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코인 채굴-121화 (121/236)

121화

[스킬 개조(G)를 사용합니다.]

[개조에 실패했습니다. ‘스킬 카드 - 영령 빙의(L)’가 파괴됩니다.]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카드가 유리처럼 산산조각 났다. 영령 빙의의 상점 판매가는 50만 기프트. 10% 할인받아서, 45만 기프트가 한순간에 증발해버린 셈이다.

물론 지금의 내게 있어, 45만 기프트는 푼돈에 불과하다. 그저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 아까울 뿐이다. 스킬 재사용 대기시간 때문에 기프트가 아무리 많아도 개조는 불가능하니 말이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바로 대성공이 뜰 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성공할 거라 내심 기대했다. 그래도 뭐…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계속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겠지.

생각하던 나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한 모금 빨아들였다가 내뱉는다. 뭉게뭉게 연기가 태양을 향해 올라간다. 드디어 우기(雨期)가 끝났다. 오랜만에 태양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음 재앙이 뭐가 올까, 불안한 마음도 없잖아 있다. 채굴자는 우리에게 어떤 시련을 줄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 시련을 무사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그때였다.

‘??’

내 감각에 무언가 포착됐다.

거의 외계 문명 수준으로 개조된 S31의 화면을 바라본다. 여태껏 봐왔던 붉은 점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거대한 붉은 점이 이쪽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 정도 크기면… 지금껏 내가 가장 애를 먹었던 ‘킹 타일런트’의 족히 다섯 배 이상의 크기라 할 수 있었다. 20km… 10km… 나는 즉시 날개를 펼치고, 고속 비행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하늘 요새의 ‘끝’에 도달한 나는 지상을 내려다본다. 비록 구름에 의해 가로막혀 있지만 구름조차 통찰안의 시야를 방해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보고 있음에도 한눈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물고기?’

특이한 생김새의 물고기를 말이다. 물론 단순히 거대하기만 한 물고기는 아니었다.

[레비아탄(Leviathan)]

- 다수의 플레이어와 동족을 살해하고, 진화의 정점에 도달한 초월체.

- 무엇이든 먹어치울 수 있는 폭식(暴食)의 권능과 바다를 마음껏 다룰 수 있는 해신(海神)의 권능을 가지고 있다.

- 보유 기프트 : 9,500,000

녀석의 정체는 레비아탄이라는 이름의 초월체였다.

‘드래고니안의 경우를 떠올리면, 생김새야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녀석이 보유한 기프트는 분명 놀라웠다.

‘보유 기프트가 950만이라고?’

950만.

평범한 초월체가 보유한 기프트가 10만이다. 그 95배. 단순 산술 상으로 초월체 94마리를 집어삼킨 녀석이라는 것이다. 녀석의 몸집을 생각하면 그것조차 적은 감이 있지만 말이다.

아공간 창고에서 대멸겁의 지팡이를 꺼낸 나는 망설였다. 내가 과연 녀석을 처치할 수 있을까? 이쪽의 존재를 녀석이 눈치챈 게 아니라면, 그냥 모른 척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일단 섣부르게 판단하기보단, 잠시 관망하기로 했다. 녀석은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지상에서는 해일이 일어나고, 하늘에서는 비가 내린다.

그야말로 존재 자체가 ‘재앙’인 녀석이었다. 마치 신경전을 벌이듯 한동안 가만히 있던 녀석은 깊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녀석이 떠난 후에도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이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내 인지 범위 바깥으로 도망쳤다.

‘후.’

긴장이 풀리자,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앞으로 킹 타일런트 같은 괴물들이 득실거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몸 크기만 수백 배에 육박하는 괴물이 존재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거기서 왜 그러고 있어요!?”

나는 지상을 내려다봤다. 이제원이다. 그 옆엔 감독인 강태윤을 비롯한 ‘카메라맨’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영화 한 편 더 찍는다 그랬었지, 촬영을 나온 모양이었다.

바닥에 천천히 착지했다.

“무슨 일 있어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산책 나왔습니다.”

녀석의 존재를 알린다 한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오히려 그룹원들의 불안감만 증폭시킬 뿐이다. 굳이 이 자리에서 말해 촬영 분위기를 해치고 싶진 않았다.

“화이팅입니다.”

“진서 씨도 구경하죠, 왜요?”

“괜찮습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짤막하게 그들과 인사를 마친 나는 몸을 돌리곤 스마트폰을 들었다.

***

하늘 요새는 총 네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고, 부유 마법이 불안정할 때 떨어져 나간 것을 복원하지 않은 것이다. 정민혁은 이 섬들을 목적에 따라 이름을 붙였다.

섬 중 가장 큰 거주민들의 주거 시설이 있는 메인 랜드(Main Land), 농사꾼들이 대규모 경작을 벌이는 파밍 랜드(Farming Land), 문화 시설이 대부분인 컬쳐 랜드(Culture Land).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민수와 아나스타샤의 공방이 있는 워크샵 랜드(Workshop Land). 이진서가 발을 들인 곳이 바로 이 워크샵 랜드였다. 워크샵 랜드는 건조 작업으로 한창이었다.

미국에서 받아온 항공모함을 잠수함으로 개조하고 있는 것이었다. 인부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진서는 그들을 지나쳐 대형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느껴지는 거대한 존재감.

비단 공방뿐 아니라, 이 섬 전체의 온도를 족히 몇 도는 올릴 정도의 신적 존재,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다.

