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컴퍼니에선 어째서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는 거지? 그 신의 육체라는 게… 발라르의 손에 들어가도 상관없다는 건가?”
[아뇨, 그저 대처를 할 필요가 없는 것뿐입니다.]
“??”
[신의 육체를 지키고 있는 이는 설령 발라르라 하더라도 어찌할 수 없는 강대한 존재니까요.]
“그게 누군데?”
[최초의 계약자입니다.]
“최초의… 계약자?”
[우리 컴퍼니와 최초로 계약을 맺은 위대한 존재.]
나는 수긍했다.
“강하겠네.”
평범한 인간 배달부였던 내가 고작 일 년 조금 넘는 시간 만에, 신조차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이 됐다.
내가 비록 특수한 상황에 처해있긴 하지만, 플레이어 시스템의 도움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최초의 계약자는 적어도 수만 년 이상 컴퍼니와 계약을 맺어왔다.
원래부터도 평범한 존재가 아니었을 확률이 높고, 플레이어 시스템을 통해 그동안 쌓아온 힘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설령, 발라르라 하더라도 그에게 미치지는 못하리라.
나와 발라르가 그랬던 것처럼, 그와 발라르 사이에도 아득한 시간적 간극이 있을 테니 말이다.
[단순히 강한 것 이외에도, 그는 컴퍼니의 영향력에 못지않은 엄청난 영향력을 이 우주에 행사하고 있습니다. 플레이어, 이진서와도 연관이 있으니까요.]
“나와? 무슨 연관이 있는데?”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초의 계약자가 나와 연관이 있다고? 나로서는 금시초문이었다.
[그는 우주에서 가장 거대한 거래소, 하이낸스(Hinance)를 비롯한 수십 개의 거래소를 운영 중입니다]
해외에서 가장 유명한 거래소. 국내 거래소에서 상장하지 않은 코인뿐만 아니라, 스테이킹 서비스, 마진 거래 등과 같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나도 이용했던 거래소였다.
그래, 지금까지는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 하이낸스가 알고 보니, 최초의 계약자라는 외계인이 운영했던 거래소였단다. 해외에서만 유명했던 것이 아니라, 알고 보니 우주에서 가장 유명했다고?
이게 말이 되나?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곧 결론을 내렸다.
‘말이 된다.’
기프트는 우주에서 가장 귀한 화폐다. 그 우주 상인들조차 기프트라면 환장을 한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오 년 전쯤, 지구의 코인 거래소에서는 그런 기프트가 거래됐다.
그것도, 수백 억 개에 달하는 기프트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우주적 존재가 개입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기프트는 어떻게 유통됐단 말인가.
지금까지는 발라르의 소행이라 생각해왔지만…
지구의 기프트를 노려서 테라포밍을 한 녀석이 그런 식으로 기프트를 풀어놓을 리가 없다. 해서 다른 목적이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애초부터 녀석의 소행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면, 그 최초의 계약자라는 존재는 어째서 그런 일을 한 건데?”
[그는 경매장 역시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구를 제일 먼저 발견하고, 모종의 가공을 마친 뒤 지구를 경매장에 넘긴 게 바로 그입니다. 그리고 발라르가 지구를 구매한 건, 그 이후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거 완전 개새끼네.”
그가 지구를 경매장이라는 곳에 넘기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 모든 일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녀석은 어떻게 보면 발라르보다 더 악질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복수심 같은 건 떠오르지 않았다. 그만큼 ‘최초의 계약자’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가 압도적이기 때문일까? 곧, 시스템의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그는 철저히 이득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일 뿐입니다.]
“강한 건 알겠는데, 믿을 수는 있고? 그 이득이라는 걸 따라서, 너희를 배신하고 발라르 쪽에 붙는 건 아닌가?”
[그럴 리는 없습니다. 저희 컴퍼니보다, 그에게 더 많은 이득을 제공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 리 없으니까요.]
“그건… 맞네.”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었다. 아무리 발라르가 대단하더라도 전 우주를 ‘고객’으로 삼은 컴퍼니보다 많은 이득을 줄 수 있을 리는 없으니 말이다.
“일단은 알았어.”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은 어느 정도 풀렸다. 하지만…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다. 입을 열기도 전에 시스템 메시지가 먼저 떠올랐다.
[컴퍼니에서 플레이어, 이진서에게 거는 기대는 큽니다. 언젠가는 플레이어, 이진서에게 공개될 정보였을 뿐입니다.]
즉, 언젠가는 공개될 정보를 미리 알려준 것뿐이라는 것이다. 어딘가 석연찮은 대답이긴 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더 묻는다 한들, 알려줄 것 같지도 않았고.
시스템과의 대화를 마친 나는 문득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잔뜩 긴장 어린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룹원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 그들은 내가 불안한 모양이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왜 그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겁니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리더.”
그들은 어려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이내, 주춤거리더니 완전히 모습을 감춰버렸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신의 선물’의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일 것이다.
내 성격과 말투가 냉소적으로 변한 것은. 물론 나는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신의 선물 때문에 이렇게 변해버렸으니, 신의 선물을 제거하면 된다.
