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코인 채굴-133화 (133/236)

133화

- 제발 우리를 구해주세요!

거인의 손가락에 의해 붙잡힌 데일이 눈물범벅이 된 채 소리친다. 그 아래엔 사람들이 절망 어린 표정으로 자신들의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 유쾌하지는 않은 장면.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입에 물었다.

“구하실 겁니까?”

고개를 돌려, 내게 물음을 건넨 남자를 바라본다. 제임스. 전에는 예런 일리아티의 비서실장이었고, 라소미와도 친분이 제법 있었다는 그는 지금은 사람들을 통솔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의 물음에 나는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고는, 내뱉으며 말했다.

“뭐, 마음은 구하고 싶지만 저들을 구하기 위해서 이곳을 위험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데일을 따라 나갔던 500명의 사람들은 말 그대로 거인들에게 ‘팽’ 당했다. 하기야, 용족과의 전쟁이 어느 정도 결착된 마당에 그들의 쓸모가 사라진 건 당연지사(當然之事).

결국 그들은 우리를 끌어내기 위한 미끼로 전락하고 만 모양이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거인의 손가락이 움직인다. 마치 고무를 짓이기듯 이리저리 움직이던 그의 몸은 퍽!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의 피와 살점이 바닥에 흩뿌려진다.

- 당장 나와라, 인간!

- 우리는 나우나우의 복수를 갚는다! 나우나우! 나우나우!

거대한 광선총을 하늘 높이 든 채 소리치는 거인들의 모습은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AK47을 든 반군 사진을 연상케 만들었다. 이제 짧아질 대로 짧아진 담배꽁초를 바닥에 내던진다.

“곧 저들에게 선물이 도착할 겁니다.”

“선물이요?”

멀뚱멀뚱 묻는 그. 잠깐 동안, 거인들은 인간들을 번번이 잡아 죽이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저항도 하지 못하고 거인들의 우악스러운 손에 의해 무참히 찢겨나갈 뿐이었다.

정찰용 드론의 카메라가 하늘로 향한다. 잔뜩 낀 먹구름을 뚫고 거대한 무언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무언가의 정체란 비행선. 거인들이 발견했는지 광선총을 겨눈다.

피유- 파공성과 함께 붉은 플라즈마 광선들이 비행선을 향해 일제히 날아간다. 플라즈마 광선에 명중한 비행선은 굉음과 함께 추락하기 시작했다. 거인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들은 곧 알게 될 것이다. 저 안에 실려 있는 것이 무엇인지. 비행선이 지상과 충돌하는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일대를 모조리 집어삼킬 정도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폭발은 한번에서 그치지 않고, 연이어 일어났다. 그리고 뒤이어 일대를 덮치는 열폭풍. 그 열폭풍에 의해 정찰용 드론 역시 맛이 가버렸다.

“핵, 핵을 발사하신 겁니까?”

조금 당황한 얼굴로 묻는 제임스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인들에 의해 고통스럽게 죽을 바엔, 차라리 핵에 의해 한순간에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

잠시 침묵하던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정찰용 드론의 시야가 회복된다. 나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폭발에 직격당한 거인들의 몸은 온전하지 못했다. 가까이 있던 거인들은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폭사했고···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던 거인들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는 데 성공했지만, 빈사 상태였다. 기프트를 투자한 핵폭발의 위력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들 중엔 멀쩡한 개체들도 있었지만.

‘저 우주복 때문인가.’

그들 중 태반은 우주복 비스름한 것들을 걸치고 있었다. 아마 방호복인 모양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방호복이 아닌, 더럽게 단단한 방호복. 나는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거인들에게 저런 물품을 공급한 이는 대체 누구일까? 블랙 마켓을 통해 접했던 우주 상인일까? 그게 아니면···

‘채굴자.’

떠오르는 가능성에 나는 숨을 삼켰다.

***

“언제까지 우리가 그놈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야 하는 겁니까?”

거인의 왕, 팔마스는 자신의 앞에서 불만을 드러낸 부족장을 바라본다.

세이세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족장의 자리에 오를 정도로 지혜로운 검은 대지의 부족장. 젊은 부족장들의 지지를 받는 그였기에, 아무리 팔마스라 하더라도 그를 경시할 수는 없었다.

그는 이번에는 다른 부족장들을 돌아봤다.

다른 부족장들 역시 직접 입을 열진 않지만 그에게 동조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는 그만을 위해 특수 제작된 광선총을 만지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은 ‘그’의 말에 따르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이해관계가 상충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해관계가 틀어진다면··· 내가 직접 그를 죽일 것이다.”

“···왕께서 그놈을 혼자 죽이실 수 있겠습니까?”

“뭐라고?”

선을 넘는 발언에 팔마스는 분기 어린 얼굴로 세이세이를 바라본다.

“검은 대지 부족장은 감히 왕을 의심하는 것인가?”

“···아닙니다.”

세이세이도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이끄는 검은 대지 부족이 강력한 부족이라 한들, 대륙 전체로 간다면 열 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한다. 왕이 마음 먹는다면 검은 대지 부족이 쓸려나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잠시 팔마스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가 재차 입을 열었다.

“왕이시여, 지원이 필요합니다.”

“지원?”

“인간들이 어딘가에 숨어 우리를 기습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찾아낼, 그리고 불러낼 도구가 필요합니다.”

“인간들이라···”

팔마스는 귀찮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인간들, 약하디약한 종족. 그가 신경 쓸 바는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부탁은 어렵지 않았으므로.

