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노틸러스 1호에 탑승할 승무원으로 삼을 거래요.”
“···승무원으로?”
생체형 안드로이드 로봇, Q를 만든 이유가 뭔가 했더니 노틸러스 1호에 탑승할 승무원으로 삼기 위해서란다. 얼핏 듣기에는··· 좋아 보인다. 레비아탄과의 전투는 위험 부담이 상당하다.
나 역시 탑승한 승무원들을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 미지수다. 하지만 그 승무원이 안드로이드 로봇이라면 마음에 걸릴 게 없는 것이다. 그래, 다 좋은데···
“왜 하필이면 혜연이, 니 얼굴이냐?”
“제가 자원했거든요. 귀엽고 좋지 않아요?”
베, 그렇게 말하며 혀까지 내밀며 웃는 진혜연.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던 낭설에 의하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 도플갱어를 보면 살인 욕구를 느낀다고 했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그런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역시 근거 없는 낭설이었던 모양이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완전히 똑같이 생긴 건 아니지만. 진혜연을 똑 닮긴 했지만 진혜연보다는 전체적으로 자그마하다. 사실 그녀의 동생에 가까운 외양이긴 하다.
그러는 사이 생체형 안드로이드 로봇, Q는 내 앞에서 기술 시연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자그마한 팔이 점차 변형되기 시작하더니, 이내 거대한 플라즈마 대포의 형태로 변했다.
어디 SF 애니메이션에서나 봤을 법한, 이 괴리감 넘치는 장면에,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쓱, 진혜연을 쳐다보니 그녀는 해맑게 웃고 있다.
오히려 엄지손가락을 들어, 따봉까지 날려주고 있다.
한편 몸 크기의 두 배 이상에 달하는 플라즈마 대포를 아무렇지 않게 들어 올린 Q는 느닷없이 나를 향해 플라즈마 대포를 겨눴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마스터, 데이터 수집을 요청합니다. 데이터를 얻을 시, Q의 성능 개선을 꾀할 수 있습니다.”
“······”
요컨대 맥락상 ‘데이터 수집’이란 것은 나를 향해 저 대포를 발사하는 일인 모양이다. 많이 당황스럽긴 하지만··· 나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저 대포에 정통으로 맞는다 한들 내게는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을 것이다. 통찰안으로 살펴본 결과 Q도, 그녀가 들고 있는 대포도 별 볼 일 없었으니 말이다.
‘잘 쳐줘 봐야···’
일반 그룹원 수준이다. 나와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라 할 수 있다.
Q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포문에 플라즈마 덩어리가 응축되기 시작한다. 딸깍. 그녀가 방아쇠를 당기자 응축된 플라즈마 덩어리가 나를 향해 발사된다.
순간적으로 머리를 곤두서게 만들 정도의 엄청난 플라즈마 덩어리가 내 몸에 부딪힌다. 물론 닿는 순간, 플라즈마 덩어리는 흩어 없어졌다. 보호막을 뚫기엔 한참이나 부족했다.
흠칫, 나는 Q의 표정에 놀라움이 어린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빠르게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왔고, 그녀는 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마스터. 데이터 수집은 성공적으로 완료됐습니다.”
“어 그래.”
“이제 우린 가자.”
진혜연은 다시 인간의 팔로 되돌아온 Q의 팔목을 잡고는 질질 끌었다. Q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에게 질질 끌려 나가기 시작했다. 방을 벗어나려던 찰나, 그녀가 생각났다는 듯 불렀다.
“노랭아, 너도 와야지.”
침대 위에서 대(大) 자로 늘어져 있던 와일드 혼은 그녀의 부름을 알아들은 듯 펄쩍 공중제비를 돌아 바닥에 착지하더니,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가기 시작한다.
너무 얌전히 있기에, 나도 잠시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들이 폭풍처럼 지나간 후, 홀로 남겨진 나는 의자에 뒤로 눕듯이 앉았다. 내 시선은 내가 방금 습득한 스킬로 향해 있었다.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시계>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초월(EX)
설명 : 기프트를 소모해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 돌릴 수 있는 범위는 사용자의 마력 능력치와 비례한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미쳤네.”
그 말처럼 미쳤다. 시간을 뒤로 돌리는 스킬이라니. 원래 내가 바랐던 스킬은 내가 가진 유일한 유일 등급 스킬, ‘성운의 가호’를 대체할 만한 스킬이었다.
신화 등급 스킬과 성운의 가호 스킬의 시너지가 워낙 뛰어나서, 전설 등급 스킬들 중에서도 대체할 만한 스킬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기대를 한참이나 뛰어넘는 스킬이 등장했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딱히 적혀 있지 않은 걸 보면, 말 그대로 기프트만 있으면 시간을 얼마든 되돌릴 수 있는 스킬인 모양이다.
‘한번 사용해볼까.’
나는 책상 위에 있는 볼펜꽂이에 있던 볼펜을 집어 책상에 가볍게 일직선을 쭉 그었다. 그리고 되돌리고 싶다고 생각하며 스킬을 사용했다.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시계(EX)를 사용합니다.]
그와 동시에, 세상 전체가 시계태엽으로 변한다. 수많은, 크고 작은 시계태엽들이 딸깍거리는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역(易)으로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150,000 기프트를 소모해, 시간을 되돌립니다.]
메시지와 함께 시계태엽들이 전부 사라지더니, 볼펜 자국이 남아있지 않은 멀쩡한 책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볼펜을 그리기 이전으로, 시간이 되돌아간 것 같았다.
