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코인 채굴-130화 (130/236)

130화

노틸러스 0호는 본격적으로 바다에 잠수하기 시작했다. 강순철은 함장실 의자에 몸을 누이고는 창가를 바라봤다. 전조등에 의해 환하게 밝혀진 바닷속은, 아름답다기보다는 소름 끼쳤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곤, 기괴하게 생긴 변이체들뿐. 그것을 제외하면 정말 아무것도 없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조차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애써 두려움을 억누르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내, 마인드 컨트롤을 마친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노틸러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함장실에 금발 소년의 홀로그램이 모습을 드러낸다.

- 반갑습니다, 캡틴(Captain). 저는 이 함선의 메인 AI인 노틸러스라고 합니다.

“수색 작업을 시작하자.”

- 명령을 확인했습니다. 소나 기능을 사용하겠습니다.

우우웅.

울림과 함께 파장이 퍼져나간다. 잠수함에 돌격을 감행하던 변이체가 그대로 거친 물살에 휩쓸려 날아가 버렸다. 강순철은 새삼스럽게 그가 타고 있는 함선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노틸러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 반경 500km 내에 생명체 반응 다수 존재, 하지만 그중 플레이어의 반응은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반경 500km? 확실해?”

- 플레이어가 일부러 기척을 감추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확률은 99.9%입니다.

“…시체는?”

그는 말하고서도,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다.

우주선의 폭발로 인해 이진서가 죽었다면, 그 시체가 온전하게 남아 있을 리가 없다. 폭발과 함께 산산조각 났거나, 온전하게 남았다 하더라도 변이체에게 뜯어 먹혔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러나 그의 생각을 알지 못하는 노틸러스는 그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했다.

- 소나 기능으로 탐색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생명체의 반응뿐입니다. 비생명체의 경우, 탐지기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 범위는 반경 30km로 제한됩니다.

“……”

- 탐색하시겠습니까?

“…그래.”

잠시 망설이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가 탐색을 결심한 건, 이진서의 시체를 찾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 그는 김민수와 아나스타샤에게 부탁을 받았다.

‘순철 씨,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적어도 한 시간 이상? 아니, 두 시간? 길면 길수록 좋아요.’

노틸러스 0호를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아는 만큼, 강순철은 그들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었다. 노틸러스 0호가 바다를 헤치며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거인족과 용족 모두에게 공격받는 시나리오.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돼버렸다. 꿈이라고 믿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꿈이 아니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지금 내 상황을 정의하자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꼴, 아니, 고래들이 새우를 축출하겠다며 공격하는 꼴이라 할 수 있었다. 우르릉. 동굴 전체를 울리는 굉음이 울려 퍼진다.

천장을 바라봤다.

마치 폭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동굴 외벽이 걸레짝이 돼버렸다. 만약 바리케이드를 세워놓지 않았다면 진즉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물론 이제는 바리케이드도 한계점에 도달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곧 무너진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나는 아공간 창고에서 1급 안전 가옥을 꺼냈다. 1급 안전 가옥의 수용 인원은 고작 천 명 남짓에 불과하다.

이것도 그나마 꽉 채웠을 때의 이야기다.

‘구겨 넣으면 2천 명까지는 들어가려나?’

하지만 여전히 7천 명 되는 사람들이 대피할 곳은 없었다. 드디어 동굴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우르르거리는 소리와 함께 돌조각들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점차 급박해지는 상황에 조바심을 느낀 나는 상점에서 2급 안전 가옥을 구매했다. 그리고 사람들을 불렀다. 물론 2급 안전 가옥의 내구는 1급 안전 가옥에 비할 수준은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사람들을 모두 안전 가옥 내부에 수용하는 데 성공했다. 이미 돌덩어리에 깔려 압사당한 사람들까지 신경 쓸 정도로 상황은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어차피 1급 안전 가옥, 2급 안전 가옥에 숨는다 한들, 용족이나 거인족이 작정하고 공격한다면 언젠가는 뚫리고 말 것이다. 그럴 바엔 저항이라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 위로 거대한 돌덩어리가 떨어졌다. 거의 안전 가옥만 한 사이즈였다.

“마인화.”

[마인화(G)를 사용합니다.]

마인화의 재사용 대기시간은 6일.

시간 가속을 보유한 내게는 3일인 셈이다. 아슬아슬하게 재사용 대기시간이 끝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마력이 추가 상승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내 몸에 마력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시간 가속.”

세상의 시간이 느려지기 시작한다. 나는 돌덩어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거대한 돌덩어리는 그대로 산산조각 나서 사방으로 흩어져버렸다. 단숨에 도약했다.

거인과 용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이쪽으로 쏠린다. 어떤 표정들일까 궁금하긴 했지만, 그들의 표정을 일일이 살피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다 사용할 생각이었다.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

미리 라우라에게 계약을 맺어 일회용으로 습득해둔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 소환을 사용했다. 거대한 불의 거인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다만 처음 소환할 때만큼의 위압감은 없었다.

하기야, 지금 상대하고 있는 존재들은 그 크기가 하나 같이 거대한 용족과 거인들이다. 개 중에는 이프리트의 크기를 넘는 거인도 존재했다. 하늘에 닿을 정도로 거대한 거인.

그 크기는 다른 거인들의 두 배 이상은 돼 보인다.

<고대의 거인, 나우나우>

나우나우라는 이름의 거인이었다. 그로부터 느껴지는 힘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적룡왕, 카르브에 비견되거나 그 이상. 물론 나는 위축될 생각은 없었다. 이프리트를 바라본다.