시간 회귀 물약을 마신다면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깔끔하게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동화 세계에 있을 동안만이라도 시험해보고 싶었다. 이 능력의 ‘한계’를. 때마침 서문주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리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뭡니까?”
“리더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습니다.”
마치 내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한 말이었다.
***
“지금의 리더는… 강해졌습니다.”
서문주의 말에 한승주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겠거든요?”
분명 이진서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진서는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
‘내 센트리건들은 진서 씨를 상대할 목적으로 만들었어.’
물론 그녀가 이진서에게 악의를 품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녀가 알고 있는 이 중 가장 강한 이가 이진서였기 때문이다. 그녀도 이진서에게 큰 상처를 입힐 거란 기대를 하진 않았다.
아무리 그녀가 센트리건들을 공들여 만들었다고 해도, 센트리건의 한계는 명확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저렇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녀는 이진서가 좀비가 되며 더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머쓱한 얼굴로 입을 다무는 서문주에, 강순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더 말해 봐요, 의사 양반.”
“인지 능력, 육체 능력, 심지어 마력까지… 전부 다 6개월 전에 봤던 리더를 아득히 뛰어넘었습니다.”
“‘아득히’까지?”
“예.”
그들이 보는 화면에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능력 측정 기구. 서문주와 아나스타샤가 합작품으로 만든, 기구를 통해 능력치를 측정할 수 있는 기구다.
본래의 목적은 그랬지만 플레이어들의 한계를 끌어낼 수 있기에, 지금은 훈련용으로 더 많이 이용되고 있었다. 그런 능력 측정 기구 안에 발을 들인 이진서는 태연하게 서 있었다.
“확실히 능력 측정 기구라면… 리더의 육체 능력을 정확히 테스트할 수 있겠군?”
이전에 능력 측정 기구를 많이 이용했던 강순철이었다. 곧 기구 안에 중력이 가해진다. 동시에 기구 계기판에 달린 숫자 역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10, 20, 30…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육체 능력치를 측정한 수치였다. 즉, 수치 50에서 버틴다면 50의 육체 능력치(근사치) 이상을 가졌다고 해석할 수 있는 셈이었다.
숫자는 200을 돌파하고, 300을 돌파하고… 끝없이 올라가더니, 곧 최대치인 500에 도달했다. 능력 측정 기구로 행사할 수 있는 중력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진서는 여전히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한승주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거 뭐 오류 난 거 아니에요?”
“그러기엔 저기 안에 있는 물건들 보세요.”
기구 내부에 있던 물병은 물론 테이블조차 완전히 찌그러져 버렸다. 멀쩡한 것은 오로지 이진서 하나뿐이었다. 즉, 능력 측정 기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면 신체 능력치가 최소 500이 넘는다는 뜻?”
“아니, 600은 된다고 봐야 하겠죠.”
“신체 능력치 600…”
현재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의 능력치는 평균 90~100 정도다. 기프트로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한계치인 60에, 전설 등급 아이템까지 장착했다는 계산으로 나온 수치다.
거기에 전설 등급 스킬까지 습득한 간부들의 능력치는 150~200 정도다. 강순철의 육체 능력치가 딱 200이었다. 이는, 그의 입장에서는 거의 한계에 도달한 수치.
그는 근력만 놓고 본다면 이진서와 어느 정도 맞먹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그렇게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착각에 불과했다.
“600…”
“아직 확신하긴 이릅니다.”
“??”
“600이 아니라, 그 이상일지도 모르니까요. 뭐, 리더가 스킬을 사용하셨는지도 모르니 그 이하일 수도 있겠지만요.”
서문주의 말에 강순철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나도 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저렇게 괴물이 될 수 있는 건가?”
“뱁새가 황새 쫓아간다고 하다가 다쳐요.”
한승주의 말에 강순철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내가 뱁새라는 거야?”
“진서 씨는 저 상태에서도 이성을 유지하고 있잖아요. 아저씨도 그럴 자신 있어요?”
또다시 입을 다물고 마는 강순철이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싶진 않았으니 말이다.
“……”
“엄밀히 말하면 리더도 달라지긴 했습니다. 바이러스의 영향 때문인지 성격 자체가 변해버렸죠.”
서문주의 말에 이진서의 눈빛을 떠올리며, 한승주는 몸을 떨었다.
“저거, 원래대로 돌아오긴 하는 거예요?”
“아마 치료한다면 원래대로 돌아올 겁니다. 뭐, 지금의 리더에게는 그럴 생각이 없는 듯 보이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문주 씨에게도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이네요.”
“리더는 저희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데이터’니까요.”
바이러스에 감염되고도, 이성을 잃지 않은 유일한 인간. 아니, 엄밀히 말하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발라르였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발라르처럼 매드 사이언티스트 되는 거 아니에요?”
“그건… 아닙니다.”
그들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영상 속, 기구 바깥으로 나온 이진서는 기구를 향해 마력을 투사했다. 기구는 그대로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찌그러져 버렸다.
한승주와 강순철은 할 말을 잃었다.
“저거 싸이코네…”
곧 입을 연 한승주의 한마디에, 강순철이 나지막이 말했다.
“저거에게 예의를, 아니 리더에게 예의를 지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