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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110화 (110/236)

110화

대통령이었던 니콜라이와 군 장성들이 한순간에 증발해버리자 러시아 정부군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개미처럼 뿔뿔이 흩어졌고, 아예 반정부군에 투항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최후의 항전을 택한 이들은 있었다. 러시아의 특수 부대, 스패츠나츠. 동시에 니콜라이의 친위대이기도 했던 그들은 우랄산맥 안에 숨어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다.

하나하나가 정예인 그들로 인해 반정부군이 입는 피해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니콜라이의 러시아는 무너졌고, 바실리를 주축으로 한 신정부가 수립됐다.

그러나 기분 좋게 새 출발 하기에는 썩 상황이 좋지 못했다. 내전이 마무리됐더니 이번엔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운석은 러시아의 플레이어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기껏 전쟁이 끝났더니 그들은 집과 동료를 또다시 잃어야만 했다. 그러나 슬퍼하고 애도할 시간조차 그들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이제 고작 일주일 남았다. 시간으로 따지면 168시간.

상급 변이체가 최상급 변이체로 변이되기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최상급 변이체부터는 동종 포식을 통해 진화할 수 있··· 바실리, 듣고 있어?”

“그래, 듣고 있어. 그래서 좋은 생각 있어?”

“좋은 생각?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내가 벌써 말했겠지? 남은 시간이 두 달쯤 되면 어떻게 방법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젠 고작 일주일밖에 안 남았거든?”

“역시 시간이 없지?”

“그래, 그 개새끼는 우리뿐만 아니라 러시아에 있는 플레이어 전부의 시간을 날려버렸어. 기프트는 덤이고. 어쨌거나, 과거의 일을 말해봐야 아무 의미 없고 이럴 거면 차라리···”

신랄하게 비판을 쏟아내던 스텔라가 말을 흐린다.

“차라리 뭐?”

“배달부 밑으로 들어가는 건 어때? 빅토르 패거리도 거기 있다며.”

“그건 불가능하다.”

바실리는 굳은 얼굴로 딱 잘라 말했다. 그도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그가 우랄산맥에서 마주쳤던, 직접 상대했던 배달부. 그의 무력은 그를 아기 취급했을 정도로 대단했다.

마법사인 스텔라 역시 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다시 생각해도, 경이로울 정도다. 그런 그가 리더로 있는 그룹에 들어간다면 아무 대책도 없는 이곳에 있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섞이지 못할 거다.’

지금 러시아에 있는 플레이어들의 숫자는 무려 일만 명이 넘는다. 그들이 곱게 배달부의 그룹에 융화되길 바라는 건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애초에 그가 받아준다는 보장도 없고.

설령 받아준다 한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터지고 말 것이다.

‘무력 충돌이나 안 일어나면 다행이지.’

스텔라가 멋쩍게 말했다.

“그래, 나도 그냥 말해본 거야. 아니면 차라리 원조 요청이라던가, 아니면 임시 보호 요청이라도 해보는 게 어때?”

“그가 들어줄까?”

“배달부는 니콜라이를 죽임으로써, 상당한 양의 기프트를 획득했을 거야. 그리고 우리는 그 기프트에 대한 권리가 일부 있고.”

니콜라이의 기프트는 러시아의 플레이어들을 수탈해서 얻어낸 것들. 그녀는 이진서에게 넘어간 그 기프트의 일부에 대한 권리가 러시아의 플레이어들에게도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럴듯한 궤변에 불과하다. 애초에 그들은 니콜라이가 있는 핵 벙커를 발견하지도 못했으니까. 그래, 그가 아니었다면, 내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을 것이다.

즉, 그는 자신들에게 있어 은인이나 다름없었고, 그에게 기프트를 구걸하는 것은 기껏 물에 빠진 걸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우기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

그 사실은 바실리도, 스텔라도 모르지 않았다.

다만, 지금의 상황이 너무 최악인지라 마땅한 선택지가 없을 뿐.

