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이진서는 슈엔자오의 전적인 후원 끝에 ‘폭발적으로’ 강해졌다. 그러나 강해진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장 큰 혜택을 본 건 역시 지금까지 그와 함께해온 간부들.
이진서는 간부들에게 기프트를 아낌없이 풀었다. 물론 아낌없이 풀었다는 건 어디까지 간부들의 관점에서 그랬다는 것이고, 지금 그의 관점에서 보면 작은 ‘편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편린만으로도, 간부들이 강해지기엔 충분했다. 전설 등급 스킬이 아닌, 신화 등급 스킬로 도배를 한 그들은 반년 전 이진서와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성장이란 어디까지 스킬과 능력치와 같은 외적인 능력의 성장만을 의미하는 것일 뿐, 경험 등과 같은 내적인 능력의 성장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장족의 발전’이라는 것엔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간부들만 강해진 것은 아니었다. 일반 그룹원들 역시 이진서가 폐기 처분한 전설 등급 스킬들로 도배를 할 수 있었고, 능력치를 최대치(60)까지 강화할 수 있었다.
그들 역시, 앞선 ‘괴물’들에 가려져 빛나지 못했을 뿐, 예전 기준으로 따지면 충분한 괴물들이었다.
“이 상태로 과거로 되돌아가면 나도 형님처럼 먼치킨 쌉가능인데.”
동년배 강태윤의 말에 정민혁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왜, 돌아가고 싶어?”
“아니,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농담이잖아, 농담. 그런데 살짝 두렵다.”
“뭐가?”
“갑작스런 변화가. 원래 사람이 갑작스럽게 변하면 죽는다던데.”
“이 새끼는 말을 해도, 쯧. 좋은 게 좋은 거다.”
대수롭잖게 대꾸했지만, 정민혁도 내심 고민하고 있었다. 이 급격한 변화가 과연 긍정적인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사실 그뿐만 아니라, 쉘터 전체의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말로 빗대자면 붕 떠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바로 그 급격한 변화 때문이라는 것은 두말해봐야 입 아픈 사실이었다. 의문을 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그는 즉시, 이진서를 찾았다.
“형님···!”
이진서는 시나트리온과 대련 중이었다. 두 괴물들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맹렬하게 검과 검을 부딪치고 있었다. 정민혁은 멍하니 그들의 대련을 바라봤다.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강해진 그였기에, 오히려 더 잘 알 수 있었다. 지금 둘이 벌이는 전투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말이다.
사실 검과 검이 부딪친다고 표현했지만, 그의 눈으로는 간신히 잔상만을 좇아가는 게 전부고, 그마저도 번번이 놓치기 일쑤다. 그러나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있었다.
‘형님이··· 밀리지 않는다.’
정민혁은 진심으로 놀라고 말았다. 사실 그가 저 둘의 대련을 관람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횟수로 따지면 다섯 번째. 그때마다 대련의 승자는 시나트리온이었다.
처음에는 형님이 패배했다는 사실에 분개해 하긴 했지만 금세 관뒀다. 그가 분개하기에는, 그와 시나트리온은 사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으므로.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이진서와 시나트리온은 백중지세(伯仲之勢)로 팽팽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어느 한쪽이 우위에 서 있다 말하기 힘들 정도였다.
‘지금껏 형님이 힘을 숨기셨던 건가? 아니.’
이내, 정민혁은 생각을 부정한다. 힘을 숨겼던 게 아니라, 이진서가 강해진 거다. 급격하게.
그 시나트리온과 비견될 정도로··· 그는 이진서의 성장에 기뻤지만, 동시에 불안해졌다. 하기야, 다들 바뀌었다 하지만 그룹에서 그 이상으로 바뀐 존재는 없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그들의 대련도 끝이 났다. 승자는 시나트리온이었다.
“후, 역시 안 되겠습니다. 여기까지 하시죠.”
“많이 늘었군.”
진심 어린 시나트리온의 칭찬에, 이진서는 멋쩍게 웃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능력치가 비슷해졌다고 해도, 결국 거기에 적응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물론 그 눈이 있어서, 적응이 한층 더 빠르긴 했겠지만 말이다.”
“그렇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시나트리온이 입을 열었다.
“손님이 있는 모양이군.”
“어, 민혁아.”
그제야, 이진서는 정민혁 쪽을 돌아봤다. 정민혁은 얼른 그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형님, 역시 대단하셨습니다. 형님의 엄청난 무용은 제가 기록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시끄럽고, 무슨 일이야.”
“···그게 말입니다.”
정민혁은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이 변화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그런 변화를 자아낸 그의 형님을 의심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잠시 잊고 있었다. 이진서가 가진 눈의 효능에 대해서.
“하기야, 내가 너무 설명이 없긴 했지.”
“아, 형님.”
그제야 생각을 읽혔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들어와라, 형이 설명해줄 테니까.”
“예.”
정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
나는 정민혁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상세하게 털어놨다.
“아, 그러면 저희는 그 거래소 사장이라는 존재와 협약을 맺게 된 겁니까?”
“그래, 뭐 협약이라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그렇게 됐다.”
슈엔자오와의 관계는 상호적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이다. 애초에 내가 그의 제의를 거절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따라서 협약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걸 대신할,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했기에 대충 얼버무렸다.
