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개체 하나하나가 다른 리저드들의 왕에 맞먹는다는, 크론 리저드. 행성의 살아있는 신이자, 그들의 어머니인 크론은 그중에서도 특출한 열 명을 뽑아, ‘크론의 전사’란 호칭을 붙였다.
베스타스 제독의 17 함장, 그린돈은 바로 그런 크론의 전사 출신이었다. 날고 기는 많은 함장들 중에 열일곱 번째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무력은 입증이 된 것이다.
그는 눈앞의 인간들을 바라본다. 자신의 ‘음식’으로 제공한 화성인들. 그들은 잔뜩 공포에 질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그들을 보며 쩝쩝 입맛을 다셨다.
“오, 오지 마!”
“죽어라, 괴물!”
그들은 저마다 무기를 들었다. 그린돈은 웃었다. 그들은 음식임과 동시에, 그를 즐겁게 해줄 유흥거리이기도 했다. 그들이 무기를 들 수 있었던 건, 그가 그렇게 ‘지시’했기 때문이다.
곧, 그들이 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신호탄을 울린 것은 소총. 그러나 고작 희귀 등급 아이템인 소총으로 그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탄환은 허무하게 튕겨져 나간다.
그린돈은 탄환 비를 무시하고 달려들어, 머리로 그에게 소총을 발사한 화성인의 가슴을 들이받았다. 뼈 채로 그대로 으스러지고 말았다. 그는 으스러진 화성인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 상태에서 가볍게 벽에 휘두르자 벽이 무너져내린다. 물론 화성인의 머리와 몸은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췄다.
다른 화성인들은 이제 저항의 의지를 상실하고, 잔뜩 공포에 질린 얼굴로 도망쳐다닐 뿐이었다.
그린돈은 그들을 바로 쫓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이 그에게 도망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천천히 이 유희를 즐길 생각이었다.
한편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그런 그린돈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그는 화성의 군주인, 예런 일리아티.
‘강하군.’
먹이로 투입된 플레이어들이 약한 게 아니다. 저들 대부분은 화성인들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플레이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압도적으로’ 당했다.
그 정도로 그린돈이 괴물이라는 방증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당할 생각은 없다.’
그에겐 나름의 계획이 존재했다. 바로, 이이제이(以夷伐夷). 그린돈을 지구로 보내 궁극적으로는 지구인들과 공멸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그는 멀지 않은 미래에, 지구에서 화성을 침공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주 상인과 접촉해, 화성인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독자적인 활로를 찾던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그가 아무리 대비를 하더라도, 지구의 침공을 막기는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부터도 지구인들은 평균적으로 화성인들보다 강했다.
반년 넘게 시간이 흐른 지금, 그 격차가 커졌으면 커졌지, 작아지지는 않았으리라. 특히 그들의 리더인 이진서는 얼마나 강해졌을지 그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즉, 그린돈은 현재 그가 직면한 위협이나, 지구는 미래에 찾아올 위협이라 할 수 있었다. 현재의 위협을 이용해 미래의 위협을 늦출 수 있다면 그것보다 베스트는 없으리라.
그러나 그의 계획엔 한 가지 허점이 존재했다. 바로 그것은 힘의 균형이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기울 경우, 그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위협은 찾아올 거라는 걸.
그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기에, 어느 한쪽이 쉬이 이기지 못하도록 균형을 맞춰줄 생각이었다. 그는 먼저 저울질을 했다. 그린돈과 지구인들, 과연 어느 쪽이 더 강한가.
쾅!
생각을 이어나가던 그때, 그린돈이 포식을 끝마쳤다. 한층 더 커진 몸을 자랑하며 그는 벽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고작 주먹 한 방. 하지만 그 결과는 ‘고작’이 아니었다.
벽이 우르르 무너진다. 아니, 아예 벽이 무너지는 것을 넘어 건물 전체가 무너져내렸다. 건물을 지키던 화성인들이 당황해 무기를 들고 그에게 겨눴으나, 곧 내리고 말았다.
- 나를 향해 무기를 든 거냐? 미천한 벌레들 주제에.
화성인들은 무기를 떨구고,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 사, 살려주십시오!
압도적인 힘에서 우러나오는 원초적인 공포. 저러한 공포는 이진서에게는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리 지구가 대단하다 하더라도, 저 괴물을 쓰러트리진 못할 거다.’
둘 중 우위에 서 있는 것은 그린돈 쪽이라는 걸. 아무리 지구가 강하다 하더라도, 그린돈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는 걸… 때문에 그는 지구에 선전포고문을 보냈다.
선전포고문을 보내, 지구인들이 경각심이 들게 만들어 그린돈에 대해 대비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한 번으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겠지. 다음은 그린돈의 사진을 보내야겠군.’
그린돈의 사진을 받는다면, 스펙을 전해 듣는다면 그들 역시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생각을 마친 그는 화성인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고 있는 그린돈을 막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획된 거긴 하지만, 너무 과해.’
***
피로가 어느 정도 사라지자, 나는 통찰안의 3단계 시험을 보기로 했다.
X-347에서 우주 전함을 상대하며 통찰안의 3단계 시험에 대한 요건을 충족했다. 3단계 시험의 제한 시간은 일주일.
동화 세계에서 시간이 느리게 흐른 탓에 제한 시간이 지나진 않았지만, 이제 5일 남았다. 통찰안의 시험을 보지 않는다면 패널티는 무려 통찰안의 안에 갇혀 망령이 되는 것.
