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크레인 제독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의 눈엔 내가 영락없이 팀킬을 한 거로 보일 것이다. 뭐, 틀린 소리는 아니지만··· 그건 나도 나름의 전략이었단 말이다.
- 참으로 오만하구나. 스스로 패널티를 부여하다니···
내 순수한 의도가 왜곡되자 억울해졌으나, 반박하지는 못했다.
나를 노리는 화살들의 개수가 한층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제 개수는 일천 개를 넘어섰다. 단순히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라, 화살 하나하나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나를 노려온다.
마치 화살 하나하나를 누군가가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검으로 쳐내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나는 하는 수 없이 보호막을 사용했다.
급조한 보호막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마인화를 사용한 상태의 내 마력은 무한이지만, 그렇다고 내 보호막의 내구도까지 무한인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결국 점점 금이 가기 시작하던 보호막은 이내 쨍그랑 소리를 내며 완전히 깨져 버렸다.
화살 다발들이 내 몸을 관통하고 지나간다. 나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돌려 우주선을 바라봤다. 다행인 것은 화살들이 우주선을 관통하지는 못했다는 것 정도.
역시 미리 안전 가옥으로 개조해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더럽게 아프네.’
고통을 느끼는 것은 꽤나 오랜만이다. 여전히 아프다.
“영령 소환.”
[영령 소환(G+)을 사용합니다.]
영령 소환. 스킬 개조로 초월 등급까지 올려보겠다고 깨트린 영령 소환 카드만 열 장이다. 가격으로 따지면 대략 100억. 한마디로 무려 100억이나 쏟고도 초월 등급을 달지 못한 셈.
아무리 내가 슈엔자오로부터 전폭적인 기프트 후원을 받는다지만, 고작 스킬 등급 하나 올리겠다고 100억 기프트를 몽땅 쏟아붓는 것은 지금 내게도 지나친 사치임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투자해서 차라리 초월 등급을 달았다면 몰랐겠지만, 초월 등급이 아닌 고작 ‘반 등급’ 올리는 데 그쳤으니까··· 그러나 몇 번 사용하고 난 이후에는 그러한 생각은 깔끔히 사라졌다.
능력치 락(Lock)이 풀리며 상승한 행운과 G+급의 영령 소환의 시너지 효과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신을 불러낸다.’
아레스와 같은 군신을 불러낸다면 베스트겠지만, 지금 나는 아레스에 빙의한 상태라 그를 불러올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계약을 맺은 신이 하나밖에 없는 건 아니다.
‘지혜의 신, 미미르라든가, 빛의 신, 루라든가···’
곧 소환된 영령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계약된 영령 ‘마도사, 벨루가’를 불러옵니다.]
메시지를 본 내 눈살이 찌푸려졌다.
- 흐하핫, 이렇게 소환되는 건 오랜만이군.
마도사 모자를 뒤집어쓴 백발노인이 허허 웃으며 등장했다.
“아니, 벨루가님이 여길 왜···”
그는 내가 탐탁잖아 하는 걸 읽었는지, 내 눈치를 보더니 슬며시 입을 열었다.
- 아니, 나는 자네가 오랜만에 부르기에, 반갑게 부름에 응답한 것밖에 없는데···
“아니··· 저도 반갑긴 한데···”
반갑다, 반가운데. 애석하게도 지금 이곳은 그가 낄 수 있는 전장이 아니었다. 마도사, 벨루가. 나와 최초로 계약을 맺은 영령. 분명 처음 소환했을 때, 그의 포스는 대단했었다.
물론 대마도사, 옐레나에 비하면 끗발이 밀리긴 했지만, 그는 초월체 수십을 상대하고도 별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었다. 그런데 그건, 딱 거기까지의 이야기다.
이후에 일어난 미칠 듯한 파워 인플레이션(Power Inflation).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크레인이라는 녀석은 초월체 수만 마리‘쯤’은 가볍게 학살할 수 있는 녀석이다.
애석하게도 벨루가는 파워 인플레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그가 조금 자존심이 상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 그래도, 일단 소환되긴 했으니까 상대는 해보겠네.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이라도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시계를 사용해 재사용 대기시간을 초기화한 후에, 다른 영령을 불러내는 게 베스트일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서포트하겠습니다.”
“고맙네.”
그는 가볍게 심호흡을 한 후, 지팡이를 들었다. 곧 그의 지팡이에서 강렬한 화염이 빛나더니, 거대한 불사조가 튀어나왔다. 불의 최상급 정령, 피닉스였다.
“가자.”
그의 말과 함께,
- 키에에엑!
피닉스가 포효하며 비상하는 바로 그 순간, 나는 통찰안을 사용한 후, 중얼거렸다.
“강해져라.”
통찰안의 지배 능력을 사용해, 피닉스를 ‘강화’할 생각이었다. 순간적으로 피닉스의 몸이 강렬하게 빛난다. 그와 동시에, 내 마력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건···’
지배 능력을 시험할 때, 불덩어리는 화려하게 불타오른 후, 그대로 소멸돼 버렸다. 물론 그때의 불덩어리와 피닉스는 차이가 있다.
그때의 불덩어리엔 추가로 마력을 공급하지 않은 반면, 지금 피닉스는 계속 벨루가로부터 마력을 공급받고 있으니까. 아니, 그에게 마력을 공급하고 있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나다.
애초에 벨루가를 소환한 게 나니까. 즉, 마력 탱크가 나라는 소리다. 그리고 나는 마인화를 사용해 마력이 무한인 상태고. 대체 어떤 결과물이 탄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결과물을 지금 나는 두 눈으로 보고 있었다. 불사조의 몸이 변화했다. 더 커지고, 더 화려해졌다. 이글거리던 적색 화염은 백색 화염으로 변했다.
