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만찬장의 근사한 인테리어와 맛있는 음식까지, 이러니 만찬의 분위기가 안 좋으려야 안 좋을 수가 없었다. 슬쩍 둘러본 그룹원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행복함이 가득하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다. 무언가가 빠진 듯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이내 부족함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눈과 코, 입은 즐겁지만 귀는 즐겁지 않았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귀를 즐겁게 해줄 음악의 부재라는 의미였다. 준비가 안 된 것은 아닐 것이다. 바른 빛 선교회에서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봤었으니 말이다.
끼이익.
그때, 닫힌 만찬장의 문이 열렸다. 마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는 말처럼 바른 빛 선교회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악기를 손에 든 채 당당하게 입장했다.
그룹원들의 시선이 한데 그들을 향한다.
짝짝짝.
이내,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바른 빛 선교회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양 의기양양하게 만찬장의 앞에 있는 무대 위로 올라왔다.
입을 연 건 김선우 목사였다. 그는 평소처럼 목사복이 아닌, 깔끔한 정장을 걸치고 있었다. 아까도 느꼈지만, 역시 사람은 옷이 날개다. 그는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입을 열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바른 빛 오케스트라의 단장, 김선우입니다. 뭐, 이곳에 있는 여러분들께서는 목사가 더 친숙하시겠지만 말입니다.”
새삼스럽지만 그의 말은 타인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었다. 목소리가 크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래서 사이비, 사이비 하는 건가.
“연주에 앞서 먼저 이 자리를 만들어주신 신께 감사드립니다.”
이번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몰린다. 그가 말하는 ‘신’이라는 것이 하늘에 있는 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말하는 것이라는 걸 그들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마음 같아서는 신께 감사함을 더 표현하고 싶지만… 즐거운 만찬을 망치고 싶은 마음은 없기 때문에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오늘 저희가 준비한 곡은 총 일곱 곡입니다. 부디,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말을 끝마친 그는, 자리로 돌아가 바이올린을 쥐었다. 지휘자인 줄 알았는데, 그 역시 연주자였던 모양이다.
피아노 반주를 시작으로,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됐다. 총 아홉 개의 악기가 자아는 아름다운 화음에 힘입어, 만찬장의 분위기가 더욱더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연주를 감상하며, 식사를 이어 나간다. 그 사이, 접시가 몇 번이나 교체됐다. 먹을 때마다 요리조의 노고를 떠올리며 감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만찬이 시작된 지 한 시간 째.
오케스트라는 잠시 멈추고, 김하나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리조인 그녀가 올라올 만한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그녀는 내가 있는 방향을 보며- 아니, 나를 보며 윙크를 하고는 입을 열었다.
“곧, 오늘의 스페셜 디쉬가 나올 예정입니다. 다들 착석해주세요. 물론 맛보고 싶지 않은 분은 일어서도 좋지만요.”
김하나, 김하나! 그룹 내의 그녀의 인기를 방증하기라도 하듯, 그룹원들은 그녀의 이름을 연신 연호했다. 그나저나 스페셜 디쉬? 아직도 남은 게 있었어? 이미 배도 부를 대로 부르고…
일어설까 슬슬 고민하고 있던 찰나… 연회장의 문이 열리고, 요리조원들이 들고 오는 접시에 담긴 요리를 보자, 그런 생각은 싹 지워지고 말았다.
천으로 가려져 있지만, 통찰안을 가진 내 눈엔 전부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 단순히 눈이 아니라 후각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저 요리는 범상치 않다는 것을…
<환상의 꽃이 곁들여진 극한의 채끝 스테이크>
등급 : 신화(God)
옵션 : 섭취 시, 일 회에 한해 영구적으로 모든 능력치 +5.0, 마력 회복 속도 +50%, 단, 일시적으로 환각을 볼 수 있다는 부작용이 존재함.
제작자 : 김하나
김하나가 요리 재료로 삼겠다고 신화 등급 스킬 ‘환상의 꽃, 라플레시아’를 습득한 지는 반년이 넘게 흘렀지만, 그동안 라플레시아로 만들어진 요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 이유를 ‘요리 스킬’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설명했었다. 라플레시아를 가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라플레시아와 동급인 신화 등급의 요리 스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화 등급 요리 스킬은 상점 구매가만 2억 기프트. 당시 100억 기프트를 모아야 했던 나로서는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대신 나는 한 가지 비책을 내놨다.
바로 스킬 개조.
‘영령 빙의’를 신화 등급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이후, 스킬 개조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 이미 나는 충분히 강하다. 이 세상에 남은 변이체들은 이제 ‘변이체 연합’의 변이체들 뿐.
물론 아직 숨어 사는 변이체들도 있다는 모양이었지만… 그들이 내게 위협이 될 리 없었다.
다시 말하면 내게 위협이 될 만한 존재는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채굴자’를 제외한다면 없다는 소리나 무방하다. 굳이 신화 등급 스킬을 개조하는 리스크를 감수할 이유는 없었다.
해서, 스킬 개조로 요리 스킬을 개조하게 됐던 것이다. 하루에 한 번씩, 꼬박 두 달을. 그 결과, 나는 신화 등급의 요리 스킬 카드를 얻을 수 있었고, 그녀에게 넘겼다.
이게 벌써 두 달 전의 일이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내 앞에서, 그룹원들의 앞에서, 첫 ‘라플레시아’ 요리를 선보인 것이다.
과연 그 효과는 대단했다. 모두 섭취도 아니고, 단순히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능력치를 5나 올려주고 마력 회복 속도를 50%나 올려준다.
