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무작위 전설 등급 스킬 카드로, 신화 등급 스킬 카드를 뽑을 확률은 0.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분명 1%도 안 되는 극악의 확률이지만, 내가 구매한 무작위 전설 등급 스킬 카드의 숫자는 무려 일만 장.
그런 무작위 전설 등급 스킬 카드들을 개봉하여 얻은 카드들은 확률대로 정확히 오십 장이었다. 무지갯빛으로 환하게 빛나는 오십 장의 카드들을 보며 난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지?’
내가 필요한 스킬 카드는 단 여섯 장. 오십 장 중에 여섯 장을 선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버릴 카드 여섯 장을 선별하는 것이라면 또 모를까···
“그런데 오빠, 괜찮아요? 기프트 많이 쓰셨을 텐데?”
진혜연은 걱정 어린 눈초리였다. 막상 카드깡을 할 때는 신나서 뛰어다니며 카드 비를 맞더니, 막상 지나고 나서 생각하다 보니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쓰게 웃으며, 대수롭잖게 말했다.
“아··· 최근에 기프트가 들어올 일이 생겼거든.”
물론 그 기프트를 어떻게 벌었는지, 얼마나 벌었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녀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변인들에게는 말하지 말라는 시에니의 조언을 받들어서다.
행여나 컴퍼니 소속의 다른 오퍼레이터(Operator)가 알게 된다면 문제의 소지가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진혜연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 더 물어오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어떻게 하지? 혜연이, 너는 가지고 싶은 신화 등급 스킬 카드 없어?”
“가지고 싶은 신화 등급 스킬 카드? 전 어차피 버프 조니까··· 기왕이면 버프 스킬로 습득하고 싶긴 하죠.”
“그러면 가져.”
“그래도 돼요?”
그녀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순수한 웃음을 지었다. 나 역시 그녀의 모습에 미소를 지어주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승주가 뚱한 얼굴로 물어왔다.
“저, 저는요?”
“승주 씨도··· 원하는 신화 등급 스킬 카드 다 고르세요.”
한승주는 허겁지겁 살피기 시작했다. 이내 신화 등급 스킬들 속에서 스킬 하나를 찾아낸 그녀는 진혜연과 마찬가지 해맑은 웃음을 흘렸다.
[기계왕의 기계 공학(G)]
동화 세계 속에서 그녀가 가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신화 등급 기계 공학 스킬. 상점가가 아마 5억 기프트였던 걸로 기억한다.
“정말 가져도 돼요?”
“일단 스킬을 습득하고 나서 그렇게 얘기해봐야 의미 없는데···”
나는 떨떠름하게 말했다.
물어볼 거면 스킬을 습득하기 전에, 먼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럴 거면 왜 물어본 거야?
한승주는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니, 일단 저지르면···”
“농담입니다.”
그 사이 진혜연은 ‘암흑 공주, 릴리스 소환’이라는 버프 및 소환 계열 스킬 카드를 손에 들었다. 남은 48장의 카드들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간단하게 결론을 내렸다.
‘개조하자.’
이 48장의 스킬 카드들을 전부 ‘스킬 개조’해서, ‘초월 등급’ 스킬로 승급한 놈들만 습득할 생각이었다.
물론 스킬 개조는 재사용 대기시간이 존재하지만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시계를 사용하면 재사용 대기시간을 초기화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초기화보다는 ‘없던 일로 만든다’라는 표현이 옳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게 중요한 일은 아니고···
막상 신화 등급 스킬 카드들을 개조하려 하니, 괜히 부담된다. 돈을 허투루 버리는 건 아닐까?
망설임이 생기기 시작한 나는 슬쩍 스마트폰을 들어, 트레이 코인의 시세를 확인한다. 사실 시세 확인을 위해서는 시스템에게 물어보면 될 노릇이지만,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트레이 코인의 현재 시세는···
‘1,000 기프트.’
상장가의 100배가 올랐다. 나는 망설임 없이 아무거나 집히는 대로, 닥치는 대로 스킬을 개조하기 시작했다. 스킬을 개조하고, 시간을 되돌리고··· 그렇게 반복하기를 정확히 48번.