‘그때는 대단했었지.’

이진서는 며칠 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가 라우라의 스킬을 빌려 소환했을 때 그는 단신으로 초월체들을 상대하며 그 엄청난 무력을 제대로 입증했었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그에게 생생한 것이었다.

생각하던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프리트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그를 위협하는 듯한 몸동작까지 펼치면서 말이다.

“왔어요?”

그를 발견한 아나스타샤가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방호복을 걸치고 있었는데 달라붙는 소재인 탓에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보다시피 잘. 근데 인간 용광로가 내 말을 제대로 안 듣더라고요?”

용광로라 불린- 그녀의 옆에 있던 붉은색 머리 여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뭐라고? 인간 용광로?”

“앞으로 내 말 좀 잘 들으라고 명령 좀 내려주세요.”

이진서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쓰게 웃었다.

“아나스타샤, 너무 놀리지 마십쇼.”

“알았어요, 내가 놀린 건 아닌데~”

라우라는 이진서를 한 번 힐끔거리고는, 분노 어린 목소리로 아나스타샤에게 말했다.

“계속 그래 봐. 내가 네년은 언젠가 불태워버릴 거니까.”

물론 그녀의 위협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 듯 보였다. 아나스타샤는 오히려 과장된 몸짓으로 몸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아이고 무서워라.”

마치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렁거리던 그들을 잠잠하게 만든 건 이진서의 한마디였다.

“그만.”

무겁게 대기를 짓누르는 듯한 농밀한 마력에 라우라도, 아나스타샤도 얌전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과열된 분위기가 가라앉은 후 아나스타샤가 이진서에게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왔어요?”

“그게 말입니다.”

이진서는 레비아탄의 존재를 그녀에게 털어놨다.

하지만 이 엄청난 사실을 전해 들었음에도 아나스타샤는 사뭇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다. 이진서는 순간적으로 그녀가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했다.

“그러니까 보유 기프트가 950만인 변이체가 우리를 노리고 있다고요? 이야, 950만. 진화라는 게 정말 놀랍단 말이야?”

“제대로 알아들은 거 맞네요.”

가만히 있던 라우라도 한마디 말을 꺼냈다.

“그 950만짜리 변이체를 그냥 보냈다는 거…야?”

“그래요.”

“편하게 반말 써도 되는데…”

라우라는 이진서를 바라보다가, 왠지 모르게 눈을 피하듯 시선을 돌려 이프리트를 바라봤다. 이프리트는 잔뜩 불만 어린 표정이었지만 그녀의 명령을 이행해 운석을 녹여버렸다.

“그래서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예요? 내가 무슨 도라에몽 만능 주머니도 아니고.”

“혹시 나중에 제가 없을 때 그 변이체가 침입한다 하더라도 물리칠, 아니면 도주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물고기라면서요? 날치가 아닌 이상 여기까진 못 올 거 같은데?”

“또 모르지 않습니까.”

아나스타샤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흐음…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캐논 슈터 기능이 있긴 해요. 내가 캐논 슈터 기능 설명 드리지 않았었나?”

이진서는 기억 속에서 ‘캐논 슈터’라는 단어를 끄집어냈다.

“그때 나중에 설명해준다고 하고, 안 말해줬습니다.”

“아, 그랬나? 캐논 슈터 기능은 말 그대로… 내쫓는 기능이에요.”

“내쫓는 기능 말입니까?”

“이건 그 연병수 설명을 듣는 편이 나을 거 같은데, 그냥 한마디로 설명하면- 텔레포트 마법과 과학의 혼합물이에요. 텔레포트 마법을 베이스로 하되, 과학 기술로 출력 효율을 더욱더 높인 거죠.”

“얼마나 멀리 내쫓을 수 있습니까?”

“그건 나도 모르겠어요. 좌표는 랜덤이라고 했었던 거 같은데. 지구 전체가 범위일지는 아직 시험을 안 해봐서 모르겠네.”

“재사용 대기시간은?”

“재사용 대기시간은 잘 모르겠고, 기프트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간다고 해요. 1회 실행 당 천만 기프트는 깨진다 그랬나? 마력석 소모량이 엄청나서 그렇게 들어간다고 했던 것 같네요.”

이진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시험해보려 했던 마음을 깔끔하게 접었다. 천만 기프트로 고작 기능 하나 실험할 바엔, 다른 곳에 쏟아붓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도 옐레나와 연병수에게 물어봐야겠다.’

다시 생각하면, 천만 기프트로 그 괴물을 내쫓을 수 있는 것은 싸게 먹히는 것이기도 했다. 생각을 마친 그는 그들과 인사를 마친 후, 이번에는 갈락시아의 도서관으로 향했다.

연병수를 만나, 물어보기 위해서다.

***

-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와요, 언니. 예런이 전부 없던 일로 해준다고 했어요.

화면 속에는 고작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훌쩍거리며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라소미는 심장이 쿡쿡 아파오는 걸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난 못 돌아가, 세라.”

- 언니, 왜요? 저랑 약속했잖아요. 저랑은…

그 예런이 나를 죽이려고 하니까, 라고 순순히 이유를 말해 이 어린 여자아이에게 상처를 줄 정도로 라소미는 냉정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모든 일이 잘 해결되면, 그때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예런, 어딨어?”

- 예런, 예런?

예런 일리아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 반가워, 에밀리.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해맑은 얼굴과 목소리, 그녀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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