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어느 날,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졌다. 직경이 20m에 달하는, 후에 ‘종말’이라 이름 붙여진 운석은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재앙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 어디서 왔는지 모를 운석은 바이러스를 품고 있었다. 인류가 이전까지 접한 적 없었던 이 외계의 바이러스는 운석의 파편에 접촉한 사람들을 숙주 삼아 퍼지기 시작했다.
바이러스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때쯤엔 이미 수백만 명의 감염자들이 발작을 일으킨 후였다. 감염자들은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좀비들처럼 주변 사람들을 공격했다.
지휘부라도 존재했다면 어떻게 대처가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휘부도 감염자들로 인해 마비 상태였다. 그렇게 ‘United Korea(이하 UK)’는 감염자들에 의해 점령되고 말았다.
다른 나라의 상황 역시 좋지 못했다. UK는 패권국이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다른 나라와 교류가 가장 많은 나라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순식간에 바이러스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감염자들과의 전쟁에서 테라(Terra)의 인류는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인류의 과학 기술은 대단했지만 감염자들은 너무 많았고, 또 강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일 년. 인간이 쌓아 올린 문명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도시는 멸망했고, 오로지 UK의 수도 안에 있던 최후의 도시, ‘낙원’만 건재할 뿐이었다.
하지만 낙원인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의 도시 역시 언젠가는 다른 도시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것을. 때문에 그들은 바이러스를 치료할 백신의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전문 인력들과 자본이 부족하기에 백신을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만약 천재 과학자인 ‘발라르’가 없었다면 시작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금발의 남자는 의자에 기댄 채 모니터 화면을 응시한다.
“실험실 카메라.”
- 실험실 카메라로 전환합니다.
그를 보조해주는 AI, 마일의 목소리와 함께 모니터에 4분할된 화면이 떠오른다. 분할된 화면들엔 각각 ‘A’, ‘B’, ‘C’, ‘D’ 알파벳 기호가 적혀 있었다.
- 백신을 투여하지 않은 A그룹의 신체 능력은 향상됐습니다. 다만 그런 만큼 공격성 역시 향상됐습니다.
A라고 적힌 모니터 안의 감염자들은 실험실 벽을 두드려대고 있다. 벽에는 전에 없던 주먹 자국들이 남아있다. 물론 벽의 두께를 생각하면 뚫릴 일은 없겠지만, 전에 없었던 자국들이다.
그러나 발라르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감염자들이 진화한다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니까.”
퍼지게 되면 도시 전체가 혼란에 빠질 극비 중의 극비를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린 그는 이번에는 B그룹으로 눈길을 돌렸다. B그룹의 실험실 안엔 감염자들이 앉아 있었다.
다른 의미로 놀라운 일이었다. 감염자들은 공격성이 극대화된다. 그것은 인간의 유무와 상관이 없다.
- 백신을 25mg 투여한 B그룹은 공격성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마일의 말에도 발라르는 회의적이었다.
“글쎄, 투입해볼까?”
- 실험자들을 투입하겠습니다.
바람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안드로이드 로봇들에 의해 다섯 명의 인간들이 실험실 안에 들어온다. 그들은 이내 감염자들을 발견하고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몸을 돌려 달아나려고 했으나, 안드로이드 로봇들은 문을 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울고 불며 소리쳤지만, 그들의 비명은 오히려 감염자들의 시선만 끌 뿐이었다.
마침내 감염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달려들었고 단숨에 그들의 목덜미를 물었다. 마침내 그들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고, 그들의 몸을 게걸스럽게 씹어 먹기 시작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몸이 총알처럼 문을 향해 튀어 나갔다. 물론 안드로이드 로봇에 가로막혔다. 그들은 강했지만, 안드로이드 로봇을 이룬 재질은 미스릴이었다.
곧 그들은 제압당했고 실험실 문은 다시 닫힌다. 감염자들은 원통하다는 듯 문이 있던 곳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A그룹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 25mg으로는 그들의 공격성을 완전히 억제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과연 공격성이 약화된 걸까?’
상부에서 기록을 엿볼 것을 생각하여, 굳이 입을 열진 않았지만 발라르의 생각은 달랐다.
‘지성이 올라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만약 방심을 유도하여 기회를 노린 것이라면?
- C그룹과 D그룹은…
“각각 50mg과 100mg을 투여한 그룹인가.”
- 맞습니다.
C그룹의 감염자들은 A그룹과 마찬가지로 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D그룹의 감염자들은 B그룹의 감염자들과 마찬가지로 앉아 있었다. 겉보기엔 투여량과 별로 연관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는 그 ‘사소한’ 차이를 알아차렸다. 눈동자. C그룹의 감염자들도, D그룹의 감염자들의 눈동자는 카메라를 한 번씩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저 카메라를 통해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 말이다.
‘그저 연기일 뿐이란 말인가?’
더 자세히 알아보려 할 때였다. 화면이 갑자기 전환됐다.
- 외부에서 폭발 반응을 감지했습니다.
그들이 있는 곳에서 약 50km 떨어진 도시였다. 발라르는 인상을 찡그렸다.
