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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160화 (160/236)

160화

도시 한가운데, 거대한 백색 나무가 장엄하게 뻗어있다. 그 자태가 너무나 신성했기에, 지켜보던 이들은 경건함을 느끼며 저마다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리곤 했다.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모든 일이 잘 풀리게 해주세요.’

속으로 중얼거리자, 내 몸에서 빠져나간 하얀색의 에너지가 백색 나무에 전해진다. 비단 내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기도를 드린 이들에게 전부 일어나는 일이었다.

물론 이 이적(異蹟)을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통찰안’을 가진 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다음 순간, 마치 기도에 응답하듯,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소복소복, 마치 안아주는 것 같은 따듯한 느낌의 눈이었다.

“와.”

지켜보던 그룹원들이 작게 탄성을 낸다. 연인들은 서로 두 손을 붙잡고 눈을 맞기도 했다. 그 모습을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손을 탁 붙잡았다.

마치 여성처럼 고운, 부드러운 손의 감촉.

“흐흐, 뭘 기대하신 겁니까, 형님?”

뒤를 돌아보니 정민혁이 사악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기대 안 했다, 인마.”

그렇게 말은 했지만, 내심 기대했던 나였기에 겸연쩍은 얼굴로 손을 떼어냈다.

“뭐, 어쩌겠습니까? 형님 손 붙잡고 싶어 하는 여자가 한 명도 아니고, 아마 어느 한 명이라도 잡았다면 분명 싸움 났을 겁니다.”

나는 슬쩍 뒤를 돌아봤다. 진혜연과, 이제원, 라소미 등··· 여자 그룹원들이 모여 웃으며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싸움은 무슨, 저렇게 친해 보이는데···”

“형님 앞이니까 그렇죠, 후. 형님은 가끔 형님의 매력을 너무 과소평가하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주변 사람들이 끌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문득 정민혁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처음 만날 때부터 아부 하나는 일품이었지··· 물론 그때의 정민혁과 지금의 정민혁은 여러모로 많이 달라졌지만 저놈의 혀는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됐다, 시답잖은 얘기 집어치우고··· 넌 무슨 소원 빌었냐?”

“저요? 뭐, 제가 빌 소원은 하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정민혁은 한결 장난기가 걷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해도, 아무 일 없이 무사하게 잘 지나가게 해달라.”

곧 크리스마스니, 새해까지는 정확히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다. 새해가 지난 후에는, 1월 17일, 이 세계가 코인 채굴기로 변한 지 ‘일주년’이 기다리고 있다.

“뭐, 나랑 비슷하네.”

“아마 대부분 다 비슷하지 않을까요? 뭐, 몇몇 욕심쟁이들은 다르겠지만.”

다음 순간, 눈을 간지럽히는 광원(光源)에 백색 나무를 바라봤다. 사람들이 빈 소원이 마치 장식물처럼 백색 나무 위에 걸려있다. 그 모습은 아름다워, 나도 넋을 놓고 쳐다볼 정도였다.

“역시 비싼 값을 하네요.”

“그렇지?”

저 백색 나무의 정체는 블랙마켓에서 구매한 ‘세계수의 묘목’이었다. 우주상인 트레이가 한때 세계를 구했던 나무라면서 입을 잘 털길래 구매한 것으로 그 가격은 무려 100만 트레이.

1트레이가 평균적으로 2~4기프트 정도 하는 걸 생각하면, 기프트로 환산하면 어지간한 신화 등급 장비 이상의 가격을 호가하는 셈이었다.

사실 기프트보다도 거래할 수 있는 품목의 숫자가 제한돼있어서 트레이를 모으느라 애를 먹었지만, 꾸준히 거래를 이어온 결과 겨울이 되기 전 100만 트레이를 모아 구매할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맞이 행사 전까지만 해도 과연 그 값어치를 할지 의심했었는데··· 이 장면을 보니 의심이 깔끔하게 해소됐다. 전혀 들인 기프트가 아깝지 않았다.

“슬슬 만찬장으로 이동하시죠, 형님.”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함께 만찬장으로 이동했다. 클로에의 만찬장. 기존의 식당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한 건물이었다. 김하나의 말에 의하면 이 만찬장에서 만찬을 차리면 요리의 품질이 상승한다고.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이 클로에의 만찬장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선 만찬장 한가운데에 있는 클로에의 벽난로에 불을 붙여야 하는데 전용 장작이 100만 기프트다. 지속 시간은 4시간.

한마디로 식사 한 번에 100만 기프트를 소모해야 한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뭐···’

클로에의 만찬장은 Lv.45의 공간 확장 기능을 가지고 있어, 그 숫자가 몇이던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금 우리 그룹원들의 숫자가 대략 3만 5천 명이니, 100만 기프트에 3만 5천 명이 이용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면 오히려 싸게 먹히는 셈이다.

뭐, 문제는 3만 5천 명이 식사를 할 ‘음식’이겠지만 말이다.

3만 5천 명분의 한 끼를 만드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말이 한 끼지 여유분도 만들어야 할 테니 실질적으로는 그 두 배 이상은 될 테니 말이다.

‘요리조 죽어 나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구만···’

아마 주방에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끝나면 다들 포상이라도 내려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만찬장 안으로 들어왔다. 만찬장 안은 벌써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오셨습니까, 형님?”

“이야, 태윤이, 멋있네.”

“날이 날인 만큼 차려입었습니다.”

사람맞이를 하고 있는 이는 정장을 걸친 강태윤이었다. 원래부터도 잘생긴 얼굴이었는데, 정장까지 걸치니 연예인급이다. 거기에 서울대 신소재 학부라는 고학력까지 생각하면···

‘사기캐네, 사기캐.’

