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발라르가 바이러스를 연구한 것처럼, 서문주 역시 지난 반년간 바이러스를 연구해왔다. 비록 백신을 만들어내진 못했지만,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도는 결코 발라르에 뒤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건… 뭐지?’
그가 보고 있는 모니터엔 이진서의 혈관 속 풍경이 담겨 있었다. 그가 투입한 수십 개의 나노 로봇이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들어온 혈관 속은 격전지였다.
이진서의 세포들은 침입한 바이러스에 맞서서 살아있는 병사들처럼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 죽고, 죽이고… 그 방증으로 주변엔 세포들의 시체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그래,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세포들은 마치, 휴전 협정을 맺기라도 한 것처럼 더 이상 싸우지 않기 시작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회색 세포.’
바이러스와 이진서의 세포들 중에 융합하는 개체들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합쳐진 개체들은 회색빛을 띠고 있었는데, 그 세포들의 생김새는 점차 변형되기 시작했다.
변형에는 시간이 필요한지 바로 변형된 것은 아니었지만 최초의 개체는 서문주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변형됐다. 놀랍게도 그 세포는 이진서의 형체를 하고 있었다.
‘인간의 형체를 띤 세포라니…’
도저히 믿기 힘들었지만, 그가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때였다. 이진서의 형체를 한 세포가 느닷없이 나노 로봇을 향해 달려들었다.
서문주가 무슨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나노 로봇은 세포에 의해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후엔 그대로 암전. 서둘러 다른 나노 로봇으로 모니터를 돌렸지만, 다른 나노 로봇 역시 마찬가지였다.
‘줄곧 무시하다가 어째서…’
그는 나노 로봇을 포기하고, 안전 가옥 내부로 모니터를 돌렸다. 여전히 이진서는 의자에 앉아 있다. 그러나… 그는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이진서에게 몰려있던 좀비들이.
‘무릎을 꿇고 있어?’
마치 왕이라도 된 것처럼 그를 향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좀비들의 지능이 점차 발달된다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길들일 수 없는 짐승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진서를 향해 무릎을 꿇고 있다. 그는 순간적으로 전율마저 일 정도였다.
‘리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그는 속으로 이진서를 향해 물었지만, 대답이 들려올 리는 없었다. 그때, 강순철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아무래도 병력을 대기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이내, 그는 말을 수정한다. 이진서다. 그런 그가 만에 하나, 좀비가 됐다면 그는 막을 수 없다. 그룹원들이 모조리 그를 향해 달려든다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안전 가옥부터 보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강순철은 무슨 일인지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않아 답답한 심정이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듯 군말 없이 바깥으로 나갔다. 서문주는 다시 모니터를 바라봤다.
이진서가 앉아 있던 의자엔 아무도 없었다.
“??”
서문주는 황급히 카메라를 돌렸다. 그러나 카메라는 곧 암전돼버렸다. 그는 가운을 걸치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안전 가옥을 부수고 바깥으로 나온 이진서를.
“리더… 괜찮으십니까!?”
강순철과 그룹원들이 긴장한 눈빛으로 그를 향해 물었다. 그러나 그에게선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들은 눈을 질끈 감고는 병장기를 꺼내, 그에게 겨눴다.
“저희는 리더가 지시한 것을 받들 뿐입니다.”
그때, 이진서의 뒤를 따라 나온 좀비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보아하니 잘 안된 모양이네요.”
쓱 뒤를 돌아보니 한승주였다.
“예.”
“센트리건 사용할까요?”
지난 반년간, 한승주도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녀는 스킬을 사용해 다양한 종류의 센트리건을 제조했다. 그 숫자는 무려 수천 기에 이르렀다.
포화를 맞는다면, 좀비는 물론 간부급 플레이어들마저- 당연히 직접 시험해본 적은 없지만- 벌집으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엄청난 위력을 가진 센트리건들이었다.
“의미가 있을까요?”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문주는 부정적이었다. 상대는 간부급 플레이어가 아니다. 간부들이 모두 다 달려들어도 승산이 희박한 괴물이었다.
그런 그가 만약 바이러스로 육체가 강화되기까지 했다면… 그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승산은 아예 없다고.
“진서 씨 상대로는 기대도 하지 않아요. 그래도, 일반 좀비들 상대로는 유효할 거예요.”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센트리건들이 안전 가옥을 향해 불을 뿜기 시작했다. 미스릴로 이루어진 탄환들과, 플라즈마 광선들. 강순철을 비롯한 플레이어들이 뒤로 물러선다.
지면을 박살내고, 흙먼지가 일어날 때까지 센트리건들은 멈추지 않았다.
“중지.”
한승주는 중얼거렸다. 그녀는 조금 불안한 얼굴이었다. 이진서가 죽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하지만, 만약 죽었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마침내 흙먼지가 걷히고, 그 모습이 드러난다. 그의 곁에 서 있던 좀비들은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진서는 멀쩡했다.
