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먼저 10억 기프트를 투자해, 전설 등급 스킬 카드깡을 했다. 장당 50만 기프트씩, 무려 2,200장. 뒤집는 거야 일제히 뒤집으면 그만이지만, 분류하기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신뢰하고 있는 그룹원들과 함께 뒤집기로 했다. 그 그룹원들의 정체란 뭐···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초기부터 함께해왔던 이들, 정민혁이나, 진혜연, 김하나들이다.
그들은 마치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1,000,000,000기프트를 지불해, ‘무작위 전설 등급 카드(L) x2,200’을 구매했습니다.]
메시지와 동시에 하늘에서 카드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영롱하게 빛나는 주홍색 카드 더미들. 그 장면은 마치 CG처럼 아름다워, 지켜보던 이들이 하나같이 탄성을 흘렸다.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도합 2,200장의 카드들을 눈으로 감상하던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개봉.’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제히 카드들이 뒤집히기 시작한다.
방 전체를 감쌀 정도로, 눈을 부시게 만들 정도로 밝은 광채(光彩)가 번쩍였다. 주홍색으로 빛나고 있는 카드들 사이에서 나는 무지갯빛 카드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신화 등급 카드들이다. 개수는 총 다섯 장. 처음엔 약간 실망했다.
‘고작 다섯 장.’
평균적으로 1억 기프트당 하나라고 예상했었으니, 그 절반밖에 나오지 않은 셈이다.
행운이 150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나왔다는 건 저번에는 운이 좋았단- 원래 정해진 확률은 더 낮았다는 말이겠지.
그룹원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전설 등급 카드만 만지작거릴 뿐, 신화 등급 카드들엔 일절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물론 어떤 카드가 나왔는지 힐끔거리며 궁금해하는 눈치였지만.
그들의 이목을 한눈에 받으며 한 장, 한 장, 천천히 카드들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실망한 듯한 얼굴로, 때로는 입을 벌리기도 하는 제스처를 보이면서.
물론 이건 기대감을 증폭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진심으로 실망하고 놀란 것이었다.
“어떤 카드가 나왔나?”
궁금증을 못 참은 박승기가 내게 물어왔다.
“궁금해 죽겠어요.”
김하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게 말입니다···”
<스킬 개조(G)>
<블랙 마켓(G)>
<환상의 꽃, 라플레시아(G)>
<동화 세계(G)>
<통찰안(G)>
나는 하나하나 그들에게 설명을 읽었다. 그들에게 굳이 감추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스킬 개조>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신화(God)
설명 : 보유한 스킬 하나를 개조한다. 스킬 개조는 성공 확률(행운 능력치에 비례함)이 존재하며 각각 ‘대성공’, ‘성공’, ‘실패’로 나뉜다. ①대성공 : 스킬의 등급을 한 단계 상승시킨다. ②성공 : 스킬의 성능을 상승시킨다. ③실패 : 무작위 스킬이 삭제된다.(재사용 대기시간 : 24시간)
제일 먼저 스킬 개조는 말 그대로 스킬을 개조하는 스킬이었다. 확률에 따라 성능의 향상뿐 아니라 등급의 상승까지 꾀할 수 있지만, 실패 시엔 삭제라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좋은 스킬이긴 한데, 솔직히 말해서 신화 등급 스킬치고는 애매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일단 성공 확률도 모르는 데다, 24시간이라는 재사용 대기시간까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스킬 개조가 신화 등급으로 판정된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하는 생각에, 시스템에게 물었다.
‘신화 등급의 다음 단계도 존재한다는 건가?’
일반, 고급, 희귀, 유일, 전설, 신화. 내가 알고 있는 등급은 총 여섯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까진 막연하게 신화 등급이 끝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다음 단계가 존재한다면.
그리고 이 스킬 개조라는 스킬이 그다음 단계로 향하는 열쇠라면?
스킬 개조가 신화 등급인 것도 이상하지 않다.
[예, 신화 등급의 다음 단계 스킬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시스템의 메시지에 나는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지금의 나는 성장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신화 등급 스킬만 습득하고 나면, 기프트 계약 정도를 제외하곤 더 강해질 방법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신화 등급의 다음 단계가 존재한다는 말은 내게는 새로운 성장의 길이 열렸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신화 등급 스킬만 해도 ‘사기’라는 이름이 절로 어울리는데, 그다음 단계 스킬은 어떤 위력을 가졌을까? 의문을 연이어 떠올리며 시스템에게 물었다.
‘대성공 확률은 어느 정도지?’
[극악입니다.]
‘내가 대성공할 확률은?’
행운 150을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 확률이 올라가지 않을까? 혹시 하는 기대감을 품었지만,
[플레이어, 이진서가 시행했을 때의 확률을 말한 것입니다.]
멋지게 배반당했다. 시스템이 저렇게 말한다는 것은 정말 확률이 낮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마디로 1억 기프트, 아니 2억 기프트짜리 ‘위험한’ 도박인 셈.
아무리 변이체를 사냥하며 기프트 수급량이 수직상승했다곤 하나, 확률 천장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도박 한 번에 2억 기프트를 날려버린다는 건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일단 보류하고. 다음은 블랙 마켓.’
<블랙 마켓>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신화(God)
설명 : 사용 시, 비밀스런 블랙 마켓을 개방한다. 블랙 마켓을 통해 물건을 구매 또는 판매할 수 있다.(구매 품목과 판매 품목의 숫자는 플레이어가 보유한 기프트에 비례한다)
지금까지 플레이어 상점에서는 구매만 가능했다. 환불은 물론이거니와, 낮은 가격으로 되파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하지만 블랙 마켓은 ‘판매’가 가능한 상점이라고 했다.
