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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227화 (227/236)

227화

컴퍼니와 하이낸스, 양측 간의 전쟁은 치열했다. 수많은 전함들이 불타고,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죽었다. 아무리 강력한 전함이라 하더라도, 강력한 플레이어라 하더라도, 이 천재지변(天災地變) 앞에서는 공평했다.

그러나 점차 전세는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컴퍼니의 전함은 계속 숫자가 늘어나는 반면, 하이낸스의 전함은 줄어들기만 했으니까. 컴퍼니 측 대장함인 모선 – 알로비스트가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자 전세는 더욱더 급격하게 기울었고, 급기야 몇몇 전함들이 도주하는 일도 벌어졌다.

제1 파괴자급 전함 ‘순결’의 함장인 로버트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의 주위에는 타이탄급 전함 수십 기가 포위하면서 일제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파괴자가 거칠게 흔들린다. 어지간한 충격은 버틸 수 있게 설계된 파괴자급 전함이지만, 타이탄급 전함 수십 기의 공격을 맞으면서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반격을 가하려 했지만, 이미 주포 대부분이 파괴된 상태라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순결’은 침몰하는 배였다. 바다가 아니라, 우주 공간이라는 차이점만 존재할 뿐 그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로버트는 깨달았다. 퇴로 같은 건 없고 이곳은, 그의 무덤이 될 것이라는 걸. 그는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슈엔자오는 대체 어디 있는 거냐?”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들을 소집한 슈엔자오가 정작 이 전쟁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 내구도가 10% 남았습니다. 8%···

- 경고합니다. 곧 전함이 폭발합니다. 서둘러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전함의 AI가 경고를 해왔지만, 로버트는 함장실에 가만히 앉은 채 죽음을 기다렸다. 마침내 내구도가 다했고, 전함은 강렬한 폭발을 일으키며, 그대로 산산조각 났다. 가까이 있던 타이탄급 전함 여럿이 그 여파에 휩쓸려 방향을 잃고 빙글빙글 돌며 운석에 충돌해 파괴됐다. 살아남은 타이탄급 전함의 함장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전장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이낸스 측 플레이어들은 깨달았다. 이미 전쟁의 승패는 이미 결정 났고, 그들은 패잔병 신세로 전락했다는 것을. 그리고 패잔병이 내릴 수 있는 선택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로버트처럼 죽음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도주를 하거나, 컴퍼니 측에 투항하거나···

“예상보다 컴퍼니의 전력이 더 뛰어난 모양이야.”

“애초에 이길 확률이 1% 안팎이었습니다.”

“글쎄, 지금 보니까 1%도 아닌 것 같은데.”

“1%는 슈엔자오님이 참전한다는 가정하에 계산한 것입니다.”

슈엔자오를 바라보는 시에니의 눈은 평소처럼 곱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전쟁을 지휘하고 보조하면서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는 그녀와 오랜 친우들 역시 상당히 섞여 있었다. 그런 친우들을 한순간에 모두 잃었으니, 그녀의 기분이 좋을 리 없는 건 당연지사(當然之事). 슈엔자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타박하지 말게. 어차피 이 전쟁은 내 손으로 일으킨 전쟁이 아니고, 자네 말대로 승률은 고작 1%. 내가 참전했어도, 결과는 같았을 거네.”

“알고 있습니다.”

시에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과는 별개로, 그녀의 이성은 그의 말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 슈엔자오는 전 우주에서 열 손가락 안에 손꼽히는 강자이지만 그 혼자서 전쟁의 승패를 뒤바꾸기엔, 전쟁의 스케일이 지나치게 컸다. 만약 그가 참전했다면, 어쩌면 저 위에서 도주하는 전함 중 하나가 됐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조커 카드가 남았지. 남은 이들이라도 살려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말하며 슈엔자오는 앞을 바라본다. 앞에는 거대한 거인이 얼음에 갇힌 채 서 있다. 그러나 거인의 눈동자는 살아있는 것처럼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신의 육체.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 제논 족을 멸망시킨 신의 육체를 회수한 이후로, 신의 육체는 지금껏 그의 봉인에 의해 이 U-999의 깊은 지하에 갇혀 있었다.

슈엔자오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나지막이 주문을 외웠다. 그의 종족 – ‘집행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봉인 해제의 주문. 얼음이 해동되기 시작한다. 마침내 신의 육체가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다음 순간, 슈엔자오와 시에니는 피해야만 했다. 거대한 주먹이 그들이 있는 곳을 가격했기 때문이다. 쾅! 바닥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패고, 행성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경이로운 위력이군.”

슈엔자오는 감탄했고, 시에니는 불안감에 떨었다.

“정말 제어가 가능한 겁니까?”

“확률로 따지면 얼마라 그랬지?”

“50% 남짓입니다.”

“1%보단 훨씬 더 믿음직한 확률이군.”

대수롭잖게 지껄인 슈엔자오는 신의 육체를 향해 도약했다. 신의 주먹이 또다시 그를 향해 떨어져 내린다. 시에니는 보호막을 두른 채, 슈엔자오를 직시한다. 주먹에 얻어맞은 슈엔자오의 몸이 무력하게 바닥에 떨어진다. 그가 온몸에서 피를 토해냈다. 그러나 제대로 회복하기도 전에 거대한 손이 그를 붙잡았다.

그리고 단숨에 입으로 가져가서, 한입에 그를 삼켜버렸다. 으그적, 으그적. 한때 슈엔자오였던 것이 씹히는 소리는 시에니로 하여금, 원초적인 공포를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침묵한 채, 신의 육체를 바라본다. 신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온통 검은색이었던 동공이 금색으로 물들었다. 내부에서 무언가 변화가 생겼다는 방증이었다. 이내, 신의 육체가 그녀를 직시한다.