그녀는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호한 심정이었다. 그가 걷기 시작했다. 강순철이 소리쳤다.
“모두 달려들어! 시간을 번다!”
말을 마친 강순철이 이진서를 향해 달려들었다. 도약한 그가 검을 꺼낸다. 그가 들고 있는 검은 플레이어 상점에서 구매한 것이 아닌, 낙원의 보물, ‘지그하르트의 광선검’이었다.
닿는 모든 것을 베어버릴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옵션을 지닌. 그러나 그는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장비의 옵션이라는 것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팅!
마력 보호막에 맞은 그의 광선검이 튕겨 나간다. 그는 이를 악물고 재차 광선검을 쥔 채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 했다. 이진서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피, 피해요!”
뒤에서 들려오는 한승주의 목소리. 그러나 피하기에 너무 늦었다는 사실은 그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에 맺히는 백색의 구체. 구체에 맞은 그의 몸이 꿰뚫린다.
“미친… 다시 발사!”
센트리건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진서는 탄환을 맞아주지 않았다. 그의 등에서 하얀색의 날개가 펼쳐진다. 아우리엘의 날개. 그의 몸이 사라진다.
그녀는 두리번거리며 그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보지 못하지만, 그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바로 센트리건. 자동 조종 기능을 달고 있는 센트리건의 포대가 쉴 새 없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펑! 센트리건이 폭발했다.
폭발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펑! 펑! 연쇄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센트리건들이 폭발했다. 그녀는 피눈물이라도 흘릴 법한 심정이었다.
“내, 내가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데…!”
그녀는 광선총을 들어, 다시 모습을 드러낸 이진서에게 겨눴다.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
이성을 잃고, 방아쇠를 당긴 그녀의 총구가 불을 뿜는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별 의미는 없었다. 손으로 광선을 쳐낸 그의 몸이 순간적으로 흩어 없어지더니,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한승주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아니, 방금 건 농담인데…”
이진서는 그녀에게도 손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그녀가 구체에 맞는 일은 없었다.
“리더, 정신 차리십쇼!”
서문주가 주먹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는 전투조가 아니었다. 이진서의 추천으로 그 역시 스킬과 능력치에 기프트를 투자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에게는 전투 경험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 이진서의 시선을 돌리는 것까진 좋았지만, 그다음의 상황은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이진서의 손가락이 그를 향해 뻗어진다.
구체에 맞은 그가 뒤로 날아가 부딪친다. 강순철은 이를 악물었다.
“리더, 정신 차리십쇼.”
이진서가 그를 바라본다. 분명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저 황금색 눈이 그를 내려다보는 듯한 환상에 빠졌다. 그의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마력? 아니, 이건 단순히 마력이란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었다. 마치 이 세계 전체가 그를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묶어놓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온다. 그는 온몸을 흔들었지만, 그에겐 애석하게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저항을 포기했다.
‘리더…’
그때, 그가 입을 열었다.
“정신은 아까 차렸는데.”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그는 귀를 의심하고 말았다.
“??”
그와 동시에 그를 묶어놓는 듯한 중압감 역시 사라졌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냥 시험해봤습니다.”
누가 시험을 이렇게 해? 라는 말을 간신히 삼킨 그가 입을 열었다.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했다면 모두 죽었을 겁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만약 이진서가 진심으로 그를 공격했다면, 그가 다시 일어날 수 있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제 배라도 갈라서 까드릴까요?”
하지만 강순철은 동시에 깨달았다. 이진서가 달라졌다는 걸. 평소 온화했던 그의 성격과 달리 지금은 냉소적이고 오만했다. 그러나 달라졌다는 걸 알아도 방법이 없었다.
그가 적대한다면, 그를 쓰러트릴 방법 따위는 그들에게 없었으니까.
‘의심스럽긴 하지만 리더가 맞다고 생각하는 편이…’
그에겐 최선이었다.
***
올림푸스.
신화 속에 나오는 올림푸스의 12신들이 거주하는 행성. 올림푸스는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외부의 세력은 감히 올림푸스를 노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올림푸스의 저력이 말 그대로 대단했기 때문이다. 컴퍼니와 직접 계약자인 12신들, 그리고 그들이 거느린 세력들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중 뛰어난 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전부 신의 반열에 들 정도였다. 그런 올림푸스 행성에 정체불명의 우주선이 착륙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헤르메스가 먼저 움직였다.
12신들 중에서도 ‘신속’의 권능을 가진 그는 드넓은 올림푸스 어디든 수 초 안에 이동할 수 있는 엄청난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순식간에 우주선의 앞에 도착했다.
“감히 우리 올림푸스에 침입한 담 큰 놈이라니…”
그때, 우주선의 문이 열렸다. 안에서 연기가 새어 나옴과 동시에, 그는 안에서 내리는 존재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아스클레피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