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코인 채굴-208화 (208/236)

208화

[동화 세계(Tales World), 제논족의 몰락(Fall of the Xenon)]

[전 우주를 통틀어서 강대한 종족이었던 제논족은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 정체불명의 존재에 의해 몰락했습니다. 진실을 파헤치고, 동화를 끝내십시오.]

[임무 성공 시, 기여도에 따라 무작위 보상이 주어집니다.]

[실패 시, 참여한 전원의 능력치 영구적으로 35 감소, 무작위 스킬 삭제.]

‘제논족이라면···’

내가 최근에 습득한 초월 등급 스킬, ‘행성 파괴 병기 DR01’을 만들었다는 종족이 아닌가. 이번에 들어온 동화 세계는 그런 제논족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세계인 모양이다.

물론 어차피 어떤 세계든 상관없었다. 내 목적은 동화 세계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군신의 검을 들어 나를 향해 브레스를 발사하려던 셰어셀의 목을 가볍게 쿡 찔렀다.

쑤욱,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그의 눈에 당황함이 어린다. 녀석의 입에 맺혀있던 구체는 흔적도 없이 그 모습을 감췄다.

- 켁켁, 켁켁.

헛기침을 하며 아등바등대던 셰어셀은 이내 거친 몸짓을 했고, 나는 지상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녀석은 떨어지는 나를 한번 노려보고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꼴사납네.”

전 우주에서 명성을 떨친다는 우주 제독의 행보치고는 정말 꼴사납기 그지없다. 바닥에 가볍게 착지한 나는 정신없이 달아나는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누운 채로 담배를 물었다.

어차피, 이곳은 동화 세계다. 셰어셀- 아니 크레인 제독이 달아날 방법은, 이 동화 세계를 클리어하는 것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결국 다시 만나게 될 거란 이야기다.

‘바깥은 괜찮으려나.’

나는 오히려 바깥을 걱정했다. 내가 동화 세계에 왔으니 소환된 마도사, 벨루가는 사라졌을 것이고, 그가 소환한 피닉스 역시 당연히 사라졌을 것이다.

즉, 트레이와 그룹원들은 크레인 제독이 이끌던 우주 해적들과 함께, 우주 공간에 남겨졌다는 소리다. 피닉스가 깽판을 치면서 우주 해적들의 상태도 정상이라 말하긴 힘들어 보였지만.

그대로 한 개비를 마저 다 핀 나는, 일어났다.

‘최대한 빨리 나가야겠군.’

이곳의 시간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실과 같거나 느리다면··· 마냥 늦장을 부릴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 크레인 제독을 처치하고,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날개를 펼친 나는 그의 뒤를 쫓기 위해, 가볍게 날아올랐다.

***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소음으로 가득하던 우주 공간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이진서도, 그를 상대하던 크레인 제독도, 벨루가도, 피닉스도 전부 다 모습을 감췄다.

트레이와 남겨진 그룹원들은 어쩔 줄 몰라 하는 눈으로 제이드를 바라본다.

“제이드, 어떻게 하죠?”

“이곳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난다.”

제이드 역시 당황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이내 그는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그까지 내색했다면, 내부의 혼란은 한층 더 가중되기만 했을 것이다.

“우리끼리요?”

활을 들고 있는 여자 그룹원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진서, 아니 리더는··· 알아서 잘하실 거다. 여태껏 그래왔으니까. 우리가 이곳에서 잡히거나 죽기라도 하면 그게 더 짐이 되는 꼴이다.”

그룹원들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전투를 본, 그들은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들도 강해졌지만, 리더- 이진서 역시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는 것을.

그와의 격차는 좁혀지기는커녕, 벌어지기만 했다는 것을.

그런 그에게 그들의 존재는 짐 덩어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터였다. 실제로 이진서가 그들을 지키겠다고 적이 사용한 스킬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아 상처를 입기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저쪽도 우리를 그냥 놔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군.”

굳은 표정을 짓는 제이드의 말에 그룹원들은 창가로 전함들을 내다본다. 전함 절반은 피닉스의 화염에 의해 아직도 불타고 있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었다.

그들을 이끌던 리더가 사라진 것치고는, 상당히 빠른 대응. 그리고 재정비가 끝나면, 그들이 누구를 노릴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제이드는 인벤토리에서 장비들을 꺼냈다.

“내가 엄호하도록 하지.”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진서에겐 못 미칠지라도, 그도 최근에 엄청난 스펙업을 했다. 9개의 신화 등급 스킬로 강화된 그는 스스로의 무력(武力)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장비를 모두 걸친 그는 가볍게 중얼거렸다.

“블링크.”

블링크를 사용한 그는 우주 공간 밖으로 나왔다. 전함들이 그에게 주포를 겨눴다. 그는 심호흡을 한 뒤, 방패를 들어 올렸다. 당연히 평범한 방패가 아니었다.

그 옛날 거인족의 영웅이 사용했다는 방패. 비록 원본이 아닌 레플리카(Replica)이긴 하지만 신화 등급 장비인 데다 김민수와 아나스타샤가 추가 개조까지 하며 방어력을 향상시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확신할 수 없었다. 아무리 방패의 방어력이 뛰어나다 한들 저 거대한 전함에서 발사되는 파괴 광선을 과연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논제를 말이다.

우주선이 이동하기 시작한다. 전함에서 주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AI에 의한 자동 조종을 멈추고, 수동 조종 모드를 킨 트레이는 조종석에 앉는다. 최신형의 계기판이 그를 반긴다. 눈을 홀리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운 디자인.

