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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196화 (196/236)

196화

“어지간히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시에니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보였나?”

“······”

그녀는 침묵했지만, 그것은 명백한 긍정의 침묵이었다.

“나는 가치 있는 상품을 좋아하니까.”

그의 짤막한 대답에 납득했다는 듯, 시에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슈엔자오는 미소 지으며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려다본다. 자그마한 푸른 별이 눈에 들어온다. 문득 그는 과거를 회상했다. 저 지구라는 이름의 푸른 별을 처음 발견했을 당시를 말이다.

처음 발견했을 때만 해도 지구는 원시 행성에 지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우주 항해술조차 개발하지 않은 원시 행성. 그러나 그는 그 원시 행성에 잠재된 막대한 기프트를 꿰뚫어 봤다.

그는 지구에서 기프트 시추 작업을 했고, 시추 작업이 완료되자 그가 보유한 경매장에서 지구를 판매했다. 그 과정에서 신이 살해당하는 소란이 벌어졌지만, 그의 알 바는 아니었다.

이미 그의 손아귀를 떠나간 행성에 다시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운명이라는 게 참으로 묘했다. 판매된 행성의 거주민이 컴퍼니와 직접 계약을 맺었다.

이것만 해도 말도 안 되는 기적인데, 거주민- 이진서는 컴퍼니의 총애까지 받기 시작했다.

우주 전체를 통틀어도 보기 드문 이례적인 일이었다. 심지어 그 깐깐한 오퍼레이터가 그에게 청탁까지 해왔다. 이진서를 돕는 조건으로, 그의 불법을 눈감아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슈엔자오는 컴퍼니와 밀접한 사이임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경계 받는 대상이기도 했다. 그는 이 우주에서 컴퍼니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때문에 컴퍼니에선 그런 슈엔자오를 엄중히 감시해왔다. 그의 무력엔 금제가 걸렸고, 그의 거래소 또한 컴퍼니에 의해 철저하게 감사(監事)를 받고 있었다.

인간으로 따지면 그야말로 팔다리가 잘려 나간 격. 거래소 조작 세력을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쉬이 조작범들을 소탕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금제가 풀렸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그의 금제가 풀린 것이 아닌, 대신 움직일 수 있는 나이트(Knight)를 손에 넣었을 뿐이지만.

아쉬움은 들지 않았다. 그러기엔 금제가 걸린 그동안의 세월이 너무 길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지금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작은 구멍 하나만으로 거대한 둑은 무너져 내린다.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컴퍼니에서 눈치챌 때쯤, 이미 진행된 붕괴는 아무도 막지 못할 것이다.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그가 문득 궁금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발라르는 어떻게 됐지?”

“저희 쪽 직접 계약자 여럿을 투입했습니다. 현재, 퇴각 중이라고 합니다.”

“방심하지 말게, 고작 그 정도에 포기할 놈이 아니니까.”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는 몸을 뉜 채, 눈을 감았다. 잠을 자기 위함이 아닌, 행성에 있는 ‘본체’를 움직이기 위해서였다.

***

[락(Lock)이 해제됐습니다.]

[능력치 투자에 제한이 사라집니다.]

[스킬 최대 보유 개수가 15개로 늘어납니다.]

능력치 투자에 제한이 사라진다는 말은 이미 전해 들었지만, 스킬 최대 보유 개수가 늘어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원래 아홉 개였는데 열다섯 개니, 무려 여섯 개가 늘어난 셈이다.

VVIP 상점에서 판매하는 신화 등급 카드들이 아른아른거린다. 그러나 어떤 스킬을 습득할까 하는 행복한 고민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지금은 기프트를 사용할 때가 아니다.

‘투자할 때지.’

그동안 나는 ‘투자’를 꺼려왔다. 이미 코인 투자로 몽땅 날려 먹은 기억이 있는데, 그런 경험을 또 반복할 수는 없다는 지극히 타당한 이유 때문이었다.

실제로 투자에 대한 위험성이 상당하기도 했고. 하지만 내부 정보를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확률이 100%인데, 배팅하지 않을 바보는 세상에 없다.

아니, 있을지는 몰라도 나는 그런 바보는 아니었다.

[보유 기프트 : 10,000,000,000]

자본금 100억. 원래 있던 기프트에 그린돈을 처치한 후 얻은 기프트까지, 원래는 100억이 안 됐지만 100억을 맞췄다. 이 기프트를 사용해 기프트를 갈퀴째로 끌어모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눈앞의 여자를 바라본다. 슈엔자오와 함께 지구에 온 여자, 시에니.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분신이었다. 그녀는 분신을 이 지구에 남겨놨다.

내 파생 상품 투자를 돕기 위함이었다.

“부탁드립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얼마나 불어날까요?”

“한 달 이내에 열 배 이상으로 불리는 게 목표입니다. 물론 고수익률 상품만 매매한다면 더 빠르게 늘릴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컴퍼니 측에서 이상함을 감지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다는데 내가 달리 할 말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한 달 이내 열 배. 말이 열 배지, 100억 기프트의 열 배면 천억 기프트다. 억, 정말 억 소리 난다.

‘1,000억 기프트로 뭘 하지?’

전에 꿈꿨던 것처럼, 행성 여러 개를 매입해서 직접 채굴기를 돌려볼까? 1,000억 기프트면 X-347과 같은 행성을 수십 개는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을 그녀에게 털어놓자, 그녀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내부 정보를 알고 있음에도, 고작 한다는 게···”

“······”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플레이어, 이진서가 할 일은 투자를 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기프트를 효율적으로 사용해, 스스로를 강화할 수 있을지 생각하십시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그녀의 충고 아닌 충고가 이어졌다.

