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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178화 (178/236)

178화

도시 중심부에는 거대한 돔형 건물이 있다.

과거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그런 국회의사당의 지하엔 벙커가 있다. 비록 버려지긴 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저항군의 은신처가 되기에 더없이 적합한 공간이었다.

그 내부는 수백 명은커녕 수십 명조차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협소했지만, 공간 확장 기능이 달린 안전 가옥을 여러 채 설치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했다.

다만, 그로 인해 벙커 내부는 판자촌에 가까웠다. 주택 사이사이엔 간신히 사람 한 명 지나다닐 틈이 전부였다.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안전 가옥 내부에서 생활하곤 했다.

하지만 한 사람만은 예외였다.

저항군의 리더, 강순철. 그는 안전 가옥에서 생활하기는커녕 거주조차 하지 않았다. 안전 가옥 내부에서 생활하면 오히려 안일해질 거라는 그 나름의 철학이 담긴 이유 때문이었다.

비록 그의 집은 화장실과 몸 겨우 뉠 만한 방 한 칸이 전부였지만 그 정도 불편함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그였다. 화장실 내부, 욕실의 창문을 바라본다. 턱수염이 길게 자라있다.

면도 크림을 바른 후, 면도기로 턱수염을 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더럽던 인상이 조금은 나아졌다.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 짓던 그는 선명한 주름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늙었네.’

거울을 확인할 때마다 그는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곤 했다. 누군가 들으면 유난이라 생각할 것이다. 이미 50대를 넘긴 나이다. 노화는 필연(必然)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가 이 세계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이 정도로 늙지는 않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기야, 적잖은 시간이 흘렀다. 반년. 이 세계에 들어온 지 벌써 반년째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낙원의 갑작스런 기습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을 이끌고 그는 도망쳤다. 그들을 맞이한 것은 헬멧을 뒤집어쓰고 있는 낙원군 수백이었다.

물론 낙원군은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플라즈마를 이용한 첨단 무기로 무장하고 있긴 하지만, 그들의 신체 능력은 그들과 비교하면 별 볼 일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낙원군과 달리, 그들은 별다른 준비를 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그들의 적은 낙원군뿐만이 아니었다.

한때 그들의 동료였던 ‘좀비’들 역시 상대해야만 했다.

그 숫자는 한둘이 아닌, 무려 수천에 이르렀다. 물론 마음을 굳게 먹는다면 상대할 수 있겠지만, 한때 그들의 동료였던 존재들을 상대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간신히 퇴각한 그는 그를 따라온 이들과 함께 저항군을 창설했고, 낙원에 대한 테러를 벌이고, 낙원군에 의해 은신처가 발각돼서 은신처를 옮기고…

이 국회의사당은 벌써 세 번째 은신처였다.

그동안의 일을 회상하니, 그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 리더, 어디 계신 겁니까.’

자신들을 지켜주겠다던 리더- 이진서는 급한 일이 생겨서 떠나야 한다고, 그리고 곧 돌아온다고 말하고는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당시 낙원의 사절로 파견됐던 그는 쉘터에 돌아온 후에야 그 사실을 전해 들었다. 그가 말한 대로 금방 돌아오겠거니 했지만, 그 이후로 이진서는 지금까지 감감무소식.

어쩔 수 없이 한승주를 도와 지금까지 그룹원들을 이끌어 왔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그는 이진서를 떠올리곤 했다.

‘리더만 있었다면…’

이렇게 도망자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이내,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털어낸다. 약해지면 안 된다. 그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다른 사람들 역시 불안해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리더가 돌아올 때까지 반드시… 버티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마친 그는 그와 함께 행동하는 ‘정예 그룹원’들과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이제는 그들의 활동 시간이었다. 저항군이라는 이름답게 그들의 활동은 테러였다.

당연히 그 대상은 낙원이었다. 망토를 뒤집어쓴 그들의 몸이 투명해진다. 인비저빌리티 기능이 달린 아이템으로, 적외선 카메라조차 속일 수 있는 고급의 물건이었다.

혹시 모를 생화학 무기를 대비해, 마스크를 착용한 그들은 도시 내에 미리 준비해놓은 수송기에 탑승했다. 도시에서 발견한 낡은 수송기를 기프트를 통해 개조한 것이다.

한승주가 아낌없이 투자한 만큼 수송기의 성능은 상당히 뛰어났다. 뿐만 아니라 기능 역시 다양했다. 그들이 걸치고 있는 망토처럼 인비저빌리티 기능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수송기가 점점 흐릿해지더니, 세상과 완전히 동화됐다. 물론 비행으로 인한 바람을 숨길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있는 국회의사당에서 낙원까지의 거리는 약 200km 정도.

먼 거리지만, 그들이 탑승한 수송기의 성능을 생각하면 순식간이었다. 강순철은 착잡한 표정으로 지상을 내려다봤다. 지상에 즐비하게 늘어진 좀비들.

그들 중엔 한때 그들의 동료였던 이들도 다수 섞여 있으리라.