”군부의 폭격 훈련이 있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도시는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듯 쑥대밭이 돼 있었다. 바닥에 남겨진 크레이터 자국들과, 맹렬하게 타오르는 초록색 불길… 그의 흥미를 끌기에는 충분했다.
- 낙원군이 아닙니다.
마일의 말과 함께 직전의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한다. 발라르의 눈이 커졌다.
“인간들? 어디 소속이지?”
놀랍게도 드론의 카메라에 잡힌 영상엔 수천 명의 인간들이 걷고 있었다.
그러니까 감염자들이 아닌 인간 말이다. 낙원 바깥에도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드론을 통해 몇 번 관측한 적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두 명에 불과했다.
‘갑자기 수천 명이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사람들의 행색을 찬찬히 살피던 그가 입을 열었다.
“군부는 아닌 거 같고…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을 보면 어디 판타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중세 부대 같군.”
수천 명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다 갑옷을 걸치고 있다. 물론 갑옷을 걸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는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파워 슈트가 개발된 것이 무려 20년 전이다.
그동안 파워 슈트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고, 소비자들의 욕구에 따라 디자인 역시 다양해졌다. 하지만 저런 디자인은 발라르가 본 적이 없는, 처음 보는 디자인이었다.
게다가 파워 슈트는 귀하다. 제작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낙원에서조차 고작 수백 벌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고작이다. 저렇게 수천 명이 걸칠 만한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게다가 착용하고 있는 무기들 역시…’
무기는 제각각이었다. 플라즈마 건을 들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활이나 검 같은 구시대의 무기를 착용한 이들도 보였다. 대체 저들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가 의아함을 느낄 때쯤, 도시에서 감염자들이 모습을 냈다. 감염자들은 수천 명의 사람들을 달려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무기를 들었다. 그때, 그들의 앞으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화려한 백갑주를 착용한 남자는 지팡이를 꺼냈다.
“지팡이?”
혹시 대전차 로켓을 잘못 본 게 아닐까 눈을 끔뻑거린 그였지만, 아무리 봐도 대전차 로켓이 아닌 평범한 지팡이처럼 보였다. 지팡이를 든 남자의 눈이 황금색으로 번쩍인다.
촬영된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싹함을 느꼈다. 그는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일어날 것 같은 강력한 직감(直感)이 들었다.
다음 순간, 세상이 어두워졌다. 드론의 카메라가 전환된다.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고 있었다. 하나도 아니고 수십, 수백 개의 운석이. 감염자들은 그에게 닿기 전에 운석에 깔렸다.
“미친, 저게 뭐야?”
그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운석을 소환했다? 무슨 마법이라도 된단 말인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의 상식을 아득히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가 좀처럼 흥분감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사이, 영상이 종료됐다.
“촬영된 영상은 이게 전부인가?”
- 운석에 휩쓸려 드론이 파괴됐습니다. 새로운 드론을 보냈을 때, 이미 그들은 사라졌습니다.
“찾아내.”
- 도시를 수색 중입니다. 하지만 드론의 숫자가 부족해 한계가 있습니다.
“필요하면 숫자를 늘려.”
-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낙원의 방비가 다소 허술해질 수 있습니다.
“괜찮아, 어차피 감염자 무리의 위치는 대충 파악하고 있잖아?”
-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상부에는 보고될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발라르는 의자를 뒤로 젖혔다. 다리는 초조하게 떨어댔다.
‘어쩌면 아까 그 남자는 우리 세계에 운석을 떨어트린 이일지도 모르겠어.’
백신을 만들기 위해 바이러스를 연구하며 그가 느낀 점은 바이러스가 아주 정교한 컴퓨터 프로그램 같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는 확신했다. 바이러스는 누군가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것을.
다시 말하면, 그것은 운석이 떨어진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발라르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운석을 떨어트려 이 세계에 바이러스를 퍼트렸다는 가설을 세웠다.
‘신에 가까운…’
그리고 지금 그는 그로 추정되는 남자를 만났다. 설령 그의 추측이 틀리다 하더라도, 그를 만나볼 가치는 충분했다. 설령, 그가 자신을, 이 낙원을 적대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고, 연기를 가볍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내뱉은 나는 안전 가옥을 들여다본다. 홍현기는 눈이 충혈된 채 몸을 간헐적으로 떨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이성을 유지하는 듯 공격 행위를 보이진 않았다. 서문주가 입을 열었다.
“발작은 흔한 증세입니다. 광견병에 걸린 사람들도 발작을 하니까요.”
“변이체 바이러스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다시 물었다.
“뿌리가 같을 확률도 존재합니까?”
내심 나는 의심하고 있었다. 변이체 바이러스와 저 좀비 바이러스 사이에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아니,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서문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존재합니다.”
‘만약 발라르의 소행이라면…’
여기서 발라르를 상대해야 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라그나로크’ 때 상대했던 발라르는 아직 플레이어 시스템과의 계약을 맺지 않은 발라르였다. 그럼에도 그 당시 그는 내가 상대할 수 없을 정도의 괴물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의, 이 시점의 발라르가 플레이어 시스템과 계약을 맺었는지, 맺지 않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만약 전자라면…
‘실패할 수도…’
어쩌면 이 동화 세계의 미션을 실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