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대리어스가 죽은 지 이 주가 넘었지만, 미국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대리어스의 죽음에 분노한 그의 지지 단체(이하 DA)와 시위대 간에 전쟁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수십 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피해를 본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둘 중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은 ‘평범한’ 시민들 역시 그 피해를 고스란히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정부에서 이 일을 해결해주길 바랐다.
그리고 그들의 바람대로,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단체 간의 전쟁도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정부가 누구의 편을 들어주냐에 따라 그들의 운명 역시 극명하게 갈릴 테니 눈치를 보는 것이다.
물론 두 단체의 입장 차이는 있었다.
- 우리는 정부의 말을 신뢰하지 않아. 대리어스의 죽음에 그가 배후에 있다는 말이 있으니까.
ㄴ그래, 시위대에게 그의 살인을 사주한 건 예런 일리아티일지도 몰라.
DA는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반면,
- 우리는 예런 일리아티를 믿습니다. 성공한 알파 메일(Alpha Male)인 그가 못 배운 DA들의 편을 들 리 없죠.
ㄴ우리는 예런 일리아티를 사랑합니다.
시위대는 정부가 자신들을 지지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대통령인 예런 일리아티가 TV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전 대통령, 대리어스의 죽음에 추모하도록 하겠습니다. 과학자로서도, 대통령으로서도, 그는 위대한 업적을 세웠으며 누구보다 미국을 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영원히 우리의 마음속에 기억되고, 살아갈 것입니다. 아멘.
한편으로, 이 방송을 보는 여러분들은 다들 궁금해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과연 에런 일리아티 정부는 누구 편을 들까?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하고자 합니다. 이 위대한 대통령을 죽인 것은 빌어먹을 인종 차별이라는 걸. 과연 대리어스가 백인이어도 시위대에 의해 죽었을까요?
나는 여러분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Fucking Racism.
나, 예런 일리아티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편을 들 생각이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대통령을 죽인 살인자인 주제에 적반하장으로 다른 이들을 살인자라며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미안하지만 우리 미합중국 정부에서 그들에게 내릴 것은 정의 구현밖에 없을 겁니다.]
그의 연설은 사람들을 ‘선동’하기에 충분히 호소력이 있었다.
곳곳에서 정의 구현이라는 명목으로 시위대를 향한 습격이 벌어졌다. 이에 저항하려 하자 이번엔 군 병력들이 움직여 시위대를 잡아들였다.
시위대의 운명이 결정 지어지는 순간이었다. 이 모든 소란을 불러온 예런 일리아티는 업무에 정신이 없었다. 물론 대통령으로서의 업무가 아닌, 공학자로서의 업무였다.
“드래고니안 3호와 달라진 점은 갑판을 지옥의 금속, 버너디움으로 대체했다는 것. 덕분에 비용은 많이 들지만 내구도가 크게 상승했지. 아마 드래고니안 3호처럼 열 폭풍에 휩쓸린다 한들 쉽게 추락하지는 않을 거야.”
그의 설명에 윤민수는 1층을 빼곡히 채울 정도로 거대한 우주선을 바라본다. 드래고니안 3호를 개조한 드래고니안 4호였다. 분명 멋진 우주선이었지만 그의 관심사는 다른 데 있었다.
‘어째서 그런 연설을 한 거지?’
“그렇군.”
시큰둥한 윤민수의 낯빛에 예런 일리아티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내가 왜 DA 편을 든 건지 궁금하나?”
“그래, 나는 예런, 너라면 틀림없이 시위대를 지지할 거라 생각했는데.”
“왜?”
“당연히··· 그들은 너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이니까.”
“인간들은 신을 사랑하지만, 신은 인간들을 사랑하지 않거든.”
“······”
그는 참으로 오만하면서도, 지금의 상황에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했다.
“뭐, 농담이고, 나는 애초부터 시위대 놈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고작 비과학적인 신앙 때문에 내가 가장 좋아하던 친구를 음해하던 멍청한 녀석들을 내가 왜 좋아해야 하지?”
“그 가장 좋아하던 친구를 죽인 게 너 아닌가?”
그는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그 정도로 이 일이 내게는 중요하다는 거야. 물론 내가 시위대를 버린 건,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
“그러면 또 뭔데?”
그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허공에 표가 떠오른다.
“AI를 통해 분석한 DA 쪽을 지지했을 때와, 시위대 쪽을 지지했을 때, 양쪽 모두 지지하지 않았을 때의 예상 지지도야.”
“DA 쪽을 지지했을 때가 제일 높군?”
“물론 글자나 숫자로 나타낼 수 없는 무형적 가치는 저쪽이 더 높았을지 모르지만··· 뭐, 그걸 감수하더라도 DA 쪽을 지지하는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시위대 쪽이 가진 기프트가 더 많기도 했고.”
“그게 가장 큰 이유는 아니고?”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윤민수는 그것이 무언의 긍정임을 깨달았다.
“전에도 말했지만 민수, 난 내 목적을 위해서라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설령 그게 내게 필요한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라도 말이야.”
윤민수에게 그의 말은 목적을 거스르는 순간, 그 역시 죽일 수 있다는 경고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
반대로 말하면 그의 목적을 거스르지 않는 이상··· 그가 자신을 적대할 리는 없다는 소리이기도 했으니까. 잠시 생각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그 목적에 거스르지 않게 노력해야겠군.”
정답이었는지 예런 일리아티는 엷게 미소 지었다.
***
한 시간 뒤 옐레나는 사라졌고, 연병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는 그녀의 자리를 대신하기에 충분···하지는 않았다. 그가 맡자마자 쉘터가 정신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왜, 왜 그래?”
