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그랜드 머천트(Grand Machant).
모든 우주 상인들이 방문하길 꿈꾼다는 상인들의 행성. 그건 트레이 역시 마찬가지. 꿈에 그랜드 머천트가 출현한 적 있을 정도로, 그는 그랜드 머천트에 방문하기를 간절히 열망해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번도 그랜드 머천트에 방문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는 표현이 옳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랜드 머천트는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행성이 아니다. 오로지 상인 연합 소속이나, 연합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상인들만 방문할 수 있다.
한마디로 암상인인 그는 수명이 다할 때까지 영원히 그랜드 머천트에 방문할 수 없는 것이다. 트레이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진즉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 그랜드 머천트를···
‘이런 식으로 방문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그냥 방문도 아니다. 정거장 아래 무수히 늘어져 있는 행렬. 사전에 들은 바에 의하면, 그냥 행렬이 아니라 전부 다 자신을 환영하기 위한 행렬이라고 했다. 환영이라니···
자신과는 거리가 먼 단어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중얼거린 그는 픽,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그의 옆 좌석에 앉아 있는 ‘여우 가면’의 사내가 그에게 물어왔다.
“긴장됩니까, 트레이?”
“아니, 긴장은 무슨··· 나는 대상인, 트레이가 아닌가.”
그것은 농담임과 동시에, 자기 최면이기도 했다.
“너무 긴장할 거 없습니다. 제가 든든하게 보좌할 테니까요.”
“말이라도 고맙네, 친구.”
곧, 정거장에 도착한 우주선의 문이 열린다. 그는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만지고는, 자리에서 힘차게 일어났다. 그런 그의 뒤를 사내- 이진서와 그를 따라온 그룹원들이 따르기 시작했다.
“트레이! 트레이!”
바깥에서 그를 연호하는 함성에 트레이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손을 들어 그들에게 흔들어주었다. 창문 너머로 그의 모습을 본 이들의 함성이 한층 더 커진다.
길을 따라 정거장 내부로 이동한 그들은 팔다리가 촉수인 외계인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연합 의장, 므르므르입니다. 트레이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므르므르.”
트레이는 여유롭게 인사를 건넸지만, 속으로 놀랬다.
‘의장?’
므르므르는 그가 소개한 것처럼 의장이다. 상인 연합에서 가장 높은 존재라는 뜻이다. 분명한 호재였다. 자신이 그 정도로 상인 연합에서 중요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의미였으므로.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꼼지락거리는 세 번째 촉수를 부여잡았다. 다소 무례해 보이는 행위에 지켜보던 사이들의 표정이 굳었지만, 오히려 므르므르는 해맑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 저희 종족의 인사법을 아는 사람은 드문데··· 과연 소문처럼 해박하시군요.”
‘미리 공부해두길 잘했어.’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겉치레로 그의 행위를 포장했다.
“의장님 아니십니까. 서로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이것 참··· 부담스러우면서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군요. 이동하시죠.”
이내 그들은 함께 정거장 내부를 걷기 시작했다. 듣기로는 정거장 내부에 있는 궤도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바로 그랜드 팰리스로 향할 거라고 했었지. 여기까진 계획대로다.
‘아직까지 실수한 건 없겠지.’
그때,
“트레이!”
트레이 코인의 광풍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또다시 바깥에서 그의 이름이 연호되기 시작한다.
“트레이 일만 기프트 가즈아~~!”
‘가즈아.’
화들짝 놀라긴 했지만, 그에겐 듣기 좋은 음성이었다. 트레이 코인이 일만 기프트를 가게 된다면, 그는 엄청난 떼부자가 될 테니 말이다.
“가시죠.”
그랜드 팰리스 내부의 의자는 이미 빼곡하게 가득 차 있었다. 의자에 앉은 이들은 전부 다 상인들. 그중에는 트레이가 아는 얼굴들도 여럿 보였다. 물론 그들은 그를 알지 못하겠지만.
트레이는 므르므르와 함께 그랜드 단상으로 올라왔다.
온갖 감정들이 담긴 수많은 시선이 느껴진다. 호의, 호기심이 담긴 시선이 다수지만, 그중에는 몇몇 적개 어린 시선들도 보인다.
‘트레이 코인 때문에 기프트를 잃기라도 했나?’
긴장되지 않는다면 거짓말. 그러나 그는 동시에 흥분되는 걸 느꼈다.
‘여기까지 온 이상, 후회 없이 해보자.’
그는 탁, 테이블을 내리치고는 좌중을 훑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반갑소, 나는 대상인, 트레이요.”
***
“우리 트레이 상단은 곧 이계의 행성과 500억 기프트짜리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오.”
“오, 오백억 기프트?”
좌중이 소란스러워진다. 내로라하는 상인들이라고 들었는데, 오백억 기프트라는 액수는 그들을 충격받게 만들기에 충분했던 모양이다. 그때, 푸른색 피부의 여성이 손을 들었다.
“혹시 트레이 코인의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해, 저희에게 거짓말을 하시는 건 아닙니까?”
그녀는 정곡을 찔렀지만- 트레이는 오히려 여유롭게 대답한다. 나조차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천연덕스러운 말투와 행동이었다.
“거짓말? 그 대금을 모두 다 트레이로 받을 건데?”
참고로 저건 거짓말이 아니다. 다만 그 대금을 지불하는 게 이계의 행성이 아니라 내가 될 거라는 것뿐이지. 곧 500억 기프트로 트레이 코인을 긁을 예정이다. 시장가로.
그렇게 된다면 이들은 알게 될 것이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또 한 번 트레이 코인의 시세가 요동칠 것이다.
