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크레인 제독 휘하 제1 함장, 마스티치는 벌레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우주선을 보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조종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대단한 것은 그 담력.
모두 회피하려고 했다면, 결코 회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종사는 회피하려 하되, 맞을 건 적당하게 맞아주고 있었다. 딱, 우주선 위에 올라탄 인간이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만. 말이 쉽지, 저런 결정을 내리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외줄 타기다. 조금이라도 상황 판단을 잘못하면, 저 작은 우주선은 그대로 가루가 돼버릴 테니까.
“우연이 아니라면··· 어떤 조종사인지 궁금하군.”
마스티치는 우주선을 조종하고 있는 조종사에 대해 진심으로 경의를 표했다. 그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 조종사의 정체가 전 우주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트레이’라는 것은 말이다.
-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된다면 놓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2 함장, 케이론의 말에, 그는 입을 열었다.
“제가 직접 나가겠습니다.”
- 아, 그러면 문제가 없겠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저 인간의 실력도 보통이 아니던데요.
“······”
- ···미안합니다. 농담 한번 해봤습니다.
“그럴 수 있죠.”
케이론의 말대로, 그의 기준에서도 인간은 강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크레인 제독의 1 함장. 비록 시나트리온보다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긴 하지만, 그 역시 직접 계약자였다.
그가 ‘고작’ 인간 한 명을 상대로 패배할 확률은 희박한 것이다. 일어선 그는 슈트를 걸치고,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
동화 세계에 들어온 지 정확히 한 시간 경과 후, 나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제논족 전사에 빙의했던 크레인 제독이 이제는 아예 제논족 지도자의 몸에 빙의해버렸기 때문이다.
즉, 녀석은 제논족 군대 전체의 지휘권을 손에 넣은 셈이었다. 물론 ‘군대’ 전체라 해봐야 그 숫자는 많지 않다. 대략 수백 정도. 하지만 그 개개인이 하나같이 강자들이다.
굳이 비교 대상을 찾자면, 평범한 전사 하나가 간부급이라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면 지금 내 적은 간부 수백 명이나 다름없는 셈.
“저놈을 죽여라···!”
크레인 제독의 명령이 떨어지자 제논족 군대가 일제히 나를 향해 날아올랐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지팡이를 꺼냈다. 오랜만에 꺼내는 대멸겁의 지팡이였다.
[대멸겁의 지팡이의 속성이 혼돈(Chaos)에서 신성(Divine)으로 변경됩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미티어 스웜.”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새하얀 운석들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마치 행성을 뒤덮을 듯한 수백, 수천 개의 운석이. 그러나 그들은 운석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웃으면서 달려들었다.
‘뭐, 저런 또라이들이···’
녀석이 빙의한 건 제논족 지도자 하나뿐, 즉 다른 제논족 전사들은 빙의된 상태가 아닌 제정신이라는 소리다. 아니, 제정신이긴 한데··· 저건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운석을 뚫고, 나를 향해 날아드는 플라즈마 광선을 피해냈다. 선두에 있는 제논족 전사들은 플라즈마 대포를 장착하고 있었다.
외형은 테라의 플라즈마 대포보다 구형이지만, 그 위력은 테라의 플라즈마 대포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나하나가 지금의 내게 위협적일 정도다.
몇몇 제논족 전사들은 운석을 뚫고 기어코 내가 있는 곳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크헤헤, 죽어라, 괴물···!”
“네놈의 창자를 씹어 먹어주지.”
“떨어져라.”
그들의 몸이 짓눌린다. 하지만 그들은 놀랍게도 통찰안의 지배 능력에 저항하고 있었다. 원래 자체적으로 저항을 가진 건지, 아니면 그들이 걸친 슈트에 저항이 붙은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재차 중얼거렸다.
“떨어져라.”
“으아악!”
