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어두운 밀실, 후드를 뒤집어쓴 검은색 견인족이 피를 토해내며 비틀거린다. 그의 곁에 서 있던 견인족들이 황급히 달려들어 그를 부축했다.
“로어님···!”
“괜찮다. 별일 아니니까.”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하기에, 그의 낯빛은 지나치게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되신 겁니까?”
다른 견인족들에 비해 머리 하나 정도는 더 큰 하얀색 견인족이 그에게 물었다. 오랫동안 그를 보좌해온 부관, 셰미르였다.
“분신 하나가 죽었다.”
“어··· 그게 전부입니까?”
“그래.”
로어의 대답을 들은 셰미르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그의 분신이 죽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분신은 본체보다 약하다. 로어의 분신쯤 되면 어지간한 견인족들의 본체보다도 훨씬 강하겠지만 그 전제를 벗어나진 않는다.
그럼에도 그가 당혹스러워 한 이유는 분신이 죽어서가 아닌, 분신이 죽어서 본체인 그가 ‘데미지’를 입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견인족들은 털을 뽑아 분신을 만든다.
뽑은 털 하나가 어찌 된다 한들, 그래봐야 털 하나에 불과하다. 때문에 분신이 죽는다 한들 본체는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러한 상식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셰미르는 속으로 떠오르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설마···’
떠오르는 가능성은 두 가지.
첫째는 로어가 다른 이유가 있음에도 자신에게 그 사실을 숨겼거나- 사실 그럴 가능성은 낮다. 부관인 자신에게 숨길 이유가 없으니까. 여태껏 그랬던 적도 없었고.
그게 아니라면···
‘상식을 초월한 힘에 당했거나.’
상식을 초월한 힘을 사용하는 존재. 바로 흔히 말하는 ‘신’이라 불리는 존재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의 생각을 짐작한 듯, 로어가 입을 열었다.
“그래, 트레이를 보좌하고 있던 존재들 중 ‘신’이 있더군.”
그는, 그의 분신을 죽인 여우 가면의 사내가 한 행성의 신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분신을 깔끔하게 죽이는 걸 넘어, 그 실 같은 링크를 타고 그의 본체에까지 데미지를 입혔으니 말이다.
“신, 말입니까? 어느 행성의 신입니까?”
“아직 어느 행성의 신인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상당한 실력자였다.”
셰미르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의 말대로 정말 신이었다면 지나치게 부담스런 존재다. 하물며 그들이 앞으로 상대해야 할, 트레이 상단에 소속된 존재라면···
“물론 아직 단정 짓기는 이르다. 트레이에게 고용된 존재일지도 모르니까.”
“그렇겠죠. 신이 트레이 같은 사기꾼 놈의 밑에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는 트레이가 영락없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명확한 증거가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본능이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고 그는 자신의 본능을 신뢰했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과 제법 근접해 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로어 역시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
“트레이 코인은 매수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와는 별개로 그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했다. 그의 연설은 성공적이었고, 그의 암살 역시 실패로 돌아간 지금 트레이 상단은 5대 상단에 올라갈 확률이 높다.
한마디로 트레이 코인의 시세가 상승할 확률 역시 상당히 높다는 뜻이었다. 아니, 이미 올라가고 있을 것이었다.
쟁쟁한 상인들이 모인 곳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졌으니, 이미 적잖은 상인들이 매수 버튼을 눌렀을 테니까.
“예, 증권가에 매수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그런 말을 한 것이 조금 뻘쭘했는지, 로어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기프트에는 잘못이 없다··· 다가올 전쟁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많은 양의 기프트가 필요하다.”
셰미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
“정말 괜찮겠지? 그놈이 또 찾아오진 않겠지?”
불안한 눈빛으로 물어오는 트레이.
“괜찮습니다. 제게 당한 이상, 한동안은 섣부르게 움직이지 못할 테니까요. 그리고··· 저들도 있지 않습니까.”
나는 그룹원들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에 따라온 그룹원들은 하나같이 정예들인데다가, 제이드까지 있다. 설령 아까 그런 놈이 또 찾아온다 한들 저들을 뚫는다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안심이 되지 않는 듯한 눈이었다.
“대상인, 트레이가 쫄은 겁니까?”
“아니, 나는···”
마인드 컨트롤을 했는지, 후, 하, 후, 하, 몇 번 심호흡을 하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야, 대상인 트레이는 그런 걸로 쫄지 않아.”
“그럼 됐습니다.”
나는 바깥으로 나오며, 그가 머무는 방 전체를 안전 가옥으로 만들었다. 그냥 안전 가옥이 아닌 특급 안전 가옥이다.
<특급 안전 가옥>
내구 : 20,000,000/20,000,000
넓이 : 95.5㎡
설명 : 안전을 목적으로 설계된 가옥.
기능 : 기척 제거 Lv.75, 오토 쉴드 Lv.75, 매직 쉴드 Lv.75, 오토 리페어 Lv.75
1급 안전 가옥과도 궤를 달리하는 성능을 가졌지만 그 가격은 더럽게 비쌌다. 100억. 1급 안전 가옥의 기본가가 10억이니, 100억인 건 당연하지만···
그러나 나는 망설임 없이 투자했다. 단순히 트레이뿐만 아니라, 이건 그룹원들의 목숨과도 연관이 돼 있는 일이니 말이다. 그리고 100억짜리 안전 가옥이 일회용품인 것도 아니고.
‘그런데···’
문득 생각해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특급 안전 가옥을 뚫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침입자라면, 애당초 그룹원들이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뭐, 아무렴 좋은 게 좋은 거다. 특급 안전 가옥을 뚫을 만한 존재가 많을 리 없으니까. 생각을 마친 나는 바깥으로 나왔다. 이내, 내 시선은 미리 봐뒀던 건물로 향한다.
