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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112화 (112/236)

112화

“지금입니다.”

간곡한 김선우 목사의 말에, 나는 푹 한숨을 쉬며 물었다.

“이거 정말 해야 합니까?”

“예, 꼭 하셔야 합니다.”

그래, 이 한 몸 희생하는 게 뭐가 어려울까? 결단을 내린 나는 날개를 펼치고 도약했다. 수십 미터 상공 위로 떠오른 나는 미리 주문받은 대로 오만한 표정으로 지상을 내려다봤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부끄럽다. 마치 발가벗겨져서 동물원에 전시된 기분이다. 이게 뭐 하는 짓이란 말인가···

그러나 내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과 별개로, 사람들의 리액션은 격렬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아예 눈을 까뒤집고 실신한 이들까지 보였다.

“신이시여···!”

“신이 나를 바라보신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보려 해도, 이건 광기다. 신앙의 주체가 나라는 것만 다를 뿐, 사실 그 실체는 예전에 상대했던 바른 마음 교회나, 구원교의 광신도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나는 슬쩍 김선우 목사를 바라봤다. 그는 나를 향해 환한 얼굴로 엄지손가락을 들고 있었다. ···마저 대본 읽어야겠네. 사람들을 지긋이 쳐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위대한 자의 재림이요, 이 세상을 구할 마지막 선지자다.”

말하면서 마력을 방출한다. 해일과 같은 마력이 지상을 덮는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짓눌린 듯 그들의 고개가 땅으로 숙여진다. 위해를 가하진 않았지만, 틀림없이 불편함은 느껴질 터.

그러나 오히려 그들은 기뻐한다. 오랫동안 지금의 상황을 기다려오기라도 했다는 듯 행복한 미소를 흘린다. 광기가 모여 더 큰 광기를 이룬다. 나 역시 어느 정도 분위기에 휩쓸렸다.

“너희의 기도는 사라지지 않고, 굳건한 탑을 쌓을 것이다.”

문득 생각나서 빌딩을 쳐다보니, 사람들이 카메라로 이 모습을 촬영하고 있었다. 아, 흑역사 제조했네.

“경배하겠습니다!”

“신을 위해! 이진서를 위해!!”

그들의 기도가 극에 다다랐을 때, 그 순간, 나는 볼 수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 나오는 하얀색 에너지를. 그리고 그 하얀색 에너지들이 내가 말한 대로 하나의 탑을 이루는 것을.

“나는 이곳을 성역(聖域)으로 선포하겠다.”

내 말과 동시에 놀랍게도 탑이 점점 실체를 갖추기 시작한다. 나도 잠시 넋 놓고 그 장면을 바라봤다.

[기도의 힘으로 ’신성의 탑’이 세워졌습니다.]

[해당 종교를 가진 모든 이들의 능력치가 1.5 상승합니다.]

지난 예배당 설립 이후, 오랜만에 보는 두 번째 건축물이었다. 별다른 조건이나 기프트 소모 없이 종교를 가지기만 하면 모든 능력치 1.5 상승. 예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버프 효과였다.

하지만 떠오른 메시지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하늘 요새’가 완공됐습니다.]

<하늘 요새>

내구 : 300,000,000/300,000,000

넓이 : 25,780,000m²

설명 : 마법, 과학, 신앙이 한데 어우러져 탄생한 위대한 요새.

옵션 : 부유 Lv.40, 기척 제거 Lv.40, 홀리 쉴드 Lv.40, 오토 리페어 Lv.40, 캐논 슈터 Lv.40, 고속 이동 Lv.5

드디어··· 마지막 조건을 맞추는 데 성공했고, 그 덕에 쉘터- 하늘 요새를 완공할 수 있었다. 무려 3억이라는 괴랄한 내구 수치에, 40레벨 옵션이 하나도 아니고 4개나 달려 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고속 이동까지. 비록 고속 이동의 레벨이 5밖에 안 되긴 하지만, 이런 거대한 요새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가치는 충분하다 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우리 쉘터- 하늘 요새에서는 성대한 축제가 열렸다. 쉘터 완공을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나는 축제에 참석할 생각이 없었다. 이제 7시간이다.

상급 변이체가 최상급 변이체로 변이되기까지, 수억 마리의 최상급 변이체가 탄생할 때까지 고작 7시간 남았다는 의미다. 남은 시간 동안 그에 대한 대비를 할 생각이었다.

***

사실 이 시점에, 상급 변이체는 플레이어들에게 큰 위협은 아니었다. 그동안 변이체가 강해졌지만, 플레이어들은 폭발적으로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상급 변이체는 달랐다.

육체 능력부터 상급과는 차원이 달랐고 무엇보다 동종 포식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플레이어들에게는 크나큰 위협이었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플레이어들은 생각했다.

상급 변이체가 최상급 변이체로 변이되기 전까지 모두 처치하지 않으면 결국 자신들이 죽게 될 거라고 말이다. 각국의 플레이어들이 무리하게 변이체 사냥을 감행한 이유이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그 끝은 별로 좋지 못했다.

아론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달린다. 그의 뒤를 빠르게 쫓아오는 것은 족히 수백에 달하는 상급 변이체들. 하지만 그가 달아나는 이유는 상급 변이체 때문만은 아니었다.

뒤에서 조용히 그를 지켜보고 있는, 사지가 기괴하게 뒤틀린 거인. 엑시마(Exima)라는 이름의 초월체는 영리하게도 그가 먼저 변이체 무리를 공격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방심할 때쯤 갑자기 나와서 기습. 천만다행으로 첫 번째 공격이 빗나간 탓에 그는 살 수 있었지만, 그의 동료들은 크게 다치거나 죽었다.

