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나는 우주선을 몰아, 신의 육체의 지척까지 접근하려 했다. 시에니의 말대로 그에게 ‘먹히기’ 위해서는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컴퍼니 측 전함들이 본격적으로 포화를 퍼붓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그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저런 포화 속으로 들어간다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으니까.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러간다. 신의 육체는 간결하고, 빠른 움직임으로 컴퍼니 측 전함들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기 시작했다. 처음만 해도 그의 주위에 가득했던 전함들은 어느새 반수 이상이 파괴됐다. 전함들이 발사하는 파괴 광선은 그에게 작은 생채기조차 입히지 못했다. 지금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동화 세계 속에서 봤던 그의 모습보다 강력해 보였다.
아니, 강한 것도 강한 건데 전투 방식부터 다르다. 동화 세계 속의 신의 육체는 우직하게 선 채로 주먹을 휘두르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 그가 보여주는 전투 방식은 무술에 통달한 달인에 가까웠다. 신의 육체에 무술이 합쳐져,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시에니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신은 이미 슈엔자오님을 흡수한 상태입니다.”
“흡수했다는 얘기는··· 그러면 슈엔자오님은 죽었다는 이야기입니까?”
시에니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슈엔자오님이 신과 정상적으로 융합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그제야 신의 육체가 강해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껍데기였던 신의 육체에 슈엔자오의 영혼이 융합된 것이다. 비록 신의 영혼과 비교하면 부족하겠지만, 슈엔자오 역시 강대한 영혼의 보유자. 그의 영혼을 원동력 삼아, 신의 육체는 한 차원 다른 존재로 진화한 것이다.
그때, 거대한 섬광이 그를 뒤덮었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느껴질 정도로- 다른 타이탄급 전함이 발사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위력의 파괴 광선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 파괴 광선을 발사한 거대한 전함을 바라봤다. 컴퍼니의 대장함으로 추측되는 그것은, 파괴자보다도 수십 배는 더 커 보이는 전함이었다.
파괴자를 처음 봤을 때도 괴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괴물 위의 괴물이었다.
“모선, 알로비스트입니다.”
전함의 이름을 읊조린 그녀는 곧바로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기록자, 마셀러스의 전함이기도 합니다.”
내 추측대로, 기록자가 탑승한 컴퍼니의 대장함이었다.
“죽은 거 아닙니까?”
“아뇨, 신의 육체는 저런 공격에 죽지 않습니다.”
그녀의 말처럼 섬광 속에서 신의 육체가 튀어나왔다. 아주 피해가 없지는 않은지, 온몸이 불에 그을린 것처럼 타 있었지만 순식간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의 능력 중 하나인 초재생을 통해 상처를 순식간에 재생해버린 것이다. 그러는 사이, 신의 육체는 모선을 향해 도약했다. 전함들을 디딤돌 삼아,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물론 죄다 디딤돌이 된 전함들은 깡통처럼 찌그러져 버렸다.
‘이래서는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설령 접근하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가 굳이 나를 먹을지도 의문이다. 알로비스트는 다시 섬광을 뿌렸다. 그러나 섬광은 그의 몸에 닿기 전에 멈추고 말았다. 마치 시간이 정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통찰안을 각성한 나는 알 수 있었다. 신의 육체가 통찰안의 지배 능력을 사용해 시간을 멈춘 것이라는 걸 말이다.
‘신의 육체에 통찰안이라니, 사기네.’
신의 육체가 총알처럼 튀어나가 알로비스트를 꿰뚫었다. 거대한 모선이 강렬한 폭발에 휩싸였다. 워낙 거대한 만큼 한 번에 침몰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데미지를 받았다는 것은 분명했다. 잔해에 깔린 근처의 전함들이 그대로 추락했다. 마치 영화 속 괴수처럼 닥치는 대로 알로비스트의 부품을 뜯어내던 그는 자신에게 주포를 겨누고 있는 전함을 향해 도약했다.
그가 알로비스트 주위에서 종횡무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인지, 전함들은 전처럼 쉽게 주포를 발사하지 못했다. 물론 주포를 발사한다 한들, 딱히 달라질 것은 없었겠지만 말이다. 마치 폭죽처럼 우주 공간에서 터져나가는 전함들. 지금 당장 상황만 보면, 이미 승자가 정해진 것 같았다. 차륜전을 펼친다 한들, 신의 육체가 체력적으로 지칠 리 없으니 말이다.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합니다. 제아무리 컴퍼니라 하더라도 계속 강해지고 있는 신으로부터 오래 시간을 끌지는 못할 테니까요.”
시에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접근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진서에게 신의 힘이 느껴진다면, 녀석 역시 반응할 겁니다.”
“이 눈을 사용해야 한다는 이야깁니까?”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내 추측이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몸 상태에 이 눈을 사용하면, 육체의 붕괴는 틀림없이 가속화될 것이다. 어쩌면 채 몇 분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산산조각 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차피 주사위가 던져졌다. 이제 와서 포기하기엔 너무 많이 왔다.
‘해보자.’
통찰안을 개안(開眼)한다.
찢어질 듯한, 엄청난 고통이 눈에 느껴졌고, 뒤이어 전신으로 퍼졌다.
[????? ??? ??? ??]
[??? ??? ???? ????]
