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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195화 (195/236)

195화

나는 수송선에 탑승한 화성인들을 돌아본다. 도합 4천 명의 화성인들이 아기 새처럼 나를 초롱초롱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닌지라, 능숙하게 입을 열었다.

“무슨 걱정 하시는지는 이해합니다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누군가 했더니 그린돈과 전투를 벌이기 직전, 공장에서 봤던 존이라는 사내였다.

“저희가 잘 적응할 수 있겠습니까?”

“드래고니안 4호에 탑승했던 일만 명의 미국인들. 그들은 우리 그룹에서 무사히 적응을 마쳤습니다. 그들이 여러분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아···”

화성인들의 얼굴에 기대감과 불안감이 교차했다. 물론 도착하면 그들의 불안감은 눈 녹듯 사라질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지금 우리 쉘터는 거주하기에 나쁘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니, 그들이 거주하던 화성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지 차이일 것이다.

지구에 도착한 후, 나는 제일 먼저 시나트리온을 찾았다.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감사합니다.”

만약 그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핵폭탄 수천 개는 그대로 폭발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적잖은 그룹원들이 폭발에 휩쓸려 목숨을 잃고 말았겠지.

어쩌면 그 단위가 만 단위에 달할지도 모르는 노릇. 지금 내가 그에게 한 감사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수롭잖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린돈은 처치한 모양이군?”

“아, 예.”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린돈을 죽이고 얻은 기프트 중의 일부를 그에게 분배해야 하는 것 아닐까. 강호의 도리로 따지면 그게 맞는 것 같은데···

먼저 자진 납세할까 고민할 찰나, 그가 재차 입을 열었다.

“곧, 이 지구에 손님이 도착할 거라더군.”

“손님, 말입니까?”

“그래.”

“하지만 저한테는 아무런 이야기도···”

지구에 ‘손님’이 도착할 거라는 그의 말을 곱씹어보니, 심장이 쿵쿵거리기 시작한다. 혹시 그가 말한 그 손님의 정체라는 것이 발라르는 아닐까. 만약 그가 지구에 돌아온 것이라면···

‘승산이 없다.’

발라르는 그린돈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대한 존재였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을 대비해, 시나트리온에게 보호를 요청하긴 했지만 그가 발라르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시나트리온은 한마디로 나의 불안을 불식시켰다.

“네가 염려하는 ‘그’는 아니다.”

“그럼 누굽니까?”

“슈엔자오.”

“슈엔자오?”

생소한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뒤이은 그의 말에, 내 입은 자동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최초의 계약자다.”

전에 시스템에게 들었던 최초의 계약자. 그의 이름이 ‘슈엔자오’라는 것은 지금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런 슈엔자오가 어째서 갑자기 지구를 방문한단 말인가?

이것은 호재인가, 아니면 악재인가.

의아함을 읽은 듯, 그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시스템에게 듣기만 했을 뿐,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단순한 관광 목적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

“고민할 필요 없다. 어차피 그가 결정한 이상, 우리가 거부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처럼 내게 슈엔자오를 피할 방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어차피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언제 도착한답니까?”

“글쎄, 그건 나도 잘···”

그때, 우리 둘 다 하늘을 바라봤다. 곧 서로를 마주 보며 쓴웃음을 흘렸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지구로 들어온 우주선. 그리고 그 우주선 내부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존재감. 그 존재감을 어렴풋이 느낀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혀올 정도였다.

‘차원이 다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건 내 예상을 뛰어넘는다. 나는 시나트리온 쪽을 쳐다봤다. 그는 나처럼 경망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하진 않았지만, 눈썹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

곧 우주선이 하늘 요새에 도착했다. 나는 우주선으로 향했다. 이내 우주선의 문이 열리고, 안에서 노인과 소녀가 걸어 나왔다. 둘 다 인간의 외양을 하고 있었다.

통찰안을 사용해, 그들을 훑어본다.

[슈엔자오]

- 통찰안의 단계가 낮아 볼 수 없습니다.

[시에니]

- 통찰안의 단계가 낮아 볼 수 없습니다.

통찰안의 3단계 시험을 통과하며 내가 정보를 볼 수 없는 존재는 ‘없다’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시나트리온조차 다는 아니어도, 능력치 정도는 꿰뚫어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저 둘은··· 아예 볼 수 없었다.

‘통찰안의 4단계 시험을 통과한다면 볼 수 있으려나?’

아니, 설령 4단계 시험을 통과한다 하더라도 감히 확신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보게 돼서 반갑군.”

시나트리온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는 오로지 나만을 직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두 눈으로 그를 보자 만감이 교차했다. 사실 슈엔자오는 내게 있어서 ‘원수’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였다.

시스템에게 들었던 설명대로라면-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이 지구가 코인 채굴기로 변할 일 같은 건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원망 같은 건 들지 않았다.

하기야, 겨울에 눈이 오는 걸 보며 겨울을 원망하지 않는다. 솔직한 감상으로, 직접 만난 그는 생명체라기보다는 하나의 ‘현상’ 내지 ‘법칙’에 가까운 존재처럼 보였다.

“이 친구는 내 호위야, 호위.”

시에니라는, 인형처럼 생긴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혹시 안드로이드 로봇이 아닐까, 하는 멍청한 상상을 했다.

“그런데 이 지구까지는 어쩐 일로···”

“아, 내가 부탁을 받아서 말이야. 부탁이라기보다는 청탁인가?”

“예? 대체 누가···”

“아직 자네는 전달받지 못한 모양이군. 뭐··· 상관이야 없지만 말일세. 그나저나, 이 별은 손님 대접을 할 때 이렇게 세워두나?”

