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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129화 (129/236)

129화

- 코드를 입력해주십시오.

지구에 남은 예런 일리아티의 분신은 컴퓨터에 띄워진 메시지를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내, 그는 신중하게 컴퓨터 자판을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 Mars, 잘못된 코드입니다.

- 입력 기회가 두 번 남았습니다. 기회를 모두 소진할 시, 내부 프로세스에 따라 관제 센터 및 핵 사일로를 전면 폐쇄하겠습니다.

“젠장.”

예런 일리아티의 입에서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의 계획은 완벽했다. 제이드를 묶고, 드래고니안 5호를 희생양으로 이진서를 묶는 데까지 성공했으니까. 그러나 마지막에 와서 그의 계획은 철저하게 틀어지고 말았다.

‘설마 내가 코드를 잊어버릴 줄이야.’

그는 한번 보고 들은 것을 완벽하게 기억하는 ‘완전 기억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초등학교 때, 별로 친하지 않았던 친구의 오른쪽 허벅지에 난 작은 점 하나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가장 중요한 핵 발사 코드를 잊어버린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분신의 소멸.’

분신이 소멸하면 능력치나 스킬뿐 아니라 ‘지식’ 역시 날아간다고 했었다. 이건 철두철미하게 화성 이주를 계획해왔던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였다. 생각을 마친 그는 일어났다.

‘계획의 완성을 위해선 반드시 코드를 찾아야 한다.’

드래고니안 5호라면 모를까 드래고니안 4호에 실린 물자만으로 테라포밍(Terraforming)은 꿈도 못 꾸며, 전반적인 생활 역시 불가능하다. 즉, 지구에서 물자를 계속 공급해야 한다.

지구에서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선 기프트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기프트를 얻기 위해선 변이체를 죽여야 한다. 그러나 능력치와 스킬이 토막 나 버린 지금, 그의 능력으로 변이체를 죽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때문에, 그는 핵미사일을 이용해 변이체를 죽일 생각이었다. 미국이 보유한 수천 발의 핵미사일을 전부 지구에 발사하면 상당량의 기프트를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그 핵미사일을 발사할 코드를 잊어버린 것이다.

급기야 그는 제어 센터 내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어딘가 코드가 있을지도, 아니 코드에 대한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없군. 하기야, 있을 리가 없지.’

이성을 되찾은 그의 표정이 차가워진다.

‘일단 나사로 돌아간다.’

그나마 코드가 있을 법한 나사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가 핵 관제 센터를 벗어나자마자 그는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그는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붙잡히고 말았다.

잔뜩 성이 난 얼굴로 그를 쳐다보는 흑인 남자를 보며, 그는 한숨을 쉬었다.

“제이드.”

오래 묶어놓지 못할 것이라는 건 알았지만, 벌써 풀려났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제이드는 설령 온전한 그라 해도 상대가 힘들 정도의 괴물이었으니까.

“우리 얘기 좀 할까?”

“난, 할 얘기가 없는데?”

그의 검이 그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당장이라도 비명을 지를 듯한 격통에 고통스러워하면서, 예런 일리아티의 간신히 입을 열었다.

“5천 명의 목숨이 걸린 얘기면 어때?”

“······”

“지금 내가 여기서 죽으면, 5천 명이 죽는다. 한번 이야기나 들어보지 그래?”

제이드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달랐다. 그는 예런 일리아티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문답무용으로 죽일 생각이었지만.

그의 검에서 힘이 빠진다. 예런 일리아티는 엷게 미소 지었다.

‘한고비 넘긴 건가.’

물론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없는 고비를 넘겨야겠지만, 그는 가장 큰 고비를 넘긴 데에 만족하기로 했다.

***

- 당장 나를 풀어줘라, 인간. 우리 용족은 인간에게 해를 끼칠 생각이 없으니까.

“뭐? 해를 끼칠 생각이 없어? 다짜고짜 불덩어리 날려놓고?”

머리만 빼고 땅에 파묻힌 솔레나는 눈을 데굴데굴 굴린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타나토스의 쇠사슬에 묶인 이상 그런 방법이 있을 리 없다.

결국 그녀(여성체라고 했다)는 단념한 듯 고개를 팍 숙였다.

- 나를 납치한 목적이 뭐지? 재물을 노리고 그런 거라면···

“됐고, 묻는 말에나 답해라.”

나는 그녀에게 전쟁에 대한 정보를 묻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필요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대륙 전체에서 용과 거인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곳- 검은 대지는 그런 많고 많은 전장 중 하나일 뿐이다.>

<검은 대지에서는 주로 적룡과 검은 대지 부족의 거인들이 싸우고 있다.(물론 다른 용족이나 다른 거인 부족들도 전투에 지원군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곳, 그러니까 검은 대지에서의 전쟁만 끝내면 되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제법 스케일이 작아진다. 하기야, 대륙 전체의 전쟁을 끝내라니, 어불성설(語不成說)이지.

- 인간, 너 정도의 힘이라면 거인과의 전쟁에 제법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적룡왕께 충성을 맹세하고 우리의 손을 잡아라.

“···전쟁 상황은 어떤데?”

- ···우리 적룡이 우세하고 있다.

“거짓말이군.”

통찰안을 사용한 나는 그녀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뭐, 솔직히 말하면 그녀의 말투가 어색한 것을 보고 어림짐작은 했지만 말이다.

