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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131화 (131/236)

131화

나우나우.

‘강하다’ 혹은 ‘단단하다’는 의미를 가진 거인어. 부족장에게 부여받은 이름처럼 그는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미 성년이 되기 전에 어지간한 성인 거인들보다 거대했으며, 그 힘 역시 배로 강했다. 성년이 되기 전에도 그랬는데, 하물며 성인이 된 후에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부족 전체는 물론 대륙 전체에서도 그를 상대할 만한 거인은 몇 존재하지 않았다. 부족의 ‘대전사’의 자리에 오른 것은 그러한 능력을 인정받아서였다.

그리고 이어진 용족과의 전쟁에서 나우나우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다. 그 엄청난 힘으로 그는 용족들을 살해했다. 실제로 그가 휘두르는 배틀 액스에 의해 죽어 나간 용족만 수십.

그 자만심 넘치는 용족들조차 그를 용족 살해자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그런데···

‘감히 인간 따위가···’

나우나우는 불쾌감을 느꼈다. 그에게 인간이란 그저 거인보다 모든 면에서 열등한 그런 종족에 지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벌레와 다를 것 없는 나약한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힌 건 물론, 그가 전력을 다해 날린 배틀 액스마저 튕겨냈다. 어떻게 한 걸까? 요술을 사용한 걸까? 의아함을 느끼며 그는 검을 꺼냈다.

날이 빠지고 곳곳에 녹이 슬었지만, 그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검은 베는 용도가 아닌 휘두르는 용도였으니까. 그의 검이 수직으로 휘둘러진다.

그러나 저 건방진 인간은 그의 검을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고함을 질렀다.

“죽어라!”

그의 검은 정확히 인간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졌다. 그의 검과 인간의 검이 맞닿았다. 그 순간, 그는 세상이 순간적으로 멈춘 듯한 착각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인간이 검을 쳐냈고, 그의 몸이 뒤로 밀렸다.

‘이건···’

인간의 힘이 강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정체 모를 힘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밀렸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꼈다. 그는 검을 인간을 향해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무런 기술이 담겨있지 않은 말 그대로 ‘마구 휘두르기’였지만 그 위력은 상당했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땅에 크레이터가 생기고, 아름드리나무들은 송두리째 뽑혀 날아간다.

그러나 흥분한 탓에 그는 인간의 움직임을 순간적으로 놓치고 말았다.

“어디지?”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인간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도망친 걸까?

“아니.”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에 나우나우는 고개를 들었다. 인간이 눈앞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인간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인간이 더 빨랐다.

푹.

시야가 암전된다. 그 뒤에 이어지는 격통(激痛). 졸지에 장님이 돼버린 그는 닥치는 대로 손을 휘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간을 붙잡지 못했다.

정상이어도 못 잡았는데, 눈을 잃은 지금 잡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깟 눈 따위···’

단순히 덩치만 크고, 힘이 세기만 했다면 거인족은 대륙의 지배자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거인족의 진짜 무기는 ‘재생력’이었다.

거인의 피가 섞인 것만으로도, 트롤족은 생명에 위협이 되는 심각한 상처조차 재생할 수 있다. 하물며 진짜배기 거인인 그의 재생력은 트롤족의 그것을 아득히 초월할 정도다.

그것은 거인들이 용족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고, 돌격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앞으로 단 몇 초. 몇 초만 있으면 눈 따위는 가볍게 재생해버릴 것이었다. 눈을 재생하면 인간은···

‘형체도 알아보지 못하게 짓눌러버릴 테다.’

복수를 굳게 다짐한 그였다. 그러나 그런 그의 다짐이 무색하게 그는 이어지는 격통에 또다시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팔, 배, 다리··· 인간은 쉴 새 없이 그를 검으로 찌르고 벴다.

분명 공격 하나하나는 별 게 아니었지만, 누적되니 이야기가 달랐다. 다음 순간 그는 허무하게 앞으로 주저앉았다. 발목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 아킬레스건을 베어버린 것이다.

‘제, 젠장.’

컴컴한 암흑 속에서 그는 거의 최초로 두려움을 느꼈다. 그로서는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위기 상황이었다. 하기야, 그가 이런 꼴이 될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천고(千古)와 같은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눈이 떠졌다. 그러나 그가 보게 된 것은 그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인간이었다. 푹. 또다시 세상이 암흑으로 물들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는 전투 의지를 상실하고 말았다.

거인들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나우나우를 바라본다. 지금까지 항상 강력하고,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줬던 그가 ‘고작’ 인간 하나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나우나우 도와야 한다.”

“어떻게?”

누군가가 의견을 꺼냈지만, 나우나우를 돕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그마한 인간은 나우나우의 몸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공격하고 있다. 어설프게 그를 돕겠다고 하다간 오히려 나우나우가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안절부절 방관하고 있는 사이 용족 역시 이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전투원들은 이프리트와 싸우고 있었지만, 수뇌부는 비교적 여유가 있었으므로.

광포하게 생긴 붉은 머리의 남자가 감탄하며 말했다. 그의 정체는 적룡왕, 카르브. 폴리모프 마법을 사용해 인간으로 변신한 것이었다.

“인간들은 별거 없는 줄 알았는데 제법 잘 싸우는군?”

그러자 초록 머리 여자가 입을 열었다.

