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전투 이후, 한 시간 경과. 신의 육체가 웅크리고 있던 곳에 거대한 고치가 생겼다. 마치 심장처럼 역동적으로 맥박이 뛰는 고치를 향해, 컴퍼니 측 전함들은 포화를 퍼부었다. 그러나 무의미했다. 이에 직접 계약자들이 내려서 공간 그 자체를 날려버리는 스킬을 사용했지만, 그조차 전부 무위로 돌아갈 뿐이었다.
“어째서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겁니까?”
부함장의 물음에 기록자, 마셀러스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당연한 거다.”
“당연하다니 그게 무슨···”
“기프트로 얻은 힘이니까.”
“······”
부함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마셀러스는 더 대꾸하지 않고,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기프트.
우주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심지어 플레이어를 뛰어넘은 직접 계약자들조차 정작 기프트의 정체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不知其數)였다.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어떤 값어치를 가지고 있는지··· 물론 마셀러스는 그 범주에서 예외였다. 그는 기프트의 실체를 명확히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이들 중 하나였다.
애초에 그는 바로 컴퍼니의 초대 회장, 벨 크라운과 함께 기프트를 직접 만들었던 이들 중 하나였으므로.
‘신의 영혼을 무수히 조각낸 것.’
이 우주에 도착한 신은 죽었다. 그리고 그들은 신의 사체를 우연찮게 발견하고 손에 넣었다. 신의 육체와, 신의 눈, 신의 유해. 마지막으로··· ‘신의 영혼’. 다른 힘들과 달리, 신의 영혼은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들은 상의 끝에 결론을 내렸다. 신의 영혼을 보관하는 것만으로도 이 우주에 위협이 될 수 있기에 파괴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벨 크라운은 매력적인 힘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말하며, 신의 영혼을 가공해서 사용하자고 제안했고, 그들은 그의 제안에 동의해 신의 영혼을 가공했다. 그들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분해하고, 또 분해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최초의 기프트.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기프트는 실패작이었다.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분해됐음에도 불구하고, 기프트는 하나가 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이대로 놔둔다면 원래의 형태로 되돌아갈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들은 방도를 모색해야만 했다. 기프트를 떨어트려 놓으면서,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방도를. 그들이 찾아낸 방도가 바로 컴퍼니를 설립하고, 플레이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이 모든 일을 행하기에는, 그들만으로 한계가 있었기에, 그들은 조력자를 찾아냈다. 그들을 가장 잘 알면서, 동시에 그들을 가장 위협할 정도로 강력했던 존재, 그가 바로 슈엔자오였다. 그들의 제안을 수락한 그는 최초의 계약자가 되었고, 이후 그들의 계획대로 기프트의 유통을 돕기 위해 최초의 거래소 ‘하이낸스’를 세웠다.
그 뒤의 일은 일사천리(一瀉千里)였다. 수백 년이 흐르자, 컴퍼니는 어느새 우주에서 가장 강대한 세력으로 부상했고, 기프트는 그들의 계획대로 전 우주에 퍼졌다. 그러나 마셀러스는 동시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계획이 변질됐다는 것을. 아니, 애초부터- 신의 사체를 처음 본 순간부터 벨 크라운의 계획은 달랐을 것이다.
‘그는 신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품었다.’
참으로 오만한 생각이었지만, 벨 크라운은 오만할 자격이 있는 존재였다. 그들 중에서 가장 강대한 힘을 가진데다, 그들을 이끌 통솔력과 지혜까지··· 그는 그가 어쩌면 정말로 신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잔뜩 어두운 얼굴로 그를 찾았다. 그는 그의 ‘계획’이 실패했노라고 말했다.
동시에 벨 크라운은 그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말했다. 신이 되기 위해서는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내심 그를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던 당시의 그는 그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벨 크라운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를 존경하고 숭배하던 동료들은 비탄에 빠졌지만, 그 혼자 그의 부탁을 이행했다.
신의 영혼을 가공했던 것처럼, 벨 크라운의 영혼을 가공해 컴퍼니에 모여드는 ‘기프트’에 섞는 미친 짓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무수한 세월이 흘렀다. 벨 크라운의 영혼은 그가 부탁했던 것처럼 기프트에 완전히 섞였다. 이제 기프트가 곧 벨 크라운이요, 벨 크라운이 곧 기프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마셀러스는 확신할 수 없었다. 다시 기프트가 합쳐졌을 때 그가 자아를 유지하고 있을지를. 그의 영혼이 머물 ‘임시 몸’이 준비되자, 그는 기프트를 관리하는 오퍼레이터들을 죽이고 기프트를 분리하는 역할을 하던 코어를 파괴했다. 컴퍼니가 보관 중이던 다량의 기프트는 그 성질에 의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벨 크라운의 영혼 역시 하나로 합쳐졌다. 긴 시간 동안의 동면에서 깨어난 그는 그의 걱정과 달리, 다행히 ‘벨 크라운’으로서의 자아를 유지하고 있었다. 간단하게 그동안의 해후를 푼 벨 크라운은 이내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물론 단순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 우주 너머 어딘가를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었다.
- 저것이 준비된 나의 몸인가?
그의 목소리는 그들이 있는 행성 전체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영혼의 강대함을 느끼며, 마셀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네.
- 부족한 몸이군.
임시 몸은 분명 전 우주로 따져도 충분히 최상위권에 들어갈 몸이었지만, 그의 ‘원래 몸’과 비교하면 당연히 부족함이 있었다.
- 부족하긴 하지만, 그는 신의 유해를 품고 있네. 자네 후손의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만든 몸이야.