“아, 예. 안으로 들어가시죠.”

“그럴 필요가 뭐가 있나.”

슈엔자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상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른 봄. 바닥에 소폭 쌓여있던 눈더미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붉은색의 화려한 카페트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유럽의 고풍스러운 저택과 같은 풍경, 가운데에는 벽난로가 화르르 타오르고 있었다.

“이건···”

환상? 아니, 환상 같은 게 아니다. 그보다는···

“별거 아니네. 자네 별의 언어로 번역하면 현실 조작 정도 되겠지. 다 이 정도는 해.”

현실 조작. 그야말로 신의 권능이 아닌가.

“···저는 못 할 것 같은데요.”

그는 엷게 웃으면서, 이번에는 시나트리온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만약 이 친구만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자네를 죽였을 거야. 지금껏 우주 해적 놈들에게 탈취당한 기프트가 어마어마하거든.”

시나트리온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나 찡그려진 그의 인상과 대비되게, 슈엔자오는 여전히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농담일세. 내가 자네들을 왜 죽이나? 비록 이 우주의 기생충 같은 존재들이긴 하지만 나는 자네들을 싫어하지 않아. 자네들은 우주의 변수들이야. 자네들에게 탈취당한 기프트보다 자네들 때문에 ‘파생 상품’으로 벌어들인 기프트가 더 어마어마하거든.”

그를 기생충 취급한 그는 기분 좋은 듯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 친구와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데, 나가 보겠나?”

“······”

시나트리온은 그를 노려봤지만, 이내 순순히 자리를 떴다. 그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였던 붉은색 의자에 걸터앉았고, 시에니는 그의 옆에 섰다.

“앉지.”

나 역시 순순히 의자에 앉았다. 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내가 오늘 이곳에 온 건··· 자네에게 제의를 하기 위해서네.”

“제안이라는 건···”

“이미 자네의 오퍼레이터에게 들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최초의 계약자이자, 이 우주에서 가장 큰 거래소, 하이낸스의 사장일세.”

“예, 들었습니다.”

“거래소에선 온갖 상품을 취급하지. 자네도 상품 하나를 이용하고 있더군.”

“아, 스테이킹 말씀이십니까.”

나는 예치돼있는 기프트들을 떠올렸다.

“이율이 높아서 평소엔 잘 판매하지 않는 상품인데··· 자네가 억수로 운이 좋은 걸세.”

“···그렇습니까.”

“그래, 그런데 최근 들어, 나는 내 상품에 ‘조작질’을 하는 놈들을 발견했어.”

“조작질, 말씀이십니까?”

“보통 규모가 아니더군. 이미 내 고객들은 상당한 손해를 봤고, 몇몇은 파산을 당해 수천 년간 컴퍼니에서 노역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 물론 내가 입은 피해는 없지만··· 곤란해, 이건 우리 하이낸스와의 신뢰와 관련된 일이거든.”

“그러면 제게 할 제의라는 게···”

“조작질을 하는 놈들을 제거해주게.”

“하지만 직접 계약자는 직접 계약자를 죽이지 못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설령 직접 계약자를 죽이는 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내가 죽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번에 간신히 죽인 그린돈조차 직접 계약자가 아니었다.

직접 계약자가 되기 위해선 100억 기프트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이미 100억 기프트를 지불한 존재들을 상대하라는 뜻. 그들은 그린돈보다 ‘괴물’일 확률이 높았다.

“물론 지금의 자네는 그런 버러지들 하나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약하지. 하지만··· 나는 자네에게 걸려 있는 락(Lock)을 풀어줄 생각이야.”

“락 말씀이십니까?”

내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상하지 않나? 어째서 기프트로 능력치를 고작 60밖에 올리지 못하는지.”

“아, 예, 그건 확실히···”

능력치 60만 올려도 변이체들 사이에서 ‘무쌍’을 찍던 시절이 존재했다.

물론 그건 다 옛날이야기다. 우주적 존재들을 상대하는 지금, 기프트를 투자해 올릴 수 있는 능력치 60은 부수적인 능력치에 불과했다.

“그게 다 락이 걸려 있기 때문일세. 락을 풀면, 자네는 기프트를 투자해 능력치를 추가로 올릴 수 있네. 기프트만 충분하다면 100이든, 200이든 올릴 수 있단 말일세.”

“···하지만 기프트가 보통 많이 필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지금 내게 기프트는 흘러넘친다고 할 정도로 많다. 앞으로 들어올 기프트 역시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능력치는 10단위로 투자비용이 6배씩 늘어난다.

그의 말처럼 능력치를 200을 찍기 위해선, 천문학적인 기프트가 필요하다는 소리다. 지금 내가 가진 기프트로도 그런 짓을 하는 건 불가능할 정도로.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린 건가? 내가 자네를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이상, 자네 손에 있는 기프트가 마를 일은 없을 거라는 소리네.”

하기야, 거래소를 운영하는 사장인 그가 ‘내부 정보’를 알려준다면 그건 돈, 아니 기프트 복사일 것이다.

“···이해가 안 됩니다. 제게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내가 꿍꿍이를 부릴 만한 존재인가. 그에게 나는 시나트리온처럼 ‘벌레’에 지나지 않을 텐데··· 온갖 상념이 고개를 들었다.

“혹시 그 청탁이라는 걸 받아서···”

내 의혹에 그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고작 오퍼레이터의 말에 움직일 정도로 내 엉덩이가 가볍지는 않아. 그저, 군말 없이 받아들이게. 어차피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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