“세상에···”
설마 저런 대답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 여성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다시 손을 들며 표독스럽게 소리쳤다.
“500억이 누구 애 이름도 아니고 그게 사실일 리가 없잖아요!”
나는 슬쩍 통찰안을 사용해, 그녀의 정보를 훑는다.
‘역시···’
그녀는 ‘조작범’ 일당 중 하나였다.
“됐고,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지껄이시오. 그게 끝이 아니오. 우리 트레이 상단은···”
여자의 몸이 부르르 떨렸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리 연습했던 대로 ‘호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의 말이 끝났을 때 좌중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그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거나, 무한 의심을 보내거나. 그러나 나는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었다. 그의 말은 허황된 것처럼 들리지만, 전부 사실이었으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실이 될 테니까.
“곧 다들 알게 될 거요.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그리고 만약 사실이라는 게 밝혀진다면, 그때 나는 말하고 싶소. 이런 트레이 상단이 5대 상단에 들어가는 걸 감히 누가 반대한단 말이오?”
짝짝.
누군가에서 시작된 박수 소리는 순식간에 우레와 같이 커진다.
‘잘하네···’
전에 함께 연습할 때도 느꼈던 건데, 그의 말은 좌중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트레이를 쳐다보며, 나 역시 박수를 쳤다.
그때였다.
“트레이-!”
망토를 뒤집어쓴 괴한이 소리치며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시간 가속.’
[시간 가속(G)을 사용합니다.]
시간 가속을 사용한 나는 트레이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검을 꺼내 괴한을 향해 휘둘렀다. 검을 피하지 못한 괴한의 몸이 그대로 둘로 베어진다. 트레이가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표정 관리하십시오.”
나는 낮게 중얼거리듯 그에게 충고했다.
고작 이런 일에 나는 그의 이미지가 깨지길 바라지는 않는다. 사실 이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때문에 그의 호위를 자처했던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사이 잘려 나간 괴한의 몸이 껑충껑충 뛰기 시작했다. 상체와 하체가 따로 뛰어다니니 그로테스크하다. 그랜드 팰리스 내부는 대혼란에 빠졌다. 상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빠져나간다.
“므르므르님, 이게 상인 연합의 의지라고 받아들여도 됩니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형적인 외계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므르므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럴 리가요, 트레이님. 이건 저희도 예측하지 못한 일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나는 괴한의 몸을 향해 검을 던졌다. 괴한의 몸에 정확히 검이 박힌다. 그 충격파로 인해 의자 여러 개가 마치 바람에 날아가듯 날아가 버렸다.
“죄송하다면 다입니까? 저는 이곳에 귀빈으로 온 줄 알았습니다.”
“···다 이해합니다. 상응하는 보상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누가 그랬는지는 알 것 같습니다.”
나는 괴한의 상체를 향해 다가갔다. 후드가 벗겨진다.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나였다.
‘도플갱어인가?’
아니, 변이체는 아닌 것 같으니 어쩌면 지금 나는 도플갱어의 원형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잘생긴 얼굴 말고, 원래의 흉측한 모습으로 되돌아오지 그래.”
나는 그에게 충고하듯 말했고, 그는 내 ‘충고’를 거부하지 못했다. 사실은 충고가 아니라, 통찰안의 지배 능력을 사용한 ‘명령’이었거든. 그렇게 되돌아온 원래 얼굴은 개였다.
반인반수, 견인(犬人).
[검은 사냥개, 로어의 분열된 분신]
‘검은 사냥개, 로어?’
“역시나··· 그쪽이군.”
내 말을 들은 므르므르는 짐작되는 것이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검을 들고 분신의 심장에 쑤욱 박아 넣었다. 분신은 아등바등거렸지만, 소멸되고 말았다.
바닥에 남은 건 후드 조각과, 검은 잿더미뿐.
“그쪽도 보통 분은 아닌 모양입니다. 아무리 분신이라고는 하지만, 검은 사냥개, 로어의 분신은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데 말입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서 입을 여는 건, 트레이 하나로 족하다. 그랜드 팰리스 안쪽에 위치한 ‘상인 왕의 대전’에서 우리는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검은 사냥개, 로어는 머셜 상단주의 친위대입니다.”
트레이는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하지만 머셜 상단주는···”
“죽었죠. 하지만 녀석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머셜 상단주의 뒤를 이어 머셜 상단을 계승할 것이고, 따라서 머셜 상단이 5대 상단에서 탈퇴되는 일 같은 건 없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요컨대, 주인의 자리를 욕심내는 개새끼인가.’
말하는 내용만 듣고 평가하면, 충견은 아닌 것 같고, 야망 있는 개새끼, 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것 같다.
“곧 이 그랜드 머천트 내에서 머셜 상단의 잔존 세력들을 쫓아낼 것입니다. 그동안은 일말의 동정으로 내버려 뒀지만, 녀석들의 수장이 이러한 일을 꾸몄는데, 더 이상 내버려 둘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렇다는 이야기는···”
“5대 상단주가 되신 걸 경축드립니다, 트레이님.”
“제가 아까 말한 내용의 사실을 확인하지 않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믿습니다. 그리고··· 5대 상단은 오르기보다, 유지하는 게 더 힘드니까요.”
트레이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므르므르의 말을 통해 기실, 그가 향한 목적은 모두 다 달성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조작범들을 잡는 건가.’
트레이의 할 일은 이걸로 끝이다. 그러나 내 할 일은 아직 남아 있었다. 거래소의 시세를 조작해, 이득을 꾀하는 조작범- 작전 세력을 살해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