이다. 세계 밖에서 내게 말을 걸어올 존재라 해봐야 시에니, 그리고···
‘미야인가?’
플레이어 시스템. 오퍼레이터, 미야.
어떻게 보면, 세상이 코인 채굴기로 변하고 가장 먼저 만났던, 그리고 지금껏 나를 서포트해온 존재. 그녀가 나를 부르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아틸라를 바라봤다. 그는 어느새 거대한 용으로 변해 감옥 안에 들어가 있었다. 열려있던 쇠창살 역시 다시 닫혀 있었다. 그의 금색 눈을 바라보던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가고 싶다.”
그 순간, 나는 눈을 떴다. 나를 간절하게 부르고 있는 시에니와, 주홍색 머리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오퍼레이터, 미야인가.’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주홍색 머리 소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지? 나는··· 아니, 존댓말을 써야 하나. 저는 플레이어, 이진서를 지금껏 서포트해온 오퍼레이터, 미야예요. 알아들었으면 눈을 깜빡이세요.”
나는 간신히 눈을 깜빡였다.
“다행히 의식이 있는 모양이네요. 당신의 육체가 준비됐어요. 신의 육체는 아닌 것 같지만··· 이 이상의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강대한 육체라는 건 분명해요.”
마력에 의해 붙잡힌 육체가 허공에 둥둥 떠 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중성적인 외모의 흑발. 내 기억 속에 있는- 정확히 말하면 방금 아틸라의 회상 속에서 봤던 그 육체였다. 벨 크라운. 어째서 이미 죽은 지 거의 수만 년도 넘게 흐른 그 육체가 지금 내 앞에 존재하는 걸까? 의문이 떠올랐지만, 길게 의문을 떠올릴 만한 시간은 없었다.
더 이상 의문을 떠올리기 전에, 내 육체가 점점 분해되듯 흩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시에니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고, 내 육체는 완전히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내 영혼이, 앞에 있던 벨 크라운의 육체에 깃들었다는 것을 말이다. 미야가 기다렸다는 듯 망토를 건넸고, 헐벗고 있던 나는 망토를 받아 들었다. 일어서자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벨 크라운의 얼굴과, 이진서로서의 얼굴이 섞인 듯한 외모. 원래의 중성적인 얼굴이 아니라, 더 남자답게 변했다. 잠시 얼굴을 매만지던 나는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눈을 개안(開眼)했다. 순식간에 감각의 영역이 전 우주로 퍼지기 시작한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이 정보화돼 전부 다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태양계, 지구에서 일어나는 정보 역시 섞여 있었다. 원래의 육체였다면 아마 그 정보량을 버티지 못하고, 아마 상당한 피로를 호소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 얻은 육체는 오히려 활력이 넘쳤다. 지금이라면 통찰안의 지배 능력을 보다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내, 내 눈은 맥박이 뛰는 고치로 향했다.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만 나오지 그래?”
내 말과 동시에, 고치가 찢어진다. 찌이익, 우주 공간에 흩뿌려지는 핏물과 살점들. 그리고 그 안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괴물의 형상. 그러나 그것은 허물에 불과했고, 곧 안에 있던 여자가 허물을 찢고 바깥으로 나왔다. 지금의 내 외모와 달리 좀 더 여자에 가까운 ‘벨 크라운’의 육체였다. 그녀는 손을 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를 향해 주포를 겨누고 있던 전함들이 터져나갔다. 수만 기의 전함들이 터져나가는 것은 그야말로 한순간에 불과했다. 그중에는 괴물 같은 전함, 모선 – 알로비스트 역시 들어있었지만,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생명체의 존재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오로지 죽음만이 가득한 공간.
“대체 무슨 일이···”
시에니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아마 그녀는 우주 공간에서 일어난 일을 직접 목도했음이 틀림없었다. 아니라면 그녀가 그렇게 충격받을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는 사이, 벨 크라운은, 아니, 그녀와 융합한 ‘신’은 나를 바라보며 손을 들었다. 행성이 터져나간다. 시에니와 오퍼레이터, 미야의 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의 몸은 흔적도 없이 원자 단위로 분해돼버렸다. 물론 그런 행성 안에서, 내 몸은 멀쩡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시간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