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화성의 바다는 화성의 대기와 함께, 수십 억 년 전 사라졌다. 하지만 그 말은 다시 말하면, 화성의 대기가 복원된다면 바다 역시 복원될 수 있다는 의미와도 동일했다.
그리고 예런 일리아티가 이끄는 미국인들- 아니, 이제는 화성인들이 돼버린 그들은 화성의 대기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계획이 절반은 성공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울퉁불퉁한 표면에 자그마한 물줄기가 흐른다. 잘 쳐줘야 개울이라 부를 만한 자그마한 물줄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개울을 감동 어린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화성 역사에 길이 남게 될, ‘최초의 바다’를 두 눈으로 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지켜보던 예런 일리아티는 헬멧을 벗었다. 화성의 평소 온도를 생각하면 그대로 피부가 얼어붙고, 피가 말라버릴 수 있는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지만, 그의 행동엔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두 눈을 깜빡인다.
“공기가 좋군. 다들 벗어보게.”
분명, 지구의 공기에 비하면 손색이 있긴 하지만… 벗고 생활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지장은 없을 것 같았다. 그의 말에 화성인들이 조심스럽게 하나둘씩 헬멧을 벗기 시작했다.
이내, 그들은 하나같이 환호성을 질렀다.
“휘유!”
“우리가 화성을 정복했다!”
“다들 너무 흥분은 하지 마. 이건 단지… 첫걸음에 지나지 않으니까.”
예런 일리아티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들을 말리고는, 아공간 창고에서 상자를 꺼냈다. 상자의 정체는 병맥주가 잔뜩 들어있는 맥주 상자였다. 화성인들의 환호성이 한층 더 커진다.
“하지만 오늘은 한 병 마시면서 즐기는 걸로 하지.”
“예, 알겠습니다.”
다가온 화성인들이 맥주를 집는다. 이내, 그들은 망설임 없이 맥주병을 따고 맥주를 들이켰다. 시원한 맥주 맛을 느끼며, 그들은 앞으로 그들의 미래에 장밋빛만 가득할 거라 생각했다.
한편, 그런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예런 일리아티는 우주선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의 표정이 무표정으로 돌아온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Y2로부터는 연락이 없었나?”
- 없었습니다.
“미치겠군.”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한 말이었다. 그의 야심 찬 계획에는 한 가지 허점이 있었다. 바로 필요한 물자의 대부분을 지구에서 보내오는 물자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
원래 계획대로라면 드래고니안 6호, 7호를 수송선으로 개조해, 물자를 운반할 생각이었지만 이진서의 개입으로 인해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기에, 급하게 계획을 수정했던 것이었다.
그래도. 급조한 계획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지난, 두 달여에 달하는 시간 동안 그의 분신은 꼬박꼬박 물자를 보내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지난주까지였다. 아예 연락이 끊어졌다.
물자 역시 끊어진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뿐이라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즉, 지구에 있는 그의 분신에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은 걸 보면, 아직 죽지는 않았다는 의미지만 최소한 계획에 차질이 생겼음은 분명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의 분신은 화성과 지구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고, 그 통로가 다시 연결되기 전까지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직접 그가 지구로 가는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지금으로서는 탐사선을 보낼 만한 형편이 되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하지…’
생각하던 그는 창문 너머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두운 밤하늘, 밝게 빛나는 별. 지구. 이내,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뿐이라는 걸 깨달은 그는 두 손을 모으며 중얼거렸다.
“Amen.”
***
하늘 요새에 있는 그룹원들은 노틸러스 1호의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장의 상황을 전해 받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 역시 방금 전의 광경을 목도(目睹)할 수 있었다.
벌어진 레비아탄의 복부에서, 녀석을 빼닮은 새끼들이 끊임없이 빠져나오는 광경을 말이다. 미처 예상치 못했던 ‘끔찍한’ 광경에 그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문주는 그들과는 다른 이유로 경악했다. 그의 심정을 대변하듯 그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고, 다리를 정신없이 떨었다. 옆에 있던 고경표가 눈치 없이 그에게 핀잔을 줬다.
“의사 양반. 그러다가 복 다 나가.”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서문주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무성 생식? 무성 생식이라니… 설마 그게 가능할 리가…”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그게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이여?”
그제야 고경표의 말을 들었는지, 서문주는 한 차례 길게 심호흡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분명 심해의 생물 중에는 무성 생식을 하는 생물도 여럿 존재합니다. 하지만 레비아탄은… 일반적인 생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놈은… 변이체잖아?”
“예, 그렇다면 레비아탄의 몸에 있는 기프트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
“새끼들에게 분배되는 걸까요? 아닐까요?”
“그거야…”
골똘히 생각에 잠긴 고경표였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모르겠네. 저렇게 많이 나눠줬다간 죽는 거 아닌가?”
새끼들의 숫자가 한둘도 아니고 수백에 달한다. 그것도 영상 속에 보이는 것만 살핀 숫자가 그러니, 실제로는 그 숫자를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다만 아직도 빠져나오고 있는 걸 보면. 저 안에 더 새끼들이 존재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어쩌면 수천… 그 이상의 단위에 달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저 새끼들도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군요.”
“그건 그렇지?”
