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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191화 (191/236)

191화

예런 일리아티는 화성의 법을 개정했다. 겉으로는 화성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는 명목이었지만, 사실 실질적인 목적은 화성인들을 착취하기 위함인 악법(惡法)이었다.

화성인들은 이제 하루에 최소 14시간 이상 노동에 종사해야만 했다. 노동을 게을리하거나, 거부하는 경우엔 강제로 수용소로 끌려갔고, 때로는 그린돈의 먹이로 투입되기도 했다.

어디를 훑어봐도 인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최악의 법률. 당연히 이런 악법을 만들어낸 예런 일리아티에 대한 화성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애초에 화성인들의 출신은 미국이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지구에서 그 어떤 나라보다 ‘자유’라는 단어를 가장 중요시 여기던 나라. 그런 미국 출신의 화성인들이 독재자에게 분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은 예런 일리아티에게 저항하지 못했다. 몇 달 전엔 그가 쥐고 있는 물자 때문이었다면 이제는 그 이유가 변했다. 바로 그린돈이 그의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온 초창기, 몇몇 화성인들은 그린돈을 죽일 계획을 세웠다. 종국에는 예런 일리아티 정권을 무너트리고, 물자 통로를 확보하자는 야심찬 계획이었으나 애초에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그린돈을 죽이기엔, 그가 지나치게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를 습격한 화성인들을 모조리 씹어 먹었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도시로 튀어나와 다른 화성인들까지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날만 물경 일백에 달하는 화성인들이 그의 위장 속에 삼켜지고 말았다. 예런 일리아티가 그를 멈춰 세울 때까지 포식은 쉬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그로부터 한 달 가까이 흘렀으나, 그에 대한 공포는 화성인들의 머릿속에 깊숙이 각인됐다. 바로 그들이 그린돈- 예런 일리아티에게 감히 저항할 생각조차 품지 못하고 있던 이유였다.

이제 그들은 신에게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다. 외부의 누군가가 나타나 저 간악한 악마들을 내쫓고, 그들을 구원해주기를.

물론 그들은 동시에 그것이 요원한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곳은 그들이 믿는 ‘신’이 있던 지구가 아닌 화성이었으니까.

***

화성 외곽에 위치한 공장. 수확한 작물들을 가공하는 공장으로, 노동의 강도가 강하진 않았지만, 작업 환경은 더없이 열악했다. 그런 공장의 내부, 한 소년이 바닥에 쓰러져 있다.

어린 소녀가 울먹거리면서 정신없이 소년의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미동도 없다. 소녀는 도움을 바라는 눈빛으로 주변을 쳐다본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소녀는 입을 열었다.

“도와주세요. 제발.”

“……”

“제발 아무나 좀 도와주세요.”

양심을 이기지 못한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소년의 머리를 들어 그의 무릎에 뉘었다.

“아저씨, 어떻게 해요?”

“아직 호흡은 있지만… 약하다. 니트로글리세린을 먹여야 돼.”

“니트로글리세린이 뭔데요?”

“의약품…이야.”

소녀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의약품. 그녀가 그런 걸 가지고 있을 리 없다. 물자는 철저히 예런 일리아티에게 통제받고, 그중에서도 의약품은 가장 엄격하게 통제받는 물자였으니 말이다.

남자가 뒷말을 흐린 것도 바로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전전긍긍하다가, 또다시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남자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안타까웠지만 그녀를 위로해줄 시간은 없었다.

여기서 더 지체된다면 이 미약한 호흡마저 끊어질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약 있는 사람 없소?”

“존, 그런 약이 우리에게 있을 리가 없잖아.”

“…그건 그렇지. 감독관에게 도움을 청해야겠소.”

감독관은 말 그대로 그들의 노동을 감독하는 이. 노동자 계급인 그들보다 한 단계 높은 만큼, 의약품 역시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감독관은 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지, 호의적인 인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쓸데없는 일을 한다고, 그들에게 보복이 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 것이다.

존이라는 이름의 남자 역시 그러한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 작은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소년을 업었다. 그때였다.

“내려놓으세요.”

후드를 뒤집어쓴 정체불명의 남자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누구…”

그는 경계심 어린 눈으로 허리춤에 손을 뻗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 그가 업고 있던 소년이 남자의 품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만 같은 상황이었다.

“??”

“오빠…!”

소녀가 비명 지르듯 소리쳤다. 존은 단검을 꺼내 그에게 겨누며 물었다.

“당장 그 아이를 놓지 않으면 네놈을 찌르겠다.”

그의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는 약병을 꺼내, 소년의 입 안에 흘려 넣었다. 소년의 몸이 순간적으로 광채를 발휘했다. 잠시 후… 소년이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뜬 소년은 잠시 멍한 얼굴로 있다가, 후드 속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 이진서?”

사람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진서…라고?”

존 역시 떨떠름한 표정으로 단검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들은 이진서를 알고 있었다. 모를 리 없었다. 아포칼립스 세상이 된 이후, 그는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대리어스 전 미 대통령 시절엔 미국의 ‘영웅’으로 칭송받기도 했던 그다. 그러나 이진서에 대한 그들의 현재 감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끔찍한 살인자…!”

분노 어린 얼굴로 한 백인 여자가 삿대질을 한다.

화성으로 향했던 우주선은 총 두 기였다. 드래고니안 4호와 5호. 드래고니안 4호에 탑승한 그들은 무사히 화성에 도착했지만, 드래고니안 5호는 폭발을 일으켰다고 했다.

