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눈을 뜬다. 온통 칠흑 같은 어둠만 가득하다. 눈을 몇 번 끔뻑거리자, 이 어둠에 적응한 듯 시야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곳은 방 안이었다. 있는 것이라곤 내가 누워있는 침대와 책상, 의자가 전부인 단출한 공간.
‘분명 나는···’
기억이 떠오른다. 통찰안을 사용해 신의 육체를 유인하는 데 성공한 내가 그에게 먹히려는 순간, 발라르가 배신했다. 아니, 애초에 같은 편이 아니었던 만큼, 사실 배신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지만, 어쨌거나··· 그 뒤로 나는 오감을 상실하고, 기억을 잃었다. 그게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마지막 기억.
‘그렇다면 이곳은 사후 세계인가?’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방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먼저 침대를 살피고, 책상을 훑었지만, 별다른 단서를 얻을 수 없었다. 이 방 안에서 정보를 얻는다는 걸 불가능할 것 같다고 판단을 내린 내 눈이 향한 곳은 문. 문 앞에 다가간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한 뒤, 문고리를 잡고 천천히 돌렸다. 그대로 밀자,
끼이익.
나무 긁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복도가 펼쳐졌다. 그러나 평범한 복도가 아니었다. 양옆에 쇠창살이 가득한 감옥의 복도였다. 한 발자국 내디디자, 소리가 복도 내에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터벅터벅. 계속 걷는다. 그렇게 얼마쯤 걸었을까? 나는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쇠창살 내부에서 붉은 안광이 번쩍였다.
“오랜만이군.”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쇠창살 내부에서 울려 퍼진다. 붉은 안광이 가까워지면서, 벽에 걸린 등잔불에 의해 그 모습이 드러난다. 금세 나는 그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당신은···”
“바깥의 시간으로 따지면 그렇게 오랜만은 아닌가? 뭐, 중요한 건 아니지만 말이야.”
그는 다름 아닌, 통찰안의 1단계 시험관이었던 레오니아 3세였다. 고대의 왕이었으나 통찰안의 시험에 실패해 저주받았다는 그는 내가 만난 최초의 네크로맨서였다. 첫 번째 시험에서 봤던 그의 복장과 조금 차이가 있긴 했지만, 큰 차이는 아니었다. 그는 앙상한 해골 손을 창살 밖으로 뻗으며 중얼거렸다.
“자네가 거기 있다는 건, 자네가 이 공간의 주인이 되었다는 뜻이겠지. 나 좀 꺼내주지 않겠나?”
“······”
“그렇게 경계 어린 눈빛 할 것 없어. 어차피 감옥 안이든, 밖이든, 나는 자네에게 거스를 수 없을 테니 말이야.”
“어떻게 열면 됩니까?”
“그냥 열고 싶다고 생각하면 된다.”
방법은 간단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생각했다. 문을 열고 싶다고. 그러자, 끼이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쇠창살이 열렸다. 그는 만족스런 웃음을 흘리면서, 바깥으로 나왔다.
“이게 대체 얼마 만인지. 바깥 공기가 아주 좋군.”
“어째서 이 안에 갇혀 있는 겁니까?”
“내가 어째서 이 안에 갇혀 있었냐라··· 당연한 질문을 하는군. 이 안은···”
다음 순간, 나는 무수한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쇠창살이 정신없이 떨리기 시작한다. 마치 복도 전체가 떨리는 듯했다. 고개를 돌린다. 쇠창살 너머의 붉은색 안광들. 복도 전체가 붉은색 안광들로 빛나고 있었다. 레오니아 3세는 무엇이 그리 기분 좋은지 히죽히죽 웃으며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나오고 싶지, 이 새끼들아?”
왕의 위엄 따위는 갖다 버린 듯한 천박한 말투와 행동. 동시에 나는 그의 말을 통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 붉은색 안광들은 그와 같은 신세의- 통찰안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패배해 이 안에 갇힌 존재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통찰안의 2단계 시험관이나, 3단계 시험관을 찾았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감옥은 이게 전부입니까?”
내 물음에 그는 픽 웃었다.
“그럴 리가 없지. 자네는 통찰안의 기원에 대해 알고 있는가?”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 신의 눈을 수만 조각으로 찢어서, 온 우주에 뿌렸지. 그리고 그 통찰안을 손에 넣은 이들의 대부분은 나처럼 시험에 실패해 이 안에 갇혔고 말이야.”
족히 수만 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컴퍼니에 의해 수만 조각으로 찢어진 통찰안은 제 주인을 집어삼켰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존재들이 이 안에 갇혔다. 레오니아 3세는 지금 눈에 보이는 감옥조차 작은 ‘편린’에 불과하다고 했다. 통찰안 내부에는 이와 같은 공간이 무수히 많을 거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통찰안의 내부에 들어왔다는 건가?’