어차피 반드시 봐야 하니, 여유로운 지금 볼 생각이었다.
[통찰안의 3단계 시험장 안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그래.’
[통찰안의 3단계 시험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내가 하늘 위에서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황하지 않고 균형을 잡아, 지상을 내려다본다. 지상이 내려다보이지 않을 정도의 까마득한 높이.
마력을 발에 실어 활공 속도를 줄인다. 다음 순간, 나는 몸을 살짝 옆으로 틀었다. 붉은색 창이 나를 스치듯 지나간다. 고개를 든다. 머리에 헤일로가 달린, 붉은 머리 여자.
<제라>
이번 3단계 시험의 시험관으로 추측되는, 제라라는 이름의 ‘천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감히 인간 주제에 이곳까지 들어오다니…”
제라는 불쾌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또다시 창을 들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다. 시험장 안에서는 플레이어 시스템으로 얻은 아이템이나 스킬들을 일체 사용할 수 없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내 본연의 ‘노력’으로 얻은 것들. 나는 중얼거렸다.
“미티어 스웜.”
하늘에서 거대한 운석이 그녀를 향해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제라는 운석을 보며 코웃음치고는, 운석을 향해 중얼거렸다.
“흩어 없어져라.”
운석이 마치 폭죽이라도 된 것처럼, 일제히 터졌다. 산산조각 나며, 그 파편들이 우수수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나는 파편들을 지르밟으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제라는 당황하지 않고, 손을 들어 내 주먹을 막아낸다. 펑! 그녀의 몸이 뒤로 밀려났으나, 그건 내 몸 역시 마찬가지였다. 난 살짝 당황했다.
아무리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라곤 하지만, 내 능력치는 그대로다. 그런 내 육탄 공격을 막아냈다는 것은 상대 역시 나에 못지 않은 육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녀의 손에서 창이 뻗어졌고, 나는 발로 그녀의 가슴을 걷어차는 것으로 응수했다. 또다시 내게 뻗어지는 창. 그 속도는 일순간 나‘조차’ 놓칠 정도로 빨랐다.
‘하기야, 뭐…’
생각해보면, 제라가 저런 육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통찰안의 시험관들은 통찰안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패배하여, 통찰안에 갇힌 존재들.
다시 말하면, 이전까지의 통찰안의 시험은 통과했다는 소리다. 궁극의 육체를 가지게 해주는 통찰안의 2단계 시험을 통과했다면, 나와 비슷한 육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말이 된다.
나는 혀로 입술을 축이며 생각했다. 비슷한 육체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쪽이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이 몇 개 없다. 아니, 오히려 밀린다고 봐야 한다.
제라의 등에 달린 날개와, 손에 쥐고 있는 창.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격차를 줄일 방법이 뭐가 있을까, 주위를 두리번 살피던 나는 이내 속으로 중얼거렸다.
‘텔레포트.’
지금의 환경- 하늘 위는 싸우기에 적합하지 않다. 지상으로 이동한 이유였다.
“감히, 내게서 숨겠다는 거냐.”
제라의 진노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그녀의 창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내 몸은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췄다. 그렇게 텔레포트를 사용해 도착한 곳은 지상의 숲.
대략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그러나, 그런 육체 능력을 가진 제라라면 쫓아오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주변을 살피던 나는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막대기를 만들었다.
<평범한 나무 막대기>
등급도 없는 평범한 막대기. 그러나 어차피 상관없다. 내 마력이 투입된다면, 그 막대기는 바다도 가를 수 있는 막대기가 될 테니까. 나는 막대기 하나를 더 꺾어 바닥에 꽂았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봤다. 번쩍. 이어지는 붉은 섬광.
나는 막대기로 붉은 섬광을 쳐냈다. 쾅! 폭음과 함께, 내 몸이 뒤로 밀려난다. 나무들이 우수수 무너진다. 붉은 섬광- 창이 떨어진 곳은 물론 그것보다 더 멀쩡하지 않았다.
숲은 글자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그런 막대기로 이 몸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제라는 어이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말에 쓰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내려왔잖습니까.”
“뭐라고? 설마 지상이라면 이 몸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제라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그녀를 향해 막대기를 뻗었기 때문이다. 마력을 끌어올린 순간적인 가속. 그녀는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막대기에 얻어맞았다.
그녀의 얼굴에 당황함이 어렸다.
“이게 무슨…”
“이곳은 당신의 영역이 아닌, 제 영역입니다.”
나는 슬며시 바닥에 꽂은 막대기를 바라봤다.
새하얀 순백의 기운이 넘실거린다. 신력(神力). 신이 사용할 수 있다는 힘. 그동안은 신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사용법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사용법에 대해 알았다.
신력을 실어, 가볍게 바닥에 내리꽂아 대지에 신력을 전달하는 것. 시나트리온은 이 기술을 ‘성역 선포’라고 불렀다. 그녀도 성역 선포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인지 눈을 크게 떴다.
“성역이라니… 어떻게 인간이…”
“미안하게 됐습니다. 다음에 더 좋은 얼굴로 봤으면 좋겠네요.”
“4단계 시험을 통과할 거라고 생각…”
그녀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막대기에 마력을 실은 채, 있는 힘껏 그녀를 향해 휘둘렀기 때문이다. 쾅! 강렬한 폭음과 함께, 그걸로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