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뭐, 누가 괴물이다, 누가 괴물이다, 할 게 뭐가 있어? 둘 다 괴물이지.”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배자, 사일런스 라미아가 입을 열었다.
“다들 레비아탄과 싸워본 경험은 있잖아?”
그녀의 온몸에 달린 뱀들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마치 영 좋지 못한 기억을 떠올린 듯한 그런 모양새였다.
그녀의 말대로, 변이체 연합의 간부들은 대부분 레비아탄과 마주친 경험이 있다.
이유는 제각각이다. 레비아탄의 존재를 미처 알지 못하고 태평양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마주쳤다든가, 그게 아니면 레비아탄과 한번 힘을 겨뤄볼 심산으로 찾아갔다가 마주쳤다든가.
그러나 그 결과는 동일했다. 그들은 전투 끝에 패배했고, 간신히 도망쳤다. 만약 도망치지 못했다면 그들은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 그들이 다른 초월체들보다 강해서 한 지역의 패자(霸者) 자리에 올랐다지만, 레비아탄은 그들에게도 규격 외의 존재였다.
“뭐, 싸워본 경험이라기보다는 도망친 경험이라고 부르는 편이 옳겠지.”
인드라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인도의 패자인 그의 강함을 증명하듯 무려 레비아탄과 한나절 동안 전투를 벌였던 그였다. 결국 그의 공격이 하나도 통하지 않아, 그의 패배가 됐지만 말이다.
“그런 레비아탄을 궁지로 몰아넣는 인간이 괴물이 아니면 뭐겠어?”
“그렇다면 라미아, 너는 둘 중 누가 이길 거라 생각하지?”
“솔직히 나는 인간 편을 들어주고 싶지. 레비아탄은 말도 안 통하잖아?”
“그렇다고 인간 편을···”
바벨란트가 불만 어린 얼굴로 말했다. 비록 동맹을 맺긴 했지만 여전히 인간은 그들의 앙숙이었다.
“아니, 나는 가능성을 묻는 거다.”
“그거야···”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레비아탄이 이기겠지. 분명 저 인간은 레비아탄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저긴 녀석의 홈그라운드가 아니니까.”
심해,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깊고 깊은 바다. 그 수압이 엄청나기에 이 심해에서 생활하는 초월체들의 숫자는 몇 되지 않았고, 레비아탄은 그런 심해의 지배자였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다. 레비아탄의 진정한 힘은 심해에서 고스란히 발휘된다는 것을 말이다.
“다들 생각은 비슷한 것 같군. 퀸, 네 생각은 어때?”
변이체들의 이목이 제일 상석에 앉아있는 퀸에게 쏠린다.
“나는··· 인간에 배팅하지.”
짧게 말을 마친 퀸은 검은 음료를 들이켰다. 인간의 음료로, 버려진 자판기에서 뽑아낸 것이다. 음료에 들어있던 탄산이 그녀의 목을 간지럽힌다.
“···퀸이 인간에게 배팅한다면, 나도 인간에 배팅하겠다.”
“아까, 나보고 인간 편을 왜 드냐고 했던 변이체가 누구더라~”
“흥, 생각이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거지. 그러는 라미아, 너야말로···”
그를 놀리는 듯한 어조에, 사일런스 라미아와 티격태격하는 바벨란트였다. 바로 그때였다.
“쉿.”
“왜?”
“심해에 들어갔다.”
거대한 레비아탄이 들어가고, 인간의 잠수함이 그 뒤를 잇는다. 그들은 흥미로운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심해에 들어간 이상 이제 둘의 ‘진짜’ 전투가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
- 수압으로 인해 선체의 내구도가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끼이익-
노틸러스의 말처럼 금속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선체를 구성한 금속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채굴자가 떨어트린 운석에서 추출한 금속- ‘버너디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압에 의해 찌그러지고 있으니, 이 심해의 수압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노틸러스 1호를 잃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괜찮아, 계속 쫓아가.”
설령 노틸러스 1호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레비아탄을 처치해야 한다. 녀석의 상처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여기까지 전해지는 검은 피가 그 방증이었다.
즉, 지금이야말로 ‘진짜로’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유리창을 통해 바깥을 내다봤다. 처음 보는 심해의 풍경. 온통 어둠만 가득하지만, 통찰안을 가진 나는 어둠 속을 훤히 내다볼 수 있었다.
을씨년스럽게 존재하는 거대한 암초와 생전 처음 보는 해초들. 어딜 보더라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풍경. 그리고 가로막는 것을 닥치는 대로 부수며 들어가는 레비아탄.
그 뒤를 바쁘게 좇는 우리의 잠수함. 이 기나긴 추격전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해조차 이제 곧 바닥을 드러낼 테니 말이다. 그때, 드디어 녀석이 갑자기 멈췄다.
녀석이 멈추며 일어난 거대한 물살이 유리창에 부딪힌다. 쿵, 잠수함이 거칠게 흔들릴 정도였다. 녀석이 선회하며 몸을 돌렸다. 노틸러스 1호도 황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둘이 부딪쳤다간 단순히 충돌로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돌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이대로 괜히 머리를 틀었다간, 녀석의 앞에서 빈틈을 노출하는 것이나 다름없고, 녀석의 한 입 거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 충돌 확률 99%. 이대로 가다간 반드시 부딪칩니다.
경고음이 또다시 이어진다.
“부스터 기능을 사용한다.”
- 예? 다시 묻습니다, 부스터 기능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어차피 못 피할 거면··· 제대로 부딪쳐줘야지.”