꽤나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한눈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건물. 이곳 그랜드 머천트에서 가장 거대한 건물이다.
그랜드 팰리스보다도 서너 배 이상은 거대한 건물의 이름은 ‘알버트 거래소’였다. 잠시 건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내 앞에 택시 한 대가 멈춰 섰다.
택시의 외양은 마치 지구의 그것과 같다. 물론 택시가 지상 도로가 아닌, 하늘을 비행하고, 택시 운전사가 인간이 아닌 외계인이라는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말이다.
창문을 내리고, 빼꼼 고개를 내민 택시 운전사가 물어왔다. 그의 피부색은 연보라색이었다.
“탑승하시겠소?”
물론 마음만 먹는다면, 텔레포트를 사용해 알버트 거래소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의 문물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자, 택시의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예.”
“어디로 갈 거요?”
택시 기사의 물음에, 나는 단출하게 대답했다.
“알버트 거래소로 부탁드립니다.”
내 말에 택시 기사는 군말 없이 택시를 출발시킨다. 택시는 빠르진 않았지만, 비행 택시이니만큼 주변을 구경하는 재미는 있었다. 잠시 신호에 걸려 멈췄을 때 택시 기사가 말을 걸었다.
“손님도 트레이 코인을 사러 가시는 거요?”
“예, 뭐.”
“어디까지 오를 거라 생각하시오? 아, 나도 10만 기프트 어치를 매수해서 말이오.”
나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 트레이 코인이라는 게 바로 내 손에 의해 탄생한 것임을. 뭐, 정확히 말하면 시에니의 손이긴 하지만.
내 기프트를 빌려 탄생한 것이니, 그게 그거지. 상념을 이어나가던 나는 대답을 기다리는 그의 얼굴에 입을 열었다.
“당분간은 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1,250기프트 선을 유지하던 트레이 코인은 현재 1,500기프트로 솟구친 상태였다. 이미 100배도 넘게 오른 코인이 20%가 올랐다. 그야말로 광기도, 이런 미친 광기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레이 코인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작은 조정만 몇 번 있었을 뿐이다. 이쯤 되면 슬슬 광신도가 생겨날 구간이기도 하다. 아니, 이미 생겼지.
- 트레이는 신이야! 신!
당장 이곳만 해도 광신도들이 여럿 보인다. 진심으로, 나는 의심했다. 저러다가 트레이도 신성을 가지게 되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다음에 택시를 부를 일이 있거든, 나를 찾아달라고.”
그렇게 씩 웃으며 내게 명함을 건네는 그. 명함에는 전화번호가 적혀져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명함을 받아들었다. 택시가 떠난 후, 나는 몸을 돌려 건물을 바라본다.
<알버트 거래소>
이미 수많은 이들이 거래소로 드나들고 있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대열에 섞여, 증권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증권 회사의 1층은 대기실인 듯 보였다.
대기표를 발권하고, 아마 업무는 위에서 따로 보는 모양. 그러나 자리가 빼곡히 차있는 걸 보면 제법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물론 나는 기다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오늘 나는 이곳에서 코인을 구매하러 온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인비저빌리티.”
내 몸이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춘다.
“텔레포트.”
목적지는 이곳의 최상층.
눈을 떴을 때, 나는 나를 황당하게 바라보는 외계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내, 상황을 눈치챈 듯 그는 다급하게 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검을 던져, 그의 손을 베어냈다.
“뭐, 뭐야!?”
<알버트>
그는 이곳 알버트 거래소의 사장. 그러나 내게 있어 그는 시에니가 꼭 죽여 달라고 부탁했던 조작범 ‘알버트’일 뿐이다.
“누구지? 어째서 나를 노리는 거지? ‘놈들’한테 사주라도 받고 온 건가?”
나는 목소리를 낮게 깔면서, 입을 열었다.
“놈들이라는 게 누구지?”
“아니, 너는 놈들이 아니란 말인가? 그럴 리가··· 그러면 너는 대체 누구···”
그는 횡설수설했으나, 나는 통찰안으로 그의 마음을 읽는 데 성공했다.
‘놈도 마셜 상단과 원한이 있었던 건가.’
그가 말한 ‘놈들’이란 마셜 상단이었다. 여담이지만 마셜 상단은 트레이를 습격했던 그 견인족의 분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렴 별로 중요한 정보는 아니었다. 나는 다시 검을 쥐어, 그를 향해 휘둘렀다. 그때 그의 몸집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를 베던 검이 튕겨져 나간다.
당황하지 않았다. 거래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직접 계약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숨겨둔 한 수 정도가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딱 잘 쳐줘 봐야 그린돈 정도였다.
가진 스킬들이 대부분 투자에 관련된 스킬들이라 오히려 그린돈보다 약할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린돈을 상대할 때의 나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기프트를 투자해, 무려 130이나 되는 능력치를 올렸으니 말이다. 어느 능력치 하나만 올라간 것도 아니고, 모든 능력치가 130. 능력치로 따지면 780이 올라갔다.
애초에 승부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게임이었다. 그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최대한 전투를 피하려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전투를 회피하는 것만으로 내 공격을 피해낼 순 없다. 그도 예정된 결말을 모르지 않는지, 내게 조건을 제시해왔다.
“워, 원하는 게 뭐지?”
“원하는 게 있으면, 왜, 주기라도 할 건가?”
“막대한 양의 기프트를···”
“미안한데, 네가 그쪽보다 많이 줄 수 있다곤 생각 안 해서.”
그 역시 거래소의 사장이니만큼 많은 양의 기프트를 운용하겠지만, 아무렴 슈엔자오보다 기프트가 많을 리는 없었다. 내 검은 가볍게 그의 가슴을 관통했다.
[9,156,016,728 기프트를 획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