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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197화 (197/236)

197화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절경(絶景). 법복을 걸친 노승이 가부좌를 한 채, 명상하고 있다. 바람이 불자 낙엽이 그의 몸에 떨어졌지만, 그의 몸은 작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가을이었던 계절은 겨울로 변했다. 이파리는 모두 떨어진 지 오래요, 나무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냈고, 바닥에는 소복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무릎 꿇은 채, 그런 그를 바라보던 어린 승려들이 눈을 부릅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명상하는 것만으로, 계절이 바뀌다니···!”

무공의 절학을 배워온 그들이었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지금 노승이 보여준 것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오로지 명상만으로 자연을 바꾸는 걸 넘어, 아예 계절마저 바뀌어버렸다.

‘저게 정녕 같은 인간이 맞단 말인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때 그들을 지도하는 무승, 칼빈이 입을 열었다.

“동요하지 말거라. 너희도 싯타르타님처럼 부단히 수련하면, 언젠가는 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한 오백 년쯤 수련한다면 말이다.’

뒷말은 생략하는 그였다. 어린 승려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칼빈 말을 순순히 믿지는 않았다. 정작 말을 한 그도 저런 모습을 보여준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계절은 여름으로 변했다. 노승- 싯타르타는 눈을 떴다. 그리고 짤막하게 입을 열었다.

“다들 정진하거라.”

조그마하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승려들은 마치 꼭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들을 내려다보던 싯타르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삐쩍 마른, 볼품없는 체구에도 불구하고 마치 태산이 일어나는 것 같다.

“싯타르타님, 모시겠습니다.”

칼빈이 얼른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니, 그럴 거 없다.”

“아, 예.”

칼빈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터벅터벅.

싯타르타는 땅에 지팡이를 짚으며 걷기 시작한다. 그가 지팡이를 짚을 때마다, 메말라 있던 대지에 식물들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 뒷모습을 칼빈은 사뭇 존경스런 눈초리로 바라봤다.

이내, 그는 다시 어린 승려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싯타르타님의 말씀! 다들 들었지? 정진해라.”

한편, 지팡이를 짚은 채, 걷고 있던 싯타르타는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지팡이를 던져버렸다. 그가 던진 지팡이는 거대한 나무가 돼 무럭무럭 자라났다.

법복을 벗어 던진 싯타르타는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 양복을 걸쳤다. 다른 승려들이 봤다면 틀림없이 충격을 받았을 장면이었으나, 그는 입에 파이프 담배까지 입에 물었다.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빨아들인, 그는 후 연기를 내뱉는다. 만족스런 표정을 짓던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 상장 날이라고 했던가?”

[예, 직접 계약자, 싯타르타.]

“그 트레이 코인 개발자가 뭐하는 놈이라고?”

[타 우주에서 건너온 대상인이랍니다.]

“타 우주라···”

사실 그 실체는 흔하디흔한 ‘암상인’이었지만, 그는 그 실체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기야, 하이낸스에 상장 예정인 코인의 개발자가 암상인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암상인이라는 트레이의 신분은, 그의 신분을 위조하는 데 더욱더 도움이 됐다.

“뭔가 대박 냄새가 나는데? 시작 가격은?”

[1 트레이당 10 기프트입니다.]

“저렴하네. 1억 기프트만 박아봐.”

직접 계약자인 그에게 1억 기프트는 여윳돈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가즈아, 가즈아.”

나지막이 ‘가즈아’를 중얼거린 그는 그라곤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경망스러운 춤을 추면서 걷다가 우주선에 탑승했다. 인근 행성 신들과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트레이 코인에 관심을 가진 건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주 전체에서 트레이 코인에 대한 관심이 몰리기 시작했다.

***

보름.

트레이 코인이 상장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시나트리온의 도움을 받아, 실전과 같은 대련을 했다. 물론 그때마다 나는 그가 얼마나 높은 ‘벽’인지 느껴야만 했다.

그는 내가 상대했던 그린돈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그러나 좌절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런 그를 ‘벌레’ 취급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존재- 슈엔자오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는 높지만, 시간만 있다면 언젠가는 넘어설 수 있는 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의 대련을 마치고, 회복제를 들이키며 나는 시나트리온에게 말했다.

“아, 맞다. 시나트리온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지?”

“혹시 가진 기프트 좀 있으십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직접 계약자인 만큼, 가진 기프트가 적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조금 있다 상장될 트레이 코인에 투자하십시오. 혼자만 알고 계셔야 합니다.”

시나트리온은 엷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트레이 코인에 얼마나 투자할지는 모르겠지만, 뭐, 잘 되면 서로 좋은 일이다.

마침내 상장 당일. 나는 시에니와, 트레이와 함께 거래소 앱을 켜서 트레이 코인이 상장되기를 기다렸다. 트레이는 도저히 마음이 진정이 안 되는지 계속 중얼중얼거렸다.

“트레이 넌 할 수 있어.”

슬쩍 엿들어보니, 이러고 있다. 그 자신에게 말을 하는지, 트레이 코인에게 말을 하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나 역시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상장과 함께, 50억 기프트를 투자한다.

이미 얼마나 올릴지, 시에니와 이야기를 나눴지만 만약 그녀가 그린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50억 기프트가 한순간에 휴짓조각으로 변할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이곳에서 오로지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건 시에니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그녀의 손에서 트레이 코인의 운명이 결정지어질 것이다.

