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컴퍼니에선 동화 세계의 위치를 철저히 은폐했다. 때문에 동화 세계를 습득한 플레이어들조차 동화 세계가 어디 위치해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예외였다.
그들의 정체란 바로 하이낸스의 사장인 슈엔자오와, 그 비서인 시에니였다. 그들은 선베드에 누운 채 일광욕을 즐기며, 실시간으로 동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감상하고 있었다.
“기록자가 설마 저런 걸 기록해놨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는데.”
슈엔자오의 말에 시에니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수만 년 전, U-999 행성에 봉인돼있던 ‘신의 육체’의 봉인이 풀린 적이 있었다.
봉인이 풀린 신의 육체는 그 본능에 따라 가장 가까운 생명체의 거주지- 제논족의 행성을 침공했고, 그들은 느닷없이 찾아든 재앙에,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멸망당했다.
컴퍼니에선 신의 육체의 봉인이 풀린 이유를 누군가의 습격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그는 컴퍼니에서 은폐한 비사(祕史)에 대해 알고 있었다.
‘실험이었지.’
전대 컴퍼니 회장은 신의 육체의 성능을 시험해보기 위해, 일부러 봉인을 풀었고 제논족을 제물로 삼은 것이다.
전대 컴퍼니 회장이 살아있다면 모를까, 죽은 지금, 안정을 꾀하려는 컴퍼니에 있어서는 흑역사와 같은 일. 이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면, 컴퍼니 역시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알려진다면 약점이 될 그런 기록을, 컴퍼니에서 자발적으로 남겼다는 것이 슈엔자오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 이유야 어찌 됐든- 그는 떠오르는 의문은 잠시 접어두고, 눈앞의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의 후원을 받고 있는 이진서는 기록 속, 신의 육체와 전투를 시작했다.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뿐이다. 그의 공격은 신의 육체에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행성 파괴 병기를 소환했을 때는 슈엔자오도 조금 기대했지만, 역시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하기야, 제논족의 병기로 제논족을 멸망시킨 괴물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랬다면 제논족이 멸망할 일도 없었을 테니까.
이진서가 약한 건 아니다.
후원을 받기 전에도 그린돈을 쓰러트릴 정도로- 우주에서 중상위권의 무력을 가지고 있던 그는 그의 후원을 받은 이후엔 최상위권 수준으로 올라섰으니 말이다.
그러나 힘이란 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
애석하게도 그의 강함은 신의 육체와 비할 바는 아니었다. 괜히 신의 육체를 그가 보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파괴할 수 있었다면, 진즉 파괴했을 것이다.
“다시 봐도 무시무시한 힘이야. 그렇기 때문에 컴퍼니 놈들조차 침을 질질 흘리는 것 아니겠나. 끝났군.”
슈엔자오는 단언하듯 말했다. 신의 육체에게 데미지를 줄 수단이 없는 이상, 사실상 이진서의 패배는 이미 확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시에니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저는 말입니다. 저 인간이 가진 엄청난 잠재력을 믿습니다.”
“무슨 잠재력 말인가? 내가 전에 봤을 때는, 그런 잠재력 같은 건 엿보지 못했는데.”
슈엔자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전에 이진서를 본 적이 있다. 비록 분신을 대신 보내긴 했지만, 분신의 기억은 그의 본체에도 생생히 남아있었다.
시에니는 엷게 웃으며 말했다.
“딱 잘라 말하긴 힘드네요. 뭐, 끝까지 지켜보시죠.”
슈엔자오는 끼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고, 그녀를 바라봤다. 마치 진심이냐고 묻는 듯했다.
“자네는 그 인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군. 그런데 끝이라고 해봐야···”
신의 육체의 공격을 받은, 세계는 무너져내리고 있다. 저런 공격을 한 번만 더 받아낸다면, 세계는 완전히 붕괴될 것이다. 세계가 붕괴된다면, 이진서 역시 죽는다.
즉, 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시간 안에 판가름 난다. 실제로 저 자리에 있는 이진서에게는 더욱더 짧게 느껴질 것이다. 그 시간 안에 사느냐, 죽느냐가 판가름 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눈을 크게 떴다. 이진서가 ‘기록자의 거울’을 꺼낸 이후부터다. 그 찰나의 순간, 그가 바뀌었다. 그가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고 있던 슈엔자오는, 이내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건···”
“신이네요.”
시에니는 딱 잘라 말했고, 그는 애써 대체할 표현을 찾으려 애썼지만 이내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불완전하지만··· 신이군.”
“그 눈도, 육체도··· 그 어느 것 하나 온전치 못하지만···”
그녀의 말처럼 전부 온전치 않다.
그가 가진 통찰안은 수만 갈래로 갈가리 찢긴 ‘신의 눈’이고, 그 육체는 ‘신의 육체’를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신의 유해’를 품고 있지만, 그것 역시 자투리에 불과하다.
그것은 진짜 신과 하나하나 비교하면 너무나도 우스운 힘의 편린. 그러나··· 그 편린이 합쳐지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 셋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조화를 이뤘다고, 그가 ‘진짜’ 신이 됐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불완전하고, 그 힘은 진짜 신과 비교하면 여전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자그마하다.
그러나 불완전한 건 그뿐만이 아니다. 당장 불완전하기만으로 따진다면, 이진서를 무시무시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 저 ‘신의 육체’가 가장 불완전할 것이다.