“물론 거절당할 확률이 높겠지만, 그래도 안 해보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래.”

바실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빅토르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면 되겠군.’

빅토르와 그가 이끄는 무리는 아직, 한국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그를 통해 배달부에게 내용을 전달할 생각이었다.

‘이참에 슬슬 돌아오라 해야겠어.’

평소 동양인들에게 그리 좋지 않은 감정을 드러내던 그가 배달부의 쉘터에서 머문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

“저는 한국이 너무너무 좋습니다. 아이 러브 한국. 일본 싫습니다.”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웃겨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이없어서 그런 것이다.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지금 눈앞에서 아이처럼 재롱을 부리는 이 남자가, 수송기 안에서 나를 기습했던 그 러시아인과 동일인이 맞나? 혹시 사람이 바뀐 건 아닐까?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저는 원래 한국을 좋아했···”

- 바실리의 부탁을 말했다가, 우리를 쫓아내기라도 하면 어쩌지?

“바실리··· 대통령의 부탁이라는 건 또 뭡니까?”

- 그건 너에게 기프트를 뜯어내는 건데.

“기프트를 뜯어내요?”

진리의 눈, 게비샤를 사용해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걸 몰랐는지 그는 경악 어린 표정이었다. 잠시 후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됐는지, 그가 천천히 조심스레 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게 말입니다.”

겉으로는 한국과 러시아, 양국의 우교를 다지자는 내용이지만··· 본론은 한 줄 요약 가능이었다. 앞으로 일주일 뒤면 우리 x될 운명이니, 우리 기프트 좀 주세요.

‘하기야···’

처음에 들었을 땐 조금 황당했지만···

다시 곱씹어보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의 말처럼 앞으로 일주일 뒤면 상급 변이체는 최상급 변이체로 변이된다. 이는 전 세계에 엄청난 위협이고, 러시아라고 예외일 순 없다.

특히나 미국이나 우리가 대비하고 있을 때, 그동안 내전을 벌여온 러시아의 상황은 ‘최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지원을 요청한 건 지푸라기라도 보내는 심정으로 요청한 건가.’

“물론 이건 바실리의 입장일 뿐, 제 입장과는 하등 상관없다는 걸 미리 말씀드립니다.”

“그··· 빅토르 씨는 러시아 소속 아니었습니까? 바실리의 입장이라면, 당신의 입장이기도 한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혹시 거짓말하는 건 아닐까 미심쩍어 확인했는데, 사실이다. 뭐야, 얘?

“···안 돌아갈 겁니까?”

“절대 아닙니다. 저희는 리더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고, 이 쉘터에 계속 머물기를 바랍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충성심이 높았다고···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우리나라를 찬양했던 건 이럴 의도였던 모양이다.

“저희라는 건 빅토르 씨의 동료들 역시 포함된다는 이야기겠지요?”

“예, 전원 포함입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내일이면 쉘터가 이전될 건데··· 괜찮겠어요?”

“예!”

뭐, 이쪽에서 나쁠 건 없다. 빅토르와 그의 부하들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전투 경험이 상당하다. 굳이 그들이 오겠다는 걸 거절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빅토르 씨는 빅토르 씨고, 바실리 대통령의 부탁에도 답을 해야겠죠. 얼마면 됩니까?”

“예?”

그의 표정이, 또다시 당황으로 물든다.

“러시아를 지원하는 데 얼마면 되냐고 묻는 거였습니다.”

얼마면 돼?

이전 준비를 하는 근 며칠간, 나는 인도의 변이체들을 소탕했다. 딱 하루에 열 시간 정도만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 수중에는 ‘무려’ 5억 기프트가 있다.

물론 나갈 구석이 태산인지라 금세 사라질 기프트긴 하지만···

‘러시아인들과 기프트 계약을 맺는다.’

