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일전에 베스타스 제독은 요셰프에게 그의 함대에 합류하라는 제안을 건넨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인연 때문에 건넨 제안일 뿐, 그가 그의 힘을 탐내서는 아니었다.
물론 우주에서 손꼽히는 무력을 가진 종족, 라신족인 요셰프의 무력은 수준급이다. 그러나 수준급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이다. 베스타스 제독이 이끄는 367척의 우주 전함들.
한 척, 한 척이 전부 타이탄급의 대형 전함들. 그 전함들을 모는 함장들은 하나같이 우주에서 맹위를 떨치는 실력자들이었다. 베스타스 제독의 무력이나 매력에 반해 모인 이들.
그들에 비하면 아무래도 요셰프는 손색이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베스타스 제독은 그들의 무력에 따라 번호를 수여했다. 특히 상위 열 명의 무력은 밑의 번호와는 차원이 다른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열 명 중에서도 제1 함장, 시나트리온의 무력은 독보적인 것이었다. 그 오만한 베스타스 제독이 ‘그는 자신과 맞먹는다’라고 직접적인 평가를 내렸을 정도니 말이다.
시나트리온. 특이하게도 그는 이 우주의 존재가 아닌, 평행 우주에서 건너온 존재였다. 사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 이전에도 평행 우주의 존재들은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평행 우주에서 ‘신’으로 추앙받던 존재였다는 것이다. 이 우주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행성 하나를 통째로 먹어 치워 버리는 괴랄한 행위를 저지른다.
문제는 그 행성이 베스타스 제독의 소유였다는 것이었다. 그는 진노한 베스타스 제독을 맞이해 그와 전투를 벌인다. 그리고 그 끝에 패배했지만, 그의 인정을 받아 수하가 된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베스타스 제독이 ‘그는 자신과 맞먹는다’라는 평가를 내린 것에 의문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베스타스 제독은 당시 컴퍼니와의 직접 계약자였고, 시나트리온은 컴퍼니와 계약을 맺지 않은 상태였다.
컴퍼니와 계약을 맺은 지금, 그가 얼마나 강해졌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베스타스 제독을 보필하는 지난 수백 년간, 그는 전력을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힘을 숨겼다기보다는, 그가 직접 나설 상황이 없었다는 표현이 옳다. 대부분의 행성들은 전함만 봐도 항복했고, 행성의 신이라 불리는 자들은 함장들 몇몇만 가도 진압됐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시나트리온은 지금,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작은 우주선. 그 안에 탑승한 금발의 남자를 본 직후였다. 겉으로 보기엔 인간에 지나지 않지만···
그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남자가 평범한 인간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로부터 느껴지는 힘에 그는 전율할 정도였다. 그는 입을 열었다.
“당신은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군요. 어느 우주 출신이죠?”
그러자, 남자가 입을 열었다.
“글쎄, 너는 그걸 알 자격이 없다. 나는 피라미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졸지에 피라미로 전락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시나트리온은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머릿속은 냉철해졌다. 자신이 그의 존재감을 느꼈듯, 그 역시 자신의 존재감을 느꼈을 터다.
하지만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 수 있는가.
“지금 내 전함을 가로막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건 아닐 테고··· 자신 있다는 건가요?”
그의 전함을 가로막았다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베스타스 제독이 이끄는 함대 전체를 적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자신만만한 표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제독님과 각 함장들에게 전해라. 적이 출현했다고.”
짧게 중얼거린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당신의 이름이 뭐죠?”
“그건 알아서 뭐 하려고 그러지?”
남자의 물음에 시나트리온은 엷게 웃으며 말했다.
“아, 수집한 두개골에 이름을 붙여주곤 하거든요. 당신의 두개골은 대단한 전리품이 될 것 같군요.”
남자는 그를 비웃듯, 피식 웃었다.
“재밌군. 내 이름은··· 발라르다.”
“발라르?”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설마 경매장의 신 살해자가 당신인가요? 경매 입찰을 위해 신을 세 명이나 살해했다는···”
“아, 그건 잘못된 뉴스야. 정확히 말하면, 나는 일곱 명을 죽였거든.”
남자의 이름을 들은 시나트리온은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당황함을 숨긴 채 미소를 짓는다.
“영광이군요. 신 살해자를 죽일 수 있게 돼서. 신 살해자라면, 내 무력을 아낌없이 드러내도 되겠지. 제독님, 허락해주십시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베스타스 제독의 말이 들려온다.
- 허락한다.
시나트리온의 몸이 밝은 광원과 함께 점차 빛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다음 순간, 그의 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니 발라르가 탑승하고 있던 우주선이 강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우주 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가 중얼거렸다.
“지상의 존재들은 이 기술을 공간 도약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더군요. 하지만 제가 사용하는 기술은 공간 도약이라는 이름보다는 공간 찢기가 어울려요.”
“시답잖은 기술을 보여줘놓고, 말이 너무 많군.”
시나트리온은 어느새 자신을 겨누고 있는 총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탕! 탄환이 발사된다. 그는 가볍게 몸을 틀어 탄환을 피해냈지만 온몸에서 피분수를 뿜으며 아래로 추락했다.