마침내 트레이 코인이 상장됐다. 상장 시작가는 10 기프트. 그녀는 매수 버튼을 눌렀다. 50억 기프트 전체를. 상장한지 단 1초 만에 트레이 코인의 가격은 60기프트로 치솟았다.

이미 상장 시작가의 여섯 배. 방금 매수한 50억 기프트어치를 제외하고, 내가 트레이에게 구매한 50억 기프트어치의 트레이 코인은, 이 순간 600억 기프트로 껑충 뛰었다.

‘미친···’

600억 기프트의 크기를 떠올리던 내 입에서 욕설이 절로 흘러나왔다. 물론 아직 매도하지 않았으니 엄밀히 말하면 600억 기프트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트레이 코인의 가격은 ‘고작’ 60기프트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트레이 코인은 1만 기프트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숫자로 따지면, 반올림하여 약 1,667배.

그때쯤 되면 내가 보유한 트레이 코인은···

‘200조? 이게 정말 가능하나?’

억 단위를 가볍게 뛰어넘은 숫자. 200조. 그 숫자의 크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숨이 턱턱 막혀오는 걸 느꼈다.

트레이 코인은 300기프트를 돌파하자마자, 130기프트로 미끄러졌다. 시에니가 대략 100억 기프트어치를 매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트레이 코인은 많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내게 100억 기프트를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

“플레이어, 이진서, 당신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조작범들을 제거하는 일 말입니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프트가 더 필요하면 말씀하십시오.”

100억 기프트. 사실상 초기 자본금을 되돌려 받은 것이지만, 느낌이 다르다. 내 지갑에는 수천억 트레이어치 코인이 잠자고 있으니 말이다.

그 수천억의 트레이 코인은 수조 규모로 불어날 것이다.

‘100억 기프트를 어떻게 투자한다.’

먼저 비어있는 여섯 개의 슬롯부터 신화 등급 스킬로 채우는 게 우선일 것 같다. 간만에 카드깡을 해야겠네. 나중에 필요한 스킬이 생기면 새로 습득해도 되는 노릇이니까.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슬그머니 트레이를 바라봤다. 그는 게거품을 문 채 기절해버렸다.

그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비록 관리는 시에니가 도맡아 하지만, 그 역시 지금은 수천억 기프트의 부자가 됐다. 수천억 기프트···

말이 수천억이지, 어지간한 직접 계약자조차 꿈도 못 꿀 손에 넣을 수 없는 아득한 숫자. 내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수천억 기프트를 얻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

시에니는 그런 트레이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무언가 기술이라도 사용했는지, 트레이가 벌떡 일어났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그녀가 말했다.

“일어나십시오, 트레이. 당신이 할 일이 있습니다.”

“제가 할 일이라니 그게 무슨···”

“이제부터 당신은 ‘트레이’가 돼야 합니다.”

“예, 예? 저는 트레이인데···”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되묻는 그에게, 시에니가 단언하듯 말했다.

“보잘것없는 당신이 아니라, 이계에서 건너온 대상인, 트레이 말입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과거 어느 코인 개발자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사기꾼이 폰지 사기를 치기 위해 코인을 개발했는데, 과열된 투자 심리로 그 코인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생각을 바꿔 먹어 ‘진짜’ 코인을 개발했다고 했지.

다른 점이 있다면 트레이는 사기꾼이 아니라, 진짜 사기꾼에 의해 조종당하는 ‘꼭두각시’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흔들리는 눈의 그를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

나는 진혜연과 한승주를 비롯한 수십 명의 그룹원들을 바라본다. 기대 어린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들에게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할 일은 간단합니다. 지금부터 카드깡, 아니 스킬 카드 개봉을 할 건데, 그중에서 신화 등급 카드만 선별해주시면 됩니다.”

그들은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면 오빠, 남은 전설 등급 스킬 카드는 어떻게 해요?”

나는 슬그머니 진혜연을 바라본다. 사실 그녀의 대사는 이미 나와 합의된 것이었다. 그런데 상당히 어색한 국어책 읽는 말투. 아무래도 쟤는 연기하면 안,되겠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지만, 비웃는 대신 나는 나지막이 웃으며 대답했다.

“보다가 마음에 드는 스킬 카드가 있다면, 전부 가져도 됩니다.”

“오오···!”

그룹원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물론 싸움은 안,됩니다. 싸움하는 건 딱 질색이니까요.”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나와 간부들이- 진혜연, 한승주를 비롯한- 쳐다보고 있는데 스킬 카드의 소유권을 두고 다툴 만큼 간 큰 이는 없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나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무작위 전설 등급 스킬 카드 1만 장 구매해줘.’

하늘에서 카드들이 내려온다. 눈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카드들. 하나하나 영롱한 주홍색 빛을 흘렸지만, 워낙 그 숫자가 많다 보니 눈만 괴로울 뿐이었다.

그러나 다른 그룹원들의 생각은 다른지, 그들의 환호성이 한층 더 커졌다.

[‘무작위 전설 등급 스킬 카드’를 개봉하시겠습니까?]

“전부 다 개봉해줘.”

내 대답과 동시에 카드들이 일제히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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