여심 폭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디에 앉으면 될까?”

“그, 앞자리에 앉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만찬 전에 형님께서 만찬사를 해주셔야 하니···”

“만찬사는 무슨, 에이··· 됐다. 편하게 먹지.”

“아닙니다, 그룹원들이 오히려 좋아할 겁니다.”

“아니, 내가 편하게 먹자고.”

“그래도···”

나는 강태윤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먼저 박승기와 앉기로 선약을 맺은 정민혁과 헤어지고는 비어있는 자리에 냉큼 앉았다.

오른편에 앉아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졌던 그룹원이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라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피식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냥 한 끼 식사하는 것이니, 너무 예 차리고 그럴 거 없습니다.”

“여, 영광입니다.”

한국말이 어눌한 걸 보니, 중국인인 모양이다.

“의외네요, 앞에 앉을 줄 알았는데.”

내 비어있던 왼쪽 자리에 여자가 앉았다. 지하오란의 장녀, 지금은 거의 은퇴한 지하오란을 대신하여 중국인들을 이끌고 있는 여자, 미란.

원래부터도 이제원에 비견될 만큼 아름다운 미모였지만 요즘 들어선 한층 더 그 외모에 물이 오른 느낌이었다.

‘걸친 의상도···’

가슴골이 깊게 파여 있는 차이나 드레스가 이국적인 느낌까지 더해주고 있었다.

“아, 미안합니다.”

“그렇게 쳐다봐줘서 오히려 좋았는데···”

“??”

“식사해요. 우리 쳐다보지 말고.”

“예, 예!”

졸지에 우리와 앉게 된 중국인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놀랐으면, 이번엔 들고 있던 스마트폰까지 떨어트렸다.

‘이럴 거면 그냥 앞자리로 갈 걸 그랬나···’

만찬장에 질서정연하게 그룹원들이 들어오고, 비어있던 테이블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앉기 시작한다. 북적북적거리긴 하지만, 확실히 사람 구경하는 재미는 있었다.

“저기, 다음 주말에 데이트 어때요?”

“갑자기··· 말입니까?”

“요즘 파밍 랜드에서 보는 밤하늘이 그렇게 예쁘대요.”

“전에 말했지만 저는···”

이미 미란은 내게 고백했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그리고 나는 그녀의 고백을 모조리 거절했다. 정말 그녀가 이성적으로 안 끌려서는 아니었다.

그녀는 충분히 매력적인 여성이었으니까. 내가 ‘훨씬’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만···

‘자네가 만약 누군가를 사귀면 그건 오히려 지금의 조화를 깨는 형국이 될 거네.’

잘못하면 파벌이 생겨 갈라질 수 있으니 최대한 연애를 삼가라는 박승기 의원의 조언을 받들어 거절했던 것이다. 물론 나도 연애에 대한 생각이 없어 오케이한 일이기도 했다.

그녀는 자존심 상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다시 본래의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친구끼리도 데이트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데이트를 하면 그건 친구 관계가 아니지 않을까요.”

“그러면 데이트가 아니라, 그냥 함께 놀러 가는 걸로 해요. 그 정도면 오케이 아닌가요?”

“놀러 가는 거야, 뭐···”

그녀가 그렇게까지 자존심을 굽혀가며 말하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그런 기색이 보이면···”

“보이면?”

그녀가 눈매를 치켜뜬다.

“도망칠 겁니다. 날개 달고 훨훨 날아서.”

“···뭔 남자가 이렇게 철벽이야?”

미란이 중국어로 욕설을 중얼거리고, 투덜투덜거리는 모습이 은근히 귀여워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만찬장이 제법 채워졌다.

물론 인파는 여전히 많았지만···

“곧 시작하려는 모양이네요.”

나는 사람들과 함께 성화(聖火)를 들고 오는 김민수를 보며 중얼거렸다. 만찬장이 조용해지고, 사람들의 시선이 한데 김민수에게 몰린다. 김민수는 성화를 번쩍 들어 올리고는···

장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성화 봉송을 시작하겠습니다.”

“무슨 올림픽이에요?”

“저렇게까지 진지하게 할 필요는 없는데···”

그는 벽난로에 불을 붙였다. 그런 의식이 아주 헛된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듯, 불이 붙은 벽난로에서 불로 이루어진 여성의 형상이 튀어나왔다.

그녀는 깔깔깔, 날카로운 웃음을 흘리고는 소리쳤다.

- 마녀, 클로에의 만찬장에 온 것을 환영한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만찬장 전체에 불빛이 밝혀진다.

“무슨 분위기만 보면 해피 할로윈인데요?”

“그러게요.”

뭐, 아무렴 할로윈이든, 크리스마스든 상관없긴 했다. 분위기는 확실히 올라갔으니 말이다. 요리조원들과 그들을 보조하는 인원들이 본격적으로 음식 담긴 접시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접시에 담긴 음식을 본 나는 탄성을 흘렸다.

‘진짜, 준비 많이 했네.’

접시 안에는 음식이 다채롭게 담겨 있었다. 전설 등급 요리였다.

<미슈랭이 극찬한 환상의 크림 파스타>

등급 : 전설(Legendary)

옵션 : 모두 섭취 시 영구적으로 근력 +1.0, 체력 +1.0, 한 시간 동안 일시적으로 근력 +5.0, 체력 +5.0

제작자 : 이미나

혹시 내 접시에 담긴 음식만 전설 등급일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전부 전설 등급 요리였다. 그야말로 호화로움의 끝판이라 할 만하네.

‘들어간 기프트도 기프트지만, 그것보다 역시 만드는 데 시간이 보통 걸리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천천히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 말아 한입 떴다.

‘맛있다.’

역시,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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