곧 부족장들이 나가고 그는 홀로 남겨졌다. 그때, 그의 옆에서 젊은 인간 남자가 등장한다. 얼핏 보기엔 평범한 인간 남자지만, 팔마스는 그를 향해 극도의 예를 취했다.

“위대한 신이시여, 제가 한 말은 그저···”

신이라 불린 그는 짤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능숙하게 거인어가 흘러나왔다.

“이해한다. 인간들을 찾아낼 도구라고 했나?”

“예.”

남자는 천천히 손을 움직인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거대한 검은 덩어리가 빠져나온다. 눈치를 보던 팔마스는 호위를 불렀다. 성큼성큼. 호위는 인간 남자를 바라보며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왕이시여, 저자는 대체 누구···”

하지만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검은 덩어리가 그를 덮치듯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호위는 당황한 표정으로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지만, 그럴수록 더 달라붙을 뿐이었다.

팔마스는 그 모습을 조금 질린 얼굴로 쳐다봤다. 그러나 호위의 처절한 저항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검은 덩어리는 완전히 그를 집어 삼켰고, 그는 풀썩 쓰러졌다.

“죽은 겁니까?”

“아니, 그저 내 DNA를 아주 조금 넣었을 뿐이다. 하지만··· 재밌구나, 너희 종족은.”

호위가 다시 일어난다. 그의 모습은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흘러나오는 분위기는 흉포하기 짝이 없었다. 팔마스도 무심코 병장기를 손에 쥐었을 정도로 말이다.

“그 녀석은 인간을 찾는데 특화돼있다. 함께 가라.”

“···옛!”

말을 마친 젊은 남자는 몸을 돌려 사라진다. 팔마스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자는 위험하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의 힘은 너무나도 위험하게 느껴졌다. 만약 그를 방치했다간, 그뿐만 아니라 그의 종족, 거인족 전체가 그의 손아귀에 넘어갈 것 같다는 불안감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는 곧 병장기를 내려놨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아직은 그가 필요하다.’

용족의 명맥을 완전히 끊어놓고, 그에게 반기를 든 부족장을 모두 죽인 후에 반드시 그를 죽일 것이라고 그는 굳게 다짐했다. 그는 호위- 아니, 한때 호위였던 존재를 바라본다.

그는 괴성을 흘리고 있었다. 조금 불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그는 잠시 후 중얼거렸다.

“가자.”

***

허공에 그려지는 메시지.

- 오빠, 잘 지내고 있어요?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이내 메시지가 그룹원들에게 온 것임을 깨달았다. 대체 어떤 원리일까. 통찰안을 사용해, 바라보니 <헤븐 콜(Heaven Call)>이라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응, 잘 지내고 있어.”

무심코 중얼거린 내 말이 변환돼서, 메시지로 입력된다.

- 응, 잘 지내고 있어.

‘재밌네.’

- 보고 싶어요. 빨리 돌아와요.

이건 말투만 봐도 누구인지 알겠다.

- 형님, 저 형님의 자랑스러운 동생, 민혁입니다. 지금 저희가 연락하는 방식은 헤븐콜이라는 마법을 통한 것으로 상당한 기프트가 들어갑니다. 되도록이면 메시지는 길게 길게 꽉

- 채워서 전송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멍청한 진혜연처럼 말고요! 그리고 형님이 현재 동화 세계에 들어가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맞으시면 어느 동화에 들어가셨는지 말씀

- 저희가 관련 자료를 조사 중입니다. 그리고 시키실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의 기프트가 모조리 동날 때까지 항상 헤븐콜은 유지할 생각입니다.

“알았···”

- 알았···

상당한 기프트가 들어간다는 말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생각해서 말해야겠네.’

나는 천천히 생각에 잠기고, 말하기 시작했다.

- 고대에 일어났던 대전쟁, 라그나로크에 대한 정보를 전부 조사해. 거인들과 용족의 싸움의 결과가 어떻게 끝났는지, 두 종족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정보를 알게 된다면 이 동화를 마무리 짓는 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서였다. 더 이상 답장은 오지 않았다. 아마 기프트를 절약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나는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변이체?’

느껴지는 기척은 틀림없는 ‘변이체’의 그것이었다.

이 세계에 변이체라니. 지금까지는 한 번도 본 적 없다. 나는 내 생각에 확신할 수 있었다. 변이체의 출현이란 이 전쟁에 채굴자가 개입했다는 증거이기도 했으니까.

변이체는 빠른 속도로 지하로 내려오고 있었다. 내가 녀석의 기척을 느꼈듯, 녀석도 우리의 기척을 느꼈음이 틀림없다. 변이체의 뒤를 따르는 건 수십 명의 거인들.

나는 블링크를 여러 번 사용해, 요새의 입구로 이동했다. 바리케이드를 쳐놓긴 했지만, 바리케이드에만 의지할 생각은 없었다. 곧 문이 열리고, 변이체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거인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일반적인 변이체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틀림없이 변이체가 맞았다. 나는 녀석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변이체는 고개를 숙여 공격을 피해낸 후.

이쪽을 향해 오히려 주먹을 휘둘러왔다.

‘힘이 장난이 아니네.’

펑! 폭음과 함께 직격당한 땅이 무너져내린다.

나우나우라는 놈만 큼은 아니지만, 녀석의 주먹에 실린 힘은 나라고 해도 경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나우나우가 가지지 못한 스피드까지 가지고 있다.

‘게다가 뒤에 있는 거인들까지.’

그들은 하나같이 광선총으로 무장하고, 우주복을 걸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