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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119화 (119/236)

119화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부왕의 시체가 화장되는 것을 보며, 레오니아 3세가 일찍이 깨달은 진리였다. 하기야, 세상에 영웅은 많았지만 그들의 결말은 모두 다 동일했다.

지팡이 하나로 일개 세계를 상대했다는 대마도사 옐레나도, 폭주한 바람의 정령왕을 검 한 자루로 베어냈다는 검성, 아자르도, 그밖에 수많은 고명한 영웅들도···

전부 다 ‘죽음’이란 굴레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레오니아 3세는 그 역시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칭송하는 대단한 마법적 재능을 가졌지만, 옐레나의 그것보다 대단할 리는 없었으니까.

오히려 재능이 있었기에, 그는 그의 한계를 너무나 명확하게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신의 힘을 얻는 데 매달렸는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신은 영원한 존재니까. 신의 힘을 얻는다면 영원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왕국 전체에 수소문한 끝에, 그는 어느 한 고대 유적에서 신의 힘에 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폐하, 이 힘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힘이 아니옵니다.”

유적을 지키던 승려가 경고를 날렸지만, 그는 경고를 듣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마음에 들어 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힘이 아니라면, 그것이야말로 신의 힘에 가까운 것일 테니 말이다.

그렇게 통찰안의 시험이 시작됐다. 그리고 레오니아 3세는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는 통찰안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이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깨달았다.

“나락(Abyss)에 빠졌다. 고작 짐의 궁전만도 안되는 크기의 감옥에, 짐의 영혼을 비롯한 수많은 영혼을 가둬두더군. 시험에 도전했다 실패한 이들 말이다. 살기 위해 그들과 싸우고, 죽이고···”

무수히 반복되는 일상. 영원이라 생각될 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 감옥 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자의로 빠져나온 것이 아닌, 시험관으로 간택됨으로써.

“여기서 짐이 패배하면 또다시 나락에 빠지고 말겠지. 미안하지만 져줄 수는 없다.”

짤막하게 자신을 변론하듯 말한 레오니아 3세는 지팡이를 들었다. 도전자에 의해 파괴된 미라들이 다시 제 형상을 찾으며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는 도전자의 얼굴을 바라본다.

초조한 얼굴이다. 마치 그때의 자신을 떠올리게 만들 만큼.

“초조하겠지. 그러나 깨달아라. 지금의 너는 나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음을.”

“거, 쫑알쫑알 시끄럽네.”

잠자코 듣고 있던 도전자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나도 져줄 생각은 없어.”

여전히 오만불손한 말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레오니아 3세는 씩 웃었다.

“오만불손한 말투구나. 하지만···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는 한결 나아졌다.”

다음 순간, 도전자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미라들이 그에게 무기를 뻗는다. 검을 휘두르고, 창을 뻗고, 활시위를 당기고··· 그러나 그 중 어느 것 하나 닿지 않는다.

피하고, 베어 넘기고, 튕겨내고, 막아낸다.

분명히 처음과는 다르다. 단순히 빠르기만 했던 발걸음에, 그저 힘과 속도로 따라 하는 것이 전부였던 검술에, 숙련된 기사의 그것과 같은 기교(技巧)가 가미됐다.

실력 좋은 기사들을 많이 봐왔던 그가 보기에 아직은 어색한 점이 없잖아 있지마는. 그 어색한 점들마저 점점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전투 경험이 저놈의 재능을 개화시키고 있는 건가?’

아니, 생각하던 그는 이내 고개를 젓는다. 재능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재능은 날 때부터 가진 것. 그러나 눈앞의 도전자는 재능이 뛰어난 인물처럼 보이진 않았다.

저건 재능이 아니라···

‘업(業)이다.’

재능 있는 자들도, 재능 없는 자들도 모두 동일하게 얻을 수 있는 것.

그가 여유롭게 생각하는 사이, 그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순식간에 그의 눈앞에 나타난다. 무심한 눈동자 아래, 천천히 벌어지는 입술. 지릿한 느낌과 함께 그의 몸에 번개가 떨어진다.

그러나 몸이 반쯤 그을린 채, 레오니아 3세는 가까스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썩 기분이 나쁘진 않구나. 문득 ‘놈’이 생각나는구나. 너와 같이 똑같이 오만불손한 눈을 가진 놈이었지. 그래, 놈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단언하듯 말했다.

“나만 경험치가 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수천 년간, 멈춰 있던 성장이 다시 시작됐다. 천재의 재능이란 바로 그런 것이었으니까.

***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칠주야를 꼬박 싸웠다. 아직까지 서 있는 게 기적이라는 생각이 치밀었다. 만약 중간중간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면 쓰러진 쪽은 틀림없이 내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됐건, 승리했다. 레오니아 3세의 가슴을 관통하자, 그가 소환한 미라들은 완전히 소멸해버렸다. 가슴에서 검은 피를 철철 흘리며, 그가 입을 열었다.

“참으로 요상하구나.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분노나 슬픔보다 뿌듯한 마음이 더 크다니 말이다.”

그동안 겪은 노고를 생각하면 그에게 좋은 말이 나올 리 없지만··· 비록 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정이 든 것인지, 괜스레 마음이 약해진다.

“고생하셨습니다.”

“쯧, 겨우 말투가 마음에 든다고 했더니, 또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는. 그래도··· 나쁘지는 않구나.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중얼거리듯 말한 그의 몸이 점차 먼지로 변한다.

[통찰안의 1단계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그와 함께 떠오르는 메시지.

