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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147화 (147/236)

147화

연구 가운을 걸친 여자가 퀭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바깥으로 나온다. 하늘 위의 태양이 눈이 부신 듯, 그녀가 얼굴을 찌푸렸다. 순간적으로 암전됐던 시야가 점차 돌아오기 시작한다.

나무에 기대서서, 담배를 꼬나문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적색 머리의 여자. 입술도, 걸치고 있는 블라우스도, 심지어 신발마저도··· 전부 다 붉은색이다.

여자는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라우라.”

라우라라 불린 여자는 후,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떼어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었다.

“으, 냄새나는 년. 대체 얼마나 연구실 안에 처박혀 있었던 거야?”

사실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나는 척 짐짓 코를 쥐면서 묻는 그녀의 말에, 여자- 아나스타샤는 피곤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몰라, 한 삼 일쯤?”

“미친년··· 씻기나 해라.”

“뭐야, 걱정해주는 거야?”

“내가 왜 네 걱정을 해주냐?”

아나스타샤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라우라의 어조에 어린 걱정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하네.’

참 차려입은 것처럼 성격도 단순하기 짝이 없다. 하기야,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녀를 싫어할 수 없는 것이지만 말이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왜 찾아온 거야, 여긴?”

“아니, 뭐··· 그때, 곧 죽을 년 같은 표정 지어서 혹시나 목매단 건 아닌가··· 겸사겸사 확인하러 왔지? 뭐, 그런 것치고는 멀쩡해 보이네.”

아나스타샤는 지난 일을 회상한다. 그녀에게는 나름 거대한 시련이었다. 시간 안에 그럴듯한 연구 성과를 만들어오지 못하면 그녀의 물주가 쉘터에서 내쫓겠노라 선언했으니 말이다.

미국이 사라진 지금, 이제 하늘 요새는 유일한 인간들의 나라이자 도시라 해도 무방하다. 그런 하늘 요새에서 내쫓겠다는 건 사형을 구형하겠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론 한편으로는 쓸모 있는 자신을 정말 내쫓겠냐는 생각을 품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목숨이 달려있는데, 그의 말을 단순한 거짓으로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30일. 그 안에 태평양의 괴어- 레비아탄을 처치할 만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녀는 ‘현자’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아냈다.

“그래서 그 해결책이 뭔데?”

“그건··· 말로 하면 재미없지. 내려와.”

라우라가 고개를 끄덕였고, 곧 그들은 함께 연구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는 곧 연구실 안에서 거대한 로봇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

“안드로이드 로봇?”

“미안하지만 틀렸어. 내가 만들어낸 건··· 단순한 로봇이 아니야.”

그건 또 무슨 정신 나간 소리인가, 대꾸하려던 라우라는 이내 입을 벌리고 말았다. 거대한 로봇이 앞뒤로 움직인다. 끼이익, 그와 동시에 로봇의 조종석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껑충 뛰어내렸다. 외형을 보고 조종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조종자가 존재할지는 몰랐기에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다른 이유로 놀랐다.

“진혜연?”

소녀가 다름 아닌, 진혜연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몸집이 조금 작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판박이였다.

‘친척? 여동생?’

그녀는 진혜연이 자신의 친척이나 여동생에 대해 말한 적이 있는지 떠올렸지만, 그런 적이 없었다. 애초에 그녀의 가정사는 정상이라고 말하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쟤는···’

대체 저 소녀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라우라가 혹시 딸이 아닐까, 진지하게 의심하고 있던 중 소녀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 역시 진혜연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저는 생체 안드로이드 로봇 Q예요.”

“···생체 안드로이드 로봇? 로봇이라고?”

놀랍게도 소녀의 정체는 로봇이었다. 라우라는 오늘 여러 번 놀란다고 생각했다. 누가 봐도 사람과 차이가 없는데 로봇이라니···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녀의 의문을 해소시켜 주기라도 하듯 Q가 팔을 꾹 눌렀다. 그러자 팔이 변환되기 시작한다. 거대한 플라즈마 대포로.

“!”

그녀는 또다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대, 대체 뭘 만든 거야?”

“뭐, 예전에 연구하던 거 완성한 것뿐이지. 사실 생체형 안드로이드 로봇은 그저 껍데기에 지나지 않아. 내가 완성시킨 건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독립적 자아, 연.”

강(强) 인공지능, 스카이보다 한층 더 진화한 인공지능, 연. 인간과 다름없이 사고(思考)할 수 있는 존재를 그녀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낸 것이다.

“연은 뭐 너도 짐작하다시피 혜연이 이름에서 따왔고, 이미 허락도 맡았어.”

“미친년···”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은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쟤로 레비아탄을 잡을 생각이야?”

그녀의 말에는 ‘고작?’이라는 의문도 함께 내포돼있었다. 대단하긴 한데, 그 바닷속의 괴물을 잡기에는 부족할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나스타샤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무슨 수를 쓰든 그 괴물을 잡는 건 불가능해.”

노틸러스 0호 덕에, 레비아탄에 대한 데이터를 성공적으로 수집할 수 있었다. 레비아탄은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몸길이만 수 킬로미터에 달하고, 그 무게는 수만 톤에 달한다.

하지만 단순히 몸집만 큰 게 아니다. 애초에 레비아탄이 노틸러스 0호를 집어삼킨 곳은 심해다. 그 거대한 몸집이 심해의 수압을 견디기 위해선 얼마만큼의 힘이 필요하단 말인가.

계산하는 것만으로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다.