살아남은 카드는 단 다섯 장. 그중에서 G+ 등급이 아닌 EX 등급, 초월 등급으로 승급한 카드는 단 한 장에 불과했다. 100억 기프트를 쏟아부었는데, 한 장밖에 얻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얻은 초월 등급 스킬 카드를 바라보며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스킬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스킬이 지금껏 본 적 없는 ‘생소한’ 스킬이었기 때문이다.
<행성 파괴 병기 DR01>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초월(EX)
설명 : 행성 파괴 병기 DR01을 소환한다. 소환된 DR01의 내구도와 파괴력은 소환자의 신력에 비례한다. ①집행 모드 : 집행 모드로 변경 시, DR01의 무기가 행성 파괴 능력을 갖추게 된다. ②성장 : 행성 파괴 성공 시, DR01의 성능이 영구적으로 상승한다. (재사용 대기시간 : 30일)
‘행성 파괴 병기라··· 로봇 같은 건가?’
잠시 어떤 스킬일까 생각하던 나는 시험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재사용 대기시간은 30일, 동화 세계의 재사용 대기시간과 동일하게 길지만, 시험해보지도 않고 실전에서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행성 파괴 병기 소환.”
[행성 파괴 병기 DR01(EX)을 사용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서 거대한 로봇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황급히 몸을 움직였다. 저런 걸 내려오게 내버려 뒀다간 건물은 폭삭 주저앉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가 움직이기 전, 먼저 시나트리온이 움직여 로봇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후.’
자칫 잘못하면 사고가 날 뻔한 상황이 쉽게 해결되자 긴장이 풀렸다. 가볍게 한숨을 내뱉은 나는 그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뭐, 이 정도 가지고.”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나는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도···’
“투자하셨군요?”
시나트리온은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트레이 코인에 투자했을 것이라 확신했다. 얼마를 벌어들였는지는 모르지만, 트레이 코인이 100배가 올랐으니 얼마를 투자했던 상당한 금액이 될 것이다.
“얼마 버셨습니까?”
시나트리온은 엷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얻은 기프트보다 많은 금액이라고만 해두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베스타스 제독의 기프트를 관리하고 보관했던 것이 다름 아닌 그였다. 그리고 그는 그 기프트로 트레이 코인에 그대로 ‘몰빵’을 해버린 것이고 말이다.
물론 당시의 나는 그러한 사실을 몰랐기에, 그에게 더 묻지 않았다.
“아, 다행입니다.”
“이 은혜는 추가로 갚도록 하겠다. 그나저나, 이건···”
그의 말에 나는 그제야 로봇으로 시선을 돌린다. 어디 SF 만화 속에나 나올 법한 산만 한 거대한 로봇이 시나트리온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아니, 우주선이라고 불러야 하나?
그나저나··· 시나트리온의 눈을 보니, 마치 이 로봇에 대하여 알고 있는 눈치다.
“아십니까?”
“제논 족이 행성을 파괴할 때 사용하는 결전 병기가 아닌가.”
“제논 족 말씀이십니까?”
“온몸이 기계로 이루어진 전투 종족이다. 이런 걸 맞았다간 나도 못 버텨.”
“다른 직접 계약자들을 상대로는 얼마나 유효할까요?”
“이 병기는 말 그대로 행성을 파괴하는 거다. 스스로를 ‘신’이라 주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행성으로부터 힘을 얻지.”
그의 말인즉, 그런 행성을 파괴하는 것은 신들에게도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신성의 원천 역시, 지구라고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로봇을 지상에 내려놨고, 나는 로봇에 탑승했다.
[행성 파괴 병기 DR01에 탑승했습니다.]
마력과 신력이 동시에 빨려 나가는 느낌과 함께 DR01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DR01을 조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DR01은 내 의지대로 움직였으니 말이다.
비행을 시험해보던 하늘 요새에서 뛰어내려 산 정상에 가볍게 착지했다. 우르릉, 이름 모를 산이 무너지며 산사태가 일어난다. 그 상태에서 마력을 실어 가볍게 도약했다.