그제야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들의 몸이 까마득한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사이, 다른 제논족 전사들이 속속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래서는···’
사냥당하는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나는 검을 들어, 내게 광선 검을 휘둘러오는 제논족 전사를 베어내며 지상에 있는 제논족 지도자- 크레인 제독을 바라봤다.
그는 즐거워하는 낯빛이었다. 내가 당하는 게 즐겁기라도 하나?
‘즐거워?’
“텔레포트.”
내 몸이 흐릿해지더니, 그대로 그의 앞에 나타난다. 최후의 발도술. 공간을 찢는 소리와 함께 검기가 그의 목을 향해 날아간다. 그러나 크레인 제독은 내가 이럴 줄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광선검을 들어 검기를 받아냈다. 하기야, 그가 빙의한 제논족 지도자 역시 보통 실력자는 아니었다. 아까 상대했던, 우주 공간에서의 그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
“별거 아니구나, 인간이여.”
“아까 도망가던 기억은 그새 잊으셨나?”
“지금의 나는, 아까의 나와 다르다.”
“중2병 같은 대사는 관두고, 도망치지 말고 제대로 싸우지 그래.”
“이 세계 전체가 나를 돕는데, 그럴 필요가 있나.”
그의 몸이 흐릿해진다. 텔레포트의 전조 현상. 그러나, 나는 그를 막지 않았다. 막지 못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어느새 지상으로 내려온 제논족 전사들이 나를 공격해왔기 때문이다.
‘까다롭네.’
마치 게임 속에서 레이드 당하는 ‘보스 몬스터’가 이런 심정일까. 이대로라면 정말 끝이 없을 것 같다.
설령, 크레인 제독을 잡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녀석은 또 다른 제논족 전사의 몸에 빙의해버리면 그만이다. 어쩌면, 이 행성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죽이기 전까지.
그와의 전투는 끝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면···’
생각을 하던 나는 간단한 결론을 내렸다.
‘행성을 부수면 되지.’
아예 행성을 부숴버리면 그만이다. 행성을 부수면 그의 숙주가 될 생명체들을 다 죽일 수 있을 테니까. 행성을 부술 수 있는 경이로운 위력을 가진 ‘제논족’의 파괴 병기가 지금 내 손안에 있었다.
“행성 파괴 병기 소환.”
[행성 파괴 병기 DR01(EX)을 사용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서 거대한 로봇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내게 달려들던 제논족 전사 한 명이 깔려 그대로 짜부라지고 말았다. 여전히 살아있긴 했지만.
DR01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는지, 빠져나오지는 못했다. 나는 로봇에 올라탔다. 제논족 전사들이 광선검을 휘둘러왔지만, DR01의 동체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나는 가볍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세계의 끝’에 도착했다. 이 기록된 세계가 우주 공간까지는 구현하지 못한 듯 유리처럼 투명한 막에 의해 가로막혀 있는 곳이었다.
제논족 전사들은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 듯, 아직 눈에 보이지 않았다. 지상을 향해, 두 팔을 겨눈다. 인간과 유사한 두 팔은 대포로 변한다.
[행성 파괴 집행 모드로 변경합니다.]
그와 동시에, 마력을 주입하자 대포에 초록색의 구체가 맺히기 시작한다. 막대한 에너지를 느끼며, 단숨에 방아쇠를 당겼다. 우레 같은 소리와 함께 DR01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이전에 우주 공간에서, 달에 사용했을 때 나는 엄청난 반동을 받았었다. 그러나 이 공간엔 지지대가 있었다. 우주 공간 대신 존재하는 투명한 막이 반동을 완화해준 것이다.
‘한 방으로 모자랄지도 모르니, 두 방은 쏴야겠지.’
생각을 마친 나는 다시 마력을 주입했다.
또다시 맺히는 초록색 구체. 이번 역시, 망설임은 없었다. 설령 동화 세계의 미션을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곳에서 크레인 제독을 ‘확실하게’ 죽일 생각이었다.
나는 재차 두 발째를 발사했다.
[지나친 남용으로 행성 파괴 병기 DR01이 곧 폭발합니다.]