그녀가 만든 생체 안드로이드 로봇은 걸작이지만, 그런 생체 안드로이드 로봇으로 레비아탄을 처치하려 한다는 것은 그저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뿐이란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어디까지나 ‘하나’라면 말이지.”

그녀가 준비한 생체 안드로이드 로봇은 하나가 아니었다. 연구실 안에서 소녀‘들’이 걸어 나온다. 하나같이 전부 진혜연을 닮은 얼굴들에, 라우라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얼마나 만든 거야?”

“오십 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더 늘어날 거야. 뭐, 제조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한계’는 있겠지만.”

“그런데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레비아탄은 못 잡을 텐데?”

“어차피 레비아탄을 처치하는 건 이진서야. 생체 안드로이드 로봇들은 그를 보조만 하면 충분해. 듣기로는 노틸러스 1호를 탈 생각이라던데, 승무원 역할 하기에 충분하지 않나?”

“······”

그녀는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오십 명의 진혜연들과 함께 잠수함에 탑승한 이진서의 모습을. ···잠시 침묵하던 그녀의 입이 열렸다.

“미친년.”

평소에 그녀를 대할 때, 추임새처럼 욕설을 하던 그녀였지만, 이번만큼은 진심인 그녀였다.

***

나는 내 손에 들린 검은색 카드를 보며, 손을 모아 기도했다.

검은색 카드의 정체는 업적 달성을 통해 획득한 무작위 초월 등급 스킬 카드. 무려 신화 등급을 뛰어넘는 초월 등급 스킬 카드를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다.

문제는 나오는 스킬 카드가 ‘무작위’라는 것. 지난번 신화 스킬 카드깡을 했을 때처럼 내게 불필요한 스킬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차라리 신화 등급 스킬이라면 낫다.

기프트만 있으면 뽑거나, 구매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초월 등급 스킬은 뽑기도 불가능하고, 구매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것이 바로 무신론자인 내가 하늘에 간절하게 기도를 하고 있는 이유였다.

‘빛의 신, 루이시여, 지혜의 신, 미미르시여···’

간절히 기도를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메시지가 떠올랐다.

[행운의 신이 왜 이상한 신들에게 기도를 하느냐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습니다.]

진짜 행운의 신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얼른 기도의 대상을 바꿨다. 아무리 빛의 신, 지혜의 신이 끗발이 대단해도 ‘행운’이라는 분야에 한해서는 행운의 신을 따라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아니, 행운의 신이시여···’

[행운의 신이 당신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슬그머니 능력치를 확인해봤더니, 행운 능력치가 정확히 딱 1 올라 있었다. 공짜 버프긴 하지만··· 솔직히 신치고는 짜도 너무 짜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운의 신이 축복을 회수하길 바라느냐고 묻습니다.]

나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행운 1이 아쉬운 시점이었다.

‘네 잎 클로버가 있으면 좋겠지만···’

동화 세계 속에서 얻었던 행운의 신의 네 잎 클로버- 행운을 늘려주는 아이템이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네 잎 클로버는 그때 썼던 게 전부였다.

VVIP 상점에서도 구매가 불가능한 아이템이었다.

‘뭐든지 다 있다더니···’

대신 요리와, 버프 스킬, 그리고 행운을 늘려주는 아이템을 복용한 지금 내 행운 능력치는 200에 육박했다. 떨리는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나는 검은색 카드에 손을 뻗었다.

[‘무작위 초월 등급 스킬 카드’를 개봉하시겠습니까?]

‘가즈아···’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무작위 초월 등급 카드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했다. 곧, 강렬한 빛이 내가 있는 방 전부를 잠식한다.

순간적으로 눈을 멀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빛이었으나, 통찰안을 가진 나는 고스란히 그 자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온 초월 등급 스킬 카드를 본 내 입이 떡 벌어진다.

‘이건···’

정보를 읽어내리던 그때, 방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나는 무심코 누군가의 존재를 확인했다.

‘······’

진혜연과, 진혜연을 똑 닮은 어린아이가 손을 잡은 채 나란히 방 안으로 들어온다. 나를 본 진혜연이 악동과 같은 웃음을 흘렸다. 그 뒤로, 와일드 혼이 하품을 하며 들어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이거 꿈 맞네.’

무작위 초월 등급 스킬 카드라니. 그리고 스킬 카드를 개봉해서 딱 내가 원했던 스킬을 얻다니. 왠지 운수가 억세게 좋다고 생각했는데, 꿈인 모양이었다.

[플레이어, 이진서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스템이 내 생각을 바로잡아준다.

“아니, 그렇게 말해도··· 그럼 내가 보고 있는 건 뭐야?”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보십시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나는 어렵지 않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통찰안을 사용해, 진혜연과 진혜연을 닮은 여자아이를 쳐다본다.

[생체형 안드로이드 로봇 – Q]

- 능력치

[근력 55.000] [민첩 55.000]

[체력 100.000] [지력 65.000]

[마력 55.000] [행운 55.000]

- 보유 스킬

<육체 변형(U)>

<패스트 리커버리(U)>

- 보유 장비

<플라즈마 대포(U)> <플라즈마 광선 총(U)> <플라즈마 광선 검(U)>

“생체형 안드로이드 로봇?”

내 물음에 진혜연이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응응, 아나스타샤 언니가 만들었대요. 신기하죠.”

“이런 건 갑자기 왜 만들···”

“처음 뵙습니다, 마스터.”

생체형 안드로이드 로봇 - Q가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이 마치 배꼽 인사를 하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아서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인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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