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제3 함장, 아스클레피오스는 한때 의술의 신으로 추앙받았다. 지상계에서 국가 단위의 생체 실험을 자행한 사실이 드러나 천상계에서 쫓겨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A-101, 흔히 ‘올림푸스’라 불리는 행성에서 쫓겨나다시피 떠난 그는 우주 전역을 배회하다가 우연하게도 베스타스 제독을 마주쳤고, 그의 영입 제안을 받아 그의 함대에 합류하게 됐다.
그가 부여받은 번호는 3번. 비록 의술의 신이지만, 태생부터 신인 그는 수많은 함장들 사이에서 3순위를 차지했던 것이다. 물론 그는 1 함장, 2 함장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3 함장으로서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그가 수여받은 전함 ‘가이아’는 타이탄급 전함으로 그의 연구실을 통째로 옮겨놓을 정도로 거대했고, 질 좋은 실험체 역시 원 없이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론 올림푸스로 복귀할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물론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 아닌, 그를 쫓아낸 신들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올림푸스 놈들이 내 앞에 무릎을 꿇을 정도로 강력한 독을 제조할 것이다.’
그가 합류한 이후, 지난 수십 년간, 연구는 꽤나 진척된 상태였다. 그는 온갖 종류의 독물들을 수집하고, 배합해 어느 정도의 결과물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물이라는 것은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데 효과적이라, 지난 베스타스 제독의 ‘은하계 정벌’에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 그가 만들어낸 독으로 올림푸스의 신들을 죽인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더 강력한 독이 필요하다.’
신조차 중독시키고, 신조차 죽일 수 있는 맹독이.
그는 독을 찾아 헤맸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그도 내심 포기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지금… 그 독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환희에 찬 얼굴로 전함 내부를 바라본다.
피부가 검게 변색돼가는 선원들이 고통에 몸부림친다.
“살려주십쇼, 함장님…!”
“제발 치료할 약을…!”
“시끄럽다!”
그들의 소리침에 가볍게 일갈한 그는 전함 바깥을 바라본다.
독의 주인은 시나트리온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다른 함장들과는 차원이 다른, 시나트리온의 강함을 잘 알고 있는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시나트리온이 전투에서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잔뜩 긴장한 채 공격을 피하기 급급했고 독의 주인은 시종일관 여유로울 뿐이었다.
‘아니, 저건 상대조차 되지 않는…’
그는 더욱더 몸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그때, 함장들이 하나둘씩 전투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은 전투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애초에 그들은 ‘속도’조차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제2 함장, 바츠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서였다. 그는 그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독의 주인이 강하다 하더라도, 바츠까지 합류한다면 밀릴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심지어 아직 베스타스 제독은 합류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는 잠시 생각했다.
‘어떻게 막지?’
그가 3 함장인 건 맞지만, 시나트리온이나 바츠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다. 이내, 그는 선원들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명색이 의술의 신답게 선원들의 검은 반점이 빠르게 사라진다.
그는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배를 몰아라, 정면으로 충돌한다.”
“예, 예? 목표는 어디입니까?”
“목표는… 시나트리온이다.”
“예? 어째서 시나트리온님을?”
“설마 배신하시려는 겁니까?”
“그럴 리가. 베스타스 제독님은 내게 명령을 내리셨다. 기회를 봐서 은밀하게 시나트리온을 처치하라고 말이야. 녀석이 제독님을 위협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은 너희도 알고 있을 테지.”
“그건…”
선원들의 머리에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반란을 꾀하는 시나트리온과, 그런 그를 축출하려는 베스타스 제독.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이내,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들이 함장의 말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곧, 그가 탑승한 가이아가 전장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전함의 경로에 있는 함장들이 기겁하며 몸을 뒤로 물렸다.
바츠가 합류한 후, 어느 정도 여유를 되찾은 시나트리온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그의 몸이 강렬한 광채를 발하더니 순식간에 그가 탑승한 전함 안까지 들어왔다.
선원들이 황급히 그를 향해 무기를 들었다.
“무슨 짓이지, 아스클레피오스? 그리고 너희들은…”
“베스타스 제독님께 반기를 들고도 네가 무사할 거라 생각했느냐, 시나트리온?”
“그게 무슨…?”
시나트리온이 황당한 얼굴로 반문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활짝 웃음을 지었다. 그는 뒤로 몸을 물렸다. 그 순간, 전함 내부에서 강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쾅! 그조차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였다.
타이탄급 함선, 가이아의 ‘자폭’이다. 가이아의 동력원인 영원의 핵의 폭발엔 시나트리온이라 하더라도 피해가 없을 수가 없었다. 그의 온몸이 순간적으로 산산조각 나버린다.
물론 안에 있던 선원들은 그대로 폭사당했다. 하지만 미리 대비하고 있던 아스클레피오스는 우주 공간 밖으로 나왔다. 날카로운 베스타스 제독의 물음이 그의 귀에 들려왔다.
- 무슨 짓이지, 아스클레피오스?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독님.”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 그는 웃고 있었다.