로봇의 동체가 붉게 부풀어 올랐다. 나는 황급히 로봇에서 내렸다.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는 내 몸. 로봇이 강렬하게 폭발했다. 투명한 막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그러나 내 시선은 지상에 가 있었다. 지상에서 일어나는 대폭발에 비하면, 로봇의 폭발은 그저 약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행성이 ‘통째로’ 파괴되고 있는 과정이었다.
제논족 전사들은 빠르게 달아났지만, 폭발의 범위를 피하지는 못하고 그대로 폭발에 휩쓸리고 말았다. 나는 보호막을 사용했다. 폭발 범위는 단순히 지상에 국한되지 않았다.
화산이 분출하듯 연쇄적으로 일어난 폭발은 내가 있는 상공까지 휩쓸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때, 폭발을 헤치고, 크레인 제독이 다급해진 얼굴로 등장했다.
“이 미친놈아, 당장 멈춰라, 이런 짓을 하면 너도 나도 둘 다 죽는다···!”
나는 새파랗게 질린 표정의 그에게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제 못 멈춘다.”
애초에 여기서 멈출 거였으면, 저지르지도 않았다.
“둘 다 죽자는 거냐?”
여기서 죽는다고, 그도, 나도 죽지 않는다. 그저, 패널티를 감수할 뿐이다. 모든 능력치 –35, 무작위 스킬 삭제. 이전이었다면 두려웠겠지만, 지금은 별로 두렵지는 않았다.
스킬이 사라지면, 다시 기프트를 사용해 습득해버리면 그만이니까. 설령 초월 등급 스킬이 증발한다 하더라도, 나는 충분히 복구할 여력이 있었다.
‘하지만 너도 그럴까?’
그는 이 동화 세계에서의 죽음이 진짜 죽음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른다. 내게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에게는 존재한다는 소리다.
“미친놈···!”
“둘 다 죽자니까.”
그가 검을 부딪쳐 온다. 나는 검을 들어 받아쳤다. 우위를 가리기 힘들 만큼, 그는 강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가 강한 건지 그 몸의 원주인이 강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와 나의 차이는 있었다. 방금 전에도 말했듯,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바로 그것이다. 그의 검은 조급했고, 나의 검은 여유로웠다. 결국 그가 먼저 빈틈을 드러냈다.
나는 그 빈틈을 정확히 찔렀다.
“어차피 네놈도 끝 아닌가. 어째서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거지.”
“미안하지만, 끝 아니야. 그러니까··· 그냥 얌전히 죽어라.”
검에 힘을 주자, 그의 목이 잘려 나간다. 그의 영혼이 빠져나온다. 그러나 이 세계에 더 이상 그가 빙의할 숙주는 없다. 제논족 전사들은 다 죽었거나, 죽어가는 중일 테니까.
그는 체념한 듯 영혼 상태에서 가만히 있었다.
나는 그의 영혼에 손을 뻗었다.
[흡수(G)를 사용합니다.]
[근력이 3.55 상승합니다.]
[체력이 2.95 상승합니다.]
[마력이 4.75 상승합니다.]
그제야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눈치챈 듯 그의 영혼이 달아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는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그의 능력치를 ‘쭉쭉’ 빨았다.
“달다, 달아.”
- 미친···
그의 영혼은 더 이상 욕설을 지껄일 힘도 없는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제···’
나는 지상을 내려다본다. 행성의 멸망은 수순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나 역시 죽고 말 것이다. 행성이 멸망하는데, 살아남을 방법 같은 건 없을 테니.
‘어디 멸망을 막아보실까?’
아무리 이 세계의 죽음이 진짜 죽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막을 방법이 있는데 순순히 죽어줄 생각은 없었다.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시계.”
멸망해가는 세계에 시계태엽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내, 시계태엽들은 빠르게 감기기 시작한다. 나는 시간을 되돌려, 이 행성을 멸망 이전으로 되돌려 놓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