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라플레시아 화전>
종류 : 음식(Food)
등급 : 초월(EX)
옵션 : 모두 섭취 시 일회에 한해서 영구적으로 모든 능력치 +11, 무작위 스킬 등급 상승, 한 시간 동안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 +55.
제작자 : 김하나
떠오른 음식의 정보를 확인한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초월 등급 요리라니. 신화 등급 요리는 많이 봐왔지만, 초월 등급 요리를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게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다. 그런데 ···
‘미쳤네.’
옵션이 미쳤다. 신화 등급 요리와도 차원이 달랐다. 영구적으로 모든 능력치 +11에, 무작위 스킬 등급을 상승시켜주는 데다가, 일시적이지만 모든 능력치를 55나 올려준단다.
‘사기다.’
그야말로 사기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는 요리가 아닐 수 없었다. 능력치 상승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무작위 스킬 등급 상승. 스킬 개조의 ‘대성공’ 효과와 동일한 효과 아닌가.
그것도 스킬 삭제라는 리스크가 존재하지 않는···
물론 신화 등급 스킬에 적용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옵션에 딱히 ‘제한’ 내용이 적혀있지 않은 걸 보면 신화 등급 스킬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심증으로는 100%였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이 화전을 먹는 것만으로 또 다른 초월 등급 스킬을 습득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스킬도 스킬에 아마 초월 등급 스킬 세 개를 얻음으로써 달성하는 업적까지.
지난 몇 개월간, 막혀 있던 성장의 길이 다시 열리게 되는 셈이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진다. 이전과 달리 무력의 중요성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성장은 즐거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한편으로, 나는 궁금해졌다.
‘초월 등급 스킬에도 적용될까?’
지금 내가 습득한 초월 등급 스킬은 두 가지.
마인화(改)와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시계가 바로 그것이다. 즉, 다시 말하면 무작위 스킬 등급 상승 효과가 초월 등급 스킬에 적용될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소리다.
그것도 낮지 않은 확률로 말이다. 물론 확률의 계산 방법을 알지 못하기에 단언할 순 없지만, 단순 스킬 숫자대로 계산한다면 2/9인 셈이니 그 확률은 결코 낮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스킬 개조를 사용해 대성공할 확률보다는 높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두근거린다. 초월 등급 스킬의 다음 단계. 존재의 유무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초월 등급 스킬 하나 습득하는 것도 힘든데,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림의 떡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만약 초월 등급의 다음 단계가 존재한다면?
“저기 하나 씨··· 혹시 이거 찍어낼 수 있습니까?”
만약 이런 요리를 찍어낼 수만 있다면, 우리 그룹의 전력 향상에 엄청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되물었다.
“미쳤어요? 이런 요리를 어떻게 찍어내요? ···초월 등급 레시피 하나당 하나밖에 못 만들어요.”
“레시피 당 하나요? 레시피대로 다시 만들면 어떻게 됩니까?”
“아마 신화 등급으로 조정되겠죠. 첫 제작 시에만 등급이 상승하는 요리, 전에도 몇 번 만들어본 적이 있거든요. 그때도 그랬어요.”
하기야,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다. 이 사기적인 효과를 가진 초월 등급 요리를 찍어낼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진짜 ‘사기’일 테니 말이다.
“뭐, 초월 등급 요리 스킬이라도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나는 쓴웃음을 흘렸다. 나조차 정상적인 방법으로 초월 등급 스킬은 하나밖에 습득하지 못했다.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시계는 업적 보상을 통해 얻었던 것에 불과하다.
신화 등급 요리 스킬을 만드는 것도 힘들었는데, 초월 등급 요리 스킬을 만드는 것은 얼마만큼의 기프트와 시간이 필요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엄청난 행운이 따라준다면 몰라도···
조금 아쉬운 표정으로 화전을 쳐다본다. 그러나 아쉽다는 생각은 금세 자취를 감춘다. 화전, 꽃을 넣어 빚은 떡. TV에서 많이 보긴 했지만, 먹는 건 초등학교 급식 때 이후로 처음이다.
맛을 정의 내리자면, 달달한 맛. 그리 싫어하는 맛은 아니지만, 반대로 그리 좋아하는 맛도 아닌 그저 그런 맛.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화전의 이야기다. 초월 등급 화전이다.
그 냄새부터 일반적인 화전은 물론, 다른 요리들과도 궤를 달리한다. 신이 내린 달달한 냄새라는 게 있다면 이런 냄새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사설이 길긴 했지만···
나이프를 이용해 화전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내고, 포크로 집어 입 안에 넣었다. 그 순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나왔다. 맛에 감동해서였다. 농담이나 과장이 아니라 정말이었다.
이 세상의 맛을 모조리 모아놨다면 이런 맛일까?
“나도 한 입만 먹어보자.”
잠자코 우리를 지켜보던 옐레나가 탐욕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 역시 화전의 냄새를 맡은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안됩니다.”
어림도 없었다. 라플레시아 화전의 음식 보상은 모두 섭취 시에만 받을 수 있다. 옐레나는 고작 음식 가지고 그럴 거냐고 치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옐레나님은 대신 다른 걸로 드릴게요.”
김하나는 능숙하게 접시를 하나 더 꺼냈다. 신화 등급 요리는 그녀의 마음을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못 이기는 척 요리를 받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불만 어린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는 요리를 맛보고는 감동 받은 표정을 지었다.
