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하남시는 멀쩡했다. 한강 댐이 무너진 여파로 도시 전체가 물에 잠겼지만, 정작 운석에 의한 피해는 고층 빌딩 몇 개가 허물어진 것이 전부였다.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격납고와 공방이 파괴됐다면 가슴이 몹시 쓰렸을 테니 말이다. 먼저, 격납고에 들러 내 애마 ‘질주’를 아공간 창고 안에 회수한 나는 공방으로 향했다. 특대형 공방 앞에는 배가 떠 있다.
배의 정체는 다름 아닌 미국에서 회수한 항공모함들. 물론 처음 봤을 때와는 외관이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사실, 더 이상 항공모함이라 부를 수 있는지도 의문인 수준이다.
‘하기야, 잠수함으로 개조 중이니 당연한 건가.’
배 위에선 인부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나는 인부들을 두리번거렸고, 곧 앞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민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날개를 펼치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나를 보자, 별 당황한 기색 없이 반갑게 맞았다. 미리 그에게 갈 거라고 연락했기 때문이다.
“리더, 오셨습니까? 제가 먼저 찾아뵀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동안 김민수 씨가 놀고 있으셨던 것도 아니고. 작업은 잘 진행돼갑니까?”
“쉘터 이전을 앞둔 상태니, 최대한 서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예, 말씀하세요.”
“잠수함 선체의 재질을 ‘새로운 금속’으로 변경할 예정입니다.”
“새로운 금속이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는 품에서 작은 보관함을 꺼냈다. 딸깍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풀리고··· 마침내 안에 있는, 500원 동전 크기의 돌 조각이 그 자태를 드러냈다.
나는 보자마자, 그 돌 조각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건 운석 아닙니까?”
자그마한 파편에 불과하지만 직접 운석을 받아냈었던 내가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예, 맞습니다. 하남시에 떨어진 운석의 파편입니다. 이 파편을 고온의 용광로에서 가공하면 새로운 금속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금속이라··· 아다만티움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알고 있는 금속의 가짓수는 몇 되지 않지만, 아다만티움이 뛰어난 금속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쟈비스나 기타 수송기들의 선체를 이룬 재질이 바로 아다만티움이니까.
“강도만 놓고 보면 그 아다만티움과도 궤를 달리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런 아다만티움과도, 단순히 강도가 높다는 것도 아니고 무려 궤를 달리할 정도란다. 그렇다면 대체 어느 정도로 단단하다는 걸까?
“실험해봐도 되겠습니까?”
“예.”
그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으로 파편을 붙잡고, 가볍게 짓누른다. 파츠츠. 제법 힘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바로 부서지지 않았다.
이런 금속 ‘판’이라면 아무리 나라 하더라도 부수는데 애를 꽤 먹었을 것이다. 김민수는 금속의 성능을 직접 확인해서인지 한결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다만 가공하기가 더럽게 힘들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화력 발전소의 용광로를 사용했지만 쉽게 금속의 형태가 바뀌지 않더군요. 아예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시간이 제법 걸릴 겁니다.”
“쉘터 이전 때까지는 불가능하겠죠?”
혹시나 하는 물음에 그는 정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이대로라면 한 척 분량을 뽑아내는데도 못해도 삼 개월 이상은 걸릴 겁니다. 물론 다른 금속을 섞으면 되기야 하지만, 그 완성도는 떨어질 겁니다.”
우리가 보유한 항공모함은 총 세 척. 총 세 척을 개조하는 데 못해도 9개월 이상은 걸릴 거라는 의미다. 270일. 당장 보름 뒤만 해도 상급 변이체가 최상급 변이체로 변이될 것이다.
당장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270일이 안 될지도 모르는 노릇. 그러면 늦어도, 너무 늦는다.
“시간을 더 단축할 방법은 없겠습니까?”
“사실··· 그래서 리더께 부탁을 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그···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라면 금속을 쉽게 녹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말입니다.”
뒷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라우라에게 협조를 요청해달라는 것이다.
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불같은 성격을 생각하면, 협조하기는커녕 누구를 인간 용광로로 이용해 먹을 거냐며 불같이 화를 내겠지만, 그 정도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안 하겠다 그러면, 그녀에게 명령을 내려 강제로 시켜버리면 그만이니까.
-노예 계약을 맺은 그녀는 내 명령에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신세였으므로.
“그리고 리더, 그··· 금속의 이름을 정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이템 정보를 봤는데, 아무것도 뜨지 않아서··· 그렇다고 계속 새로운 금속이라 칭하기도 애매하고.”
“김민수 씨가 정하셔도 되는데요.”
그가 멋쩍게 웃으며 말한다.
“제게는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말입니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운석에서 추출한 금속의 이름. 솔직히 이름이 그리 중요하겠냐마는··· 왠지 멋대로 지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내,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면 신의 선물은 어떻겠습니까? 신이 준 선물이니까요.”
나는 쓰게 웃었다.
신이나 다름없는 ‘채굴자’가 내린 선물. 물론 그런 목적으로 떨어트린 운석은 아니겠지만, 아다만티움보다 훨씬 강도 높은 금속을 품고 있다니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된 셈이다.
당연하게도 채굴자에게 감사한 마음 따위는 조금도 품고 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김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신의 선물로 정하겠습니다. 그러면 아무쪼록, 그 정령왕, 이프리트가 용광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라우라가 준비가 완료되면 제가 먼저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전 준비는 잘하고 계시고···”
그와 작별 인사를 하고 하남시를 벗어나 다시 쉘터로 돌아오는 길,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고맙다, 이 새끼야.
