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내가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하늘 요새엔 정민혁과 트레이의 주도하에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우주 상인들과 우주 해적들이 그룹에 (강제로) 합류한 것을 환영하기 위한 행사라고 했다.
우주 상인과 우주 해적의 관계를 생각하면,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행사는 별문제 없이 잘 진행됐다고 했다. 뭐, 엄밀히 말하면 문제를 일으키고 싶어도 나와의 계약 조건에 묶여있어서 일으킬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시간은 흘렀다. 트레이 상단은 본격적인 상행을 시작했다. 기존 상인 연합의 세력을 완전히 흡수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라 했다.
상인 연합이 멸망한 지금, 그들이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행성은 공석이 됐다고 했으니 말이다. 우주 해적들이 그 보디가드를 맡기로 했다.
사이가 사이인 만큼 처음엔 불협화음이 잦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꽤 괜찮은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다시 시간은 흘러,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이를 때쯤 그룹에 ‘첫 이탈자’가 발생했다.
시작은 중국인들이었다. 그 내용인즉, 대략 3,000명 정도 되는 중국인들이 독립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미안해요. 제가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다들 너무 독립을 원해서.”
그들을 대표하여 찾아온, 차마 내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하고 불쌍한 표정으로 사과를 하는 미란을 보며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진짜 괜찮습니다.”
이건 예상했던 일이었다. 사실 지구가 안전해진 지금, 모두가 그룹에 소속돼있을 필요는 없다.
정민혁과 대화를 나눴던 것처럼, 원하는 이가 있다면 보내줄 생각이었다. 물론 3,000명이라는 숫자는 나조차 예상하지 못한 숫자.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그 아쉬움이 크지는 않았다.
그 시점에 우리 그룹의 세력은 눈덩이 불어나듯 늘어나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은 그때의 나는 모르고 있었다.
미란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 듯한 눈치였지만, 끝내 입을 열지 못하고 내게 고개를 숙이며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후, 지구에는 중국(中國)이 재건됐다.
그에 이어서는 러시아와 미국, 그리고··· 대한민국이 뒤를 이었다.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하늘 요새가 한적해졌다. 엄밀히 말하면, 한적한 것은 아니었지만 체감상 그랬다.
“진짜 나쁜 사람들··· 오빠한테 도움받을 땐 언제고.”
나는 투덜거리는 진혜연을 달래듯 말했다.
“의원님 듣겠다.”
재건된 대한민국의 1대 대통령은 박승기였다.
그다지 배신감은 들지 않았다. 그가 선동을 한 것도 아니고, 그룹의 운영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그를 대신 정신적 지주로 추대한 것뿐이었으니까.
물론 그가 지상으로 휴가를 다녀오겠다며, 잔뜩 신이 나서 떠난 것 역시 사실이긴 하지만···
‘돌아올 자리는 없을 겁니다, 의원님.’
귀 간지러워 보라고, 괜스레 나도 속으로 중얼거렸다.
“들으라 그래요. 그 국가라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뭐, 정치 욕심이라도 나셨나 보지.”
“아니, 상도덕이 없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뭐예요? 대한민국이 세워졌으니, 대한민국은 아니잖아요?”
“뭐, 딱히 국가를 만든 적은 없는데··· 꼭 만들어야 하나?”
이미 우리 그룹은 우주로 진출했고, 더 이상 ‘지구’라는 행성에 종속될 정도로 작지 않았다. 사실 국가라는 표현보다는 연방 쪽이 어울리지 않을까?
“진서국 어때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묻는 진혜연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얘는··· 네이밍 센스가 그게 뭐야? 병실에 들어와서 내 책상에 과일 꾸러미를 올려놓은, 정민혁도 한마디 거들었다.
“형님, 저는 찬성입니다.”
“민혁아, 너마저···”
“맞다, 형님. 요즘 인별 하십니까?”
정민혁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쾌활하게 말했다.