“내 생애, 이런 음식을 먹어볼 줄이야···”
극찬하는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나는 다시 화전으로 눈을 돌려 열심히 포크질을 시작했다. 맛도 맛이지만, 그보다는 어떤 스킬의 등급이 상승할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이 귀한 음식을 너무 성의 없이 먹는다는 김하나의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나는 화전 하나를 게 눈 감추듯 해치우는 데 성공했다. 그 순간, 내 몸에 깃드는 푸른색의 빛.
[영구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11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55 상승합니다.]
[무작위 스킬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두근거리는 마음과 함께, 곧이어 등급 상승 메시지가 떠올랐다.
[‘스킬 – 통찰안(G)’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통찰안>
종류 : 패시브(Passive), 액티브(Active)
등급 : 초월(EX)
설명 : 드넓은 우주에서도 특별한 존재들만 가지고 있다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진리를 꿰뚫어보는 신의 눈. 시험을 통과할 때마다 새로운 힘을 각성할 수 있다. ◈1단계 : 사물의 마음은 물론 그 본질마저 시각화하여 바라볼 수 있다. ◈2단계 : 육체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3단계 : 사용 시, 대상을 지배한다. 지배할 수 있는 대상은 단순히 생명체에 국한되지 않고, 사물, 심지어 현상마저 지배하는 것이 가능하다. ◈4단계 : 사용 시, 통찰안의 저주를 받은 존재들을 불러낼 수 있다.
‘통찰안이라···’
전과 달라진 점을 찾아봤으나 4단계, ‘통찰안의 저주를 받은 존재들을 불러낼 수 있다’라는 것이 추가된 것만 제외한다면 이외에 달라진 점은 없었다. 나는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분명 통찰안이 유용한 스킬인 것도 맞고, 추가된 4단계의 능력 역시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만약 다른 스킬의 등급이 상승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되돌려볼까?’
조금 고민해본다.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시계를 사용하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몇 번 스킬 개조를 사용할 때 크로노스의 시계를 사용하여 몇 번 시간을 되돌려본 적이 있던 나였다.
물론··· 관두기로 했다. 복구하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20억 기프트.
지구에 있는 대부분의 변이체들의 ‘소탕’을 완료하고 플레이어 시스템과 ‘직접 계약’을 맺어 X380 행성에서 기프트 채굴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내게도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차라리 저 기프트면 신화 등급 스킬을 구매해서 ‘도박’을 시도해보는 게 나을 것이다.
‘만약 초월 등급 스킬이 걸린다면 도전해보겠지만···’
20억 기프트를 쓰고도 보장이 되지 않는다면,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며 시간을 돌릴 필요는 없으리라. 지금의 ‘행운’이 딱히 기프트를 들인 것도 아니고 말이다.
[‘최초의 초월자 2’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최초의 초월자 2>
등급 : 신화(God)
조건 : 플레이어들 중 최초로 초월 등급 스킬 3개 습득
보상 : 기프트 채굴량 +250%
무작위 초월 등급 스킬 카드를 또 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그건 너무 도둑놈 심보였다. 채굴량 250%면 충분히 만족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됐어요?”
김하나가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어온다.
“통찰안의 등급이 상승했습니다.”
“와, 그러면 새롭게 추가된 능력은 뭔데요?”
“통찰안의 저주를 받은 존재들을 불러올 수 있다고 적혀져 있습니다.”
“통찰안의 저주를 받은 존재들이라···?”
김하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통찰안의 ‘시험’에 대해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그녀니 저런 반응은 당연했다. 하지만 음식에 빠져있던 옐레나가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 눈의 저주를 받은 존재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존재들이 아닐 테지.”
“맞습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대마도사답게 그녀는 통찰안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는 듯했다.
“그러면 어떤 존재들인데요?”
“죽은 후에 말이야. 검은 옷을 입은 사신들을 만나게 되거든.”
나는 흥미롭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후 세계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후 세계를 직접 겪어본 그녀였으니 말이다.
“나는 그들에게 제의를 받았어. 명계에 끌려가지 않는 것과, 언젠가의 부활을 조건으로 영령전의 영령으로서 종사해줄 수 있느냐고 말이야.”
“부활?”
“그래, 부활.”
“딱 봐도 사기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요? 나중에 부활 안 해주면 어떻게 해요?”
다소 무례할 수도 있는 김하나의 물음에 옐레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나는 죽은 상태니, 그들의 제안을 수락해도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
잠깐의 침묵 이후, 그녀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영령이 된 후에 영령들을 만나게 됐지. 너도 알겠지만··· 영령들은 하나같이 생전에 대단한 업적을 세운 존재들이야. 당장 꼬맹이- 벨루가만 해도 일국을 불사른 불사조의 화신이니 말이야. 그런 그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죽은 후에 그들의 제안을 받고, 수락한 거야.”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의아함을 느꼈지. 내가 인간 중에서는 수위에 들 정도로 대단한 업적을 세우고, 엄청난 명성을 떨친 것도 맞지만 제일은 아니거든? 하물며 종을 인간이 아닌, 모든 종족으로 확장하게 된다면 순번이 조금~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단 말이야.”
“조금 맞습니까?”
“맞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