- 감히 나를 배신하다니…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그나마 적수였던 시나트리온이 사라지자, 전세는 급격하게 기울었다. 제2 함장인 바츠는 탄환에 의해 머리가 관통당해 바닥에 떨어졌고, 함장들 역시 무수히 죽어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스클레피오스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위대한 자를 뵙습니다.”
독의 주인- 발라르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이내, 그가 입을 열었다.
“무슨 짓이지?”
“저는 당신에게 원하는 게 있습니다. 그걸 주신다면, 당신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내겐 네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 그래도… 뭐, 그 정도면 쓸 만하군. 내게 원하는 게 뭐지?”
황송하다는 듯 그는 고개를 숙였다.
“독입니다. 제게는 올림푸스의 신들을 죽일 당신의 독이 필요합니다.”
“독이라…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내게 복종한다면, 너는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중얼거리던 발라르는 고개를 든다. 분노한 표정의 거인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평범한 거인족이 아닌 거신족. 그 크기는 거인족의 수십여 배에 달할 정도로 거대했다.
베스타스 제독의 본체였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그가 처음부터 본체로 변할 정도로 진노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조심하십시오, 베스타스 제독은 강합니다.”
“과연 위명대로의 실력인지 시험해보도록 하지.”
중얼거린 발라르가 그를 향해 총을 겨눴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메시지를 받아야만 했다.
[권고합니다. 당장 전투를 멈추십시오. 저희 컴퍼니에서는 직접 계약자끼리 싸우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베스타스 제독이 입을 열었다.
“감히… 내 부하들을 죽인 놈을 나보고 그냥 돌려보내란 말이냐…!”
[플레이어, 베스타스의 부하들은 직접 계약자가 아닌 간접 계약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면 시나트리온은?”
시나트리온은 그 이외에, 유일한 직접 계약자였다.
[플레이어, 시나트리온은 생존한 상태입니다. 저희 컴퍼니에선 플레이어, 시나트리온을 위해 긴급 탈출 조치를 사용했습니다.]
베스타스 제독은 이를 아득바득 갈았다. 아무리 그가 우주 전역에서 맹위를 떨치는 우주 해적이라곤 하나, 그런 그에게도 ‘컴퍼니’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애초에 그가 얻은 힘의 상당량이 컴퍼니와의 직접 계약을 통해 얻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계약이 파기라도 되는 날엔 그는 그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아마 힘을 잃는 것은 직접 계약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 중 하나일 터였다.
[재차 권고합니다. 전투를 중지하십시오.]
그 말대로, 베스타스 제독이 주춤주춤 몸을 뒤로 뺀다.
“재밌군. 말 잘 듣는 개새끼를 보는 것 같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발라르는 즐겁다는 듯 웃었다. 그는 베스타스 제독을 향해 총을 들었다.
[권고합니다…]
하지만 시스템 메시지가 끝까지 이어지기 전에 그의 탄환은 베스타스 제독의 머리를 정확히 관통했다. 베스타스 제독도 품에서 거대한 검을 꺼내 휘둘렀다.
“이건 정당방위다.”
검 끝이 뭉뚝하고, 군데군데 날이 나가있지만 검의 크기는 물경 수십 킬로미터에 달했다. 검의 이름은 ‘행성 파괴자’.
실제로 그가 이 검을 이용해 행성을 파괴한 적이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진공을 찢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검이 발라르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
우주선에 실려 있는 것은 제독이 아닌, 아이였다. 아이, 그것도 인간 아이 말이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평범하게 생겼지만,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시나트리온]
- 통찰안의 단계가 낮아 볼 수 없습니다.
통찰안의 2단계 시험을 통과한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했었던 메시지. 심지어 현계한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를 볼 때조차 그랬다. 아무리 본체가 아니라곤 하지만…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없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아이의 정체가 뭐야?’
[이계의 신격입니다.]
“??”
이계의 신격?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발라르였다. 우주 상인, 트레이의 말에 의하면 그 역시 이계의 신격이라 했으니 말이다.
[직접 계약자는 유사시, ‘컴퍼니’의 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은 그는, 지원 서비스를 받아 가장 가까운 직접 계약자인 플레이어, 이진서에게 이동하게 된 것입니다.]
‘혹시 나를 도와준다고 했던 이가…’
시스템은 부정했다.
[아닙니다. 그는 패배한 쪽입니다.]
‘그러면 우주 해적이라고?’
[그렇습니다.]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본다. 우주 해적이라면 이 행성을 침공하려 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아이 역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살심이 떠올랐다.
‘그러면…’
나는 천천히 무기를 꺼냈다. 우주 해적이라면, 지금 처치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만약 몸이 회복된 이후에 나를 죽이겠다고 덤빈다면, 감당 가능할 리 없으니 말이다.
[직접 계약자를 살해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다면, 상당한 패널티가 부여될 테니까요.]
‘하지만 우주 해적이라며? 나를 공격할 수도 있는 거 아냐?’
[그 역시 직접 계약자를 죽인다면 패널티를 부여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를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직접 계약자는 나 혼자뿐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는 나를 제외한 우리 그룹원들을 공격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