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내가 가진 신화 등급 스킬 중 가장 독특한 스킬을 뽑으라면 동화 세계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동화 세계. 글자 그대로 기록된 ‘동화 속 세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스킬.
동화 세계에서는 미션이 주어지는데, 그 미션을 완수하면, 기여도에 따른 보상이 지급된다. 일례로 라그나로크에서 미션을 완수한 나는 네잎 클로버와 능력치를 얻을 수 있었다.
성장 한계에 도달한 지금의 내게 기프트 계약이나 새로운 요리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유일한 성장 수단이기에, 지난 반년간, 사용할 수 있을 때마다 꾸준히 동화 세계를 사용해왔다.
지금까지 총 일곱 번의 동화 세계 미션을 클리어했고, 이제는 여덟 번째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스마트워치로 시간을 살핀다. 슬슬 때가 된 것 같은데…
[동화 세계(G)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역시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자 나는 그룹원을 바라본다. 그들의 얼굴엔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만도 하다. 그들은 동화 세계를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뉴비’니까.
사실 동화 세계는 그룹원들은 물론이거니와 나도 만만하게 여길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당장 지난 회차 때만 해도 반년 전보다 훨씬 강해진 나조차 목숨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그런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을 데려가는 이유는 동화 세계의 미션에 참여하면, 아무리 기여도가 낮아도 ‘최소한의 보상’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데려갈 수 있는 숫자에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마음 같아선 모두 다 데려가고 싶지만, 그렇게 했다간 정상적인 그룹 운영이 불가능해지기에 그룹을 나눠 로테이션을 돌리기로 했다.
우리 그룹원들의 숫자가 대략 35,000명 정도. 그중에서 자발적으로 동화 세계에 참여한다고 투표한 이가 24,000명이었고 그들을 정확히 여덟 그룹으로 나눠서 3천 명씩 데려가기로 했다.
즉, 이번이 마지막 그룹. 뉴비는 이번이 마지막인 셈이다.
“다들 긴장할 거 없어, 리더가 계시지 않은가.”
내가 입을 열기 전에, 강순철이 먼저 그룹원들을 진정시켰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에게 덧붙였다.
“예, 다들 너무 긴장하실 거 없습니다. 제가 최대한 힘닿는 데까지는 지켜드릴 테니까요.”
우리의 말이 어느 정도 위안이 된 듯, 그룹원들이 엷게 웃었다.
“그러면… 열겠습니다.”
그룹원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용히 중얼거렸다.
“동화 세계.”
[동화 세계(G)를 사용합니다.]
[동화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동화 세계(Tales World), 테라(Terra), 평행 세계의 지구.]
[찬란한 문명을 자랑했던 테라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멸망했습니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최후의 도시 ‘낙원’에서 인류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낙원인들이 바이러스 백신이 완성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좀비들은 시간을 줄 생각이 없습니다. 당신이 등장인물이 돼 직접 이 동화를 끝내십시오.]
[임무 성공 시, 기여도에 따라 무작위 보상이 주어집니다.]
[실패 시, 참여한 전원의 능력치 영구적으로 15 감소, 무작위 스킬 삭제.]
‘평행 세계의 지구라고?’
동화 세계가 판타지 세계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현대 세계관- 그것도 평행 세계의 지구는 처음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본다. 우리는 빌딩 안에 갇혀 있었다.
달이 떠 있는 걸 보면 시간은 아마 밤인 듯싶었다.
“어떻게 할까요?”
“음… 일단 가 보죠.”
그러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둠을 뚫고 좀비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수백, 수천… 그 숫자는 차마 눈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아니, 단순히 숫자만 많은 게 아니다.
‘평범한 좀비가 아니야.’
좀비의 베이스는 인간이다. 따라서 인간의 신체 능력을 크게 상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달려오는 좀비들은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기민해 보였다.
‘아니, 어쩌면…’
이곳은 평행 세계의 지구다. 건물의 형태는 지구의 그것과 크게 차이 없어 보이지만, 테라인들의 스펙이 우리 지구인들과 동일하다는 보장은 없다.
물론… 이쪽도 평범한 인간이 아니긴 매한가지다. 지난 반년간, 나만 강해진 것이 아니다.
“연습했던 대로, 연습했던 대로만 하면 별문제 없을 겁니다, 원거리 준비!”
강순철의 말에 그룹원들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원거리 무기를 꺼낸다. 총, 석궁… 지팡이를 꺼내든 이들도 존재했다. 그러는 사이, 좀비들은 우리의 코앞까지 접근했다.
나 역시 검을 꺼냈다.
“발사!”
마침내 강순철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룹원들이 일제히 좀비들을 향해 포화를 퍼붓기 시작했다. 엄청난 폭발이 이어진다. 선두열에 있던 좀비들은 폭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어코 좀비들은 포화를 뚫고 우리에게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전위!”
근접 무기를 든 그룹원들이 좀비들에게 근접 무기를 휘둘러댔다. 나 역시 검을 들어 좀비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서걱. 베이는 소리와 함께 좀비들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정확히 삼십 분 뒤, 건물 안은 좀비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우리 측에선 사망한 사람이 없었다. 애초에 좀비들은 약했다. 잘 쳐줘 봐야 이 정도면 상급 변이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라면 모를까, 지금은 일반 그룹원들조차 상급 변이체를 압도할 정도로 강해졌다. 게다가 그들이 걸친 장비들은 최소 유일~전설 등급까지 있으니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다.