- 뭐, 당장 쓸 만은 하겠군. 사실 그보다는 발라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어.
그는 임시 몸- 발라르의 몸에 깃들었다. 그리고 계획대로 이 행성계에 들어서는 데 성공했고, 마침내 신의 육체와 융합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그의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그리고 남은 것은 기다림. 그가 ‘신’이라는 완벽한 존재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 그러나 그는 고치를 바라보며 계획이 실패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진화를 의미하는 ‘고치’는 불필요한 실패의 산물이었다.
[직접 계약자, 이진서를 도와주세요.]
“귀찮구나.”
그는 떠오르는 메시지를 신경질적으로 닫았다.
“예?”
부함장이 눈을 둥그렇게 뜨며 말했다. 마셀러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한테 한 말이 아니다.”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당신의 그 ‘대단한’ 계획이라는 게 실패하면 이 우주는 소멸되리란 걸.]
미야, 라는 이름의 오퍼레이터였다.
원래 컴퍼니 측 오퍼레이터였으나, 지금은 변절하고 하이낸스에 붙은. 그런 전적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간 크게도, 그에게 링크(Link)를 걸어왔고, 그를 실시간으로 괴롭히고 있었다. 제아무리 그라 하더라도 역대를 통틀어서 수위에 들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가진 수석 오퍼레이터의 링크를 임의로 닫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귀찮군.’
[귀찮으면 제 말에 따르면 되잖아요?]
‘더 귀찮게 굴면 죽이겠다.’
[흥, 제가 어디 있는지는 아나요?]
‘그래봐야 이 행성계 안이겠지. 그렇지 않다면 하이낸스 놈들의 부족한 코어로 내게 링크를 걸어오는 것은 불가능했을 테니 말이야. 부하들을 시켜 행성들을 파괴하면··· 그 안에 쥐새끼처럼 숨어있는 너 역시, 잡을 수 있겠지.’
[나는 이 행성계에 있지 않으니, 멍청한 소리 관둬요.]
그는 드물게도,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이 행성계에 있으니, 꼭 그렇게 해달라는 말처럼 들리는군.’
[됐고! 지금이라도 이진서를 도와주세요!]
‘웃기지도 않는군. 그 인간이 인간으로서 보기 드문 대단한 힘을 가졌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래 봐야 인간이다.’
마셀러스는 이진서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가 만든 동화 세계를 번번이 통과한 인간. 한때는 그도 그를 눈여겨봤을 정도였다. ‘고작’ 인간으로서 그런 위업을 쌓은 자는 결코 흔치 않으니 말이다. 물론 하이낸스의 후원을 받은 그가 ‘제거 요인’에 올라가며 관심을 껐지만. 사실 그는 그가 이 행성계 안에 있는 줄도 몰랐다.
[그는 이미 당신이 만들어낸 세계 속에서 신을 죽인 적이 있다고요.]
‘미안하지만 신은 죽일 수 없다. 그저, 가사 상태에 들게 했다는 표현이 옳겠지.’
[그거나, 그거나, 그게 아닌가요? 지금 그런 농담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그리고 내가 기록한 신은 당연하게도 진짜 신이 아니다. 그건 그저 매개체를 이용해 기억 속의 신을 정교하게 구현했을 뿐이야.’
신을 구현하기 위한 매개체는 신이 돼야 한다. 당연히 이 세상에 신이 둘이나 존재할 리 없으므로, 그가 사용한 매개체는 ‘신이 아닌 자의 육체’에 불과했다. 그렇게 그의 세계에 구현된 신의 육체는 당연하게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에 불과했다. 가짜가 진짜를 이길 수는 없는 법.
그녀의 말대로 설령 이진서가 가짜 육체를 흡수한다 하더라도, 진짜 육체를 쓰러트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하물며 지금 신의 육체는 단순한 신의 육체가 아닌 슈엔자오와 발라르- 벨 크라운마저 흡수한 상태일 테니.
[뭐라도 해야 할 거 아니에요? 당신 하나 때문에 이 우주가 다 소멸되게 생겼다고.]
‘나는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다. 삶에 더 미련은 없어.’
[그렇게 미련 없다는 당신이 어째서 벨 크라운의 지시에 따른 거죠?]
‘나는 그를 진심으로 존경했으니까.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친구가 이제 곧 정신이 나가서 이 우주를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다닐 텐데도? 진짜 그를 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를 막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
마셀러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내심 그 역시 하고 있던 생각이라 부정할 수 없었다. 분명 그의 친우는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 우주를 파괴하는 괴물이 될 바엔 오히려 스스로 목숨을 끊어달라고 간청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가정은, 그의 친구는 완전한 ‘신’이 된다면 무의미한 것에 불과하다. 지금 그가 주저한 이유이기도 했다.
완고한 그의 생각에, 미야는 한층 더 완곡하게 말하기로 했다.
[그러면 최소한의 대비라도 하도록 해요. 일이 틀어질 경우 당신이 막을 수 있나요?]
‘아니.’
그는 딱 잘라 말했다. 그는 이미 그가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장 저 고치 형태부터 부술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면 대비책을 만들어야 할 거 아니에요? 이진서를 도와주세요. 지금의 그에겐 ‘육체’가 필요해요.]
‘대비책이라···’
마셀러스는 고심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넌 어딨지?’
[U-999 행성에 있어요. 포격을 날릴 건 아니죠?]
‘속는 셈 쳐보지.’
생각을 마친 그는 고치를 응시하며, 천천히 책을 열었다. ‘기록된’ 존재를 불러오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