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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127화 (127/236)

127화

눈을 뜬다. 컴컴한 암흑 속이지만, 통찰안을 보유한 나는 대낮처럼 또렷하게 주변을 바라볼 수 있었다. 거대한 공동 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정신을 잃은 채 누워있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직전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기 시작한다. 예런 일리아티의 함정에 빠진 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동화 세계를 사용했다.

그리고 눈을 뜨니 이 상황인 것이고.

그렇다면 이 세계는 동화 세계일 확률이 높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내가 동화 세계라는 스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동화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라는 단순한 스킬 설명이 전부다.

애초에 동화가 내가 생각하는 그 동화(童話:어린이를 위하여 지은 이야기)가 맞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다.

몇 가지 실험을 통해, 이 세계에서 플레이어 시스템이 작동하고, 내가 보유한 스킬들도 온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외부로 시선을 돌렸다.

‘일단 여기가 정확히 어디인지부터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겠군.’

그사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마트폰의 손전등 기능을 사용했고, 어둡던 공동 내부도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여, 여긴 어디야?”

“화성에 벌써 도착한 건가?”

나는 S31의 번역 기능을 통해, 그들에게 지금 그들이 처한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우주선의 폭발로 죽을 뻔한 당신들을, 스킬을 사용해 구했다. 그 와중에 나 역시 폭발에 휩쓸려 정신을 잃었는데, 일어나보니 이곳이다. 이곳이 어디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굳이 그들에게 ‘동화 세계’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많은 숫자의 이들을 이해시키기란 불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그들에게 권장했다.

“위험할지 모르니, 다들 이곳에 있으십시오.”

그러자,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내 말대로 순순히 이곳에 머무는 쪽과, 아니면 나를 믿지 못하고 이동하려는 쪽. 나는 굳이 그들을 막지 않았다. 그들을 막을 권리는 없으니까.

나는 통로로 이동했다.

발달된 기감으로 이곳의 구조를 어느 정도 파악했기에, 내 행동엔 거침이 없었다. 수십 킬로미터 정도 되는 통로를 따라 이동한 끝에 나는 이 거대한 공동의 출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출구로 한 발자국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떠오르는 메시지.

[동화 세계(Tales World), 라그나로크(Ragnarok).]

[고대 시대에 용족, 거인족 간에 500년에 걸친 기나긴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훗날 라그나로크라 불리게 되는 이 전쟁은 용족이나 거인족 어느 한쪽이 승리해야 막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등장인물이 돼 직접 이 동화를 끝내십시오.]

[임무 성공 시, 기여도에 따라 무작위 보상이 주어집니다.]

[실패 시, 참여한 전원의 능력치 영구적으로 20 감소, 무작위 스킬 삭제.]

‘이게 무슨···’

라그나로크? 용족과 거인족의 전쟁? 동화를 끝내라는 말은, 다시 말해 전쟁을 끝내라는 말이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무심코 하늘을 바라봤다.

두 개로 갈라진 붉은색 하늘. 그 너머로 거대한 적룡이 모습을 드러낸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그 크기는 거대했다.

문득 북한에서 상대했던 용의 형상을 한 ‘드래고니안(Dragonian)’이라는 변이체가 떠올랐다. 그러나 저 적룡은 외양이나 느껴지는 힘으로 보나, 그 드래고니안과는 궤를 달리했다.

<적룡왕, 카르브>

- 통찰안의 단계가 낮아, 자세한 정보를 볼 수 없습니다.

‘처음 보는 메시지.’

통찰안의 단계가 낮아 자세한 정보를 볼 수 없다는 메시지는 단언컨대 처음 본다. 그 정도로, 저 적색 용, 적룡왕, 카르브가 괴물이라는 방증일 것이다.

카르브가 불을 뿜었다. 엄청난 열기에 일대의 자연환경이 뒤바뀐다. 내가 있는 곳 역시 마치 가뭄이라도 온 것처럼 땅이 메마르더니, 잠시 후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때, 지상에서 운석 수십 개를 합친 듯한 거대한 돌덩이가 카르브를 향해 날아갔다. 카르브의 몸 주변에는 보호막이 있는지 붉은색의 벽에 가로막혔지만 돌덩이는 하나가 아니었다.

쿵, 쿵.

지면이 떨리기 시작한다. 지진? 아니, 단순한 지진이 아니다. 이건···

‘거인?’

카르브보다 거대한 인간- 거인이 성큼성큼 걸어 나간다. 카르브가 불을 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별다른 데미지를 입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입을 벌렸다.

거인화를 사용해, 이미 한 번 거인이 돼본 적이 있는 나지만 거인들의 크기는 그 두세 배는 돼 보였다.

<고대의 거인, 알브라함>

- 통찰안의 단계가 낮아, 자세한 정보를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어깨에 지고 있는 돌멩이를 날렸다. 거대한 돌멩이는 카르브를 향해 세차게 날아갔다. 주변에 거대한 돌풍이 일 정도였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일단 들어가서 생각하자.’

이 자리에서 몸을 빼기로 결론을 내렸다.

저런 전투에 휘말렸다간, 나조차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용과 거인이 저게 전부일까? 그럴 리 없다. 무려 용과 거인의 ‘전쟁’이라고 했으니 스케일은 더욱더 커질 것이다.

동굴 안으로 다시 들어온 나는 입구를 바리케이드로 막았다.

‘일단 사람들에게 알려야겠군.’

***

이진서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동굴의 출구가 여러 곳이었다는 것. 미국 플레이어 여러 무리가 그 출구들을 통해 동굴 바깥으로 나왔다는 것.

