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나는 요셰프라는 우주 해적을 죽이지 않았다. 그에게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에게 정보를 캐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마음을 감추는 법을 알고 있었다.
마치 ‘통찰안’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 생각해보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우주 해적, 트레이의 말에 의하면 통찰안의 보유자는 생각보다 많다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그에게 직접 캐묻는 것. 나는 그의 언어를 알지 못한다. 지구어도 통달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그는 지구인이 아닌 전혀 다른 세상에서 온 외계인이니까.
하지만 별 문제는 아니었다. 동화 세계에서처럼 통역을 쓰면 간단한 일이니 말이다.
“아나스타샤, 통역을 부탁합니다.”
“알았어요.”
내 말에 아나스타샤는 고개를 끄덕인다. 언어의 마술사 스킬을 습득한 그녀는 어떤 언어든 능숙하게 말하고, 들을 수 있다.
“뭘 물어볼까요?”
“먼저… 이 행성을 습격한 이유에 대해 물어보세요.”
그녀의 입에서 열린다. 쉭쉭거리는 소리에 요셰프의 얼굴이 찡그려진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몸을 흔들어댔지만, 그럴수록 쇠사슬은 더욱더 그를 강력하게 조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아까 쇠사슬을 풀어냈던 능력은 사용하지 못하는 모양이군.’
재사용 대기시간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기에, 나는 긴장을 놓지 않았다. 나는 괜찮지만, 아나스타샤가 공격당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말이다.
“대답할 생각이 없는 모양인데요?”
“괜찮습니다.”
내 통역을 전해 들은 그는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그들의 목적에 대해. 지극히 일편적이지만, 그거라면 충분했다. 아나스타샤의 추측대로 이들은 레비아탄을 노리고 침공했다.
“다음은 우주 해적에 대해 물어보죠.”
“어떤 걸 물어볼까요?”
“세력이 얼마나 되는지, 숫자는 얼마나 되는지,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뭐 이런 거 말입니다.“
“네.”
그녀는 물었고, 이번에도 요셰프는 침묵했다. 이번에는 그의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그의 생각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 대비한 것이 틀림없다.
“네가 자처한 거다.”
내 중얼거림에, 아나스타샤가 멍청하게 반문한다.
“네?”
손가락을 들어 가볍게 딱밤을 날렸다.
딱밤을 맞은 그가 대번에 뒤로 나가떨어진다. 최대한 힘 조절을 했기에, 그의 머리가 터지는 일 같은 건 벌어지지 않았지만 고통은 상당할 터였다. 그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분노한 음색. 비록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의 생각은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 이 개새끼야, 죽여 버린다.
‘지구든, 우주든, 생각하는 건 다 거기서 거긴가?’
“어디 죽여봐.”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나는 다시 딱밤을 날렸다. 퍽! 퍽! 일련의 행위를 몇 번이고 반복했더니 당연하게도 그의 이마는 넝마짝이 돼버렸다. 난 그에게 회복제를 꺼내 몸에 뿌렸다.
“아깝네요.”
그 모습을 본 아나스타샤가 입맛을 쩝쩝 다신다. 회복제 중 가장 뛰어난 성능을 가진 회복제 4의 가격은 10만 기프트. 그녀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의외는 아니었다.
물론 10만 기프트는 지금의 내게 있어 푼돈이나 다름없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중얼거렸다.
“성능이 좋지 않습니까.”
그 말처럼 요셰프의 이마는 어느새 완전히 치유됐다.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시선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주는 모습이다.
“순순히 말하면 살려주겠다고 말하세요.”
반응은 거칠게 돌아왔다. 환영…하는 게 아니라 당연하게도 저항이다. 나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감히 하찮은 인간 주제에 라신 족인 이 몸을 무시하는 거냐는 둥.
베스타스 제독이 오면 너는 끝이라는 둥.
“베스타스 제독?”
그의 동료가 틀림없다. 아니, 제독이라는 호칭을 생각하면 이 요셰프보다 높은 상관일지도 모른다. 요셰프보다 강하다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대체 얼마나 강한 거지?
“베스타스 제독이 누구냐고 물어보세요.”
내 말을 전해들은 그의 표정에 조금 당황함이 어렸다. 하지만 이내 그는 낄낄, 마치 실성한 것마냥 실소하며 쉭쉭거리는 소리를 냈다.
“베스타스 제독은 이 드넓은 우주에 단 다섯 명밖에 없는, 자신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위대한 분이며, 그가 이끄는 전함의 숫자는 수백 척에 이른다네요.”
“……”
사실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아도, 생각을 읽었기에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전함 한 척만으로도 행성이 궤멸 위기에 처했는데, 만약 수백 척의 전함이 온다면 막아낼 수 있을까?
전함이 다 요셰프가 타고 있는 것과 동일한 전함이라면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 그 숫자가 얼마든 지금의 내게 전함을 떨어트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전함 안에 탑승하고 있는 이들이 전부 다 이런 요셰프 같은 놈들이라면? 아니, 개 중에는 요셰프보다 훨씬 더 강한 이들이 탑승해있다면?
짧게 생각한 나는 결론을 내렸다.
‘못 막아낸다. 지금이라도 레비아탄을 지구로 빼돌려야 하나?’
아니, 그것도 위험성이 있었다. 만약 녀석들이 레비아탄의 위치를 추적해서 쳐들어오고 있는 것이라면 지구 역시 침공을 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지?’