- ···부스터 기능을 사용합니다.
노틸러스 1호에 달려 있는 부스터 기능. 순간적으로 최대 속력의 450%를 낼 수 있는 괴물 같은 기능. 물론 그 속도로 부딪친다면 이쪽의 피해 역시 적진 않을 것이다.
나는 뒤에서 분주하게 전투 장비를 조작하고 있는 Q들을 불렀다.
“다들 모여.”
“네.”
그들은 순순히 내 명령을 듣고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부스터 기능을 사용했다. 부우우웅. 푸른색의 불꽃이 점화됨과 동시에 잠수함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 950m··· 50m.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순식간에 거리가 줄어든다.
“앱솔루트 쉴드.”
나는 재빨리 중얼거렸다. 나와 Q들을 둘러싼 보호막이 전개된다. 바로 다음 순간, 부딪친다. 레비아탄과 노틸러스 1호의 충돌이었다. 쾅-! 귀를 먹게 만들 정도의 거대한 폭발.
선체가 으깨지고, 산산조각 난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난 침착하게 중얼거렸다.
“시간 가속.”
[시간 가속(G)을 사용합니다.]
세상의 시간이 느려지기 시작한다.
“블링크.”
나는 블링크를 사용해, 바깥으로 나온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수압이 거칠게 내 몸을 짓누른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못 버틸 만한 수준은 아니다.
노틸러스 1호와 정면으로 부딪친 레비아탄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충격이 심한지 녀석 역시 곧바로 움직이지는 못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녀석을 향해 거대한 엘론을 휘둘렀다.
정확히 말하면, 녀석의 복부를 향해 말이다.
쾅!
반탄력이 느껴지며, 몸이 밀려난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마력을 싣는다. 휘두르고, 휘두르고, 다시 휘두른다. 녀석의 몸에 상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 느리다. 녀석의 몸을 파내고, 안까지 들어가기에는 말이다.
하기야 생각해보면 극한의 발도술도 몇 번이고 버텨냈던 녀석이 일반 공격에 제대로 된 상처를 입을 리 만무하다.
‘어쩔 수 없나.’
이렇게 되면, 사용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시계.”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시계(EX)를 사용합니다.]
[1억 기프트를 소모해, 마인화(EX)의 재사용 대기시간을 초기화했습니다.]
“1억 기프트가 누구 애 이름이냐?”
고작 스킬 하나 초기화하는데 1억 기프트라니, 아깝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기야, 그 스킬이 평범한 스킬은 아니지. 30분 동안 무적 상태로 만들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EX등급 스킬을 초기화하는 일이니 말이다.
30분에 1억이면, 초당 얼마야? 대략 5만 5천 기프트 정도인가? 호사도 이런 엄청난 호사가 없다.
[마인화(EX)를 사용합니다.]
[신체가 변화합니다.]
[체력이 21.5 상승합니다.]
[마력이 28.5 상승합니다.]
몸에 흐르는 엄청난 힘을 느끼며, 흐읍.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은 나는 엘론을 휘두른다. 극한의 발도술. 거대한 검기가 녀석의 몸을 향해 뻗어나간다.
이전과는 달리, 녀석의 반응이 제대로 왔다. 그 상태에서 블링크를 사용한 나는 한 번 더 극한의 발도술을 사용한다. 쾅-! 귀를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녀석의 몸이 부서지기 시작한다.
레비아탄의 몸이 꿈틀거린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의 몸을 향해 한 번 더 극한의 발도술을 사용했다.
“뱉어라, 이 새끼야.”
횟수가 늘어날수록 상처가 심해진다. 녀석의 몸에 급기야 구멍이 뚫렸다. 하지만 나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구멍 안에서 괴물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까 녀석이 피로 만들어냈던 괴물들은 아니었다. 녀석을 똑 닮아있는 괴물들. 그 숫자는 한 마리도 아니고, 수십, 수백 마리, 그 숫자는 더욱더 늘어난다.
‘미친.’
문득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녀석들이 자라난다면? 설마 모두 이 녀석처럼 되는 걸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꾸물꾸물 헤엄치던 녀석들은 이내 나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기 시작했다. 나는 엘론을 휘둘러 녀석들을 처치했다. 다행히 녀석들은 강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약하지도 않았다. 녀석의 정보를 확인한 나는,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레비아탄 주니어(Leviatan Junior)]
- 레비아탄이 무성생식을 통해 낳은 특수 변이체.
- 바다를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지배의 권능, 가로막는 존재를 집어삼킬 수 있는 폭식의 권능을 가졌다.
- 진화 조건 : 생후 90일이 지나면, 레비아탄(Leviatan)으로 진화.
- 보유 기프트 : 20,000
‘미친···’
태어난 새끼 하나하나가 무려 특수 변이체들이었다. 주목할 점은, 90일이 지나면 레비아탄으로 진화한다는 것. 이 많은 숫자의 새끼들이 전부 레비아탄으로 진화한다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끔찍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물론 사실 엄밀히 말하면, 녀석들이 제대로 성장한다 하더라도 레비아탄처럼 거대하게 성장하긴 어렵겠지만 말이다.
레비아탄 주니어들을 처치하던 나는 시선을 돌린다.
레비아탄이 어느새 몸을 들어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성애(母性愛)라도 존재하는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나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녀석의 거대한 몸.
만약 시간 가속을 사용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휘말리고 말았을 것이다. 가까스로 블링크(Blink)를 사용해 그 자리를 벗어난 나는 다시 노틸러스 1호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