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달을 구매한 후, 나는 달을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테라포밍했다. 내가 달에 구현한 ‘기록된 세계’는 다름 아닌, 테라, 라그나로크와 더불어 가장 기억에 남았던 동화 세계였다.
테라인들은 나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그들은 나를 처음 본다는 듯한 눈치였다. 하기야, 당연하다. 동화 세계는 끝났고, 그들의 기억 역시 초기화된 상태니까.
뭐, 나도 그편이 낫다. 우리에 대한 그들의 기억이 나빴으면 나빴지, 좋은 것일 리는 없었으니 말이다. 생각하던 나는 슬그머니 정민혁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부 파악하고, 지금 저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확실하게 인지시켜.”
“그대로 말입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필요하면 구라도 섞어야겠지.”
이 상황에서 내막을 자세하게 설명해봐야, 가뜩이나 복잡한 상황만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적당한 거짓말을 가미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한 마디 더 덧붙였다.
“민혁아, 나는 저들을 플레이어로 만들 생각이다.”
X-347의 거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테라인들과 ‘기프트 계약’을 맺어 모두 플레이어로 만들 생각이었다. 이건 나를 위함도 있지만, 동시에 테라인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비록 테라포밍을 하긴 했지만, 애초부터 달에 인간이 살아가기에 필요한 자원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정상적으로 문명을 재건하고 유지하기 위해선, 제법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다.
수백 년이 걸릴지, 수천 년이 걸릴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기프트가 있다면, 그 문제를 가볍게 해결할 수 있다.
‘뭐, 기프트도 엄연히 말하면 한정된 자원이긴 하지만.’
<달(E-761)>
- 현재 등급/잠재력 : F/F
- 소유주 : 이진서
- 기프트 매장량 : 없음
- 기프트 채굴량 : 매장된 기프트가 없기에, 채굴이 불가능합니다.
달엔 내장된 기프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자력으로 기프트를 벌어들일 방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즉, 그들이 전적으로 내게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어차피 상관없다. 지금 내게는 흘러넘치는 것이 기프트니까.
“예, 알겠습니다.”
짧게 말한 정민혁은 가볍게 심호흡을 한 후, 앞으로 걸어 나간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테란 자치령의··· 아니, 지구 연합의 정민혁이라고 합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였으나, 테라인들은 그를 그리 환영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들은 총을 들어 그에게 겨눴다. 정민혁은 힐끔 나를 돌아봤다. 그리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무래도 말로 하면 안 들을 것 같으니, 무력 시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르르,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주선에서 내린 그룹원들이 테라인들에게 몰려들었다.
테라인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방아쇠를 당겼지만 그 방아쇠에서 발사된 탄환들은 대부분 빗나가거나, 그룹원들이 걸친 갑주에 맞아 튕겨 나갔다.
그룹원들은 어렵지 않게 테라인들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테라인들의 신체 능력은 평범한 지구인의 그것보다 월등하지만, 지금 우리 그룹원들은 그 월등한 수준조차 초월했거든.
붙잡힌 그들은 아마 학교로 쓰이던 듯한 건물 안으로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정민혁이 그 뒤를 따랐다. 이제 곧 그들에게 정민혁의 ‘설교’가 시작될 것이다.
굳이 설교까지 지켜볼 생각은 없었던 나는 몸을 돌려, 우주선에 탑승했다. 우주선에서 나를 기다리던 시에니가 뚱한 눈으로 물어왔다.
“이건 발라르를 도발하기 위한 계획입니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시에니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뭐,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저 테라인들 중에는 한때 그가 사랑했던 티나라는 이름의 연인도 있을 테니 말이다.
내가 발라르라면 아마 길길이 날뛰지 않았을까? 뭐,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에 불과하고, 실제로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겠다.
“뭐, 의도한 건 아니었습니다만···”
“아직 당신은 발라르를 상대하기에 부족합니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라고 덧붙인다.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습니다.”
강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발라르를 상대하기엔 부족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내가 잘 느끼고 있었으므로.
그녀는 그 이상으로 물어오지는 않았다. ‘달’을 테라포밍하기 위해 사용한 비용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 지금 그녀가 굴리는 기프트 액수를 생각하면 당연한 거 같긴 하다.
“곧, 트레이 코인을 매도할 계획입니다. 그때는 허투루 쓰지 마십시오.”
아, 신경을 안 썼던 건 아닌가···
나는 죄인이 된 듯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트레이. 트레이 코인이 하이낸스에 상장되기 전까지 이 생소한 세 글자 코인에 대해 알고 있는 이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장된 지 보름. 이제 하이낸스를 이용해 거래를 하는 직접 계약자 중 트레이 코인에 대해 모르는 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상장한지 고작 하루만에 50배가 뛰었다. 사실 이건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상장 직후 50배가 펌핑됐던 코인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대부분 그 이후 고꾸라졌던 코인들과 달리, 트레이 코인은 고꾸라지지 않았다. 아니, 고꾸라지기는커녕 오히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상승하기 시작했다.
보름 만에 트레이 코인은 마의 1000원을 넘겼다. 상장 시작가가 10원이었으니, 무려 100배의 상승이었다.
트레이 코인을 ‘익절’했거나, 트레이 코인을 샀다가 ‘손절’한 이들은 땅을 치고 후회했으며, 홀딩한 이들은 ‘가즈아’를 외쳤다. 한편 몇몇 이들은 궁금해 했다.
- 대체 트레이 코인이 오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의 의문은 곧 하나로 귀결됐다.
- 이 모든 광풍을 만들어낸 트레이란 인물은 대체 누구인가.
