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 중국인들과 러시아인들은 당분간 살려두기로 했다.
알량한 생명에 대한 존중 때문은 아니었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다른 이들을 죽이려 한 이들의 목숨까지 존중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그들을 살려둔 이유는···
‘죽이면 나만 손해니까.’
기프트 계약을 맺느라 그들에게 소모한 기프트만 ‘최소’ 10만 기프트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보유한 스킬 역시 근본적으로는 다 내 지갑에서 나간 것들이다.
한마디로 그들을 죽여 봤자 능력치만 날리고, 투자한 기프트까지 날리는 호구가 되는 셈이다. 그들을 죽이는 대신 본전을 뽑을 때까지 죽어라 굴릴 생각이었다.
‘역시 농사가 좋겠지?’
내가 구매한 행성 X-347은 넓다. 정확히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하늘 요새보다 훨씬 넓다 해도 무방하다. 게다가 토지 대부분이 주인이 없는 공석이다.
저 토지에 농사를 짓는다면 수확물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일단 저들을 실험용 쥐로 투입해보고, 안정화되면 다른 플레이어들을 옮겨도 되겠어.’
토지가 넓으니, 할 수 있는 일들이 여럿 떠오른다. 물론 그 전에···
- 히익, 여기가 어디야!?
한 무리의 인간들이 뒤에서 쫓아오는 고대의 거인들을 피해 젖 먹던 힘을 다해 달아나고 있다. 하지만 체급 차이가 너무 크기에 달아나는 일이 그리 수월해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그들은 가까스로 지하에 숨는 데 성공했다. 내가 직접 들어가서 거인들을 제지할까 생각했지만, 그냥 당분간은 죗값을 치를 겸 고통받게 놔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시계를 툭 누르자, 딸깍 소리와 함께 포탈이 사라졌다.
‘일단 내부의 혼란은 대충 종식시킨 거 같고···’
지하오란과 바실리에게 엄포를 놓았으니, 그들은 한층 더 정밀하게 그룹원들을 조사할 것이다. 물론 이건 비단 중국인, 러시아인들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새로 온 미국인들과 기존의 한국인들 역시 마찬가지.
‘다음은···’
레비아탄의 배 속에서 아직 살아있다는 강순철을 구할 생각이었다.
내가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김민수의 공방이었다. 미리 방문 소식을 전해 들은 김민수는 공방 밖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흙길에 양 무릎을 꿇고 있다.
처음엔 조금 당황했지만, 그가 왜 그러는지 알 것 같았기에 그를 일으켰다.
“일어나십시오.”
“리더, 아나스타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녀가 책임이 있다면, 저 역시 책임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어차피 벌어진 일입니다. 다시 잘해봅시다.”
그렇게 말하며 그의 손을 붙잡고 일으키자 그는 감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더가 없는 사이에, 노틸러스 1호의 건조 작업이 끝났습니다.”
그를 따라 대형 공방으로 걸어 들어가니 대형 공방을 빼곡히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흑철색의 잠수함이 눈에 들어왔다. 인부들이 바쁘게 자재들을 나르고 있다.
[노틸러스 1호]
종류 : 탈것(Vehicle)
등급 : 신화(God)
내구 : 15,000,000/15,000,000
기능 : AI 탐색 Lv.50, 소나 Lv.50, 기척 제거 Lv.50, 속도 Lv.50, 부스터 Lv.50, 쉴드 Lv.50, 오토 쉴드 Lv.50, 오토 리페어 Lv.50, 트랜스폼 Lv.50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대단했다. 신화 등급 탈것. 그 내구도만 무려 천오백만에, 50레벨짜리 기능이 아홉 개나 된다. 아낌없이 돈을 투자한 보람이 있다.
김민수는 한마디 더 첨언(添言)했다.
“필수 기능은 모두 추가했습니다만, 기능은 더 추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리더가 원하는 기능이 어떤 기능일지 몰라서 보류해뒀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물었다.
“노틸러스 0호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당연히 비교 불가능입니다. 노틸러스 0호는 전설 등급이었습니다.”
신화 등급과 전설 등급. 장비나 스킬만 봐도 그 격차는 엄청나다. 탈것 역시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것으로 대답은 충분히 된 셈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트랜스폼 기능은 뭡니까?”
궁금했다.
내가 소유한 1급 안전 가옥 역시 트랜스폼 기능이 달려 있다. 트랜스폼 기능을 사용하면 팔다리가 나와서 이동이 가능한 형태가 된다. 그러면 저 거대한 잠수함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다시 항공모함으로 변하나?’
“부끄럽긴 하지만···”
그는 인부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 사람들아, 나와!”
자재를 운반하고 있던 인부들이 툴툴거리며 자재를 놓고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김민수는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대형 공방의 천장이 열린다. 마치 격납고 문이 열리듯. 동시에 잠수함의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쇠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
변환된 잠수함의 모습을 보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로봇. 마치 마징가나 태권브이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로봇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김민수는 뿌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거대한 로봇이야말로 사나이의 로망 아닙니까.”
이 양반이 언제부터 로봇 덕후였지?
혼란스러운 정신을 가까스로 되찾으며 입을 열었다.
“···공격 기능도 있는 겁니까?”