나는 눈을 감았다.
“앞으로 그들이 도착하는데 얼마나 걸릴지 물어보세요.”
시간이라도 있다면, 방책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나스타샤의 다음 말은 나를 절망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여기 시간으로 한 시간이면 올 거라는데요?”
“미친.”
입에서 욕설이 절로 튀어나온다. 한 시간, 3600초? 아니, 이제 3599초다. 전함들이 올 때까지 단 3598초… 생각을 하던 나는 시간 가속을 사용했다. 주위의 시간이 점차 느려진다.
조금이라도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녀도 내 변화를 알아차렸는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이 X-347의 거주민들을 한곳으로 모을 겁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이곳의 거주민들부터 대피시킨다. 행성이 멸망할 걸 뻔히 아는데, 그들을 가만히 놔둔다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마력을 방출했다. 이곳에 있는 거주민들은 대부분 나와 계약을 맺어, 플레이어가 됐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그들에게 일괄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치, 발라르가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행성 관리자의 권능을 사용합니다.]
- 다들 모여라.
난 하늘을 바라본다. 거대한 적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솔레나. 적룡족의 마지막 생존자. 그녀는 용족 여럿을 이끌고 있었다. 곧, 그녀가 인간 모습으로 변해 지상으로 내려온다.
그녀는 반가운 낯빛이었고, 나 역시 반가움을 느꼈으나 지금은 마냥 해후를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솔레나, 네가 이끄는 용족들과 함께 이 행성의 거주민들이 한곳에 모일 수 있도록 도와줘.”
“알았어.”
솔레나는 더 묻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녀가 날개를 펼치고 내 부탁을 이행하기 위해 비행하는 걸 확인한 나는 아나스타샤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그리고… 저는 레비아탄에게 다녀오겠습니다.”
“어떻게 하시게요?”
“레비아탄을 그대로 넘길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숨겨볼 생각입니다.”
아나스타샤는 내게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마법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옐레나의 전유물인 텔레포트(Teleport).
반 년 전엔 사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때도 마력 보유량은 옐레나에 뒤지지 않았지만, 마력을 운용할 능력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불완전하긴 매한가지다.
열 번 시도하면 절반 이상 실패하는 정도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마인화 상태에, 시간 가속까지 사용한 상태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내 마력 운용 능력은 ‘정밀’하다 말할 수 있었다.
한 발짝, 발걸음을 내딛는다. 강렬한 빛에 눈을 감았다 뜨니, 나는 이미 해저 기지에 도착했다. 엷게 미소 지은 나는 블링크를 사용해 해저로 빠져나왔다.
쇠사슬에 묶인 레비아탄의 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마력을 담아 중얼거렸다.
“부상하라.”
본래대로라면 녀석에게 마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녀석은 쇠사슬에 묶여 전체적으로 능력치가 하락한 상태. 녀석의 몸이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러자 녀석이 드디어 눈을 떴다. 녀석이 몸을 부르르 떨어댄다. 비명을 지르기까지. 나는 석에게서 ‘명확한’ 공포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이런 걸, PTSD라 하나?
‘그렇게까지 괴롭힌 적은 없는 거 같은데…’
괴롭힘의 강도로 따지면 나보단 아나스타샤가 더 많이 괴롭힌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녀석을 수면 위까지 끌어올렸다. 마치 앙탈부리듯 녀석이 몸을 흔들어댔지만.
나는 그런 레비아탄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시간이 없다.’
빨리 녀석을 숨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도통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숨길 방법이 있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어본 내게, 시스템의 대답은 다소 생뚱맞은 것이었다.
[우리 컴퍼니와의 직접 계약자는 컴퍼니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 말은…?’
[다만 베르타스 제독 역시 직접 계약자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컴퍼니에서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만… 편법을 이용한다면 가능합니다.]
‘편법?’
[가령, 주위의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한다던가…]
‘누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10억 기프트입니다.]
10억 기프트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면… 더럽게 비싸다. 하지만 지금은 10억 기프트보다 X-347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지금 내 지갑에 80억이 넘는 상당량의 기프트가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
[10억 기프트를 지불했습니다.]
‘확실한 거지?’
[컴퍼니에서 직접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닌 만큼, 서비스의 성공률을 100%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100%라고 생각합니다.]
‘그거면 됐어.’
시스템의 대답을 듣자 조금 안심이 됐지만, 이대로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의 상황도 생각해야 하니 말이다.
“그래도 혹시나 행성을 숨길 방법이 없나?”
[존재하긴 하지만 지금 행성 X-347의 인프라로는 효율이 높지 않습니다. 차라리 유사시에는 X-347을 버리는 것을 권고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행성신 그 자체라 할 수 있던 크론이 죽자, Z-975 행성은 멸망했다. 원하는 것을 얻어낸 발라르는 Z-975를 떠났다. 작은 우주선에 탑승한 채, 그는 다음 목표를 향해 이동했다.
그러던 중, 그에게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발라르님,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얼마짜리지?”
[10억 기프트입니다. 베스타스 제독을 상대하는 일입니다.]
“이름은 들어본 적 있군.”
잠시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10억 기프트보다 베스타스 제독이라는 이름에 더 끌린 그였다. 그의 우주선이 경로를 틀어 X-347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