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알버트가 보유하고 있던 90억 상당의 기프트가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90억 기프트. 분명 상당한 양의 기프트지만 그리 감흥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적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거래소를 운영하는 직접 계약자가 고작 이 정도밖에 보유하지 않았을 리가··· 어쩌면 이건 그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기프트는 숨겨 보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그의 재산까지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 욕심낼 이유가 없었다. 그의 시체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그의 시체에 손을 뻗었다.
허공에서 균열이 일렁이더니 그의 시체가 흔적도 없이 빨려 들어간다. 손목의 포탈 시계를 사용해 X-347로 전송해버렸다. 기다리던 시에니가 시체를 확인 후, 보관할 것이다.
‘이제···’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폭탄을 꺼냈다. 인비저빌리티 마법을 사용해, 내 모습이 카메라에 찍히지 않았겠지만, 흔적은 남았을지도 모르기에 깔끔하게 인멸(湮滅)하기 위해서였다.
폭탄을 설치한 후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온다. 127층에 달하는 건물. 90층쯤 내려왔을 때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거래소 빌딩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 무슨 일이야!?”
1층에 도착했을 때는 경찰로 짐작되는 이들이 이미 도착한 상태였다. 물론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쳐 도로를 걸었다. 길을 따라 내가 도착한 곳은 허름한 호텔, ‘로엘라’.
로비에는 노인이 서 있었지만, 나는 그를 무시하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4층으로 올라갔다. 이 호텔은 사전에 시에니가 미리 예약해놓은 호텔이었다.
인비저빌리티 마법을 해제한 나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 시체는 잘 받았습니다. 다음 타겟은···
무미건조한 시에니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다음 타겟은?”
- 라니아, 그녀 역시 알버트와 마찬가지로 거래소의 사장입니다.
곧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한다. 라니아의 얼굴이 담겨있는 영상이었다.
그녀는 미녀였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이제원과 비견될 정도. 물론 개인의 호불호가 있기 때문에, 누가 우위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그 정도로 상당한 미녀라는 소리였다.
- 하지만 그녀를 죽이는 건, 알버트처럼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녀는 누구보다 자신의 안위에 신경 쓰고 있으니까.
“강합니까?”
- 그녀 본인이 상당한 강자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녀보다는 그녀 옆의 보디가드들이 문제입니다. 보디가드, 이름은 각각 청과 홍입니다.
청과 홍. 영상 속의 라니아의 옆에 서 있는 푸른 머리 소녀와, 붉은 머리 소녀를 말하는 모양이다.
겉보기엔 귀엽게 생긴 소녀일 뿐이지만 시에니가 그렇게 말할 정도니, 그녀들은 상당한 강자들이 틀림없었다.
- 때문에 당신이 거래소 안에 직접 들어가 그녀를 죽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 라니아는 곧 우주선을 타고, 그랜드 머천트를 떠납니다. 그때 우주 공간에서 그녀의 우주선을 폭파하십시오.
“고작 그 정도로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내 의문은 타당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라니아도, 그녀의 보디가드들도 상당한 강자들이다. 핵폭탄 수천 개를 때려 박아도 피해를 입힐 수 있을지 모를 괴물들이라는 소리다.
물론 지금의 나는 그런 괴물들이라 하더라도 승리를 보장할 수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승리를 보장할 수 있다는 말이지 그들을 반드시 죽일 수 있다는 말을 뜻하진 않는다.
- 플레이어, 이진서. 당신은 최근, ‘행성 파괴 병기’를 손에 넣지 않았습니까?
“예.”
- 제논 족의 결전 병기라면 우주선을 폭파하고, 그들을 죽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건,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시행된다는 가정하의 일입니다.
어차피 내게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내 대답 역시 정해져 있었다. 나는 순순히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툭, 통신이 끊어진다.
나는 의문이 들었다. 하필이면 그녀가 죽이라는 둘 다, 거래소 사장이라니. 사실은 조작범이 아니라, 조작범 핑계로 그냥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무고한 이를 살해하는, 아니 이미 살해한 셈이었다. 같은 인간은 아니지만, 일말의 양심의 가책은 느껴진다. 어쩌면 내가 마신 술이 독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의 내게 선택지란 그냥 죽느냐, 독주를 받느냐 이 두 가지 선택지뿐이었지만 말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자.’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선택한 길이 황금 동아줄이라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밖에 없었다.
괜스레 담배 하나를 입에 물은 나는 창문을 내다보며 담배를 피운 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우주 공간에서 우주선을 폭파하기 위해선 계획이 필요할 것이다.
***
라니아 거래소. 알버트 거래소보다 규모는 작지만, 대신 수수료가 적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에 이용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거래소였다. 그런 거래소 건물의 최상층.
도시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사장실에서, 라니아는 그 매끈한 다리를 꼰 채 비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트레이 코인 지금 수익률이 얼마라고 했지?”
“1,100%입니다.”
그녀는 100기프트일 때 트레이 코인이 5억 기프트를 투자했다. 그리고 그 5억 기프트는 지금, 무려 60억 기프트로 불어났다. 12배의 투자를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 수익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별로 기뻐하는 기색 없이 입을 열었다.