‘이건 좀···’
고작 책상 하나를 원상태로 돌리는 데 무려 15만 기프트가 들었다. 어디 소설 속에 나오는 것처럼 회귀(回歸) 같은 걸 하기 위해선 기프트가 얼마나 필요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선 기프트가 아주 많아야 하리란 것이다.
당분간 기프트를 모으는 데 집중해야겠다. 어차피 ‘플레이어 시스템’과 직접 계약을 맺기 위해선 100억 기프트가 필요하기도 하고.
***
쉘터에서 상당한 기여도를 인정받은 장영하는 더 이상 속박되지 않고,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완전한 자유가 아닌 제한된 자유였지만, 애초에 완전한 자유는 그도 바라지 않았다.
이렇게 주어진 자유를 통해 그가 하는 일은 곳곳을 돌아다니며 약주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 소박한 것이었다. 주로 풍경화를 그렸지만, 때로는 인물화를 그리기도 했다.
“어르신 솜씨가 상당하십니다.”
김희승은 그의 그림을 보고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얼핏 보기엔 대충 쓱쓱 그리는 것처럼 보였는데, 완성된 그림을 보니 세상에 둘도 없는 명화(名畫)가 탄생했다.
그림에 조예가 없는 그조차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장영하도 그의 칭찬에 그리 기분이 나쁘진 않은지,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허허, 그런가? 젊은 청년이 나를 너무 비행기 태워 보내주는군.”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제가 본 그림 중 제일입니다. 그 반 고흐인지, 빈센트 고흐인지보다도 훨씬 낫습니다.”
“그 사람 그림은 추상화고 내 그림은··· 흠흠, 아무튼 칭찬은 감사히 받겠네. 자네가 그렇게까지 좋게 말해주니 한 장 더 그려야겠다는 기분이 드는군.”
김희승은 반색하며, 비워진 술잔에 술을 따랐다.
“일단 한 잔 드십시오.”
“다 그린 다음에 마시지, 왜 관운장도 그러지 않았나. 이 술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노라고 말이야.”
“흐흐,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다시 펜을 들고 망설임 없이 선을 쭉쭉 뻗기 시작했다. 선과 선이 이어진다. 처음엔 뭘 그리나 의문을 나타냈던 김희승이었으나 이내 자신의 얼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그의 얼굴이라기엔 지나치게··· 왜곡된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 왜곡이라는 것은 좋은 쪽의 왜곡이고, 김희승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장영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술잔에 손을 뻗었다. 단숨에 술을 들이켜고는 창문을 통해 경치를 눈에 담는다. 푸르른 들판, 그리고 저 들판에서 경작된 곡식으로 만들어진 곡주.
‘좋구만.’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하지만 다음 순간, 장영하의 표정이 굳어졌다.
“······”
“어르신?”
파르르, 그의 눈이 떨린다. 그 정도로 그가 당황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나 다름없었다.
“허, 이거 참···”
“곡주가 입에 잘 안 맞으십니까?”
역시 곡주가 아니라 비싼 술로 준비할 걸 그랬다고 김희승은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장영하는 고개를 저었다.
“자네 때문이 아니네. 아무래도 먼저 가봐야겠군.”
“예, 어르신. 그런데 혹시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김희승을 바라보던 장영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어쩌면 대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네.”
김희승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대전쟁?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대전쟁 말입니까? 대체 누구랑 말입니까?”
“변이체네. 일단 그 친구에게 말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네.”
“예, 어르신. 금방 차량을 준비하겠습니다.”
“그건 너무 늦지. 대신··· 유리창은 실례 좀 하겠네.”
“···예? 그게 무슨···”
하지만 그의 다음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장영하가 유리창을 깨며 단숨에 몸을 날렸기 때문이다.
“어, 어르신!?”
그들이 있던 곳은 파밍 랜드(Farming Land) 한복판에 있던 웨이타오와 지하오란의 합작이라 할 수 있는 전망대 63층. 그는 무려 63층 아래로 몸을 던진 것이다.
그가 당황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되새길 수 있었다. 장영하는 평범한 노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거대한 용이 파밍 랜드 위를 비행하기 시작한다.
거대한 그림자가 지나가자, 농사를 짓고 있던 농사꾼들이 당황한 얼굴로 허둥지둥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희승은 거대한 용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가 말한 전쟁이 마음에 걸린다. 천생 농사꾼인 그에게 ‘전쟁’이란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 일도 아니기를 간절하게 빌었다.
***
장영하가 나를 찾아왔다. 그것도 용으로 변한 채, 급박한 얼굴로. 나는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나 싶어서,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의외의 말을 내뱉었다.
“협박을 받았네.”
“협박··· 말입니까?”
“그래, 더 이상 변이체를 죽이면 이곳을 공격할 거라더군.”
“그··· 영감님이 협박을 받으셨다는 게 혹시 변이체로부터 협박을 받으셨다는 거였습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쓴웃음을 터뜨렸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잖습니까. 변이체가 인간을 공격한다는 것은.”
“이 친구야, 하늘 요새 안에 있는 내게 텔레파시를 보낼 정도면, 평범한 초월체가 아니지 않겠나?”
“그건 그렇네요.”
“내게 텔레파시를 보낸 초월체는··· 자신을 ‘변이체 연합’의 일원으로 지칭했네. 아직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우린 모르지 않나.”
그건 맞는 말이다. 그에게 텔레파시를 보낸 초월체가 어떤 존재인지, 변이체 연합이 어떤 단체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