[통찰안의 1단계 능력을 얻었습니다.]

나는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룹원들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갑자기 왜 그런 표정을 지어요?”

진혜연의 물음.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되묻는다.

“지금···이 며칠이지?”

“뭐, 졸기라도 했어요? 갑자기 왜 그래.”

고개를 갸웃거리는 김하나.

‘안에서의 일주일은 이곳에서는 고작 찰나에 불과하구나.’

마치 꿈만 같다. 그러나 뒤이어 떠오르는 것들은 내가 겪은 것들이 ‘단순한’ 꿈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칭호 ‘언데드 헌터’를 획득했습니다.]

<언데드 헌터>

조건 : 1,000,000마리 이상의 언데드 처치

보상 : 언데드 상대 시, 모든 능력치 +5%

[칭호 ‘대마법’을 획득했습니다.]

<대마법>

조건 : Lv.25 이상의 마법 10,000번 이상 방어 혹은 회피.

보상 : 마법 저항력 +5%

[칭호 ‘국왕 살해자’를 획득했습니다.]

<국왕 살해자>

조건 : 국왕 살해

보상 : 모든 능력치 +1%

[‘칭호 중급자’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칭호 중급자]

등급 : 유일(Unique)

조건 : 칭호 일곱 개 이상 획득

보상 : 기프트 채굴량 +25%

단숨에 세 개의 칭호를 획득했다. ‘칭호 중급자’ 업적은 덤이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패시브 스킬을 습득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틀림없었다. 굳이 능력치 상승량을 계산하지 않아도, 몸이 느끼고 있었다.

“보아하니 우리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

정리하듯 말하는 박승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지금은···”

“가서 좀 쉬게, 온몸에 피곤함이 가득하구먼.”

“무슨 일인데요?”

나는 비틀거리면서 내 방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으려 하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오늘의 독서 토론 주제는 제가 읽은 책을 주제로, 더 좋은 의견이 있으시면···

이제원의 목소리였다. 어디 있는데, 들리는 거야?

- 그렇게 하는 걸로 하시죠.

뒤이은 연병수의 목소리까지. 이야기하는 걸 가만히 들어보니, 도서관인가.

멀진 않지만, 그렇게 가깝지도 않다. 게다가 도서관은 방음벽으로 막혀있을 터. 내 감각이 아무리 뛰어나다지만,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 도서관뿐만이 아니다.

- 어떻게 일곱 번을 뒤집었는데, 일곱 번 다 앞면이 나오는 거지? 아론, 무슨 수작을 부린 거야.

- 나는 수작 같은 건 부리지 않아, 그저 운이 좋을 뿐.

이서란의 동료 중 하나인 밥과 아론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그들이 있는 곳은 아마 ‘외국인 거주 구역’일 터. 외국인 거주 구역은 도서관보다도 멀다.

이 비상식적인 상황에 잠시 이유를 생각하던 나는 간단하게 결론 내렸다.

‘통찰안의 힘인가.’

변한 것은 그것밖에 없으니 당연한 추론이었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은 조금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지금은··· 너무 졸리다. 그대로 나는 수마에 빠지고 말았다.

***

“그를 죽여라.”

퀸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엔 남자가 서 있었다. 평범한 남자가 아닌 온몸에 촉수를 달고 있는 변이체였다. 그러나 초월체를 죽이라는 말에 제이드는 한껏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퀸, 나를 의심하는 건가? 나는 더 이상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고작 그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아니, 미국과 연락만 되면 된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대통령의 아들···”

“대통령은 죽었다.”

“??”

그의 동공이 커졌다.

“예런 일리아티가 죽였다더군. 내 부하가 들은 ‘소식’이니 확실할 것이다.”

“예런이 어째서?”

그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예런 일리아티가 그의 아버지와 막역한 지기(知己)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그였다. 그런데, 그런 예런 일리아티가 어째서 그의 아버지를 죽였단 말인가?

“거짓말하지 마라.”

그녀가 거짓말을 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쉽게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가엾은 인간이여,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데 이유가 필요할까.”

“······”

“죽여라. 그리고 복수하라. 그는··· 이 세계를 파멸로 몰고 올 인물이다.”

“파멸로 몰고 온다니, 그게 무슨···”

“너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퀸, 당신이 직접 움직이면 되지 않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움직이면 ‘그’ 역시 움직일 것이다. 나는 바라지 않는다.”

“······”

부들부들 제이드의 손이 떨린다. 그는 검을 쥐었다. 그리고 남자를 바라본다. 남자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괜찮다는 듯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웃기다. 변이체일 뿐인데.

변이체가 저런 미소를 지을 줄 알다니.

‘젠장.’

속으로 욕설을 중얼거리던 그는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동안 상처가 아물었고, 육신 역시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순식간에 남자의 앞에 도달한 그의 검이 남자의 몸을 꿰뚫었다.

고통 때문인지 남자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미안합니다.”

제이드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괜찮다.”

남자가 대답했다. 초월체의 목숨은 끈질겼으므로, 단번에 죽지 않았다. 찌르고, 찌르고, 찌른다. 지금까지 무수한 변이체를 베어 넘기는 동안, 그가 죄책감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눈물이 흘러나온다. 그는 변이체 역시 인간과 다르지 않은 생명체라고 인정하게 됐음을 깨달았다. 난자당한 가슴과 촉수에서는 쉴 새 없이 피가 흘러나온다.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남자가 죽었다. 기프트 얼마가 들어왔다는 메시지가 떠올랐으나, 그는 허무한 표정으로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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