그중 몇몇은 컴퍼니에 문의를 하기도 했지만, ‘거래소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라는 대답만 돌아왔을 뿐이다.
- 트레이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라면, 우리도 트레이와 거래를 하고 싶은데.
그렇게 전 우주의 이목이 트레이라는 세 글자에 몰려들 시점, 트레이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세상으로 나갈 준비였다.
***
“지, 진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예, 잘하실 수 있습니다. 긴장하실 거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가 함께하지 않습니까?”
나 역시 그와 동승하기로 했다. 지구에서 직접 계약자를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이라 해봐야 단 둘뿐인데, 시나트리온을 보내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내가 가는 편이 나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다른 직접 계약자들 구경도 할 겸.
“하지만···”
그는 얼버무렸다. 하기야, 그가 긴장되는 것도 이해는 된다. 앞으로 그가 만나야 할 존재들은 이전의 그였더라면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대단한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할 수 있습니다. 트레이는 제 앞에서도 당당하게 이야기하시지 않습니까.”
농담조로 건넸지만, 반쯤은 진담이었다. 지금 나는 어지간한 직접 계약자 중에서 상위권 안에 든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가 만날 이들이나, 나나, 사실 별 차이는 없을 것이다.
“아니, 그건 자네가··· 후, 말을 말지.”
무언가 불만 어린 표정을 짓던 그는 이내 연습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최근 화제가 된 트레이 상단의 트레이입니다. 먼저, 본론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 트레이는 최근 머셜 상단주의 죽음에 심심한 유감을 표합니다.”
짧게 말을 끊은 그는 목을 가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나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이미 머셜 상단주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머셜 상단이 아직 5대 상단의 이름에서 빠지지 않았는지를 말입니다.”
머릿속에 그려진다.
굴러 들어온 돌을 좋아하지 않는 건 곧 그가 가게 될 상인 연합의 회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른 상인들은 틀림없이 반박하고 나설 것이다. 네가 뭔데? 네가 뭐 하는 놈인데.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나는 그 머셜 상단의 자리를 우리 트레이 상단이 대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반드시 차지해야만 합니다.”
“오, 이번엔 꽤 그럴듯했습니다.”
나는 감탄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논리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말에 설득력이라는 게 깃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닌,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쩌면 이게 그의 본모습일지도 모르지.’
환경이라는 게 사람의 본모습을 드러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한편으로 나는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나도 플레이어가 되기 이전엔 지극히 평범한 딸배였으니 말이다.
“그림을 대충 그려봤네. 그런데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방금 전까지 재수 없던 상단장의 모습에서 원래의 트레이로 되돌아온 그는 후하, 후하 숨을 내쉬었다.
“예, 오히려 화제성이 클수록 좋다고 했습니다.”
“나 혼자서 연습해볼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섰다.
[보유 기프트 : 48,675,685,901]
‘신기하네.’
100억이 있다가 사라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번엔 480억이 생겼다. 그러나 나도 이런 큰 금액에 적응됐기 때문일까, 전처럼 그리 큰 감흥은 일지 않았다.
‘400억으로 스펙업을 한다.’
어차피 이번 상인 연합에서 트레이의 보디가드 노릇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슈엔자오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확실한 ‘스펙업’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아직 비어있는 스킬 슬롯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거야 대충 신화 등급 스킬로 채우면 되는 일이고···
‘능력치를 올려볼까.’
◈능력치
[근력 452.000] [민첩 415.500]
[체력 441.500] [지력 387.000]
[마력 507.000] [행운 337.000]
[신력 87.000]
지난번과 바뀐 점이라고 한다면 도핑 상태가 아니기에, 능력치는 오히려 그린돈과 싸울 때보다 줄어들었다는 것, 또 새로운 능력치인 신력이 생겼다는 것 정도를 들 수 있겠다.
‘일단 모든 기본 능력치를 100까지만 올려줘.’
[725,034,240기프트를 지불해, 모든 능력치가 40 상승했습니다.]
◈능력치
[근력 492.000] [민첩 455.500]
[체력 481.500] [지력 427.000]
[마력 547.000] [행운 377.000]
[신력 87.000]
“신력을 올리기 위해선 따로 지불해야 하나?”
[신력은 기프트로 올릴 수 없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 말은 신력을 올리는 방법이 ‘포교’뿐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아쉬워 해봐야,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딱 10만 더 올려줘.”
[모든 기본 능력치를 110까지 올려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응.”
[3,627,970,560 기프트를 지불해,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했습니다.]
‘역시 여기부터는 천문학적으로 깨지네.’
◈능력치
[근력 502.000] [민첩 465.500]
[체력 491.500] [지력 437.000]
[마력 557.000] [행운 387.000]
[신력 87.000]
10 올라갈 때마다 필요 요구치가 여섯 배씩 상승하니, 모든 기본 능력치를 120까지 올리기 위해선 36억 기프트의 여섯 배인 216억 기프트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400억도 얼마 안 되네.’
내가 들고 있는 400억 기프트가 오히려 적어 보이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차라리 이 돈으로 그룹원들을 강화하는 게···’
그 편이 훨씬 더 효율이 좋을 것 같은데··· 슬슬 고민할 찰나, 보유 기프트량이 갑자기 늘어났다.
[보유 기프트 : 178,575,364,763]
‘1,700억?’
반올림하면 1800억이다.
시스템 메시지가 이어졌다.
[플레이어, 이진서는 기프트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이낸스의 하루 평균 거래량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얼만데?’
[1조 기프트를 훌쩍 넘깁니다. 물론 이건 컴퍼니의 전적인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나는 ‘돈 걱정’은 관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