‘내가 이해하는 개념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제 요리도 팔 수 있겠네요?”
김하나의 기대 어린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사용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마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요리뿐 아니라, 우리 쉘터에서 수확한 것, 혹은 만든 것들을 판매할 수 있다면 변이체 사냥만이 ‘유일한’ 기프트 벌이 수단이었던 현 상황에 새로운 길이 생겨나게 되는 셈.
그리고 다음 스킬은···
<환상의 꽃, 라플레시아>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신화(God)
설명 : 환상의 꽃, 라플레시아를 소환한다. 소환된 라플레시아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소환자를 제외한 라플레시아의 목소리가 닿는 모든 존재를 환각 상태에 빠트린다. 환각 상태에 빠진 존재는 라플레시아의 의지로 움직이게 된다.(재사용 대기시간 : 7일)
<동화 세계>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신화(God)
설명 : 스킬 사용 시, 동화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재사용 대기시간 : 30일)(재사용 대기시간 초기화 불가능)
‘라플레시아는 설명만 봐도 어떤 스킬인지 이해가 되는데, 동화 세계는···’
동화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재사용 대기시간이 마인화는 물론, 지금껏 봐온 어떤 스킬보다 많은 걸 보면 적어도 평범한 스킬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통찰안>
종류 : 패시브(Passive), 액티브(Active)
등급 : 신화(God)
설명 : 드넓은 우주에서도 특별한 존재들만 가지고 있다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진리를 꿰뚫어 보는 신의 눈. 시험을 통과할 때마다 새로운 힘을 각성할 수 있다. ◈1단계 : 사물의 마음은 물론 그 본질마저 시각화하여 바라볼 수 있다. ◈2단계 : 육체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3단계 : 사용 시, 대상을 지배한다. 지배할 수 있는 대상은 단순히 생명체에 국한되지 않고, 사물, 심지어 현상마저 지배하는 것이 가능하다.
통찰안, 내 입이 떡 벌어진 이유였다. 진리의 눈, 게비샤의 상위 호환. 설명만 봐도 사기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스킬. 물론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조건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설마 시험을 치다가 죽기야 하겠어?’
총 다섯 개 스킬 내용을 들은 그룹원들은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신화 등급 스킬이라 그런지, 하나같이 특이한 스킬들뿐이네요?”
“직접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설명만 봐도 대단하다는 건 알겠군.”
진혜연의 말에 박승기가 고개를 끄덕인다.
“리더, 블랙 마켓 좀 얼른 열어주십쇼. 궁금해 죽겠습니다.”
“라플레시아? 그걸로 요리를 만들 수 있을까?”
한편, 김민수는 블랙 마켓 스킬에, 김하나는 라플레시아 스킬에 관심을 보였다. 천천히 그들을 바라보던 나는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이 중에서 저는 세 개만 습득하려 합니다.”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놨다.
“세 개만요?”
김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네가 다 습득한다고 해도 불만 있는 사람은 없을 걸세.”
“있으면 그 사람은 머리통을 박살 내야죠.”
정민혁이 옆에서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등급은 낮지만, 지금 보유한 스킬이 실전에서 더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나는 다섯 장의 무지갯빛 카드 중에 세 장을 선택했다. 각각 스킬 개조, 동화 세계, 통찰안이었다.
블랙 마켓은 중요한 스킬이긴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굳이’ 내가 습득할 필요 없는 스킬이고··· 환상의 꽃 라플레시아 역시 그렇게 내게 필요한 스킬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사실 동화 세계는 도박에 가깝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도박일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정, 아니면 사용해보고 그때 삭제해도 될 노릇이리라.
◈보유 스킬(8/9)
<성운의 가호(U)>
<앱솔루트 배리어(U)>
<영령 빙의(L)
<진리의 눈, 게비샤(L)>
<영령 소환(G)>
<기프트 계약(G)>
<시간 가속(G)>
<마인화(G)>
여분으로 남겨놨던 슬롯에 ‘스킬 개조’를 채우고. 진리의 눈, 게비샤를 통찰안으로 대체하고···
‘동화 세계는···’
앱솔루트 배리어를 제거한 뒤 습득하기로 했다. 그동안 숱하게 많이 사용해온 스킬이지만, 유일 등급일 뿐더러, 굳이 스킬이 아니어도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스킬처럼 편하게 사용하지는 못하겠지만.
어쨌거나, 생각을 마친 나는 즉시 실행에 옮겼다.
<하늘 위에 걸린 무지개 2>
등급 : 신화(God)
조건 : 신화 등급 스킬 5개 보유
보상 : 기프트 채굴량 +101%
무려 신화 등급 스킬 5개를 보유함으로써, 얻은 하늘 위에 걸린 무지개 2는 채굴량을 101%나 올려줬다.
◈보유 스킬(9/9)
<성운의 가호(U)>
<영령 빙의(L)
<영령 소환(G)>
<기프트 계약(G)>
<시간 가속(G)>
<마인화(G)>
<스킬 개조(G)>
<동화 세계(G)>
<통찰안(G)>
눈을 감았다가 뜬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전혀 새로운 장소에 이동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온통 암흑에 잠겨있는 장소. 천천히 하늘을 바라본다. 무언가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느낀 나는 가볍게 뒤로 물러났다. 거대한 용이 내가 있던 자리를 덮쳤다.
‘뭐야?’
다음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통찰안 1단계 시험이 시작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