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코인 채굴-182화 (182/236)

182화

바닥에 움푹 팬 거대한 크레이터 위에서, 남자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강하시네요.”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힘 조절을 하긴 했지만, 저렇게 멀쩡히 서 있을 정도로 힘 조절을 한 건 아니다. 바닥에 팬 크레이터가 그 사실을 증명해준다.

그럼에도 그가 아무 상처 없이 멀쩡히 서 있다는 건… 그의 신체 능력이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는 방증이다. 확실히,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방금 통찰안으로 확인했을 때 그의 신체 능력은 다른 테라인과 비슷한 수준 혹은, 더 열악한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나도 어느 정도 방심하고 있던 것도 없잖아 있었다.

“어떻게 멀쩡한 거지? 아니, 물어볼 필요도 없겠네.”

나는 블링크를 사용해, 그의 앞에 도약했다. 그리고 그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퍽! 주먹에 맞은 그가 뒤로 날아간다. 다리에 마력을 불어넣어, 다리를 강화한 나는 땅을 박찼다.

땅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패며, 발사대가 균형을 잃고 기울어진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뒤로 날아가는 그가 점차 내게 가까워진다. 그는 나를 또렷이 바라보고 있었다.

‘인지 능력도 상급인가.’

저 정도면 그룹원들은 물론, 간부급조차 뛰어넘는다고 봐야 한다.

과연 히든 보스라는 걸 보여주듯 다른 좀비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만으론 내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애초에 내 신체 능력은 그를 아득히 뛰어넘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은 신체 능력이 전부가 아니니까. 나는 발라르를 향해 발을 휘둘렀다. 발에 얻어맞은 그가 날아간다.

이번엔 데미지가 꽤 있었는지, 입에서 피를 토해낸다. 그러나 나는 그를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다시 블링크를 사용해, 날아가는 그와의 거리를 좁힌다.

주먹을 휘두르고, 발로 걷어차고.

찰나의 순간, 반복하고 반복한다. 그 회차가 수십 번에 이르렀을 때, 그의 몸은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곤죽이 돼버렸다. 기이한 건, 그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

그러나 이내 나는 그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온몸에 생기는 검은 반점.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검은 반점은 빠르게 영역을 넓힌다. 일전에도 나는 비슷한 장면을 본 적 있었다.

‘바로 사람이 변이체로 변하는 장면.’

나는 그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있었다. 그는 바이러스를 자신의 몸에 심은 것이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한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관뒀다.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젠 완전히 좀비로 변한 그가 나를 바라본다.

“당신이 저를 돕지 않겠다면, 강제로 돕게 만드는 수밖에.”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나는 한숨을 쉬었다. 좀비로 변하면 강해진다. 이미 홍현기의 사례를 통해 입증됐다. 그러나 그건 홍현기의 경우가 특수해서다. 발라르는 홍현기와 다르다.

그는 홍현기처럼 미래시를 가지고 있지도, 천사화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단순히 신체 능력이 뛰어나졌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제가 지난 반년 동안 무엇을 한 줄 아십니까?”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알고 싶으시다니,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저는… 어스인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해왔습니다.”

“실험?”

썩 달갑지 않은 단어에 반문한 내게 그는 웃으며 말했다.

“뭐, 듣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의 생각을 읽은 나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그가 자행한 인체 실험이라는 건 생각보다 더 끔찍했다. 해부하는 것은 기본에, 팔다리를 재조립하기까지 했다.

그동안 끔찍한 장면을 많이 봐왔던 나조차 일순간 구역질이 올라왔을 정도로 말이다.

“아, 제 생각을 읽으실 수 있었나요? 이런… 당신 앞에서는 조금 조심해야겠네요.”

태연하게 물어오는 놈의 모습에 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미친놈.”

더는 대화가 불필요하다 느낀 나는 아공간 창고를 열었다. 뭘 꺼낼까 고민하다가 몽둥이를 꺼냈다. 미친개한테는 몽둥이가 약이니까. 물론 평범한 몽둥이는 아니다.

내가 아공간 창고에 평범한 몽둥이를 보관해놨을 리는 없으니까.

<최초의 세계수, 이그드라실의 가지>

종류 : 무기

등급 : 신화(God)

내구 : ∞/∞

옵션 : 파괴 불가, 불살(不殺), 체력 +77.77, 체력 회복 속도 +777%.

전에 나는 세계수의 묘목을 심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건 그때 봤던 묘목이 아닌 무려 ‘최초의 세계수’라는 타이틀을 가진 나무의 가지였다.

묘목조차 상당한 신력을 품고 있었는데, 최초의 세계수는 얼마나 많은 신력을 품고 있을 것이며. 그 가지의 효능은 얼마나 영험할 것이란 말인가.

비록 대단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불살(不殺)의 기능이 붙어 있어, 이 가지를 휘둘러 죽인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오히려 그 덕에 죽일 걱정 없이 마음껏 팰 수 있었다.

“미안하다고, 살려달라고 빌게 해줄게.”

다짐하듯 말한 나는 웃는 그를 향해 마력을 실은 이그드라실의 가지를 휘둘렀다. 그의 머리가 순간적으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나간다. 그러나 그의 머리는 금세 복구된다.