물론… 어디까지나 사망한 사람이 없다 뿐이지, 다친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친 사람은 없습니까?”
대략 수십 명이 손을 들었다. 그들 중엔 긁힌 상처를 가진 이도, 물린 상처를 가진 이도 있다. 나는 즉시 VVIP 상점에서 회복제를 구매해 그들에게 건넸다.
그런데 서문주가 이야기를 꺼냈다.
“리더, 회복제로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좀비 바이러스가 우리에게도 걸리는 것일지 모르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면 곤란하겠네요.”
그의 말대로라면, 그룹원들이 좀비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지나치게 쉬운 것도 마음에 걸리고…’
고작 이런 좀비가 전부라면, 동화 세계의 난이도가 급격하게 낮아진다. 어떤 ‘변수’가 숨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 확신할 순 없는 노릇이지만…
“시간 회귀의 물약이라면…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충분히 저들을 치료할 수 있겠죠?”
시간 회귀의 물약은 복용자의 육체 시간을 되돌려버린다. 완전한 회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처나 질병에 한해서는 절대적인 효능을 발휘했다.
심지어 채굴자가 퍼트린 변이체 바이러스 역시 치료 가능했다. 변이체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도 가능할 정도니 그 효능에 대해서 더 말할 필요는 없으리라.
“예, 시간 회귀의 물약의 성능은 만능이니까요. 그래도… 한 사람 정도는 경과를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에 시간 회귀의 물약으로 실험을 해본 적이 있는 서문주는 내 말에 긍정했다. 나는 이번에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물린 분들 중에 혹시 자원자 있습니까?”
“제가 할게요, 형.”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홍현기가 대뜸 손을 들었다. 나는 그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물었다.
“괜찮겠어, 현기야?”
홍현기는 팔목을 내밀었다. 팔목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이빨 자국.
“네, 형, 저는 괜찮아요.”
“그래, 무슨 일이 생긴다 싶으면 바로 치료해줄게.”
그 사이, 사람들은 시간 회귀의 물약 복용을 마쳤다. 나는 1급 안전 가옥을 꺼냈다. 경과를 살피는 데는 1급 안전 가옥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차단돼있기도 하고.
홍현기는 짤막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리더, 명령을.”
강순철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이 건물부터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좀비 시체가 득실거리는 이곳에서 머무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룹원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홍현기가 있는 건물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막아놓은 우리는 바깥으로 나왔다. 문명이 번성했던 도시라는 것을 보여주듯, 도시는 온통 고층 빌딩들로 가득했다.
광고판에 쓰여 있는 글씨는 놀랍게도 한글이었다.
- 강도가 들지 몰라 걱정이라고요? 미치광이 이웃이 당신을 불안하게 만든다고요? 당신은 당신을 지킬 총기가 필요합니다. 천상의 총포상에서 국내 최저가로 당신을 모십니다.
나열된 문구 아래 그려진 그림은 소총 그림.
강순철이 내게 말했다.
“Q가 사용하던 그 플라즈마 총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Q가 사용하던 건 대포고, 그림은 소총이라는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플라즈마를 사용한다는 점은 동일해 보였다.
“그 정도로 이 도시 문명이 발전했다는 증거겠죠.”
플라즈마 총을 평범한 총포상에서 판매할 정도로, 문명이 극히 발달된 세상이라는 증거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또다시 거리에서 좀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숫자는 오히려 아까보다도 많았다.
“다들 준비!”
“아닙니다, 제가 해치우겠습니다.”
어차피 기여도 때문에라도 필요한 일이었다. 강순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들 대기!”
‘간만에…’
나는 통찰안을 사용해 주변을 둘러본다. 혹시 살아있는 생명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좀비를 제외하곤, 생명체의 존재는 발견할 수 없었다.
‘좀비가 많긴 하네.’
문득, 예전에 서울에서 변이체들을 학살할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의 기억을 연상케 만드는 장면에 나는 쓴웃음을 흘리며, 아공간 창고에서 대멸겁의 지팡이를 꺼낸다.
“미티어 스웜.”
하늘을 향해 중얼거렸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백, 수천 개의 운석들. 초록색 화염으로 이글거리는 운석들은 우리를 향해 달려드는 좀비들을 향해 떨어진다.
마법의 위력은 사용자의 마력에 비례한다. 그리고 지금 내 마력 능력치는 364. 단순히 마력 능력치만 놓고 보면 그 대마도사, 옐레나도 뛰어넘은 지 오래다.
물론 마법에 대한 ‘재능’만 놓고 보면 어림도 없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내가 사용하는 마법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거대한 운석들은 좀비들을 닥치는 대로 쓸고 지나간다. 운석에 닿는 순간, 좀비들의 몸이 마치 폭죽처럼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운석의 비가 끝났을 때, 우리 주변에 우리를 제외하고 더 이상 움직이는 것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와…”
탄성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룹원들이 그 모습을 경외 어린 눈길로 쳐다보고 있다. 그들의 반응에 괜스레 머쓱해진 나는 웃음으로 넘겼다. 바로 그때였다.
무언가가 우리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해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