‘성공한 건가?’

시에니는 반신반의(半信半疑)했다. 그리고 그녀는 곧 깨달았다. 그녀의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신의 주먹이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무방비 상태가 된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주먹에 얻어맞아 으깨지고 말았다. 으깬 감자처럼 짓눌린 그녀는 계획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성급했··· 하지만 어째서 실패한···’

그러나 시에니는 더 생각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그대로 눈을 감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눈을 떴다. 그녀는 옆에 놓인 슈트를 걸친 채 연구소에서 바깥에 나왔다. 지면을 뚫고 거대한 신의 육체가 우주 공간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어에 실패한 신의 육체는 본능대로만 행동할 것이다.

제논 족의 행성을 침공해, 살육(殺戮)을 펼쳤던 것처럼. 이번에는 그 대상이 우주 공간에 있는 생명체들로 바뀌었을 뿐이다. 두근거리는 인공 심장을 진정시킨 그녀는,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퍼레이터, 미야.”

- 네?

“그는 도착했습니까?”

- 그게 사실은···

“계획이 실패했습니다. 신을 제어할 존재가 필요합니다.

- 도착하긴 했는데, 불청객도 같이 왔어요.

“불청객?”

- 발라르, 그가 이 행성에 있습니다.

“발라르 말입니까? 어떻게?”

예상하지 못했던 이름에, 드물게도 그녀의 눈에 당황함이 어렸다.

- T1034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미야, 당신이 알려줬을 리는 없고 우리의 계획이 그에게 읽혔다고 봐야겠군요.”

조율자 종족인 그녀는 사물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특히, 신의 힘을 가진 이들의 미래는 짙은 안개가 깔린 것처럼 가려져 있어 바라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발라르 역시 잊고 있었지만, 신의 힘을 가졌다. 독자적으로 각성한 ‘신의 유해’를.

‘그의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들의 위치가 어디입니까?”

- 둘 다 우주선에 탑승한 채, 신의 육체를 뒤쫓기 시작했어요.

시에니는 곧, 볼 수 있었다. 신의 육체를 뒤쫓아 날아오르는 우주선 한 기를.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달려서, 연구소 옆에 있는 우주선에 탑승해 그 우주선을 뒤쫓기 시작했다. 우주선은 단숨에 대기를 돌파해, 우주 공간으로 나온다. 이미 신의 육체는 활동을 개시했다. 애석하게도 첫 타겟은 패주(敗走)하던 하이낸스 측 전함들이었다.

전함들은 신의 육체를 향해 주포를 발사했지만, 모조리 보호막에 가로막혔고, 직후 이어진 야만적인 공격에 모조리 공중 분해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신의 육체를 확인한 컴퍼니의 전함들은 더 접근하지는 않고, 오히려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걸 느끼기라도 한 걸까?

그러나 하이낸스의 전함들을 모조리 파괴하자, 신의 육체는 그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신의 날개가 펼쳐졌고, 단숨에 그들에게 접근한 신의 육체는 닥치는 대로 파괴 행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저 먼 곳에서 보이는 모선 – 알로비스트를 바라봤다. 기록자, 마셀러스 역시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신의 육체를 맡긴 것이 다름 아닌 그였으니 말이다. 때문에 그 역시, 이런 상황에 대한 나름의 대응책을 준비했으리라. 그러나 아직 대응책을 사용할 생각이 없는 듯 알로비스트는 움직이지 않고,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생각하던 그녀는 고개를 돌려 한쪽에서 지켜보듯 서 있는 우주선을 바라봤다.

그리고 확인할 수 있었다. 우주선에 탑승한 발라르와 이진서를. 그녀는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이진서가 문을 열었다. 그녀는 발라르에 대한 경계를 놓지 않으면서도, 우주선에 탑승했다.

“발라르, 당신은 신의 육체를 따라온 겁니까?”

발라르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웃으며 말했다.

“신이 내게 말씀하시더군. 이곳에 오라고 말이야. 때마침, 이곳까지 같이 올 좋은 친구가 생겼지.”

친구? 이진서의 얼굴이 구겨졌다.

“발라르를 데려온 것을 타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럴 상황도 아니고··· 이진서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보시다시피 신의 육체는 폭주했고, 제어할 ‘수단’이 필요합니다.”

“제가 그 수단이 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통찰안을 각성했습니다. 당신의 통찰안은 그 어떤 통찰안보다 신의 눈에 가깝습니다. 아마 당신이라면 충분히 컨트롤이 가능할 것입니다.”

확신에 가득 찬 어조로 말했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성공 가능성은 낮았다. 이진서에겐 결정적으로 ‘결여된’ 것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굳이 그 사실을 말하지는 않았다.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어차피 그녀에게는 그를 설득한다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그것은 이진서 역시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수락한다고 말씀하신다면, 그 즉시 컴퍼니가 보유 중인 모든 기프트를 넘기겠습니다.”

이진서는 고민했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처럼 그 고민은 길지 않았고, 그는 결국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이진서에게 그녀가 보유 중이던, ‘컴퍼니’의 모든 기프트를 넘겼다.

[직접 계약자, 이진서에게 91,647,517,286,321,248기프트를 양도했습니다.]

지금껏 컴퍼니가 쌓아온 상상조차 하지 못할 기프트 액수에, 이진서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그녀는 간단명료하게 그에게 설명했다.

“저 괴물에게 먹히면 됩니다. 그게 우리 하이낸스에서 알아낸, 저 괴물을 제어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물론 설명은 간단했지만, 쉽게 내릴 수 있는 선택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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