“거인족이 우세한 모양이지?”

- ······

“맞네. 검은 대지 부족에게 밀리고 있다고? 흑룡들이 지원을 안 와서?”

- 그, 그걸 어떻게!?

당황한 표정을 짓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그녀를 노려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설령 종족 전쟁이 끝나도 종족 보존을 할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많은 적룡이 죽었다고?”

- 그만, 그만!

그녀는 별로 듣기 싫은지 머리를 열심히 흔들어댔다. 나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면 검은 대지 부족에 힘을 보태면 되겠군?”

- 적룡왕께서 널 가만두지 않으실 거야.

“거인 편에 서면, 거인이 우리를 지켜줄 거 아닌가?”

- 멍청한 인간, 이 검은 대지에서 우리 적룡들이 밀리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대륙 전체로 뻗어나간다면 이야기가 다르거든? 결국 한 지역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종족 간의 전쟁의 승패를 가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이번에는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다.

“둘 중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면?”

- 흥, 중립 세력을 우리가 가만둘 거 같아? 회유하거나, 그게 아니면···

“말 안 해도 알 거 같다.”

성공한다면 중립 외교만 한 게 없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수 있는 게 중립 외교이기도 하다.

- 그러니까 당장 이걸 풀고, 적룡왕께 충성을 맹세···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마력을 방출해 솔레나의 입을 막았다.

원하는 정보는 거의 다 얻었지만 그녀를 풀어주기엔 지금 내 상황이 여의치 못했다. 적어도 이쪽의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녀를 이곳에 억류할 생각이었다.

그녀와의 대화를 마친 나는 다시 동굴로 돌아왔다. 무슨 일인지, 동굴 내부는 시끌벅적했다.

“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두 무리로 나뉘어 앉아있는 미국인들이었다. 나는 의아한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입니까?”

“그게 말입니다···”

눈을 감았다 뜬다. 감각이 확장되면서, 내 귀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반드시 거인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거인 부족의 왕이 우리에게 안전을 보장했다.”

라고 떠들어대는 남자와,

“우리는 용과 손을 잡아야 해요. 용들만이 우리를 구하고, 저 간악한 거인들을 무찔러서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어요.”

라고 떠들어대는 여자였다.

‘각각 데일과 제시카인가.’

통찰안을 통해 그들의 이름을 확인한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그들은 나를 보며,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처음에 이곳을 빠져나갔던 이들이었다.

‘죽었을 거라 예상했는데···’

그들은 생각보다 멀쩡히 살아있었다.

“거인들은 우리에게 안전을 보장했다.”

“그건 우리 용족도 마찬가지예요.”

요컨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위기에 처한 그들을 거인과 용이 구해줬고, 자신들의 편에 서라고 그들을 회유했다는 모양이었다.

“당신은 어쩔 거야? 거인과 손을 잡을 거야? 아니면 용족 놈들과 손을 잡을 거야?”

데일의 물음. 제시카는 묻진 않았지만, 대답을 기다리는 듯 나를 바라봤다. 뿐만 아니라 다른 미국인들의 시선 역시 내게 몰렸다. 잠시 생각하던 나는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당장 어느 편을 선택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어느 편을 선택하던 당신들이 피해를 입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중립적인 답변에에 사람들의 반응이 갈린다. 불만을 드러내는 사람도, 혹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었다. 내게 물음을 던진 데일은 전자였다.

제시카가 입을 열었다.

“저는 여기서 사람들을 모아, 용들을 지원할 계획이에요. 당신이 어느 편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그들의 선택이라면, 내가 그들에게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번에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곳에 남는다면 나는 당신들의 안전을 보장하겠지만, 나는 당신들의 선택권 역시 존중합니다.”

사람들은 망설이는 듯한 눈빛을 했다.

그로부터 다시 하루가 흘렀다. 데일을 따르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대략 500명, 제시카를 따르기로 한 사람이 대략 500명. 그리고 동굴에 남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9,000명가량이었다.

데일과 제시카를 따르기로 한 사람들은 그들과 함께 동굴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남은 우리는 상황을 관망···할 생각이었다. 그들이 빠져나간 뒤, 얼마 되지 않아서 동굴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격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황급히 바깥으로 나갔다. 온갖 용족들이 모여 브레스를 뱉고 있었다. 바리케이드고 뭐고, 그런 공격을 받는데 버틸 수 있을 리 없다. 우르르, 동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젠장, 이렇게 되면···’

역시 거인과 힘을 잡아야 하나, 생각하는데 이번엔 이쪽을 향해 거대한 돌멩이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돌멩이가 날아온 방향을 쳐다봤다. 거인족들이었다.

그때 봤던 고대의 거인들 물경 수십이 이쪽을 향해 사정없이 돌멩이를 날리기 시작했다. 말이 돌멩이지 거의 투포환 속도로 날아오는데 미사일이나 다름없을 정도다.

간접적으로 겪었을 때보다, 직접적으로 겪어보니 그 위력이 몸소 느껴졌다.

“아니, 저것들은 왜?”

멀쩡히 용들이 날아다니는데 왜 이쪽을 향해 돌멩이를 날린단 말인가? 거인들도, 용족들도, 서로 공격하지 않고 이쪽만 공격하고 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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