“잊지 마십시오. 플레이어, 이진서가 얻게 될 기프트는 원래는 다른 누군가의 기프트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

잠시 망각할 뻔했다. 이 시장은 제로 섬(Zero Sum) 게임이라는 걸. 돈을 벌게 되면, 누군가는 잃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녀에게 순순히 감사를 표했다.

“아, 그리고···”

“예?”

“혹시 알고 있는 암상인이 있습니까?”

그녀의 말에,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암상인?

“암상인이라면···”

“블랙마켓의 상인 말입니다. 어느 세력에도 소속되지 않은···”

한 명이 떠올랐다. 그나마 나와 친분이 있다고 말할 만한 암상인은 하나밖에 없었으므로.

***

트레이가 암상인이 된 이유는 별거 없었다. 어느 세력에도 소속되기 싫어서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대긴 하지만, 그것이 핑계라는 것은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유가 뭐냐고? 그거야··· 내가 별 볼 일이 없는 놈이니까.’

외모도, 능력도, 다른 우주 상인들에 비하면 형편없다. 어느 상인 연합에서도 그를 받는 것을 꺼렸고, 결국 암상인이 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암상인으로서의 생활도 녹록지는 않았다.

취급하는 상품도 별 볼 일이 없는 그를 반기는 곳은 몇 되지 않았다. 아니, 냉정하게 말하면 한 곳이 전부였다. 그 행성의 이름은 지구. 오로지 지구만이 그를 환영했다.

물론 이 유일한 고객을 위해, 서로 만족스러운 관계가 될 수 있도록, 그도 최선을 다했다. 상품을 더 확보하기 위해 은하계 전체를 발로 뛰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못 가 한계를 맞이하고 말았다.

‘차라리 상인 연합을 소개해주는 편이···’

지구에는 훨씬 도움이 될 터였다. 판매하는 상품 가짓수로 보나 질로 보나, 그쪽이 압도적이었으니 말이다. 그가 내적으로 고민을 할 찰나, 지구에서 소환 요청이 들어왔다.

그는 마지막으로 상품을 점검한 후, 요청을 수락했다.

“오랜만입니다, 트레이.”

“오우, 진서. 오랜만이야.”

그가 이진서를 직접 만나는 것은 꽤나 오랜만이었다. 그동안 이진서는 직접 블랙마켓에 참여하지 않고, 정민혁과 진혜연과 같은 간부들에게 대신 구매를 맡겼기 때문이다.

“트레이, 할 말이 있는데, 안에서 이야기 좀 나누시죠.”

“무슨 이야기?”

그는 천연덕스럽게 물었지만, 내심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내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래, 웃으면서 헤어지는 게 서로 좋지.’

어차피 자신이 감당할 만한 고객이 아니었을 뿐이다. 기프트의 생산량만 놓고 보면 어지간한 신들이 지배하는 행성에도 밀리지 않는 행성이 바로 지구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응접실의 의자에 앉은 그. 이진서는 그를 빤히 바라봤다.

“역시···”

분위기의 불편함에 그가 먼저 입을 열 찰나였다.

“···트레이를 구매하고 싶습니다.”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트레이를?”

지금껏 그들이 거래하는 방식은 물건을 그가 발행한 트레이라는 화폐로 환전한 후, 그의 물건을 트레이로 거래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트레이를 ‘구매’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시 생각해봤지만,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 구매하고 싶다는 게··· 내가 생각하는 그거 맞지?”

“예, 기프트로 구매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당장 그럽시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으나, 트레이는 가까스로 억눌렀다.

“대체 왜?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트레이는 여러모로 부족한 화폐야. 후, 안 그래도 나도 말하려고 했는데···”

“그래서 구매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그게 대체 무슨···”

그때, 방문이 열리며 분홍색 머리의 여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트레이는 흠칫 놀랐으나, 이내 이진서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분은···?”

“시에니님입니다.”

시에니는 그에게 고개를 까딱이면서 말했다.

“반갑습니다.”

“아, 예··· 그런데 뭐 하는 분···”

트레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눈으로 시에니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존대가 나온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혹시 상인 연합 소속이십니까?”

“아닙니다. 굳이 소속으로 말한다면, 하이낸스 소속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그의 눈이 경악으로 물든다. 그 고개 빳빳한 상인 연합의 상인들조차 거래소의 직원들에게는 직각으로 고개를 숙이곤 했다. 하물며 하이낸스라면 우주 최대의 거래소.

그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신분이다.

“하하, 하이낸스 소속의 직원분이 저는 왜···”

그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10일 뒤, 저희는 새로운 코인을 상장 목록에 올릴 것입니다.”

“??”

이진서가 첨언하듯 입을 열었다.

“트레이 코인이 하이낸스에 상장될 거란 이야기입니다.”

“아니, 하이낸스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거래소들에도 일제히 상장될 예정입니다. 물론··· 트레이, 당신의 신분은 조작돼야만 하겠죠.”

“대, 대체 제 코인을 왜···”

“우주상인, 트레이.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싫습니까?”

트레이는 황급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싫을 리 없었다. 그냥 거래소도 아니고, 하이낸스에 코인이 상장된단다. 트레이 코인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고, 그는 떼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떼부자가 되는 것을 싫어하는 이는 없다. 그건 트레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1트레이의 가치를 최대 1만 기프트까지 올릴 예정입니다. 자세한 비율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를 나눠보시죠.”

“1, 1만 기프트···”

내가 가진 트레이가 얼마더라··· 생각하다가, 계산을 끝마친 그는 입에 거품을 물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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