“인과 관계의 역전, 뭐 그런 건가요?”
“그런 셈이지.”
“하지만 의미는 없군요. 이 정도의 데미지로는 저를 죽이지 못해요.”
시나트리온을 향해 탄환이 난사된다. 수십, 수백 발의 탄환 비 속에서 그의 몸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러나 탄환 비가 그쳤을 때, 그는 어느새 몸을 재생한 상태였다.
“같은 곳에서 온 존재인 줄 알고, 조금 기대했는데··· 별거 아니네요. 괜히 긴장했어.”
시나트리온은 엷게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내,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몸에 퍼지는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정신을 집중해, 무언가를 체내에서 방출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무언가는 더욱더 그를 단단히 옥좼다.
‘독? 저주?’
그는 생각을 관두기로 했다.
“호언장담한 것치고는 별로 저항력이 없군.”
시나트리온의 온몸이 점차 검은색으로 변색되기 시작한다. 그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빨리 당신을 죽여야겠군요.”
그의 몸이 또다시 광원으로 변한다.
한편, 다른 함대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선원들도 함장들도 모두 검은 피를 뿜으며 몸이 검은색으로 변색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당황했지만,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급한 대로 시간 회귀의 물약을 사용했지만, 그것 역시 별다른 효능이 없었다.
- 제독님···!
- 대책을 부탁드립니다. 이대로라면 전멸합니다.
“발라르라, 신 살해자인가. 재밌는 힘을 사용하는군.”
호기심을 느낀 그는 검게 변색된 선원 하나를 붙잡았다. 그의 손이 닿자,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검은색의 반점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손에 상처를 낸 후, 반점에 가져다 댔다. 반점은 마치 망설이는 듯하더니, 불쑥 그의 몸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가 힘을 주자, 반점은 흔적도 없이 소멸돼 버렸다.
“일반 선원들이나 어지간한 함장들조차 저항하지 못하겠어. 다수를 상대할 때, 아주 유용한 힘이야.”
그는 탐이 났다. 만약 저런 자가 자신의 함대에 합류한다면, 몹시나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시나트리온, 그를 생포하라.”
그는 시나트리온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와 맞먹는 실력자인 시나트리온이 패배하지 않을 거라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
나는 X-347에 거주하는 거주민들의 대피를 마쳤다. 지구로 도착한 그들은 난생처음 보는 행성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우리의 안내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괜찮을까.’
레비아탄을 숨기기 위해 나는 안전 가옥을 이용했다. 은폐 기능을 가진 안전 가옥이라면 외부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중도, 삼중도 아니고 무려 칠중이었다.
나조차 그 존재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레비아탄이 구슬픈- 생각해보면 항상 같은 울음소리이긴 했다- 울음소리를 흘렸지만 뭐, 아무렴 녀석에게도 우주 해적들에 의해 포획되는 것보다야 이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대충 일을 마친 나는 시스템에게 물었다.
“어떻게 됐어?”
[현재 전투 중입니다.]
“상황이 어떤데?”
[전투 진행 3분 37초 경과. 이길 확률은 99.99% 이상입니다.]
요셰프 같은 놈이 득실거릴 터인 수백 척의 전함을 상대로 이길 확률이 99.99%? 대체 얼마나 강대한 존재란 말인가. 호기심을 느낀 나는 입을 열었다.
“대체 누구야?”
[정보 공개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아, 그래?”
뭐,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굳이 캐묻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지만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변수?”
[저희 컴퍼니에서는 원칙적으로는 직접 계약을 맺은 플레이어들끼리 살해하는 걸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겠지.”
[맞습니다. 베스타스 제독 역시 직접 계약을 맺은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그’가 살해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에도, 베스타스 제독이 원래 목적대로 계속 행성 X-347로 향할지는 의문이지만 말입니다.]
“제독은 얼마나 강한데?”
[신에 필적할 정도입니다.]
놀랍진 않았다. 오히려 신에 필적한다는 표현이 오히려 ‘평가절하’라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신이라고 다 같은 신은 아닐 테니까.
“신이라··· 지금의 나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플레이어, 이진서가 더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그 말대로 지금의 내가 신에 필적할 정도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당장 가까운 신들-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와 비교하면 부족함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을 소환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영령 소환을 통해 신을 불러낸다면, 이프리트와의 직접 계약을 통해 이프리트를 소환한다면, 어느 정도 상대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내 생각이었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어디까지나 오지 않는 것이지만.’
베스타스 제독이 이곳에 오지 않는다면, 이루어질 리 없는 가정이었다. 초조함과 긴장감에 나는 입에 담배를 물었다.
‘동화 세계 속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으려나···’
비상시에 연락을 하라 했는데, 아직 아무 연락이 없는 걸 보면 별일 없는 모양이다. 뭐, 애초에 이곳에 온 지 고작 한 시간 반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생각해보면 당연하지만.
‘별일이 있는 게 이상하지.’
속으로 중얼거리며 담배를 피우던 그때, 내 눈에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저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