“전량 매도해버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새끼 사기꾼이야.”
그녀 역시 그랜드 팰리스에 있었고, 트레이의 연설을 들었다. 그때, 그녀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 새끼, 사기꾼이라고.
“알겠습니다.”
비서는 의문을 표하는 대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라니아 거래소에서 그녀의 말은 법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비서가 떠나자 라니아는 등받이 의자에 기대어,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그때, 붉은 머리 소녀, 홍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라니아님, 아무래도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푸른 머리 소녀, 청 역시 직접 말을 하진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거들었다. 라니아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엄청난 폭음과 함께, 알버트가 흔적도 없이 종적을 감췄다고 합니다.”
“알버트가? 그··· 알버트 맞지?”
“예.”
“그 알버트가 죽었다고? 대체 누가?”
그녀는 알버트를 떠올렸다. 그녀의 거래소와 경쟁 업체라 할 수 있는 알버트 거래소의 사장. 아까 그랜드 팰리스에 있을 때, 그녀는 그를 봤었다. 그때만 해도 멀쩡했는데···
‘고작 몇 시간도 안 돼서 죽었다고?’
물론 알버트는 악인(惡人)이다. 거래소의 사장 직위를 이용해 그가 은밀하게 저질러 온 갑질, 비리, 악행들. 그가 죽었으면 하고 바랄 인물은 넘쳐날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 그런 알버트를 죽일 수 ‘있는’ 인물은 몇 되지 않는다.
‘썩어도 준치라고, 직접 계약자인데 ···’
물론 알버트가 제대로 된 전투를 한 지 수백 년은 흘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무시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 그가 반항도 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자작극 아니야?”
그녀는 이 모든 소란이 알버트의 자작극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혹시 모르니 몸을 피하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너도 알잖아. 내일 미팅 있는 거. 그리고··· 너희도 있는데, 설마 무슨 일이 생기겠어?”
“그래도···”
“어차피 당분간 이 행성을 떠나 있을 거니까 괜찮을 거야.”
라니아는 대수롭잖게 말했지만, 홍이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무조건적으로 저희를 따라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저희도 라니아님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청은 이번에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러면 미팅 취소하라고?”
“예, 그 어떤 약속도 라니아님의 목숨보다 우선될 수는 없으니까요.”
“쯧, 알았어.”
라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꽤 중요한 미팅이긴 하지만, 청과 홍이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무시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청과 홍은- 줄여서 청홍은 그녀에게 단순한 보디가드 이상의 존재였으니 말이다.
“뭐, 회의야 화상 회의로 진행해도 되니까···”
“이제 이동하셔야 합니다.”
“나, 벙커로 이동하라고?”
라니아 거래소의 지하에는 벙커가 있다. 만약을 위해 지어놓은 특급 안전 가옥. 설령, 같은 직접 계약자라 하더라도 뚫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뚫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소란이 필연적으로 벌어질 것이고 말이다.
“예.”
뭘 그리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한 홍의 말투에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곧,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청홍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
***
- 계획을 수정하겠습니다. 라니아는 당분간 이 행성을 떠나지 않을 모양입니다.
“그렇습니까?”
괜히 스킬을 초기화하겠다고 들인 기프트만 아까워졌다. 물론 이런 생각하기 무섭게, 500억 기프트가 들어오며 그런 생각은 마치 지우개에 지워진 것처럼 말끔하게 사라졌지만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 사실 지금의 당신이라면 높은 확률로 보디가드들을 뚫고, 그녀를 죽이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당신의 정체가 들통날 확률 역시 높습니다.
그녀의 말을 요약하자면, 더 큰 계획을 망칠 수도 있으니 다음으로 미루자는 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줄었으면,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말이다.
- 이제 그랜드 머천트에서 더 할 일은 없습니다. 트레이와 함께 지구로 귀환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의 통신이 끝난 후, 옷을 갈아입은 나는 바깥으로 나왔다. 지구로 귀환하기까지는 대략 하루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귀환할 때까지, 그랜드 머천트를 더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거리는 어수선했다. 내가 알버트를 살해했기 때문일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 배신자들···! 죽어라!”
소리치며 폭탄을 던지는 견인족. 나는 손을 뻗어 폭탄을 가볍게 쥐는 시늉을 했다. 폭탄은 그대로 폭발했으나, 시내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없었다.
내 마력으로 역 보호막을 사용해버렸기 때문이다. 폭탄을 던진 견인족은 멍청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상황 파악을 했는지 이내 품에서 총을 꺼내 내게 겨눴다.
그러나 그의 방아쇠가 당겨지는 일은 없었다.
‘멈춰.’
내 명령에 의해, 그의 몸은 그대로 정지해버렸으니까. 나는 그를 직접 죽이는 대신, 경찰들에게 넘겨주었다.
“넌 누구지?”
경찰들은 견인족을 체포하면서도, 나에 대한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나는 신분증을 꺼내, 그들에게 건넸다. 진짜 내 신분증은 아니고, ‘크리스’라는 위조된 이름이 담겨있는 신분증이다. 그들의 태도가 극히 공손해진다.
“아, 트레이 상단의 귀빈이셨습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지금 마셜 상단의 개새끼들이 곳곳에서 테러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