“저 인간만 특별한 것일 겁니다. 평범한 인간은 우리와 손을 잡은 이들처럼 별로 강하지 않습니다.”

“그래, 인간들이 모두 저 인간 같았다면 진즉 이 대륙의 지배자는 인간이 됐겠지. 그나저나···”

카르브는 나우나우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신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군? 저 괴물 같은 거인 놈이 아무것도 못하고 있잖아?”

“······”

초록 머리 여자는 침묵을 지켰다.

무엇보다 정의와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녹룡(綠龍)족인 그녀는 별로 그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알고 있었다. 카르브의 말처럼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용족 입장에서 까다로운 상대인 나우나우의 부재와 그의 패배로 인해 바닥을 치는 거인들의 사기. 지금 거인을 공격한다면 불리했던 전쟁 상황을 완전히 뒤집고 승기를 가져갈 수 있다.

‘비록 부족장 놈이 오지 않은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아니, 오히려 잘된 건가.’

거인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번번이 두뇌 싸움에서 패배했을 정도로 영리한 부족장이 왔다면 이 상황이라 하더라도 쉽게 기회를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좋은 기회라 할 수 있었다. 그는 입을 열었다.

“셀레나, 저 인간에게 전해라. 우리가 도울 테니, 이프리트를 역소환하라고 말이야.”

셀레나라 불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나우나우는 저항을 포기하고, 그 거대한 손을 급소를 방어하는 데 쓰기 시작했다. 그 덕에 공격받을 일은 없었으나, 그를 완전히 마무리 지을 수도 없었다. 나는 남은 체력을 확인했다.

전력을 다해 움직인 탓에, 대략 50% 정도의 체력이 남았다. 물론 100% 채울 수 있는 미미르의 샘물이 남아있긴 하지만 용족을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슬쩍 고개를 돌려 이프리트 쪽을 바라본다. 그는 아직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용이 죽었는지 땅에는 용의 시체가 늘어져 있었다. 물론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았다.

‘일단 거인들을 물리치는 일이 먼저다.’

나우나우의 목숨을 담보로, 거인과 협상을 벌일 생각이었다. 그때, 내 귀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하오란의 텔레파시와 비슷한 능력인 듯했다.

- 지금부터 우리 용족은 거인족을 공격할 거예요. 당신이 협조, 혹은 방관했으면 좋겠어요.

“······”

슬그머니 하늘을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

어차피 나 혼자 거인족과 용족을 상대한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마인화가 끝나는 순간, 나는 결국 마력의 부족으로 패배하게 될 것이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 이프리트를 역소환시키세요.

“어떻게 믿지?”

- 믿지 않는다고, 별다른 방안이 생길 거 같나요?

‘맞는 말이네.’

나는 이프리트를 바라본다. 그 사이 더욱더 몸집을 불린 그는 용족들을 상대로 일말의 밀림도 없이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역소환시켰다. 그가 마지막으로 나를 돌아봤다.

- 건방진 놈, 감히 내 전투를 방해하다니.

- 다음에 소환한다면 내가 직접 너를 태워주마.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소멸해버렸다. 그의 말대로라면 다음에 그의 도움을 빌리기는 힘들 것 같다. 쩝쩝 입맛을 다시면서 재생된 나우나우의 눈을 찔렀다. 크아악.

‘이제 나는 방관하면 되겠지.’

용들이 거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거인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 배신자들!”

“비겁한 용족들!”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용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다시 동굴로 내려왔다. 정확히 말하면 안전 가옥들이 위치한 곳으로.

전쟁에서 누가 이기던, 지던 승패는 상관없고 내게는 같은 인간들의 목숨이 중할 뿐이었다. 그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칭호 ‘거인족 대전사’를 획득했습니다.]

<거인족 대전사>

조건 : 거인족 대전사와의 전투에서 승리

보상 : 근력 +2.0

무려 근력을 2나 올려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다.

안전 가옥이 멀쩡한 것을 확인한 나는 주위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전투의 여파가 이곳에까지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무려 5중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나서야 한숨 돌렸다.

‘그러고 보니···’

문득 타나토스의 쇠사슬에 묶여있던 솔레나에 생각이 닿았다. 나는 그녀가 묻혀있던 곳으로 향했다. 다행히 그녀는 무사했다. 흙을 많이 집어 먹었는지 어푸푸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잔뜩 불만 어린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그녀의 쇠사슬을 풀었다.

“자, 이제 가서 싸워라.”

“······?”

“바깥에는 거인족과 인간이 싸우고 있으니까.”

“···건방진 인간.”

솔레나는 중얼거린다. 다음 순간, 그녀의 몸이 인간의 몸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제원에 비견될 정도로 아름다운 붉은색 머리 미녀. 도포를 걸치고 있는 그녀는 지상에 드러누웠다.

“내가 너 같은 건방진 인간의 말 따위 들을 것 같으냐?”

“···혹시 싸우기 두려운 건 아니고?”

“흥.”

정곡을 찔렀는지, 그녀는 콧소리를 내고는 눈을 감았다.

“···마음대로 해라.”

한숨을 쉰 나는 그녀를 내버려두고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안전 가옥에서 미국인들이 불안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이 바깥으로 나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뭐, 잘 끝난 거 같습니다. 일단은.”

용족이 승기를 잡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누가 이기든, 전쟁이 끝나기만 하면 되는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내 말에 그들의 불안한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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