데일의 무리는 이진서가 목격한 장면을 똑같이 목격하고는, 그대로 발이 굳어버렸다. 뒤늦게 전투의 여파가 그들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그들은 그처럼 강력한 플레이어는 아니었다.

“내 몸이 타들어 간다···!”

적룡왕의 브레스로 인해, 대처하지 못한 그들의 몸이 익어버렸다.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도 거인이 던진 돌멩이 파편들에 맞아 죽거나, 돌풍에 휩쓸려 하늘로 날아가 버리기 일쑤였다.

“도, 도망쳐야 돼!”

그나마 그들 중 실력이 뛰어나고, 운이 좋아 살아남은 이들은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돌멩이 파편이 입구를 막아버렸다. 말이 파편이지, 입구를 빼곡히 채울 크기였다.

“이깟 돌멩이, 부수고 들어가면 된다!”

데일이 검을 빼 들었다. 마력을 담은 그의 검에서 검기가 솟아났다. 그리고 파편을 향해 힘차게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입장에선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오히려 검이 튕겨져 나갔다.

파편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무슨 강도가···’

“제, 젠장.”

자연스럽게 그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살아남은 몇몇 플레이어들에게 또다시 운석의 파편들이 날아왔다.

죽음을 직감한 그들은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들은 죽지 않았다. 거대한 손이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데일은 떨리는 몸으로 손의 주인을 바라봤다. 손의 주인은 한 손에 거대한 사각 방패를 차고 있는 거인이었다.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인간?

“······”

그는 경악한 얼굴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한편, 이런 상황은 비단 그에게만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반대쪽 입구를 통해 나왔던 미국의 플레이어- 제시카의 무리는 자신을 보호한 거대한 날개를 보며 입을 벌렸다.

정확히 말하면 거대한 날개의 주인, 온몸이 녹색인 용을 바라보며 말이다.

- 인간이군?

데일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리더인 제시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 등에 올라타라, 너희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줄 테니.

그들은 홀린 듯 그의 등에 올라탔다.

***

하늘 요새에 속속히 수송기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러시아인들을 태운 수송기였다. 그룹원들이 그들을 환대했다. 그러나 실질적 리더인 정민혁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분위기 역시 침체됐다. 빅토르는 그를 힐끔거리며 속으로 전전긍긍했다.

‘왜 저런 반응이야? 마음에 안 드나?’

전전긍긍해하는 건 비단 그뿐만 아니라, 바실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빅토르에게 그가 이 그룹의 실질적 리더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그다. 그런 그의 환대를 받지 못한다는 건···

‘우리를 배척하겠다는 뜻인가···’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타이밍이라는 게 중요하다. 중국인들은 한국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합류는 몇 달이나 늦었다.

고작 몇 달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세계에서의 몇 달이란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만큼 긴 세월. 그의 뜻을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오해였지만), 그는 속으로 불만을 내뱉었다.

‘그래도 겉으로라도 반겨주면 오죽 좋아?’

한편으로는 내심 아쉽기도 했다. 만약 결정을 일찍 했다면, 자신들 역시 중국인들처럼 저기 서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그들의 예상과 달리 정민혁의 표정이 어두운 건, 그가 러시아인들을 반기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오빠, 얼굴 좀 펴요.”

진혜연의 말에 그는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바로 5분 전 강태윤의 보고를 받았다.

- 형님과 연락 두절이 됐어. 드론에도 포착되지 않고.

물론 그는 그의 형님- 이진서가 죽었을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위기가 덮쳤지만, 그는 언제나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게 왜, 혼자 가셔서··· 쯧.’

혀를 차면서 그는 앞으로 나섰다.

“그동안 고초가 많으셨습니다. 우리 그룹은 새롭게 그룹으로 합류하게 된 러시아인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황제의 통솔력 스킬 덕에 그의 몸짓과 말투 하나하나는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게다가 그가 평범한 플레이어인가. 이진서를 제외한다면 그룹 내에선 No.2라 평가받는 그다. 듣고 있던 이들은 자연스럽게 몸이 위축되는 걸 느꼈다.

물론 정민혁은 이것이 더 오해를 불러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예 기로 눌러버리는구나.’

‘이건 좀 너무한데···’

한편, 건물 안에서 간부들은 저마다 나름의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일단 급한 대로 수송기를 통해 인근을 샅샅이 뒤져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강순철의 말에,

“거대한 폭발로 변이체들이 득실거릴 정도로 몰려들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수송기로 발견할 수 있을 정도면 드론으로 진즉 발견했을 걸세.”

“혹시 바다에 빠지진 않았을까요?”

걱정이 다분한 김하나의 물음에 간부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가능성 있네요. 우주선의 파편 역시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고 하니까···”

“구조대를 보낼까요?”

“아서게, 우리가 전에 있던 쉘터에서 왜 변이체들에게 패배했었는지 벌써 잊었나.”

박승기의 말에, 사람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인다. 지형의 이점은 대단했고, 바다라는 지형은 그들에게 명백히 불리한 지형이었다. 그때, 조용히 있던 김민수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배를 띄우면 어떨까요?”

“이 사람아, 평범한 배로··· 아니, 평범한 배가 아니군? 노틸러스가 완성된 건가?”

김민수는 고개를 저었다.

“노틸러스는 아닙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그 아류작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무식하게 기프트를 때려 부었다. 이진서가 눈치를 줄 정도였다.

그러나 그 덕에 성능은 평범한 잠수함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간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진서는 그들에게 중요한 인물이었으니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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