“···그건 그렇죠.”
정민혁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혹시 그 거래소 사장이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건···”
나는 슈엔자오가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안다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뭐,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그래도 상관없어. 발라르를 막아주겠다고 했으니까.”
“발라르를, 말입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민혁의 눈이 커진다.
“물론 그걸 명목으로 내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긴 하겠지만··· 우리에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아···”
발라르를 막아주는 것뿐만 아니라, 기프트 지원을 사실상 무제한으로 해준다. 기프트 지원으로 인해 수혜를 받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시에니는 내게 눈치를 주긴 했지만, 내가 기프트를 어디다 사용하던 그리 신경 쓰지는 않았다. 알게 모르게 혜택은 그룹원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네 생각처럼··· 그룹원들에겐 갑작스런 변화가 뒤숭숭하겠지.”
“예. 아무래도 그룹원들은 형님처럼 자세한 내막에 대해 알지는 못하니까요.”
“더 큰 혼란으로 번지지 않게, 네가 좀 도와줘라.”
“저 혼자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눈을 끔뻑거리는 그에게, 나는 마음에 담아뒀던 생각을 꺼냈다.
“아니면··· 정 관리하기 힘들다면, 그룹을 해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
“······!”
그의 눈이 커진다.
“형님, 진심이십니까?”
“그래, 진심이다. 사실 우리가, 아니 내가 그룹을 만들었던 이유는 변이체 때문이 아니었냐.”
그 당시, 나는 내게 힘이 있으면서도 사람이 죽는 걸 가만 두고 볼 수 없다는 지극히 도의적인 이유로 그룹을 만들었다. 그게 지금의 거대한 그룹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었고.
“그런데, 이 지구엔 더 이상 적이 없어. 이제는 변이체도, 발라르도 사라졌지.”
사실 그것으로, 그룹의 존재 목적은 사라진 셈이었다. 나는 어떻게 보면, 분위기가 뒤숭숭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변이체와 발라르가 없는 지금, 이곳은 그냥 ‘지구’였으니까.
아포칼립스가 터지기 이전의 일상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나는 이미 임기가 끝났음에도, 계속 집권을 이어나가려 하는 독재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건 그렇죠. 의원님과 영감님도 그렇게 말씀하시기도 했고···”
“뭐라고 하셨는데?”
“그분들도 그룹을 해체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뭐 그런 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나는 그 선택을 민혁이, 네게 맡길 생각이다. 애초에 나는 무늬만 리더였고. 그룹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이끌어갔던 리더는 너 아니었냐.”
그 선택권은 정민혁에게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아닙니다, 형님.”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는 그에게, 나는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뭐, 네가 어떤 선택을 내리던 나는 너를 전폭적으로 도울 생각이다.”
“혹시 형님, 다른 간부들에게도 이런 말을 하신 건···”
“아냐, 이 생각을 말한 건 네가 처음이다.”
잠시 감동받은 표정을 짓던 정민혁은 이내, 푹 한숨을 쉬었다.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시련은 무슨··· 너 편한 대로 해. 됐다, 심각한 이야기는 관두고 올라가서 담배나 피우자.”
“예, 형님.”
담배를 피우기 위해, 나는 그와 함께 옥상으로 올라왔다. 입에 담배를 물고, 지상을 내려다본다. 하늘 요새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도시 구석구석마다 ‘추억’이 깃들어 있었다.
그룹을 해체하면, 이 풍경도 예전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을 굳이 꺼내진 않고, 대신 너스레를 떨며 입을 열었다.
“아, 좋다.”
정민혁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다.
“좋네요.”
***
우주 공간. 반파된 우주선 한 기가 우주 공간을 표류하듯 흘러간다. 그렇게 한참을 표류하던 우주선은 행성의 인력(引力)에 의해, 행성 내부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우주선은 그대로 행성 표면에 불시착했다. 행성의 표면은 온통 바다였다. 그러나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원시 바다는 아니었다. 수면 아래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경계하듯 한참 동안 주위를 빙글빙글 돌던 그림자의 주인이 마침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정체는 바로 거대한 해룡.
해룡은 그 머리로 우주선을 들이받아 보기도 하고, 우주선을 물에 담가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자, 곧 관심을 잃었다. 그때였다.
우주선의 문이 부서지듯 열린 것은.
- 키이익?
우주선 안에서 처음 보는 생명체가 걸어 나온다. 해룡은 의아해했지만, 이내 입을 벌렸다. 자신보다 작다. 이 행성에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저 생명체는 자신의 먹이다.
해룡은 단숨에 사내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 날카로운 이빨로 잘게 다져서··· 그러나 이빨에 아무런 감촉도 느껴지자, 해룡은 의아한 몸짓을 했다.
모습을 감춘 먹이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해룡은 이내, 번개라도 맞은 듯 몸을 떨기 시작했다.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먹었구나.”
해룡의 열린 입 안에서 사내가 걸어 나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해룡은 더 이상 그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해룡의 거대한 몸이 검은 반점으로 뒤덮이기 시작한다.
물고기처럼 경망스럽게 푸드덕거리던 해룡이 별안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사납게 포효했다.
- 크어어!
해룡의 두 눈은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내- 발라르는 무미건조하게 중얼거렸다.
“슈엔자오, 네놈이 명을 재촉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