- 재밌군. 이 시대에 설마 다시 오게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말이야.

이프리트는 나는 안중에도 없이, 용족과 거인들을 바라보며 호승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뭐, 팀킬(Team Kill)할 생각은 없어 보이니 차라리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그에게서 관심을 끈 나는 이번에는 영령 소환을 사용했다. 간츠를 불러낼 심산이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응답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미안한 듯한 그의 음성이 들려왔다.

- 미안하게 됐군, 동족을 상대하긴 싫어서 말이야.

“이해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 표정은 그리 밝지는 않았다. 유일하게 응답했던 그가 소환에 불응한다면 영령 소환은 사실상 사용이 막힌 셈이다. 영령 빙의 역시 마찬가지다.

이 시대에 존재하지 않는 영령들을 소환하거나, 빙의할 수 있을 리 없다.

‘물론 무작위 영령을 불러내면 되지만…’

괜히 알지 못하는 영령을 소환했다가, 이쪽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곤란해질 수 있다. 위험 부담이 상당히 크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일단 사용을 보류하고 하늘을 향해 중얼거렸다.

‘미티어 스웜.’

거인들을 향해 운석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인화 상태에서 사용한 만큼, 소환된 운석의 숫자는 상당히 많았다. 큰 효과를 보기는 힘들겠지만, 어느 정도 발을 묶어둘 생각이었다.

고개를 돌려 이번엔 용족들을 바라본다. 그들의 입에 맺혀있던 붉은색 구체가 이쪽을 향해 발사됐다. 꽤 거리가 있음에도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만들 정도로 엄청난 마력이 실려있었다.

그러나 나는 웃을 수 있었다. 화염 속성이라면 이프리트가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내 예상처럼 내 앞을 막아선 이프리트는 구체들을 몸으로 받아내고도 멀쩡했다.

- 네놈을 돕는 거 같아서, 마음에 들진 않지만…

에너지를 흡수했는지, 그의 몸이 더욱더 커진다. 이제는 어지간한 고대의 거인 이상이었다. 그가 하늘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불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레인 오브 파이어.

그 범위는 단순히 용족이 있는 지역에 국한되지 않았다. 일대 전체가 불의 비의 범위였다. 나는 다시 거인들을 바라봤다. 불의 비를 받아내고 있는 그들은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이상의 효과는 없어 보였다.

‘괴물들.’

나는 거인들을 향해 검을 들었다. 통찰안의 세계에서 레오니아 3세와 무수하게 싸운 경험을 담아, 수직으로 휘두른다. 푸른색의 검기가 거인들을 향해 물결처럼 뻗어 나갔다.

검기는 앞장서서 달려오던 거인의 어깻죽지를 베어내는 데 성공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도약한 나는 달려오는 거인의 몸통에 올라탔다. 거인이 이쪽을 향해 손을 뻗는다.

손을 피해, 그의 몸통을 달려 단숨에 머리까지 도착한다. 거대한 눈이 그를 내려다본다. 나는 가볍게 검을 찔렀다. 그 상태에서 마력을 방출한다. 거인의 눈이 커진다.

그의 몸이 마치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계속 마력을 쏟아붓는다면, 변이체처럼 머리를 터뜨릴 수 있으리라.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뒤로 몸을 날리며 블링크를 사용했다.

거대한 배틀 액스가 내가 있던 자리를 휩쓸고 지나간다. 작은 돌풍이 일 정도였다. 배틀 액스는 그대로 거인의 몸에 틀어박힌다. 거인이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를 질렀다.

나는 배틀 액스의 주인을 쳐다본다. 아까 거대한 거인ㅡ 나우나우였다. 동족 따윈 신경 쓰지 않고 배틀 액스를 휘두른 걸 보면 확실히 평범한 거인은 아닌 듯 보였다.

나를 노려보던 그가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다시 블링크를 사용해, 가까스로 주먹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펑! 무슨 핵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엄청난 굉음과 함께 지면이 박살난다.

무너진 동굴은 가루가 돼버렸고, 지면엔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겼다. 내가 식은땀을 흘리게 만들 정도의, 경이로운 위력이었다. 저런 체급에, 속도까지 빠르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유롭게 생각하고 있을 새는 없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의 공격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나는 간신히 그와 거리를 벌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를 향해 검을 들었다.

나우나우를 향해 검을 휘두른다. 검기가 그를 향해 날아간다. 그는 몸을 숙였다. 검기는 그가 쓰고 있는 투구의 깃 부분을 스치고 지나갔다. 작은 폭발과 함께 투구가 벗겨진다.

우오오오. 나우나우가 분노했는지 고함을 지른다. 얼마나 흥분했으면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그는 이번엔 아예 배틀 액스를 던졌다. 나는 황급히 검을 들었다.

이번 공격은 블링크로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받아내는 건 무리고, 배틀 액스를 튕겨낼 생각이었다. 통찰안의 세계에서 터득한 기술 중 하나.

나는 이 기술을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이라 명명했다.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력을 키운다. 일대의 정보가 내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치 해일과 같은 정보 속에서, 극한의 집중력을 유지한다. 500m… 100m… 10m… 점차 가까워지는 배틀 액스를 꼿꼿이 바라보던 나는 마침내 검을 휘둘렀다.

배틀 액스의 가장 약한 부분을 향해서. 쾅! 거대한 폭음과 함께 내 몸이 뒤로 밀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