‘언젠가는…’

하지만 이내, 지상을 훑던 그의 눈이 커졌다. 지상에서 그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한 남자’ 때문이다. 그는 경악한 표정으로, 그의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리더?”

갑자기 왜 그러나 하고, 옆에 있던 그룹원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잠시만.”

“예?”

“잠시만 멈추라 그래.”

그의 말에 수송기가 멈췄다. 강순철은 그들에게 입을 열었다.

“돌아왔다.”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십니까? 누가 돌아왔다는 겁니까?”

“리더 말이다.”

그들은 잠시 리더가 누구였나, 하고 생각했다.

“에이, 착각하신 거겠죠.”

그들은 강순철이 헛것을 봤다고 생각했다. 리더가 돌아왔다는 말을 곧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지난 반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러나 강순철의 표정은 진지했다.

“진짜다. 이번엔 진짜란 말이다.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손을… 말입니까?”

그러자 그룹원들의 표정도 진지해졌다. 그들이 탑승한 수송기는 인비저빌리티 기능이 달려있다. 손을 흔들었다는 건 그런 인비저빌리티 기능을 꿰뚫어 봤다는 소리다.

적외선조차 속일 수 있는 인비저빌리티 기능을 꿰뚫어 보려면 맨눈으로는 어림도 없고, 탐지 계열 스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진짜 잘못 보신 거 아닙니까?”

“어딥니까?”

“저기다. 내려가자, 일단.”

강순철의 손가락질에, 수송기가 지상으로 내려간다. 마침내 그들은 지상에 도착했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이진서는커녕 그 흔한 좀비 한 마리 발견할 수 없었다.

“역시 잘못 보신 게 맞는 것 같…”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 목소리.

“다들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그들은 굳은 얼굴로 뒤를 돌아본다. 하지만 아무리 돌아봐도 말을 한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그때, 허공에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을 완벽하게 속이는 은신이었다. 강순철은 순간적으로 울컥 눈물이 터져 나오는 걸 느꼈다.

“왜 이제야 오신 겁니까.”

이진서는 지금까지 만난 그룹원들에게 그래 왔던 것처럼,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니… 몸 건사하게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이 세계는 현실이랑 시간이 조금 다르게 흘러가는 거 같더군요. 현실에서 저는 고작 세 시간을 머물렀을 뿐입니다.”

강순철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런 이유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이 이 세계에 머문 반년 동안 저 세계- 현실에서는 고작 세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단다.

‘세 시간과 반년…’

이건 차이가 심해도, 너무 심한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사정이 있는 줄도 모르고… 리더를 원망했습니다.”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강순철을 따라온 그룹원들이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이진서는 그들에게 있어 은인이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그에게 구원을 받지 않은 이가 없었다.

하물며 마땅한 이유가 있다면… 그들이 순순히 사과하는 이진서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아닙니다.”

“리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진서는 그가 무슨 말을 할까,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 나누시죠.”

***

강순철이 탑승한 수송기를 발견한 건 순전한 우연이었다. 웬 수송기인가 하고, 통찰안을 사용했는데 설마 그 안에 강순철이 탑승해있을 거라고는 나조차 예측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이 세계로 돌아온 지 삼 일 만에 강순철과 만날 수 있었다.

그동안 그룹원들을 인간으로 되돌리며, 정보를 수집해온 나지만 그는 그것과 비교도 안 되는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터였다.

그런 그에게 전해 들은 말은 지금의 내게도 다소 충격적인 것이었다.

“낙원 안에 발라르라는 이름의 과학자가 있단 말입니까?”

발라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과학자가 낙원 안에 존재한단다.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절묘했다. 많고 많은 이름 중에 하필이면 왜 발라르란 이름이란 말인가.

“예.”

“동명이인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사실, 이미 확신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내심 아니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발라르라는 이름은 내게는 이제 지긋지긋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강순철은 고개를 저었다.

“확실합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는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낙원에서 우리를 습격한 것도 아마 그의 수작 때문일 겁니다. 아니, 그의 수작 때문입니다. 확실합니다.”

형사로서의 감이 소리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아마 확실할 것이다.

‘여기가 발라르의 과거라면… 그는 한때 인간이었단 말인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한때 인간이었던 그가 미래에는 신들을 살해할 정도로 강대한 이계의 신격이 됐단 말인가. 나는 점차 흥미가 샘솟는 것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라그나로크에 나타났던 그는 거인들에게 첨단 무기를 지급했었지.’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의 단서였다.

“어쩌실 겁니까?”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내게 그가 물어왔다.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잡으러 갈 겁니다.”

발라르는 강하다.

어쩌면 지금의 나와도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한 건 ‘어디까지나’ 미래의 그다. 나는 라그나로크 세계에서 그에게 피해를 준 적이 있다.

물론 끝내 패배하긴 했지만, 지금 상대한다면 적어도 그 당시의 그- 플레이어 시스템을 얻기 전의 그는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물며 지금의 그는 라그나로크 세계의 그보다 ‘과거’의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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