‘저런 놈이 있는 줄 알았다면 애초에 공격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소용없었다. 의식의 흐름을 이어나가던 그는 문득 하늘을 바라봤다. 점점 세상이 어두워지고 있다. 하루에 한 번 있는 일식이 틀림없었다.

어째서? 갑자기? 아직 일식까지 남은 시간이 좀 되는 걸로 아는데.

‘여기까진가.’

아무리 운이 좋다 한들, 운만으로 이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는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때였다. 빠른 속도로 무언가가 그의 앞에 낙하했다.

쾅!

지면이 우르르 무너져내렸다.

“뭐, 뭐야?”

뒤로 자빠진 아론은 이내 무언가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검은 머리 천사. 전신에 걸친 백색의 갑주와 등에 달고 있는 백색의 날개는 영락없는 천사의 외양이었지만···

천사의 정체는 검은 머리의 동양인이었다.

‘아니, 뭐 동양인 천사가 있지 말란 법은 없지만.’

아무래도 서양인인 그에겐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당황한 얼굴로 눈을 끔뻑거리고 있는 그에게, 천사가 입을 열었다.

“안녕.”

“···플레이어?”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지, 플레이어인지 모를 남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더 말하지 않고, 검을 들었다. 그러자 검이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그는 곧 깨달았다.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순도 높은 마력.’

다음 순간, 그가 검을 휘둘렀고 순간적으로 세상이 멈췄다.

물론 정말 멈췄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환상을 느꼈다는 것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오던 상급 변이체들이 죄다 둘로 양분돼 있었다.

그는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도저히 방금 본 광경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급 변이체가 예전 같지 않다곤 하지만 수백 마리를 일거에 죽일 수 있는 플레이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영국에서도 그 정도의 플레이어는 없었다. 뺨을 때려봤지만, 이 모든 것은 분명한 현실이었다.

‘아니, 그러고 보니··· 한 명 존재하지.’

그는 동양인 천사의 얼굴이 낯이 익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곧 입을 열었다.

“배달부?”

‘배달부’라는 건 어디까지나 별명일 뿐, 그는 이름까지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배달부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플레이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자 동양인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긍정의 의미일 것이다. 아론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런 제기랄, 살았군.”

그때,

쿵쿵.

지면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뒤를 돌아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잠자코 있던 초월체, 엑시마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잠시 밝아졌던 그의 얼굴이 또다시 새파래졌다.

그러나 동양인 남자- 배달부는 여전히 여유로울 뿐이었다.

‘괘, 괜찮은 거 맞겠지?’

***

나는 영국에서 구출한 남자를 떠올렸다.

이 영국에서 유일한, 마지막 생존자.

“억수로 운이 좋은 양반이네.”

물론 운이 좋다는 것에 대해선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주변인들이 다 죽었는데 혼자 살아남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저주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내 말을 들은 진혜연이 물어왔다.

“누군데요?”

“이름이 아론이라고 했던가?”

“아론, 아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같은데?”

“혹시 그 사람··· 메가 파워볼 당첨자 아니에요?”

대답을 한 건 이서란이었다.

“메가 파워볼이요?”

“아, 혜연이 너는 모르겠구나. 미국에는 메가 파워볼이라고 우리나라로 따지면 로또 같은 게 있거든?”

“서란 씨는 로또에 관심이 많으신가 보네요. 보통은 당첨자 이름까지는 모르지 않나?”

“로또에 관심이 많았던 건 맞는데, 그 사람 당첨금이 1조였거든요.”

“1조?”

역시 미국 로또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나라 로또는 1등 해봐야 몇십억밖에 못 받지 않나?

“그 사람이 외국인이라 세금 뗄 거 다 떼면 실수령액은 그 절반이랬나.”

그래도 오천억이다. 누구는 오천억이 아니라 오천만 원도 없는 빚쟁이 신세였는데.

“그런데 들어봐요. 그게 끝이 아니에요. 다음 회차 메가 파워볼에서 그 사람이 또 1등을 한 거죠. 그래서 조작 논란도 겁나 많았는데.”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조작이 아니라고 결론이 났죠. 뭐, 당첨금은 훨씬 적었지만 그걸로 한 가지는 확실해졌죠. 그 아론이라는 인물이 운 하나는 억수로 좋다는 것.”

“그 아론과 그 아론이 동일인이라는 보장은 없잖습니까?”

“이미 영국에서 혼자 살아남아서 쫓겨 다니다가 오빠 만난 것만 해도··· 메가 파워볼 두 번 당첨보다 대단한 것 같은데요?”

진혜연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건 맞네.”

생각해보니 그렇다. 지금까지 살아남을 확률, 변이체에게 붙잡히기 일보 직전 나를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천문학적인 확률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연병수가 마법에 대한 재능, 라우라가 정령술에 대한 재능이 있는 것처럼 그는 행운에 대한 재능을 타고난 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는 우리 쉘터에 득일까, 손실일까.

‘차차 알아볼 일이고···’

어쨌거나···

무심코 시계를 살핀 나는 중얼거렸다.

“이제 시간이 됐네. 다녀오겠습니다.”

바깥으로 나왔다. 이미 축제는 끝났고, 사람들은 해산해서 그런지 거리는 한적했다. 그 길로 외곽에 도착한 나는 지상을 내려다봤다.

[상급 변이체가 최상급 변이체로 진화했습니다.]

지상을 내려다본다. 나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세계가 격변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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