마치 태양의 주위에서 빛나는 코로나(Corona)처럼.
‘이건···’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물. 화살 다발들이 피닉스의 몸에 꽂힌다. 화살 다발들은 피닉스의 몸을 관통했다. 그러나 흩어진 화염은 순식간에 재생돼버린다.
‘상성이 괜찮네.’
애초에 피닉스는 죽더라도 계속 부활한다.
비록 마력 연비가 ‘최악’이라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마력 탱크가 ‘나’라면 그것은 단점이 되지 않는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마인화가 끝나기 전까지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 고작 최상급 정령 주제에···
크레인 제독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활을 당겼다. 마력이 담긴 화살에 피닉스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그러나 피닉스도 당하고만 있진 않고, 불덩어리를 날리는 것으로 반격해냈다.
이번에는 피닉스의 몸이 고속 비행한다. 번쩍, 번쩍. 섬광과 함께 순식간에 전함 사이를 비행하며 날아다닌다. 전함에 백색 화염이 옮겨붙어, 전함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전함은 난리가 났다. 애초에 피닉스에게 데미지를 줄 만한 수단은 주포일 텐데, 고속 비행하는 피닉스를 잘못 맞췄다간 다른 전함들을 팀킬 하게 되는 꼴이 될 테니 말이다.
-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건 한 모양이군.
예상하지 못했던 피닉스의 엄청난 활약에, 나는 벨루가에게 순순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는 씩 웃으며 말했다.
- 노장을 무시하지 말게.
나는 피식 웃으며, 화살 다발들을 바라봤다. 화살 다발들은 여전히 수가 불어나고 있었다. 워낙 숫자가 많고 날아다니다 보니 이제는 마치 벌레 무리처럼 보일 정도다.
‘지원군을 더 불러볼까.’
내 시선이 곧 군신의 뿔피리에 닿는다. 군신의 뿔피리의 효능-
④군신의 뿔피리 : 마룡, 셰어셀을 소환한다. 마룡, 셰어셀의 능력치는 사용자의 마력과 비례한다.
마룡, 셰어셀.
소환해본 적이 없기에,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나는 뿔피리에 입을 댄 후, 힘껏 불었다. 뿌우우우. 우주 공간을 가득 메우는 뿔피리 소리.
그와 함께 내게 날아드는 화살 다발들. 그러나 곧 내게 드리워지는 거대한 그림자에 화살 다발들은 가로막힌다. 뚫지 못하고 우수수 흘러내리는 화살 다발들.
나는 소환된 마룡을 바라본다. 피닉스의 크기와 맞먹을 정도로 거대한 마룡은 그 고고한 자태를 우주 공간에 자랑하고 있었다. 녀석은 이내 몸을 굽힌다. 마치 올라타라는 듯.
녀석의 기대에 부응해, 등에 올라탔다.
“가자.”
녀석이 비행을 시작한다. 크레인 제독은 우리에게 활을 겨눴다. 그러나 나도 이번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검을 들고, 그에게 힘차게 휘둘렀다. 극한의 발도술.
검성, 아자르의 기술. 체력과 마력의 90%를 소모해, 최대 공격력을 내는 기술. 백색의 검기는 그를 향해 뻗어나간다. 그와 동시에 그도 활을 당긴다.
그의 활에서 지금까지 그가 발사했던 화살과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강력한 신성이 담긴 화살이 나를 향해 뻗어진다. 내 머리를 곤두서게 만들 정도의 강력한 신성이었다.
마침내, 검기와 화살이 맞닿았다. 삐-! 순간적으로 귀를 먹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폭음이 울려 퍼진다. 그 여파로 인해, 근처에 있던 전함이 폭발하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충격에도 불구하고, 셰어셀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검을 들어, 크레인 제독을 향해 도약했다. 마침내 그의 눈에 일말의 ‘당황’이 어린다. 극한의 발도술.
군신의 검은, 그의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그는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절단되고 말았다. 검을 들어, 그의 머리에 꽂았다. 머리를 가볍게 관통하며 지나간다.
‘아직 죽지 않았군.’
플레이어 살해 메시지도, 그렇다고 기프트 획득 메시지가 떠오른 것도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 그때, 갑자기 셰어셀이 정신없이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마룡, 셰어셀]
설명 : 플레이어, 이진서의 소환수
상태 : 빙의
지금 녀석에 빙의한 것이 크레인 제독인 모양이다.
‘빙의 스킬이라···’
나조차 눈치채지 못한 걸 보면, 은밀하다. 또한 내 소환수에 빙의했다는 것에서 딱히 제한 역시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괜찮겠지만, 만약 트레이나 그룹원들에 빙의된다면···
‘난감해지지.’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혹여나 그들의 안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때, 때마침 메시지가 떠올랐다.
[동화 시계(G)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끝났습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 상황 판단은 빨랐다. 나는 셰어셀의 몸을 붙잡고, 신력이 담긴 보호막을 사용했다. 말이 보호막이지, 녀석이 이동하지 못하도록 신력으로 붙잡아 놓은 것이다.
그러나, 크레인 제독이라면 그런 보호막쯤은 어렵지 않게 깨트리고,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내가 그를 가둔 것은 ‘변수’를 막기 위해서였다.
“같이 가자.”
셰어셀의- 크레인 제독의 눈에 순간적으로 의문이 깃들었다. 나는 중얼거렸다.
“동화 세계.”
[동화 세계(G)를 사용합니다.]
[해당 플레이어와 함께 동화 세계(G)로 이동합니다.]
우리의 몸이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동화 세계로 전송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