어째서?라는 물음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당연히 대답이 들려올 리가 없었다. 레오니아 3세와 함께 복도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조금 더 이 세계를 잘 ‘알 만한’ 이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명확하게 내 궁금증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이런 생각을 털어놓자 레오니아 3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통찰안의 4단계 시험관, ‘고고히 서 있는 자’라면 분명 자네가 처한 상황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하네. 하지만 조심하게. 통찰안의 내부에는 나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존재들이 갇혀 있으니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과 아틸라의 말을 종합해서 생각하면 타 우주의 지배자도 이 감옥 안에 갇혀 있을 테니 말이다. 생각하는 동안 우리는 어느새 복도의 끝에 도달했다. 복도의 끝엔 마찬가지로 문이 있었고, 나는 문고리를 쥐었다. 레오니아 3세는 내게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저 너머로 넘어갈 수 없네. 잠깐이라도 자유를 누린 것에 만족하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자네가 온전하게 눈의 힘을 다룰 수만 있다면, 우리를 완전 해방하는 것도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닐 테지. 뭐, 지금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했습니다.”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그는 정중하게 예를 표했고, 나는 문고리를 열어젖혔다. 그리고 또 다른 복도가 펼쳐졌다. 복도를 걷고, 문을 열어 또 다른 복도를 걷고··· 그렇게 수십 번을 반복한 끝에, 나는 복도가 아닌 처음 보는 공간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 끝이 짐작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공동. 그러나 쇠창살을 본 나는 그것이 단순한 공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쇠창살 역시 복도에 있는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쇠창살 너머에서 그에 걸맞은, 거대한 금색의 안광이 번쩍인다. 마치 하늘에서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열려라.”
짤막하게 중얼거리자 쇠창살이 열렸다. 안에 있는 존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나는 그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몸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내, 거대한 용은 연두색 머리의 남자로 변했다.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그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 왔다.
“드디어 나를 찾았군.”
나는 그를 수상한 눈초리로 바라봤다. 그는 내게 호의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비록 시험장이라곤 하지만 수천 번, 수만 번···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 서로 죽여 온 악연(惡緣)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의 그는 전혀 꺼림칙한 기색 하나도 없어 보였다. 결국 나는 직접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거야 전부 다 시험장 안에서 있었던 일 아닌가? 나는 어디까지나 시험관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 악의는 없었다.”
“······”
그의 눈을 바라봤지만,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죽을 때마다 이죽거리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긴 했지만··· 그가 적대적이지 않은 이상, 나도 굳이 그를 적대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적대한다 하더라도, 지금 몸 상태로 그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잠시 내 눈을 응시하던 그는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바깥에서는 ‘그’가 예정대로 부활한 모양이군.”
“그가 누구입니까?”
“시험을 통과한 자.”
그리고 그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리고 스스로 권능을 포기한 자.”
“포기했다니 그게 무슨···”
아틸라는 무슨 과거를 떠올렸는지 헤죽 웃으며 대꾸했다.
“그는 통찰안의 모든 시험을 통과할 정도로 강대한 영혼을 가졌지만, 욕심 역시 그에 못지않게 거대했다. 내게 조언을 구한 그는 육체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
동시에, 주위 환경이 변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어느새, 우주 공간 위에 떠 있었다. 아틸라의 본체가 우주 공간에 둥둥 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진짜 그가 아닌 과거의 환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내, 나는 그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는 흑발 사내의 존재 역시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사내가 맞는지 의심되는 중성적인 외모의 소유자였다.
- 말해라, 아틸라. 진짜 신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 흐흐, 주제 넘는구나. 벨이라고 했던가? 내 시험에 통과했다고 전부가 아니다. 미안하지만 신의 그것에 비하면 네놈의 영혼은 너무나도 미천해.
- 내 영혼이 미천하다?
사내는 무척이나 어이없어하는 말투였지만, 이내 수긍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거짓이 아니군.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은 금색으로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환영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환영에서 마치 실제와 같은 강대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 미천한 영혼을 가진 네놈의 한계다. 진짜 신이 아닌, 가짜 신밖에 되지 못한다. 슬퍼하지 마라. 이건 네놈만의 한계가 아닌,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한계니까.
흑발 사내는 조금 혼란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단 소리지?
- 세상에는 가능한 일이 있고, 불가능한 일이 있다. 미천한 영혼을 가진 네놈이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신의 영혼에 도달하지는 못할 터. 결국 네놈이 진짜 신이 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다음 순간, 분노를 이기지 못한 흑발 사내가 검으로 아틸라의 머리를 베어냈다. 그는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 두고 봐라, 아틸라. 바깥 세상의 나는 불가능한 일조차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위대한 존재니까.
이내 사내의 환영은 물론 아틸라의 환영 역시 흐릿해지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현실의 그에게 물었다.
“···그가 대체 누구입니까?”
“그는 스스로를 벨이라고 소개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에 의하면 그는 너희 우주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을 이끄는 지도자라고 하더군.”
“컴퍼니, 컴퍼니의 회장 말입니까?”
잘못 들은 건지, 재차 물었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래, 컴퍼니. 시험을 통과한 그는 통찰안을 사용해, 통찰안을 갈기갈기 찢어 전 우주에 뿌려버렸지. 물론 그런 짓을 한 그가 멀쩡할 리 없었고, 얼마 가지 않아 그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거라는 예언을 하며.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바깥에서는 얼마나 되는 시간인지 모르지만, 이 안에서는 영겁의 시간이 흘렀지.”
짤막하게 말을 끊은 그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