그가 몰고 다니던 고철 우주선에 비하면 지금 그가 타고 있던 우주선은 특S급이라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에 기뻐하기엔 지금 그의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 중의 최악.

“씨발, 씨발···”

그의 입에선 연신 욕설이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전함 수십 척에 의해 노려진 적은 그의 일생 경험을 통틀어 한 번도 없었다. 그의 얼굴은 그의 심정을 대변하듯 구겨져 있었다.

“나는 대상인 트레이다아아!!”

그가 조종간을 앞으로 당기자, 우주선이 출발하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전함들이 주포에서 파괴 광선을 뿜어낸 것도, 거의 동시였다. 강렬한 빛이 순간적으로 일대를 메웠다.

곧 그 빛을 뚫고, 우주선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비행한다. 죽느냐, 사느냐, 생사(生死)가 갈리는 레이스가 시작됐다.

***

제독의 자리에 오른 뒤, 크레인 제독은 수없이 많은 적들과 싸워왔다. 그중에는 행성의 신도 있었고, 그와 같은 ‘제독’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패배했다면 그는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테니까. 즉, 그의 존재야말로 그의 승리의 역사를 방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오늘 그의 역사는 한 ‘인간’에게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걸. 그는 지상을 내려다본다. 악귀와 같은 표정으로 인간이 그를 뒤쫓아 오고 있다.

죽을힘을 다해 날갯짓하지만, 오히려 그 격차는 점차 좁혀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따라잡힐 것이 틀림없었다. 몸을 선회한 그는 입을 벌렸다.

검은색의 구체가 입에 맺힌다. 이내, 장막이 펼쳐지듯 브레스가 그의 앞을 가득 채웠다. 인간은 브레스를 정면으로 얻어맞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았다.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검으로 브레스를 가르며, 나타난 이진서라는 이름의 인간은 마치 악동과 같은 미소로 그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 우리 구면이지?”

“미친, 싸이코 새끼. 젠장, 이 쓸모없는 육체는 버려야겠군.”

그들과의 전투는 꽤나 요란했던 터라, 이 세계의 거주민들 역시 느끼고 그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크레인 제독은 이진서에게 육탄 공격으로 달려들었다.

셰어셀. 군신, 아레스와 언제나 승리를 함께 했다는 마룡. 그런 만큼 마룡의 몸은 단단했다. 특히 그 비늘은 이 우주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아다만티움과 그 강도가 맞먹을 정도.

그런 셰어셀의 몸을 차지한 크레인 제독은 비늘을 한층 더 강화했다. 그의 스킬 중 하나인 ‘숙주 강화’ 스킬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숙주의 힘을 강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비늘이 마치 종잇장처럼 찢어져 내린다. 또다시 그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목이 잘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번으로, 두 번째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숙주의 죽음일 뿐, 본체의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유체 상태가 된 그의 몸은 다른 숙주를 찾기 시작한다. 목표는 그들에게 접근하고 있는 거주민들.

이진서가 눈치챈 듯, 그를 뒤쫓아 왔지만 그는 이미 거주민의 몸에 들어간 상태였다.

<제논족 전사, 바르둠>

‘제논족이라···’

이미 수천 년 전에 멸망한 종족. 그가 활동하기 이전에 일어난 일이라, 크레인 제독은 제논족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금 전까지의 이야기.

제논족 전사, 바르둠에 빙의한 그는 바르둠의 육체와 그가 가지고 있던 지식을 얻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육체야.’

방금 전 셰어셀과 이상의 육체다. 아니, 오히려 그가 보유한 스킬을 활용함에 있어서는 이전까지 그가 사용해왔던 그 어떤 육체보다 나은 육체라 할 수 있었다.

“왜 그래, 바르둠?”

옆에서 물어오는 동료를 보며, 그는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아무 일도.”

그는 제논족까지 적으로 돌릴 생각은 없었다. 적은 이진서 하나로 족하다. 나타난 이진서를 바라보며 제논족들이 신고 있는 신발의 부스터가 일제히 점화된다.

“사냥할 시간이다.”

그들이 날아올랐다. 그중에는 바르둠, 아니 바르둠이 된 크레인 제독도 섞여 있었다. 이진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되면, 내가 악당과 같은 구도로 흘러가는데···

‘뭐, 상관없나.’

그의 목적은 크레인 제독일 뿐이고, 저 제논족들은 방해자일 뿐이었다. 방해자들까지 가만 놔둘 생각은 없었다.

“방해한다면 죽이겠다.”

짧은 경고를 한 그는 크레인 제독을 향해 달려들었다. 선두에 선 제논족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총을 겨눴다. 플라즈마 광선들이 그를 스치듯 지나간다.

물론 보호막에 의해 가로막혔으나, 보호막에 금이 갔다. 이진서도 놀랄 만한 위력이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후열의 제논족들이 발검(拔劍)한다.

수십 자루의 광선 검들이 일제히 그를 노렸다. 이진서는 검을 꺼내, 그들의 광선검을 받아쳤다. 그의 검에 닿을 때마다 어김없이 광선 검이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그 바람에, 틈이 생겼다. 크레인 제독은 들고 있던 검을 그에게 날렸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 검은 그대로 그의 보호막을 꿰뚫고, 그의 어깨에 박혔다.

피를 흩뿌리며 이진서가 뒤로 나가떨어진다. 수백 미터 상공에서 추락한 그는 먼지를 털고 일어난다. 어느새 상처는 사라졌다. 완전히 재생해버린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크레인 제독은 제논족들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제논족의 사냥은 끈질기면서도, 은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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