신의 눈을 가지지도 않았고, 신의 유해를 품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영혼도 없다.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자네가 잠재력 운운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군. 그리고 그 컴퍼니의 꼬마가 그렇게 두둔한 이유도 알 것 같고 말이야.”
그들은 미처 자신이 보지 못했던 것을 꿰뚫어 봤던 것이다. 슈엔자오의 말에, 시에니는 왠지 모를, 뿌듯한 얼굴로 이진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이길지는 모르겠군.”
모든 것이 불완전한 신과, 하나만 완전할 뿐 나머지는 전부 결여돼있는 신. 둘의 승부에서 어떤 결말이 나올 것인가, 그조차 아직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결말은 곧 드러날 터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 결말이 드러났다.
이진서의 검은 신의 주먹을 가르고, 신의 심장을 꿰뚫었다. 신의 육체가 앞으로 기울어지듯 쓰러진다. 그것으로 지금까지 버티는 게 신기했던 세계는 완전히 붕괴돼 버렸다.
쨍그랑.
마치 유리가 깨지듯, 세계가 무너져 내린다. 그것으로 그들의 시야는 완전히 암전돼버렸다.
“······”
잠시 침묵하던 슈엔자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후원을 늘려야 하려나?”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게 된다면, 그는 전 우주에 엄청난 파급을 몰고 오게 될 것입니다.”
그녀의 말처럼, ‘고작’ 트레이 코인의 광풍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태풍이 몰려오게 될 것이다. 설령 슈엔자오와 시에니라 할지라도 막아낼 수 있을지 의문인.
“컴퍼니가 가장 큰 문제겠지. 뭐, 이건 그 꼬맹이를 믿는 수밖에 없겠지만. 듣고 있나?”
허공에 질문을 던진 슈엔자오의 앞에 이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잔뜩 날이 서 있는 대답에, 그는 잔뜩 볼을 부풀리고 있을 ‘꼬맹이’ 오퍼레이터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터뜨렸다.
***
방패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났다. 제이드는 이를 꽉 물며, 등에 메고 던 거검을 꺼내 휘둘렀다. 그러나 그는 거검을 모두 꺼내지 못하고, 팔이 베이고 말았다.
잘려나간 팔. 검을 꼭 붙잡고 있는 그의 오른팔은 우주 공간으로 흘러간다. 엄청난 격통이 느껴졌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왼쪽 주먹으로 마스티치를 향해 휘둘렀다.
이미 끝낼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마스티치는 그 투혼(鬪魂)에 잠깐 어울려주기로 했다. 그 역시 주먹을 들어 제이드를 향해 휘두르기 시작했다.
주먹과 주먹이 부딪치며, 살이 으깨지고 뼈가 박살 난다. 마지막 무기마저 잃어버린 제이드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더 싸우고 싶지만, 싸울 무기도, 힘도 하나도 없었다.
그는 간신히 짜내듯 말했다.
“더럽게··· 강하네.”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면 이진서와도 어느 정도 싸워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전부 그의 오산이자 오만에 불과했다. 고작 이런 잡몹 하나 제대로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그는 그저 우물 안 개구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분하다. 이기고 싶다.
“좋은 승부였다, 전사여.”
마스티치는 그에게 최후를 선사해주기 위해, 검을 들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의를 담아. 제이드는 죽음을 직감하고 눈을 감았다. 그때, 그의 귓가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고 싶다고 말해.”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익숙한 목소리에 그는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 붉은 여자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
대체 뭐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이드는 이 어설픈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그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목소리.
“···살고 싶어.”
그 순간, 거대한 화염 거인의 주먹이 마스티치의 몸을 때렸다. 그는 검으로 막아냈지만, 온몸이 그을리고 말았다.
“이프리트?”
마스티치는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 아까 그 인간이 나온 건가···? 그렇다면 크레인 제독님은 어디 있지?’
두리번거리던 그의 앞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눈팔 새는 없을 텐데요.”
로브를 걸친 인간 사내는 그에게 지팡이를 들었다. 마스티치는 주먹을 휘둘렀다. 쾅! 폭음과 함께 사내가 뒤로 물러났다.
“마법사인가.”
이내, 그는 정정한다.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군.”
그가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육체’였다. 육체와 영혼을 분리시키는 고차원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이가 평범한 마법사일 리 없잖은가.
한편, 그의 얼굴을 확인한 제이드의 얼굴이 환해졌다. 라우라와 연병수. 너무나도 든든한 둘이 그의 구원군으로 왔다.
마스티치는 그들을 응시하다가, 전함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케이론, 당신도 나와야겠습니다.”
봐주고 말고 할 게 없었다. 그의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를 만큼 강하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들의 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곧, 2 함대의 문이 열리며 켄타우로스가 나왔다.
우주 공간으로 나오자마자, 그는 연병수를 향해 창을 투창했다. 그러나 창은 이프리트의 손에 의해 가로막히고 만다. 그는 혀를 쯧 차며, 손을 들어 그의 창을 회수했다.
마스티치는 검을 다잡으며,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누구지?”
“우리가 누구냐라··· 그냥 지나가던 인간, 정도로 해두지.”
“인간이 맞긴 한 건가?”
인간이 어떤 종족이었더라···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결론을 내렸다. 약하디약한, 여느 세상에서나 노예로 쓰이는 그런 종족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눈앞의 인간들은 뭐란 말인가.
‘우리와 같은 괴물들.’
아니, 어쩌면 그 이상. 그의 눈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