“트랜스폼 상태에서는 내구도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대신 조종자의 능력치에 비례해 로봇이 능력치를 가지게 됩니다. 물론 그만큼 동력이 아주 많이 필요하겠지만 말입니다.”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진다. 물속에서 거대한 괴수와 맞서 싸우는 저 거대한 로봇의 모습이 말이다.
‘이건 아닌··· 아니, 오히려 잘된 건가?’
레비아탄이라는 거대한 괴수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육지에서라면 모를까, 솔직히 깊은 심해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노틸러스 1호에 탑승한 상태라면. 수중전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내가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몇 번 반짝거리던 로봇이 다시 원래의 형태로 되돌아오기 시작한다.
“몇 분 정도 유지 가능합니까?”
“30분 정도는 무리 없습니다. 그 이상으로 넘어가면 필요한 동력량이 두 배씩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한나절을 움직이려면 얼마나 들까요?”
“···아마 한나절은커녕 세 시간도 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길 겁니다. 동력원이 충분하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의 솔직한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 시간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노력해주세요. 적어도 한나절 이상 트랜스폼 상태로 움직이더라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만큼.”
“저 혼자서는 어림도 없고, 아나스타샤의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감정이 남아있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솔직히 이성적으로는 이미 그녀를 용서했습니다.”
어차피 누구를 탓한다 한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나온 말이었다. 그는 내 말에 조금 감격하는 듯한 얼굴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언제까지 하면 됩니까?”
나는 아나스타샤가 말한 골든타임을 떠올렸다.
한 달이라 했으니, 이제 28일 정도 남은 건가. 물론 28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그 절반 안엔 완성이 돼야 구체적으로 계획을 짤 수 있다.
“보름 안에, 가능하겠습니까?”
“해보겠습니다. 다만··· 기프트가 많이 들어갈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습니까?”
-37억 얼마인 내 잔고를 떠올리면, 한숨부터 나온다. 하지만 어차피 아직 최대 외상 한도인 50억까진 13억이 남았다. 아직 13억 정도는 움직일 수 있는 셈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해봅시다.”
물론 나도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노틸러스 1호가 완성될 때까지, 나 혼자서 변이체들을 사냥할 생각이었다. 아직 지구에 남은 변이체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으니 말이다.
***
화성(Mars).
태양계의 행성 중 유일하게 물이 존재했던 흔적이 있는, 테라포밍이 가능한 행성. 물론 어디까지나 테라포밍이 가능하다는 것뿐, 화성을 테라포밍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자기장의 부족으로 인한 태양풍 문제. 태양풍을 막기 위해선 인공적인 자기장을 생성해야 하는데 인공적인 자기장을 생성한다는 것은 현 인류로서는 불가능한 일.
하지만 예런 일리아티는 탁월한 천재답게 이에 대한 대비책을 꾸준히 마련해왔다.
물론 그 대비책이라는 건 인류의 기술력으로 시행이 불가능한 터무니없는 것이었으나, 기프트로 구매할 수 있는 오버 테크놀러지를 가진 외계의 물건들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우주복을 입은 채 예런 일리아티는 하늘을 바라본다.
- 발사하겠습니다.
“그래.”
AI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슈우우.
곧, 화성의 하늘을 향해 작은 로켓이 발사된다. 인공 자기장을 설치할 인공위성. 저것을 시작으로 테라포밍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앞으로 할 일이 더 많겠지만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주복을 걸친 미국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런 일리아티 역시 한발 늦게 자재를 나르고 움직이며 생각했다.
‘지구의 내 분신은 잘하고 있을까?’
***
질주에 뒤로 눕듯이 탑승한 채, 네 잎 클로버를 꺼낸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네 잎 클로버를 입 안에 넣었다. 마치 사탕이라도 된 것처럼 네 잎 클로버가 순식간에 녹아서 사라진다.
[‘행운의 신의 네 잎 클로버’를 복용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행운 능력치가 100 상승합니다.]
[‘행운을 몰고 오는 자’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행운 능력치가 100 상승한 덕인지, 간만에 보는 업적 달성 메시지가 떠올랐다.
<행운을 몰고 오는 자>
등급 : 신화(God)
조건 : 행운 능력치가 250에 도달할 것.
보상 : 기프트 채굴량 +77%
나는 눈을 감았다가 중얼거렸다.
‘스킬 개조.’
동화 세계에서 돌아온 지난 삼 일간, 어떤 스킬을 개조할까 망설였다.
네 잎 클로버를 사용했는데 내가 가진 유일 등급이나 전설 등급 스킬을 개조하기엔 아깝고, 신화 등급 스킬을 개조한다는 선택을 내리기엔 자칫 잘못해서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선택한 스킬은 ‘마인화’였다.
‘날려버린다 해도 상점에서 4억 기프트로 구매할 수 있으니까.’
다른 스킬들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다고 해서 마인화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핵심 스킬 중 하나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스킬 개조(G)를 사용합니다.]
[개조에 대성공했습니다. ‘스킬 – 마인화(G)’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마인화(改)>
종류 : 패시브(Passive), 액티브(Active)
등급 : 초월(EX)
설명 : 스킬 보유 시, 체력 능력치와 마력 능력치가 10% 상승한다. 사용 시, 체력 능력치와 마력 능력치가 10% 추가로 상승하고, 30분(체력 능력치와 마력 능력치에 비례함) 동안 체력과 마력 제한이 사라지며 통달한 마인이 된다. (재사용 대기시간 : 144시간)(재사용 대기시간 초기화 불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