시스템 메시지가 뭐라, 뭐라 떠올랐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눈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핏물 너머로 나는 신의 육체가 나를 향해 방향을 틀었음을 알 수 있었다. 신의 육체가 나를 향해 도약했다. 인지조차 제대로 하기 힘든 찰나의 순간, 그는 이미 내 앞에 도달했고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거대한 손에 붙잡힌 채 나는 그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곧 읽을 수 있었다. 그의 눈에 어린 선명한 갈등의 빛을. 어린아이에 빗대기는 뭐하지만, 생전 처음 먹는 음식을 앞에 둔 어린아이의 표정이 저럴까. 나는 천천히 입을 열어, 결정에 못을 박았다.
“나를 먹어라.”
그의 손이 천천히 그의 입으로 향했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가 신의 육체를 막아섰다. 총을 겨눈 있는 사내는 드물게도 환희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수고했다.”
“발라르···?”
탕, 탕. 방아쇠를 당긴다.
신의 육체의 입이 벌어진다. 도약한 그의 몸이 빨려 들어갔다. 으그적, 으그적. 씹히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신의 육체는 나 대신 발라르를 흡수한 것이다. 이내, 당황한 음색으로 누군가가 소리쳤다. 아마 시에니일 것이다. 신의 육체는 지금의 나조차 알 정도로 또렷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온몸에 새겨지고 있는 검은 문신과, 금색의 눈, 그리고···
온몸을 감싼 금색의 빛.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우주 공간에서 내 몸은 종잇장처럼 추락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받아 든 것은 시에니였다. 그녀는 아까보다도 훨씬 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입이 열렸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청각을 상실했다. 뒤이어 시각까지 상실했다. 오감이 사라졌다.
그렇게, 내 정신은 컴컴한 수렁 속으로 빠졌다.
***
정신을 잃은 이진서를 대신해 시에니는 우주선을 몰았다. 그녀의 얼굴은 다급함이 가득했고, 그녀의 손발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참으로 드물게도, 그녀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신의 육체를 코앞에서 대면했던 아까와도 비교할 수 없는 순도 높은 공포를··· 그사이, 컴퍼니의 전함들은 그를 향해 포화를 퍼붓기 시작했다.
시에니는 문득 그 모습이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크게 짖는 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신의 육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몸을 웅크린 채 가만히 있을 뿐. 그러나 파괴 광선은 그의 몸에 조금도 데미지를 입히지 못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그녀는 우주선을 몰아 간신히 U-999로 되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 행성계를 벗어나 버리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던 그녀지만, 공간 이동 방해장이 설치돼 있기에 불가능했다.
연구실로 돌아온 그녀는 수술대에 이진서를 눕혔다. 나노 로봇들이 빠르게 그를 냉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미 육체가 붕괴될 대로 붕괴된 그는 사망이 확정됐다는 것을. 나노 로봇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냉동 인간을 만드는 과정 중 하나로, 시간을 지연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말이다.
어쨌거나, 일단 급한 불을 끄는 데 성공한 시에니는 천천히 허공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오퍼레이터, 미야. 할 말이 있습니다. 올라오십시오.”
[···진서는 살아있나요?]
“죽어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살릴 방법은 있나요?]
“한 가지 존재하긴 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알았어요.]
곧 주홍색 머리 소녀- 미야가 나타난다. 절박한 표정으로 그녀는 이진서를 향해 다가갔다. 눈을 감은 그의 몸을 매만진다. 차갑기 그지없었다. 동상에라도 걸릴 듯 손이 차가웠지만 그녀는 고통을 인내하며 중얼거렸다.
“이런 식으로 처음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에게 남은 시간은 지구 기준으로 따지면 한 시간도 안 됩니다. 미야, 당신도 상황은 확인했을 겁니다.”
“신의 육체가 발라르를 흡수했다?”
“미야, 당신도 알다시피 발라르는 통찰안을 각성하지 못했습니다. 고작 ‘신의 유해’만으로 신과 융합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미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컴퍼니에서 이미 그에 대한 실험을 마친 상태죠.”
신의 육체를 보유한 컴퍼니는 수천 년 전, 이미 실험을 끝냈다. 그리고 결론 지었다. 신의 유해만으로 육체를 조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말이다.
“하지만 그는 융합에 성공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위험합니다. 슈엔자오가 흡수된 지금, 신은 처음 나타났을 때 이후로 한없이 완전한 상태입니다.”
“어째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죠?”
“신의 육체가 원래부터 저런 형태였던 건 아닙니다. 아마 그에게 잘 맞는 형태로 변태(變態)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변태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더 이상 그를 막을 수 없습니다.”
“무슨 상황인지는 알았어요. 이제··· 내가 진서를 살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세요.”
시에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당신도 봤겠지만 컴퍼니에선 또 하나의 신의 육체를 보유 중입니다.”
“기록자가 ‘기록한’ 신의 육체를 말하는 건가요? 하지만 그건··· 불완전해요.”
“불완전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록자가 우리에게 순순히 신의 육체를 제공할 리 없잖아요?”
“미야, 당신이 그를 설득해야 합니다.”
“설령 제 목숨을 담보로 바친다 한들, 그가 그럴 리 없을 텐데요?”
미야는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자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에게 링크(Link)해서 설득하십시오. 애초에 오퍼레이터, 당신들은 그럴 목적으로 개발된 거 아니었습니까? 역대, 가장 강한 오퍼레이터 중 하나인 당신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겁니다.”
“너무 가혹한 말을 하시네요.”
그러나 그녀는 부정하지 못했다. 이진서의 선택이 한정돼있듯, 그녀의 선택 역시 한정돼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