***
“저희 쉘터를 어디로 이전해야 할지, 다들 의견을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의견 제시 이후에는 투표를 통해 결정하겠습니다.”
이진서의 말에 간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일 먼저 손을 든 건, 강순철이었다.
“저는 인도를 추천합니다.”
“이유도 함께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흠흠, 헛기침을 해 목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인도는 현재 가장 많은 변이체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그런 인도로 쉘터를 이전하면, 보다 상당한 지형적 이점을 가진 채 변이체를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무슨 이상한 소리라도 들은 듯한 기묘한 표정으로, 박승기가 번쩍 손을 들었다.
“난 그 의견에 반댈세.”
“의원님, 좀 이따 의견 제시가 모두 완료되면 투표에 맡길 겁니다.”
“아니, 생각해보게. 변이체 많이 상대하면 기프트 많이 얻을 수 있지, 그걸 누가 몰라? 그런데 그··· 변이체가 한둘인가? 인도 인구를 생각하고, 우리에게 앞으로 남은 ‘시간’을 생각해보게. 수만의 초월체가 몰려온다면 우리는 끝이야!”
강순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바라는 일입니다. 어차피 녀석들은 결국 우리 쉘터에 쳐들어오게 될 겁니다. 매도 미리 맞으면 나은 거 아니겠습니까?”
“내가 정말 이렇게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네만 자살은 자네 혼자 하지?”
“의원님.”
이진서가 낮게 중얼거리자, 박승기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가 아무리 발언권이 높다곤 하나, 리더의 말을 거역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강순철은 대꾸 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 1 후보지는 인도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의견 있으신 분? 예, 의원님, 말씀하십쇼.”
“남극으로 가지.”
“남극 말입니까?”
“그래, 남극! 그만큼 변이체의 숫자가 적을 테니, 변이체의 침입이 없는 ‘안전한 쉘터’가 될 수 있을 거네.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자네들은 이미 알고 있잖나. 변이체들이 많은 도시로 쉘터를 이전하자는 건 무리수라는 걸 말이야.”
그때 진혜연이 손을 들며 물었다.
“그런데 그, 왜 북극은 안되는 건가요? 우리나라랑 거리상으로는 북극이 더 가깝지 않나?”
“그, 그렇지 않을까?”
“우리나라가 북반구니까 당연히 북극이 더 가깝겠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북극이든 남극이든 둘 다 더럽게 춥지 않아요?”
김하나가 대신 대답했다.
“그거야 기프트로 난방기를 구입해, 난방을 잔뜩 틀어 놓으면 그만이고.”
“아니, 말이 쉽지, 난방기 구매하는 것도, 그리고 난방을 틀어 놓는 것도 다 기프트잖아요. 진서 씨 피 같은 돈이 그리 쓰이는 꼴은 못 보지.”
“뭘 새삼스럽게 그러나? 난방 트는 데 얼마나 든다고? 그리고 액수로 따지면 자네가 가장 많이···”
“잘 모르겠는데요.”
김하나가 어깨를 으쓱이며 시치미를 뚝 뗐다.
“그··· 빙하가 녹았을지도 모릅니다.”
가만히 있던 강태윤도 한마디 거들었다.
“빙하가··· 녹아?”
“다들 생각해 보십쇼. 지금 비가 쉬지 않고 내린 지 벌써 두 달을 훌쩍 넘겼습니다. 다 녹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틀림없이 빙하가 녹았을 겁니다.”
“빙하 녹으면 지구 멸망한다고 하지 않았나?”
이제원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강태윤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기, 누나. 고작 북극, 남극 빙하 녹는다고 지구 멸망할 거였으면 이미 한참 전에 멸망했지.”
“그건 또 그렇네?”
“아직 안 녹았을 수도 있지 않은가?”
“녹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물에 잠겼을 겁니다. 저희가 해상 도시를 만들려 하는 게 아니라면··· 북극, 남극은 이전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닐 거 같습니다.”
“끙···”
박승기도 입을 다물었다. 지켜보던 이진서가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의원님 말씀대로, 녹았나, 녹지 않았나,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더 없으십니까?”
“형, 저요.”
“그래, 병수야.”
“굳이 어디 한 군데로 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게 무슨 말이냐?”
“굳이 지상에 쉘터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인도나, 북극, 남극으로 이동을 할 수 있을 정도면 이미 기술에 대해 충분히 검증한 상태일 테니 굳이 어딘가에 정착할 필요 없이, 쉘터 그 자체를 쉘터로 만들자는 뜻입니다.”
“그니까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이동 요새를 만들자는 거지?”
“예, 마법 도시처럼 공중 도시를 만들자는 말입니다.”
이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세 번째는 공중 도시. 더 의견 있으신 분?”
다른 이들이 서로의 눈치를 본다. 하지만 더 의견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없으면 네 번째는 호주로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이 제게 간곡하게··· 아니, 간곡하게는 아닌가. 뭐 그렇게 부탁을 해와서 말입니다.”
1. 인도
2. 북극 or 남극
3. 공중 도시
4. 호주
곧, 투표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30분 후, 개표 결과가 드러났다.
“저희가 쉘터를 이전할 목적지는, 총 10표를 얻은···”
이진서의 말이 이어졌다.