마치 슈퍼맨이 된 것처럼 엄청난 쇼크 웨이브(Shock Wave)와 함께 DR01의 동체가 수직으로 튀어 오른다. DR01은 가볍게 지구의 대기를 돌파하고, 우주 공간에 도착했다.
내가 굳이 우주 공간으로 나온 이유는 하나였다.
‘시험해보기 위해서.’
행성 파괴 능력을 시험해보기 위해서였다.
[행성 파괴 집행 모드로 변경합니다.]
인간과 유사한 손이 변화하며 거대한 대포로 변화한다. 대포에 맺히기 시작하는 연녹색의 구체. 신력과 마력을 끌어올리자, 구체가 무시무시하게 크기를 키운다.
나는 대포를 빈 우주 공간에 겨눈 후, 가볍게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대포가 발사된다. 쾅-! 일순간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진 후 우주 공간은 정적에 잠긴다.
엄청난 반동과 함께 DR01의 동체가 뒤로 밀려났다. 내 본체 역시, 동일한 반동을 받았다. 하지만 내 눈은 마치 미사일처럼 발사된 초록색 구체를 똑똑하게 직시하고 있었다.
포물선을 리며 날아간 초록색 구체는 이내 빈 우주 공간에서 폭발을 일으키···지 않았다. 폭발을 일으키기는커녕, 오히려 ‘추적 시스템’이라도 달린 것처럼 방향을 선회했다.
그 방향은 하필이면, 달이 있는 방향이었다. 그러니까, 달. 그, 지구의 위성 말이다. 너무 당황하면 계속 같은 생각만 떠오른다는데 지금 내가 그 상황인 듯 보였다.
‘어···’
나는 멍청하게 그 모습을 바라봤다. 강렬한 폭음과 함께, 달은 완전히 산산조각 나버린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달의 파편들을 보고 나서야 어느 정도 정신이 들었다.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달을 파괴했다. 그냥 단순히 일부를 파괴하는 것을 넘어, 아예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미친놈···’
나는 황급히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시계를 사용했다.
달이 파괴된다면,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른다. 학창 시절에 얼핏 들은 것 같긴 하지만, 그때 들었던 지식을 내가 기억하고 있을 리 만무하니까.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영향이라는 것이 결코 긍정적이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었다.
‘내가 무슨 무천 도사도 아니고··· 그런데, 이걸 되돌릴 수 있나?’
파괴된 달을 복구하기 위해선 어마어마한 양의 기프트가 필요할 터였다. 그리고 나는 방금 그 기프트를 모조리 스킬 카드들을 구매하는 데 사용한 상태였고 말이다.
파괴된 달을 바라보며 ‘견적’을 가늠하고 있는데,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어째서 이런 일을 저지르신 겁니까?]
다소 나를 책망하는 듯한 말투.
“방법이 없을까?”
[깨트린 찻잔을 다시 원래대로 붙이는 것은, 찻잔을 깨트리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법은 존재합니다.]
“그게 뭔데?”
[저 별을 구매하면 됩니다. 별의 주인이 된다면, 기프트를 소모해 별을 다시 재생하는 것이 가능해지니까요.]
“아, 그것 참··· 쉬운 선택지네. 얼만데?”
[10억 기프트입니다.]
“X-347의 가격이 얼마였더라··· 너무 비싼 거 아니야? 아니, 아니다.”
말하다가 문득 우스워졌다. 지금 내가 보유한 트레이 코인의 평가액이 얼마였는지 생각하면 10억 기프트는 그저 ‘푼돈’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스템은 내 질문이 합당하다고 생각한 듯, 설명을 이어나갔다.
[물론 이 10억 기프트엔 행성 구매 비용만 들어 있지 않습니다. 직접 계약자, 이진서가 원하는 대로 행성을 개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행성에, X-347처럼 기록된 세계를 구현할 수 있고?”
[기록된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서 추가 비용이 들지만, 그 역시 가능합니다. 그러시겠습니까?]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