“형, 마력이 폭주한 거 같아요.”
그때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면이 갈라지더니, 쉘터의 일부가 바다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르르. 수송기 안에 탑승한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몸을 움찔거렸다.
“저, 저건 내 안전 가옥인 거 같은데?”
“떠, 떨어진다, 내 집이···! 자네, 어떻게 좀 해보게. 내 집이···!”
하필이면 그 일부에 외국인 거주 지역도 들어있었는지 웨이타오 주석은 거의 흙빛이 된 얼굴로 내게 간절히 부탁하기 시작했다. 나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외국인 거주 지역만 있는 게 아니니, 끌어올리긴 해야 된다.
“형, 죄송해요!”
“죄송은 나중에 하고, 저거 어떻게 해야 돼?”
“부유석은 박아뒀으니까 마력만 움직이면 돼요.”
“또 폭발하는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긴 한데···”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시간 가속.”
시간 가속이 발동된다. 세상이 느릿하게 변한다. 아우리엘의 날개를 펼치고, 떨어지는 잔해들을 발로 밟으며 순식간에 떨어지고 있는 지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손을 들어 올린다.
‘마력 집중.’
옐레나와 연병수가 했던 것처럼 섬세하게 손을 움직인다. 그러자 땅에 묻혀있는 부유석들이 일제히 빛나기 시작했다. 펑! 펑! 아니, 빛나는 건 좋은데 폭발하지 말라고!
한층 더 떨어지는 속도가 가속되기 시작한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생각하던 나는 ‘갈락시아의 도서관’ 스킬을 삭제했다.
이러다 다 떨어지게 생겼는데, 도서관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차피 도서관이야 이참에 다른 그룹원에게 습득하게 해도 되는 노릇이니까.
‘스킬 구매.’
[어떤 스킬을 구매하시겠습니까?]
‘마력 제어의 효율을 높이는 전설 등급 스킬. 아니, 그냥 신화 등급 스킬로 플렉스할까?’
[마인화(G) - 400,000,000기프트]
‘···지금 내가 얼마 있지?’
[보유 기프트 : 343,586,469]
‘또 대출행이네.’
어차피 6천만 기프트의 빚 정도야, 지금의 나라면 금방 갚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나는 망설임 없이 마인화를 구매했다.
<마인화>
종류 : 패시브(Passive), 액티브(Active)
등급 : 신화(God)
설명 : 스킬 보유 시, 마력 능력치가 10% 상승한다. 사용 시, 마력 능력치가 10% 추가로 상승하고, 30분(마력 능력치와 비례함) 동안 마력 제한이 사라지며 마력에 통달한 마인이 된다.(재사용 대기시간 : 144시간)(재사용 대기시간 초기화 불가능)
[‘마인화’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마력 능력치가 19.5 상승합니다.]
[‘무한 파워’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무한 파워>
등급 : 전설(Legendary)
조건 : 마력 능력치가 200에 도달할 것.
보상 : 기프트 채굴량 +51%
마력 능력치가 200을 돌파했다. 여기까진 충분한 예상 범위 안이다. 하지만 이 상태에서 마인화까지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마인화’ 스킬을 사용합니다.]
[신체의 일부가 변화합니다.]
아우리엘의 날개를 덮을 만큼 거대한 검은 날개가 내 날갯죽지에서 펼쳐진다. 뿐만 아니라, 머리에서는 악마의 뿔 같은 뿔이 하나 생겨났다.
[마력 능력치가 21.45 상승합니다.]
‘흘러넘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반 정도 비어있었던 마력이··· 넘쳐흐른다. 지금이라면 마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실시간으로 떨어져 내리는 땅을 붙잡았다.
부유석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순수한 내 마력으로 붙잡은 것이다. 그리고 가볍게 손을 들자, 땅이 점점 솟구치기 시작했다. 땅을 다시 들어 올리는 데 성공한 나는···
힐끗 연병수를 바라본다. 그는 방금 전, 내가 벌인 일을 봤는지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씨익. 괜스레 미소 한번 지어준 나는 마법을 사용했다. 연병수가 했던, 지면을 ‘복원’하는 마법. 원래대로라면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리커버리를 응용한 그의 독창적인 마법.
하지만 지금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손을 가볍게 흔든다. 파괴된 빌딩들이 순식간에 복원되기 시작한다. 마치 시간을 되돌리기라도 한 것처럼 부서진 잔해들이 채워진다.
“와, 뭐예요, 형? 개쩌는데?”
“조금 거들어줄게, 형이.”
“그냥, 형 혼자 하셔도 될 거 같은데요?”
“슬프게도 지속 시간이 30분밖에 안 되거든.”
재사용 대기시간이 144시간에, 초기화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마력이 무한인 상태나 다름없다. 그리고 마력이 무한인 이상··· 나는 자신이 없었다. 질 자신이.
설령 그때의 운석이 다시 떨어진다 하더라도 말이다.
‘대단한 스킬을 손에 넣었어.’
다른 신화 등급 스킬을 압도할 만큼, 엄청난 스킬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제한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말이다. 나는 지상을 내려다봤다. 변이체들의 존재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 숫자는 수천에 이른다. 아마 방금 전의 소동으로 기척을 느끼고 온 모양이었다.
가볍게 중얼거렸다.
“미티어 스웜.”
무수한 운석의 비가, 멈추지 않고 그들을 향해 쏟아붓기 시작했다. 운석의 비가 멈췄을 때 지상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검게 그을린 지면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