일만 명의 생명은 우주선과 함께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예런 일리아티는 그 폭발을 일으킨 주범이 바로 이진서라고 했다. 즉, 이진서는 일만 명을 살해한 살인자인 것이다.

그에게 삿대질을 한 백인 여자는 드래고니안 5호에 가족이 타 있던 피해자였다. 그녀를 힐금 바라본 이진서가 마침내 후드를 벗었다. 그의 눈은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금색의 눈은 그들을 훑어본다. 그저 단순히 눈으로 훑어볼 뿐인데도 그들은 몸이 저절로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마치 인간이 아닌 신을 대하는 듯한 ‘압도적인’ 위압감.

그에게 삿대질을 했던 백인 여자조차 안색이 파리해진 채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제야 그들은 잠시 망각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이진서의 무력은 그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는 걸. 지구에서 그에게 대적할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는 걸. 그가 마음만 먹으면 그들을 죽이는 것은 손쉬운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심지어 그는 잔혹한 살인자(어디까지 그들의 시선에서는)가 아닌가.

‘일만 명을 살해한 마당에 우리라고 살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

이진서는 입을 연 남자를 바라본다. 목숨을 구걸하던 남자의 표정이 그대로 경직돼버렸다. 꽤 우스꽝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이진서는 내색하지 않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다들 오해가 많은 것 같지만… 저는 당신들을 죽일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주선을 폭파한 적도 없고요.”

“지금 그걸 우리 보고 믿으라고…”

파리해진 안색으로 백인 여자가 힘겹게 쥐어짜내듯 목소리를 냈다. 이진서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는 잘못한 게 없었다. 우주선을 폭파한 건 그가 아닌 예런 일리아티였으니까.

“믿건 말건, 당신들의 자유입니다.”

입을 다문 채 돌아가는 상황을 살피던 존이 입을 열었다.

“방금 전엔 단검을 겨눠서 미안합니다. 그러면 여기 온 이유가 뭡니까…?”

“그린돈 때문입니다.”

“그린돈이라면…”

이름만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에 공포가 어린다. 그린돈. 그들 대부분이 그린돈을 직접 두 눈으로 봤던 적이 있다. 그들 중에는 하마터면 잡아먹힐 뻔한 이들도 존재했다.

그린돈은 그들에게 공포의 대명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린돈 때문에 왔다는 건 무슨 의미지?’

존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구에 있을 이진서가 화성에 등장한 것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데, 그 이유가 그린돈 때문이라니…

‘설마…’

마치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대답이 들려왔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 이유가 맞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이진서, 당신이라 하더라도 그린돈은 이길 수 없을 겁니다. 녀석은 변이체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진짜 괴물입니다.”

존은 미국에서는 꽤나 상위권에 들었던 플레이어였다. 단신으로 최상급 변이체를 상대해본 경험도 여럿 있었다. 때문에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린돈은 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아무리 이진서라 하더라도…’

그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진서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쪽도 지난 반년간 놀기만 한 건 아니라서…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들 안에 계세요.”

이진서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안전 가옥을 꺼내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때, 소년이 그를 불렀다.

“아저씨.”

“몸은 괜찮니?”

“네, 아무 상처 없이 말끔해졌어요. 그 도마뱀… 꼭 혼내주세요. 그 도마뱀이 저희 부모님을…”

이진서는 소년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꼭 혼내줄게. 나쁜 도마뱀이랑 사람이랑.”

“사람이요?”

소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진서는 더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리고는…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스킬을 사용한 건가?”

“아니, 저건…”

존은 말을 삼켰다. 스킬이나 마법이 아니다. 그저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움직였을 뿐이다. 그조차 간신히 잔상을 본 것이 전부였다.

‘그린돈만 괴물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반년이 넘었지.’

그들이 화성에서 무의미한 세월을 보낸 동안 이진서는 더 강해졌을 것이다.

‘어쩌면…’

그린돈을 쓰러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예런 일리아티의 ‘시대’가 종지부를 맞이한다는 말과도 동일했다. 존은 희망이 생기는 걸 느꼈다.

그는 애초에 이진서가 우주선을 폭파했다는 예런 일리아티의 선동을 믿지 않았던 이들 중 하나였다.

“이제 어쩌면 좋지?”

사람들이 멍하니 있자, 존이 재촉하듯 말했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기 전에 그가 말한 대로 저기로 피신해 있어야겠지.”

괴물과 괴물의 전투. 직접 두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이진서가 피해 있으라고 말했으니 그 지시를 순순히 따를 생각이었다.

“우리가 그놈의 뭘 믿고?”

아까 바닥에 주저앉았던 백인 여자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놈은 살인자야. 살인자. 우리를 가둬놨다가 죽일 생각이었겠지.”

“맞아.”

마찬가지로 가족을 잃은 흑인 남자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예런이 그랬잖아.”

“예런? 예런은 믿을 만한가? 그 새끼는 정신병자라고.”

사람들이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이진서가 말하는 대로 순순히 안전 가옥 안에 있어야 한다는 의견과, 안전 가옥 안에 들어가 있으면 안 된다는 의견.

그런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존은 소년과 소녀를 돌아봤다. 그들 역시 어찌할 줄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

“일단 너희부터 안으로 들어가자.”

“그는 괜찮을까요?”

여기서 말하는 ‘그’는 당연하게도 이진서였다. 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틀림없이.”

물론 그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겠지만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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