명색이 레비아탄의 새끼들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새끼들 역시 몸집이 장난이 아니었다. 백상아리를 연상케 할 정도의 거대한 몸집들이다. 하지만 단순히 몸집만 큰 게 아니었다.
“적어도 최상급 변이체는 돼 보이는 거 같은데?”
지켜보던 이제원이 핀잔을 주듯 말했다.
“저게 고작 최상급 변이체라고? 최상급 변이체 상대해본 적 없지? 진서 씨가 괴물이라 그렇지, 저 정도면 특수 변이체 정도는 돼 보이는데?”
고경표가 그녀의 말에 화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찰나, 서문주가 입을 열었다.
“예,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특수 변이체가 보유한 기프트는 평균적으로 2만 5천. 녀석들의 숫자가 천 단위는 확실히 넘어 보이니 최소 2천 5백만 기프트.”
“그런데 그게 왜?”
“하지만 저 레비아탄은 새끼를 낳기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 보입니다.”
“……?”
대답은 그가 아닌, 그의 뒤로 뚜벅뚜벅 접근하던 아나스타샤의 입에서 나왔다.
“쯧쯧, 이래서 비과학자들은 안된다니까. 무한 동력이란 말에 대해 알고 있어?”
“무한 동력? 들어봤지?”
“그러면 알겠지만 무한 동력이란 건 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어. 열역학 제1 법칙, 에너지 보존 법칙 때문이야. 1의 에너지를 투입하면, 최대 1의 에너지밖에 얻을 수 없다.”
짤막하게 말을 마친 그녀는 재차 말을 이었다.
“기프트 역시 마찬가지야. 1의 기프트를 투입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만 얻어야 정상이지.”
고경표는 그제야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레비아탄이 무한 동력이라는 거야?”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말했잖아, 무한 동력이란 건 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다고.”
“그러면 저 새끼들은 뭐야?”
“그래서 의아하다는 거야. 무한 동력이란 건 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는데, 마치 멍청이들이 주장하고 숭배하는 영구 기관처럼 저렇게 끊임없이 기프트 덩어리들을 내뱉고 있잖아.”
서문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나스타샤 씨 말이 맞습니다. 한두 마리라면 모를까, 저건 이론적으로 말이 안 돼요. 평범한 생물이라면 모를까, 기프트가 존재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변이체들은 아닙니다.”
“그러면 녀석은…”
“어쩌면 레비아탄의 내부엔…”
고경표는 침을 꿀꺽 삼켰다.
“기프트 생성 장치가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기프트 생성 장치? 기프트를 자연적으로 생성한다는 거야?”
“아니, 자꾸 했던 말 반복하게 할래? 네가 알아듣기에는… 그래, 기프트 생성 장치라기보다는… 기프트 채굴 장치라는 표현이 좋겠네.”
아나스타샤가 혀로 입술을 축였다.
“어쩌면 저놈의 안에 우리가 사용하는 기프트의 ‘근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그러면 녀석을 죽이면…”
“아직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리더에게 이 사실을 전할 필요성은 있을 것 같습니다.”
고경표의 생각은 길지 않았다. 벌떡 일어난, 그는 허겁지겁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든 이 엄청난 사실을 이진서에게 ‘먼저’ 전해야겠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물론 그 방법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행동이 먼저 앞선 것이지만 말이다.
“그냥 Q 통해서 전하면 되는데, 쟤는 왜 저래?”
“그럴 만도 하죠.”
서문주는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가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전해 들었다면 그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였을 테니 말이다.
“아나스타샤 씨는 빨리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녀석을 죽이지 말라는 말도 덧붙여서.”
“예.”
“알았어, 그런데, 문득 궁금한 게 생겼어.”
“뭡니까?”
“저 녀석의 안에 기프트 채굴 장치가 있다면… 녀석의 배 속에 있는 강순철은 채굴 장치에 접근할 수 있는 걸까?”
“그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가능만 하다면,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안에 있는 채굴 장치를 빼낼 수만 있다면… 레비아탄을 손쉽게 처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채굴 장치 역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가능만 하다면 더 이상 기프트를 확보하기 위해서, 전투를 벌일 필요성이 없다는 뜻이다.
‘4차, 아니 5차 혁명인가…’
***
마치 고래에게 붙은 따개비처럼 수백 마리의 새끼들이 노틸러스 1호에 달라붙었다. 노틸러스 1호를 움직였지만, 녀석들을 처치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끼이익-!
녀석들이 선체를 물어뜯으며, 금속이 비명을 질러댄다. 나는 녀석들을 떨쳐내기 위해, 노틸러스 1호의 기능을 뒤져봤지만 애석하게도 녀석들을 떨쳐낼 기능 같은 건 없었다.
하기야, 레비아탄과의 전투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진혜연, 아니 생체형 안드로이드 로봇, Q들이 나를 향해 말했다.
“저희가 나가겠습니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플라즈마 대포로 변환한 상태였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그들을 말렸다.
“미안하지만 별로 도움 안 될 거 같거든?”
“어느 정도 도움은 될 겁니다.”
“고집들은… 여기서 나나 보조해줘.”
진혜연과 별개의 존재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같은 생김새의 그녀들이 죽어 나가는 것은 사절이었다. 그녀들은 내 대답에 나를 물끄러미 응시한다. 나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노틸러스, 트랜스 폼 기능 사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