시간이 역행한 것이 아니라, 이 몽둥이의 신성이 그를 재생한 것이다. 그의 얼굴에 당혹한 기색이 어렸다. 그러나 내 몽둥이는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몽둥이가 호쾌하게 그의 상반신을 날려버렸다.

하반신만 남은 그의 몸이 툭 앞으로 기울어진다. 또다시 재생되는 신체를 나는 발로 짓밟으면서 가지를 내려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쉴 새 없이. 그러나 별로 통쾌하지는 않았다.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저항하기는커녕, 이 상황 자체를 즐기는 듯 보였으니 말이다. 이래서는 오히려 그에게 말려드는 듯한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벌써 끝인가요? 생각보다 별거 아니군요.”

“쯧, 그만하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그에게 쇠사슬을 던졌다. 쇠사슬은 그의 몸에 파고들어, 그를 단단히 구속했다. 그는 입을 열었지만 쇠사슬은 그의 입술 역시 칭칭 감아버렸다.

그는 강제로 입을 다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몸을 흔들었지만 그럴수록 그의 몸을 단단히 조일 뿐이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그를 죽이고 싶지만, 그에게 캐낼 정보가 아직 남아 있었고, 무엇보다도 동화 세계의 엔딩(Ending)을 보기 위해선 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낙원인들이 바이러스 백신이 완성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좀비들은 시간을 줄 생각이 없습니다. 당신이 등장인물이 돼 직접 이 동화를 끝내십시오.]

동화를 끝내라는 이야기는 백신이 완성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백신을 완성할 수 있을 만한 능력자는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저 발라르다.

즉, 나는 녀석을 구슬려서 백신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뭐, 강제로 만들게 하면 그만이지.’

어차피 시간은 많았다. 현실 시간의 세 시간이, 이곳에서는 반년이라고 했으니까. 타인의 정신을 조종할 수 있는 스킬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그때였다.

나는 내 팔에 퍼지는 검은색의 반점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감염됐었나.’

언제 감염됐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모종의 수작을 부린 것이 틀림없다. 숨겨둔 한 수 정도는 있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시간 회귀의 물약을 복용했다. 과연 시간 회귀의 물약의 효과는 절대적이라 검은색의 반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쇠사슬에 묶인 그를 안전 가옥에 가두고, 도시로 돌아왔을 때 나는 내 팔에 또다시 검은색의 반점이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이들이 좀비로 변해버렸다.

“이건…”

의아해하는 내게 방호복을 걸친 강순철이 다가왔다.

“리더, 방호복을 입고 있던 이들을 제외하면 전부 바이러스에 감염됐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문주 말로는… 이 지역 전체에 바이러스가 퍼진 것 같답니다.”

그는 이내 정정했다.

“아니, 어쩌면 이 행성 전체에.”

그제야 나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방금 전, 나는 시간 회귀의 물약을 사용함과 동시에 다시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대기 중에 퍼진 바이러스를 모두 제거할 때까지는 설령 백신을 만들어도 의미가 없다는 뜻.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곳에 온 약 이백 명에 달하는 그룹원들을 제외하곤, 나머진 은신처에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 오기 전, 아예 국회의사당 전체를 안전 가옥으로 만들었으니 그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일단…”

급선무는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그룹원들을 구하는 것이다.

“예, 저희도 돕겠습니다.”

“조심하십쇼.”

고개를 끄덕이는 강순철을 뒤로, 난 블링크를 사용해, 방호복을 뒤집어쓴 그룹원들에게 달려들고 있는 좀비에게 도약했다. 그리고 그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제압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나머지 그룹원들은 일반 그룹원들로, 좀비가 돼서도 그리 강하다 말하긴 힘든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전부 안전 가옥 안에 가둔 나는…

나 역시, 안전 가옥 안으로 들어갔다. 좀비들이 내게 득달같이 달려들었지만, 상관하지 않고 나는 꿋꿋하게 안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뭐, 괜찮습니다. 좀비가 될 일은 없을 테니까요.”

설령 좀비가 된다 하더라도, 이성을 잃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신체 능력과, 이 눈을 믿고 있었다. 나는 내 어깨를 잠식한 검은 반점을 손으로 매만진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검은 반점이 꿈틀꿈틀거린다.

체념한 듯한 서문주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 하지만 만약 리더가 좀비가 되면, 우리는 끝장입니다.

그 사실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좀비가 돼서 지금 내 신체 능력이 상승한다면… 게다가 내가 보유한 스킬까지 생각한다면, 유일무이한 좀비가 탄생하는 셈이다.

그건 끔찍한 재앙일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자신 있지만, 사실 100%라고 장담하긴 어렵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런 모험을 감행하는 이유는 발라르에 대한 일종의 호승심과 호기심 때문이었다.

‘평범한 테라인, 아니 평범하다 말할 순 없나… 어쨌거나, 발라르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로 이성을 유지했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겠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발라르를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는 강한 직감. 어떤 결과를 불러오게 될지는 시간이 흐른다면 알 수 있으리라. 나는 눈을 감았다.

1초, 2초…

시간이 점차 흘러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한 시간이 흘렀을 때 검은 반점은 내 어깨까지 올라왔으며, 세 시간이 흘렀을 때는 전신에 검은 반점이 퍼졌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