나는 이 기프트의 일부를 사용해, 러시아의 플레이어들과 기프트 계약을 맺을 생각이었다. 러시아의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얼마라고 했더라. 일만 명이 넘는다고 했었나?

그들 전부와 기프트 계약을 맺는다면.

‘능력치가 좀 많이 오르겠네.’

내가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기프트 계약에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을 생각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주 무리한 조건을 달 생각도 없었지만.

“예, 리더,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설마 내가 오케이를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멍하던 빅토르의 표정이 밝아진다.

“뭐, 그쪽에서 순순히 받아들일지는 의문이지만.”

조건이 달린 계약이다 보니, 그쪽에서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그러면 내 지원 역시 안녕이지만 말이다.

‘나도 돈 나갈 데 많다고.’

당장 내일 쉘터 이전을 앞두고 있다. 내가 쓰지 않고, 기프트를 모아두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혹시 이전 중에 무언가 문제라도 생긴다면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프트가 필요할 테니까.

***

“부탁드립니다.”

“그래.”

로브가 펄럭이고, 옐레나의 몸이 두둥실 하늘로 떠오른다. 곧 해일처럼 일어난, 그녀의 거대한 마력이 지상으로 퍼진다. 그와 함께 쉘터에 묻힌 ‘부유석’들이 마력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부유석 사이에 이어진 붉은 끈. 완성된 거대한 붉은 마법진.

그 모습을 바라보던 라우라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야, 저 괴물은?”

그녀는 옐레나가 괴물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듯 보였다.

하기야, 눈알이 옹이구멍이 아닌 이상 못 알아보는 게 더 신기하겠지만 말이다. 곧··· 드드드, 진동 소리와 함께 쉘터가, 정확히 말하면 쉘터가 있는 지면 전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느리지만, 공중에서 바라보니까 느린 것일 뿐, 결코 느리지 않았다. 꽤나 엄청난 구경거리였는지, 수송기 안에서 그룹원들의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퍼레이드도 아니고. 나는 피식, 웃었다. 곧, 작업을 마친 옐레나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내가 역소환되면, 다음은 연병수가 내 역할을 할 거야.”

나는 연병수를 돌아봤다. 옐레나와 비슷한 복장의 그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매사 자신감 넘치던 그가 그러고 있으니, 괜스레 불안감이 느껴진다.

“괜찮겠습니까?”

“절반.”

“예?”

“성공 확률은 절반이라고. 사실 엄밀히 말하면 지금 저 녀석의 능력으로만 따지면, 불가능해야 맞는 건데···”

“명품이 좋긴 하죠.”

지금 연병수가 걸치고 있는 복장과, 허리춤에 매달고 있는 지팡이는 평범한 물건들이 아니다. 무려 신화 등급 장비들. 그 덕에 그의 마력은 기존의 그의 마력의 수십 배로 증폭됐다.

“···그래, 그걸 감안해서 절반이라는 거야.”

“그러면 실패하면 어떻게 합니까?”

“떨어지지.”

주위가 조용해진다. 그룹원들이 잔뜩 긴장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나는 쓰게 웃었다.

“막을 방법은 없겠습니까?”

“저 녀석 정도의 재능이 아닌 이상, 마력을 활용해 저 부유석들을 세밀하게 컨트롤하는 건 불가능할걸? 저기 정령사 꼬맹이도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분야가 다르고.”

졸지에 꼬맹이가 된 라우라가 눈을 흘긴다. 나만 없었다면, 당장 이프리트를 소환해 푸닥거리했을 거 같은 분위긴데.

“한마디로 병수야, 너만 믿는단다.”

“아니, 형···”

“그리고 뭐, 떨어져도 너무 걱정하지 마라. 비싼 건 다 빼놨으니까. 다만 우리가 머물 곳이 한동안 사라지긴 하겠지만, 걱정할 거 없다.”

“일부러 부담 팍팍 주고 있는 거 맞죠, 형?”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긴장이 어느 정도 완화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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