그녀가 만들었던 신화 등급 요리들과 비교해도 그 효과는 차원이 달랐다. 환각을 볼 수 있는 부작용이 존재한다지만 효과가 워낙 좋기에 저 정도는 부작용처럼 느껴지지도 않는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먹어야 하니까, 양이 적은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말처럼 스테이크의 양은 고작 한입 크기에 불과했다.
‘어쨌거나 먹어볼까…’
포크로 선홍색의 스테이크를 집은 후, 소스를 가득 묻혀서 입 안에 넣는다. 그 순간, 나는 환상을 봤다. 마치 우주의 은하수가 전부 나를 향해 흘러드는 듯한 환상을…
[통찰안(G)이 환각 효과를 걷어냅니다.]
메시지를 보자, 정신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부작용으로 환각을 볼 수 있다 하더니, 방금 전의 환각이 바로 그것인 모양이었다. 물론 금방 벗어나긴 했지만… 나는 걱정이 치밀어 올랐다.
내가 이 정돈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아니, 당장 옆만 해도…
“저기, 미란…”
“헤헤, 토끼다.”
마치 개그맨처럼 토핑으로 제공된 당근을 집어 갉아먹는 그녀는 이미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장면을 볼 그룹원들도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랄까.
“…곱창 났네.”
곱창 났다. 이보다 작금의 상황에 더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까!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걸 어떻게 하지? 고민하던 나는 간단한 해결책을 찾았다. 영령 소환.
자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마법사 로브를 걸친 여마법사가 걸어 나온다. 대마도사, 옐레나.
“도와주세요, 옐레나님.”
“내가 무슨 도라에몽인 줄 알아?”
그녀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내심, 감탄했다. 지구의 문물을 접했다더니, 도라에몽 알게 된 모양이구나 하고. 그 사이 주변을 둘러본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체 뭘 먹였길래 저 사달이 난 거야? 내 제자도 맛이 갔네.”
마도사와 대마도사의 사이에 도달했다는 연병수도 환각을 피해가진 못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엔 연병수가 최미라의 앞에서 개다리춤을 추고 있었다.
문득 궁금해진다. 대체 무슨 환각을 보고 있으면 개다리춤을 추고 있는 거야? 나중에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녀에게 사건의 전말에 대해 털어놨다.
“환상의 꽃, 라플레시아로 만들어진 요리를 먹었습니다.”
“미친, 그 저주받은 꽃으로 요리를 만들었다고?”
그녀답지 않은 욕설에 괜스레 불안감을 느끼며 나는 그녀에게 되물었다.
“환상의 꽃, 라플레시아를 아십니까?”
“단 일주일 만에 숲 하나를 통째로 잡아먹었다는 저주받은 꽃.”
“어… 대단하네요.”
“그것도 보통 숲이 아니었어. 하이 엘프들을 비롯한 강성했던 엘프들이 있었던 미다스라는 이름의 숲이었지.”
“그런 숲이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겁니까?”
“엘프 중 하나가 라플레시아의 씨앗을 심은 건지, 아니면 엘프와 적대적이었던 세력에서 그런 건지는 밝혀지지 않았어.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라플레시아는 자라났고… 이후에는 네게 이미 말했다시피.”
라플레시아는 자라나자마자 다른 초목들의 양분을 뺏어 먹었고, 그 결과 다른 초목들은 말라 죽고 라플레시아는 더욱더 화려하게 피어났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엘프들은 막으려 했지만…
이미 화려하게 피어난 라플레시아의 옆에 다가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고 했다. 접근하는 데 성공한 몇몇조차 환각에 홀려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고…
결국 라플레시아는 엘프들의 숲을 통째로 집어삼켜 버렸고, 미다스 숲의 엘프들은 숲을 버리고 이주하는 떠돌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의하면, 겁나 빌어먹을 꽃이라는 거네요.”
“그래, 그런 꽃을 다뤘을 뿐만 아니라, 요리로 만들었다니… 그 요리사가 궁금해지는데? 효과를 모를 리도 없는데 이런 요리를 내놓다니. 분명 라플레시아처럼 사악한 마음의 소유자일 거야.”
“어…”
김하나의 순진무구한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 긴가민가했다.
사악한 마음이라… 그녀가 가끔 정민혁을 갈구는 걸 보면 아주 틀린 건 아닌가? 김하나가 알게 된다면 욕먹을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이 만찬장 안에 있는 그룹원들의 숫자만 3만 명입니다. 그런 그룹원들이 옐레나님의 말씀처럼 싸움이라도 벌였다간…”
지난 반년간, 나만 성장한 게 아니다. 그룹원들 역시 성장했다. 그런 그들이 서로 싸우는 날엔 글자 그대로의 헬게이트가 열린다. 하지만 옐레나는 걱정할 것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만약 진짜 라플레시아였다면 그랬겠지. 하지만… 지금 너희들은 라플레시아로 만들어진 요리를 먹은 것뿐이잖아? 사람마다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큰 이상 없이 대략 한 시간 정도 후면 전부 깨어날 거야.”
“아…”
그때 만찬장의 문이 열리며, 김하나가 안으로 들어온다. 그녀는 사람들을 보곤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서빙하던 애들이 환각 걸린 거 보고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역시나네요.”
“알고 있었습니까?”
“진짜 몰랐어요. 진서 씨는 멀쩡하네요?”
“아, 저야 뭐…”
차마 허공을 향해 손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는 말은 부끄러워하지 못하겠다.
“그래도 뭐,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역시 사악한 마음의 소유자가…”
그녀는 아공간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아공간에서 나온 건 접시였다. 접시 안에 담긴 요리를 본 나는 감탄하고 말았다. 스테이크는 그냥 맛보기였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