“인별?”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민혁은 스마트폰을 들어, 내게 보여줬다. 인별그램. 그렇게 녀석이 즐겨하던 SNS. 녀석을 만난 초창기 때만 해도 녀석은 인별 말기 중독자였지.
물론 생존자가 줄어들며 인별그램의 사용자 역시 자연스레 줄어들었고, 정민혁이 인별그램을 하는 일도 자연스레 사라졌지만 말이다.
뭐, 가끔- 아쉬움이 남는지 인별에 접속하던 녀석의 모습을 볼 수 있긴 했지만.
“그냥 인별그램이 아닙니다. 인별그램 스페이스 버전. 지구인들은 물론, 우리 그룹원들 전체- 심지어 테라인들마저 접속할 수 있는 SNS라고 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인‘별’그램인 셈이었다.
“태윤이 작품이냐?”
“민수 아저씨도 거들었다고 하던데요? 형님, 형님도 빨리 설치하셔서 좋아요 한 번만 눌러주세요. 형님이 계정 만들어서 좋아요 누르면 아마 난리 날 겁니다.”
나는 슬그머니 진혜연을 바라봤다. 진혜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사람은 안 바뀐다고, SNS 관종은 여전히 SNS 관종이었다.
“치워라, 뭔 SNS야. 내 나이에.”
“의원님, 아니 대통령님도 열심히 하는 마당인데요, 뭐. 우주 대통령이라도 하시려나?”
박승기의 개인 페이지가 눈에 들어온다.
[대한민국 1대 대통령 박승기]
그가 올린 포스트들이 눈에 들어온다. 뭔가 대통령다운 근엄한 모습을 기대했지만, 주로 농사일이나, 과수원 일을 하는 소박한 사진들뿐. 뭐, 사실 저게 그의 본모습이긴 하다.
나는 그중 하나를 눌러 들어갔다. 그리고 줄기차게 달린 댓글들을 확인하니···
[테라인342 : ㅋㅋㅋ 이미지 메이킹 개쩌네.]
[테라인783 : ㅇㅈ 정치인들은 어딜 가나 다 똑같누.]
···박승기는 테라인들에게 비난을 받고 있었다.
[박승기 : 다들 오해십니다 ;; 이건 전부 다 제 일상 모습이 맞습니다···]
억울해서 눈을 끔뻑끔뻑거리며 댓글을 입력하고 있을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찔끔 눈물마저 날 지경이었다.
“형님, 이게 바로 SNS의 참맛 아니겠습니까?”
역기능이 아니라?
“참맛은 무슨··· 이걸 없애야 돼, 말아야 돼?”
“아, 형님···! 이 꿀잼을 왜 없앱니까.”
“너도 조심해. 그러다 괜히 국가 간에 사이 나빠질라.”
“아무렴 진서국에 전쟁을 걸기야 하겠습니까?”
나는 녀석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아픈지, 녀석이 펄쩍 뛰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머리가 천장에 닿을 뻔했다.
“그건··· 아서라. 전쟁도 체급이 맞아야지.”
그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아니, 무슨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 손바닥이 이렇게 매워? 역시 형님이십···”
“어째, 어조가 조금 이상하다?”
“착각이십니다, 형님.”
정민혁은 도망치듯 나갔고, 진혜연 역시 나와 몇 마디 더 나누다가 김하나를 보겠다고 말하고는 나갔다. 홀로 남겨진 나는 조용히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 인별그램을 열었다.
이렇게 재밌는 걸, 나 혼자 하지 않을 수는 없지.
날마다 인별그램을 하자, 시간은 한층 더 금방 가기 시작했다. 날마다 병실 사진 찍어 올려서 좋아요를 구걸하는 SNS 말기 환자가 됐을 때쯤- 마침내 나는 병상에서 일어섰다.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바깥에 나가,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자 마치 결산을 하듯, 메시지가 주르르 떠올랐다.
[신체가 완전히 회복됐습니다.]
[영구적으로 감소한 신체 능력치 : 68.2]
[영구적으로 감소한 마력 능력치 : 37.9]
“많이도 줄었네.”
줄어든다는 메시지가 이따금 뜨기에 계산 안 했었는데, 이렇게 모아놓으니 꽤나 많은 양이다. 근력, 체력, 민첩 능력치가 68.2니까 총 204.6이고···
마력 능력치까지 포함하면, 242.5가 줄어든 셈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낙담하지 않았다. 내 능력치는 오히려 늘었으니까. 그것도 대폭.
시에니는 약속했던 대로 계속 대량의 기프트를 후원했고, 나는 그 기프트를 모조리 능력치와 스킬에 투자했다. 그게 끝이 아니라 새롭게 합류한 그룹원들과 맺은 기프트 계약까지.
결과적으로 말하면 행운과 지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능력치는 ‘1,000’을 넘겼다. 제대로 풀도핑을 하고 스킬까지 사용하면, 특정 능력치는 1,500도 넘길 수 있었다.
‘1,500이라···’
숫자로 표현하니 어마어마하다.
‘지금의 나는 얼마나 강해졌을까.’
모르긴 몰라도, 강해졌다. 물론 그럼에도, ‘신’이 됐을 때만큼은 아니겠지만··· 쉽게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강해졌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궁금하긴 하네.’
누구를 상대하며 시험해볼까, 고민할 찰나 내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직접 계약자, 이진서의 회복을 축하드립니다.]
배려심이 느껴지는 말투에, 나는 엷게 웃었다.
“고마워.”
[힘을 시험해보는 것도 좋지만, 직접 계약자, 이진서에게는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할 일?”
[일시적으로 유예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아···”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통찰안의 4단계 시험장 안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통찰안의 4단계 시험.
그 기한은 한 달이었다. 이미 첫 메시지가 떠오른 지, 한 달이 넘게 흘렀음에도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이유는 바로 시스템- 오퍼레이터가 기한을 유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지금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애초에 유예의 이유가 내가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었으니, 부상이 나은 지금 유예가 풀린 것이다.
그녀가 말한 대로, 급선무는 통찰안의 4단계 시험을 치는 것이었다. 한 달 안에 시험을 치지 않으면 통찰안의 안에 갇히게 될 테니 말이다.
[전송을 시작하겠습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시험장에 도착했다.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 사진을 찍으면 잘 나올 것 같아서, 익숙하게 스마트폰을 꺼내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스마트폰이 없었다.
‘아쉽네.’
그 순간, 우주 공간에 거대한 녹색 용이 나타났다. 그 크기는 과장 조금 보태서 ‘파괴자’와 맞먹을 정도였다. 일전에 그랜드 머천트를 파괴했던 그 전함 말이다.
<조율자, 아틸라>
아틸라라는 이름의 용은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입을 벌렸다. 그의 입에 맺히는 구체. 하지만 나는 이미, 그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를 향해 손을 들고 중얼거렸다.
“광휘의 검.”
아무것도 없던 내 손에서 새하얀 검이 뻗어나가, 그의 목을 꿰뚫었다.
아틸라라는 용은 마치 꼬챙이에 꿰이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흔들어 댔으나, 나는 이번에는 광휘의 검을 소환해, 녀석의 심장에 찔러 넣었다.
‘끝이군.’
아무래도 강해져도, 너무 지나치게 강해져 버린 모양이었다. 통찰안의 4단계 시험관이라 하더라도, 손쉽게 쓰러트릴 수 있을 정도로. 그러나 자만하던 내 표정은 이내, 굳고 말았다.
세계가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내가 그의 몸을 꿰뚫기 이전, 그러니까 이 공간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모습 그대로. 어안이 벙벙했지만, 나는 이내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래, 이렇게 쉽게 끝나면 재미없지.’
정확히 그로부터 세 시간 뒤. 조율자, 아틸라를 332번 죽인 후, 나는 그 말을 후회했다. 혹시 그 말 때문에 이 끊임없는 루프의 저주에 빠진 것은 아닌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